소품반야바라밀경 제8권
21. 공경보살품(恭敬菩薩品)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보살이 반야바라밀의 행을 여의지 않는다면 그때 악마는 마치 심장에 화살이 박힌 것처럼 괴로워하면서 큰비와 벼락과 천둥소리로 보살을 놀라게 하고 털이 곤두서게 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로부터 물러나도록 하고 더 나아가 생각이 어지럽도록 할 것이다.
아난이여, 하지만 악마가 반드시 모든 보살들을 괴롭히고 어지럽히는 것은 아니다.”
“세존이시여, 그렇다면 악마에게 어지럽힘을 당하는 보살은 어떤 보살입니까?”
“아난이여, 어떤 보살은 전생에 깊은 반야바라밀을 말하는 것을 듣고도 이를 믿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악마는 바로 이와 같은 사람을 괴롭히고 어지럽혀서 제 마음대로 하는 것이다.
또 아난이여, 만약 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을 듣고 의심을 품는다면 깊은 반야바라밀이 있겠느냐, 없겠느냐?
아난이여, 이러한 보살도 역시 악마에게 휘둘리게 된다.
또 아난이여, 어떤 보살은 선지식을 여의고 악지식을 가까이하여 깊은 반야바라밀의 뜻을 듣지 못하며 듣지 못하는 까닭에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니, 어찌 반야바라밀을 행할 것이며 어찌 반야바라밀을 닦겠느냐?
아난이여, 이러한 사람도 역시 악마에게 휘둘리게 된다.
또 아난이여, 만약 보살이 그릇된 법을 받아들이면 이러한 사람도 역시 악마에게 휘둘리게 되니,
악마는 마음속으로,
‘이 사람은 나를 도와주며 또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나를 돕도록 해서 나의 소원이 잘 이루어지게 한다’고 생각한다.
아난이여, 이러한 사람도 역시 악마에게 휘둘리게 된다.
또 아난이여, 보살은 어떻게 해서 악마에게 휘둘리는가?
만약 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을 듣고 다른 보살에게 말하기를,
‘이 반야바라밀은 아주 깊어서 우리들도 아직 그 의미를 모르는데 그대들이 어찌 알아들을 수 있겠는가?’라고 한다면,
이러한 사람도 역시 악마에게 휘둘리게 된다.
아난이여, 만약에 보살이 다른 보살을 얕보며 말하기를,
‘나는 멀리 떨어져서 수행하고 있으나 그대들에게는 이러한 공덕이 없다’고 한다면,
그때 악마는 이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날뛴다.
아난이여, 만약 어떤 보살이 악마를 위해 그 이름을 부르고 그 이름을 얻었다는 이유에서 청정하고 선량한 다른 보살을 얕본다면, 이러한 사람들에게는 아비발치의 지위에 있는 보살의 공덕이 없을 뿐만 아니라 짐짓 아비발치의 지위에 있는 보살을 가장하는 까닭에 번뇌가 불어난다.
자신은 스스로 높이고 남은 낮추면서,
‘나에게는 공덕이 있고 그대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면,
그때 악마는 이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마음속으로,
‘나의 궁전은 비어 있지 않으니 지옥과 아귀와 축생이 더욱 불어나리라’고 생각한다.
악마의 신통력이 더욱 늘어나는 까닭에 이 사람이 하는 말은 다른 사람들이 모두 믿고 받아들여서, 보고 배운 것도 그대로 따르고 말하고 행동한 것도 그대로 따르니 ,번뇌가 더욱 불어난다.
또 이 사람과 같이 생각이 뒤바뀌어 있는 까닭에 몸과 마음과 생각에 의한 업을 지어 모든 것이 고통스러우니, 이로부터 지옥과 아귀와 축생이 더욱 불어난다.
아난이여, 악마는 이러한 이익을 보고 또 더욱 기뻐한다.
아난이여, 만약 불도를 구하는 사람이 성문인 사람과 다투면,
악마는 다시 이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이 사람은 비록 살바야를 멀리 여의었지만 그리 크게 여의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아난이여, 하지만 보살이 보살과 다투는 것을 보면,
악마는 곧 크게 기뻐하면서 다시 마음속으로,
‘이 두 사람은 살바야를 멀리 여의었다’고 생각한다.
