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조건
장상록
36,940명의 전사자, 100,000명에 이르는 부상자와 포로를 발생시키고도 미국 역사상 최초로승리하지 못한 전쟁. 142명의 미국 장군 아들이 참전해 35명이 전사한 6·25, 한국전쟁이다.
김일성, 팽덕회(彭德懷)와 함께 정전협정에 서명한 클라크 장군(Mark W. Clark)과 전역 후에도 한국을 위한 봉사에 매진한 밴프리트(James A. Van Fleet) 장군의 외아들도 한국에서 산화(散花)했다. 밴프리트 장군은 통일을 이루지 못한 한국 현실에 가슴아파하면서 후일 아들 시신이 발견되면 한국 땅에 묻어달라고 했다.
대통령 당선자 신분으로 방한한 아이젠하워가 밴프리트 장군에게 자신의 아들을 후방으로 배속시켜달라고 요청한 것도 인상적이다. 아이젠하워는 아들의 전사를 두려워해서가 아니라 혹시라도 포로가 되어 조국에 누가 될 것을 우려해서 그런 요청을 한다.
이 외에도 당시 참전한 미군의 면면을 보면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이런 위대한 헌신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한국전쟁은 영예로움보다는 ‘잊혀 진 전쟁’이 되고 말았다. 만일 한국이 오늘의 번영을 이루지 못했다면 참전한 그 모든 군인들의 죽음과 헌신은 헛된 것이 되고 기억의 망각 속에서 서서히 사라졌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미국은 한국에게 감사해야(?) 한다. 자신들이 흘린 피가 헛되지 않았음을 충분히 증명했기 때문이다. 오직 생존만을 생각하던 한국은 이제 국격을 생각하는 나라가 되었다.
대한민국은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발행한 독립공채에 대한 상환의무를 이행했다.
당시 그 채권을 사줬던 아일랜드 사람들은 동병상련의 마음을 가졌을 수도 있고 또 어떤 이는 단순한 동정에서였을 수도 있다. 분명한 사실은 그 채권은 결코 부실채권이 아니었다는것이다.미국의 원조를 받은 나라는 너무도 많다. 하지만 그 중에서 원조를 하는 나라가 된 것은 대한민국이 거의 유일하다. 근대화이론이 대부분의 제3세계에서 실패해 종속이론을 불러왔지만 거의 유일한 성공사례로 남아 미국의 위신을 세워준 것도 대한민국이다.
칸나에 전투에서 한니발의 카르타고군에게 로마군은 궤멸된다. 하지만 최후의 승자는 로마였다. 후일 그리스에 원정한 로마군이 승리한 후 요청한 첫 번째 항복조건이 칸나에 전투 당시 포로가 된 로마군을 찾아 돌려보내라는 것이었다. 도처에서 노예로 생활하던 노병들은 개선장군이 되어 로마로 귀환한다.미군은 로마군의 그 모습을 잊지 않았다.
“당신이 조국을 위해 죽을 수는 있지만 조국은 그런 당신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한국사의 오랜 의문. 왜 통일신라인가? 672년 석문전투에서 신라군이 크게 패한다.
놀란 문무왕(文武王)은 김유신에게 묻는다. “군의 패배가 이와 같으니, 어떻게 해야 합니까?” 김유신은 이렇게 답한다. “당군의 계략은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마땅히 장수와 병사들로 하여금 각 요충지를 지키게 해야 합니다. 다만 원술은 왕명을 욕되게 했을 뿐 아니라, 또 가훈을 저버렸으니 목 베어 죽여야 합니다.” 다른 사람은 용서하되 아들만 목을 베라는 김유신.
밴프리트와 김유신의 존재가 제국의 충분조건은 아닐지 모르지만 필요조건임은 부정할 수 없다.
강함은 무엇인가
장상록
<논어(論語) 공야장(公冶長)>에 나오는 내용이다. 공자(孔子)가 “나는 아직 강한 자를 보지 못하였다.[吾未見强者]”고 하자, 어떤 사람이 신장(申棖)은 어떠냐고 물었다. 이에 공자가 “그가 강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그의 욕(慾) 때문이니, 어찌 강한 자가 될 수 있겠는가.” 하였는데, 사씨(