아난이여, 만약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리라는 수기를 아직 얻지 못한 보살이 그러한 수기를 받은 보살에게 성을 내고 원망하면서 서로 싸우고 욕한다면 설령 살바야를 얻고자 하더라도 그러한 생각 하나에 1겁씩 까마득히 오랜 세월을 지난 뒤에라야 비로소 거룩한 서원으로 꾸밀 수 있다.”
아난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은 죄를 지은 사람도 참회할 수 있습니까? 반드시 그러한 생각에 1겁씩 까마득히 오랜 세월을 지난 뒤에라야만 비로소 거룩한 서원으로 꾸미는 마음을 낼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보살과 성문 모두 죄에서 벗어남이 있다고 말하고 벗어남이 없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아난이여, 만약 보살이 싸우고 욕하면서 서로 화해하지 않고 마음속에 원한을 가진다면 나는 이 사람들이 죄에서 벗어난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사람들은 설령 살바야를 얻고자 하더라도 그러한 생각 하나에 1겁씩 까마득히 오랜 세월을 지난 뒤에라야 비로소 거룩한 서원으로 꾸밀 수 있다.
아난이여, 만약 보살이 보살과 싸우고 욕한 뒤에는 바로 화해하고 다시는 싸우지 않고 마음속으로 ‘나는 반드시 모든 중생을 위해 겸손해져야 한다.
만약 내가 성내고 싸워서 다른 사람에게 보복하고자 한다면 이는 곧 크게 허물을 짓는 것이다.
나는 반드시 모든 중생을 위해 다리가 되고 다른 사람들을 얕보지 말아야 할 것이니 하물며 보복이겠는가?
반드시 벙어리와 귀머거리와 같이 해서 결코 깊은 마음을 스스로 무너뜨리지 않을 것이다.
내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때면 반드시 이들을 제도할 것이니, 어찌 화를 돋구어 스스로 성내겠는가?’라고 생각해야 한다.
아난이여, 보살의 길을 구하는 이는 설령 성문인 사람일지라도 나아가 그에게 결코 화를 내서는 안 된다.”
아난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만약 보살이 보살과 함께 머무른다면 그 법도를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서로 바라볼 때마다 부처님인 듯해야 하니,
‘이 사람은 나의 큰 스승이며 같은 배를 타고 함께 도를 행하며 그가 배운 것은 나도 반드시 배워야 하며,
만약 그가 잡된 것을 행하면 나는 배우지 않을 것이며,
그가 청정하여 살바야를 염두에 두고 배운다면 나도 반드시 배울 것이다’하고 생각해야 한다.
만약 보살이 이와 같이 배운다면 이것을 가리켜 같이 배운다[同學]고 하는 것이다.”
그때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만약 보살이 다함을 위해 배운다면 이것을 살바야를 배운다고 하며, 생겨남이 없음을 위해 배우고 여읨을 위해 배우고 멸함을 위해 배운다면 살바야를 배운다고 합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말한 대로 보살이 다함을 위해 배우는 것을 살바야를 배운다고 하며, 생겨남이 없음과 여읨과 멸함을 위해 배우는 것을 살바야를 배운다고 한다.
수보리여, 그대 생각에 여래는 그 진실 된 모양에 의해 여래라고 하니, 이 진실 된 모양은 다함이 없고 여읨이 없고 멸함이 없겠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여, 이와 같이 배우는 것을 가리켜 살바야를 배운다고 하니, 살바야를 배운다는 것은 곧 반야바라밀을 배우는 것이고, 부처님께서 가지고 계신 10력(力)ㆍ4무소외(無所畏)ㆍ18불공법(不共法)을 익히는 것을 말한다.
수보리여, 보살이란 이와 같이 배우는 이를 말하니 곧 모든 배움의 끝에 이른 것이며, 이와 같이 배우는 이는 악마나 악마의 졸개들이라도 짓밟을 수 없다.
이와 같이 배우는 이는 아비발치의 지위를 신속히 얻으며,
이와 같이 배우는 이는 신속히 도량에 앉으며,
이와 같이 배우는 이는 스스로 갈 곳을 배우며,
이와 같이 배우는 이는 중생을 구하여 보호하는 것을 배우며,
이와 같이 배우는 이는 대자대비를 배우며,
이와 같이 배우는 이는 3전12행상(三轉十二行相)의 법륜(法輪)을 배우며,
이와 같이 배우는 이는 중생을 제도하는 법을 배우며,
이와 같이 배우는 이는 부처님의 종자를 끊지 않는 것을 배우며,
이와 같이 배우는 이는 감로문(甘露門)을 여는 것을 배운다고 한다.
수보리여, 범부는 근기가 무르익지 않아서 이와 같이 배울 수 없으며, 모든 중생을 이끌고자 하는 이는 능히 이와 같이 배울 수 있다.
수보리여, 보살이 이와 같이 배우면 지옥과 축생과 아귀에 떨어지지 않으며 외딴 곳에 태어나지 않으며,
이와 같이 배운 이는 전타라(旃陀羅)의 집안에 태어나지 않으며, 대나무와 풀잎을 얽어 만든 집에 태어나지 않으며, 똥오줌을 치우는 집에 태어나지 않으며, 가난한 집에 태어나지 않는다.
수보리여, 보살이 이와 같이 배우면 한 눈이 멀거나 두 눈이 머는 일이 없으며, 앉은뱅이나 귀머거리가 되는 일이 없으며, 아둔하거나 불구가 되는 일이 없으니 육신이 모두 온전하다.
수보리여, 보살이 이와 같이 배우면 다른 목숨을 빼앗지 않고 남의 물건을 훔치지 않고 그릇되게 음행하지 않고 거짓말하지 않고 이간질하지 않고 욕설하지 않고 헛말하지 않고 탐내어 시기하지 않고 성내어 괴롭히지 않고 삿되이 보지 않고 삿된 수단으로 살아가지 않고 삿된 견해를 가진 무리를 감싸지 않고 계율을 어긴 무리들을 감싸안지 않는다.
수보리여, 보살이 이와 같이 배우면 장수천(長壽天)에 태어나는 일이 없다. 왜냐 하면 보살은 방편을 성취하기 때문이다.
무엇을 방편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이것은 반야바라밀에 의해 일어나니, 보살은 비록 선정(禪定)에 들되 선정에 의해 생겨나는 일은 없다.
수보리여, 보살이 이와 같이 배우면 부처님의 청정한 능력과 청정하여 두려움이 없는 것을 얻는다.”
“세존이시여, 만약 모든 대상이 본래 청정한 모양이라면 보살은 왜 굳이 청정한 대상을 구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옳고도 옳은 말이다. 수보리여, 모든 대상은 본래 청정한 모양이므로 보살은 이 본래 청정한 모양의 대상 가운데에서 반야바라밀을 행하더라도 놀라거나 두려워하거나 낙담하거나 물러서지 않는다.
이것을 가리켜 청정한 반야바라밀이라고 한다.
수보리여, 범부는 모든 대상이 본래 청정하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한다.
이러한 까닭에 보살은 부지런히 정진하리라 마음을 내고 그 가운데에서 배움으로써 청정한 모든 능력과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경지를 얻는다.
수보리여, 보살이 이와 같이 배우면 한결같이 모든 중생의 마음과 마음의 움직임을 꿰뚫어 볼 수 있다.
수보리여, 비유하자면 이것은 좁은 땅에서만 사금(沙金)이 나는 것과 같이 역시 중생들 가운데에서도 적은 사람들만이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배운다.
비유하자면 이것은 중생들 가운데 적은 사람들만이 전륜성왕의 업을 일으키고 많은 사람들은 작은 왕의 업을 일으키는 것과 같다.
수보리여, 이와 같이 적은 중생들만이 반야바라밀의 도를 행하고 다른 많은 사람들은 성문과 벽지불의 가르침에 대해 마음을 낼뿐이다.
수보리여, 적은 사람들만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배울 수 있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배우는 가운데 다시 적은 사람들만이 이와 같이 말하고 행하며, 이와 같이 말하고 행하는 가운데 다시 적은 사람들만이 반야바라밀을 따르고 배우며, 따르고 배우는 가운데 다시 적은 사람들만이 아비발치의 지위를 얻는다.
수보리여, 이러한 까닭에 보살은 적은 사람들 가운데 다시 적은 사람들이 되고자 반드시 반야바라밀을 배우고 반야바라밀을 닦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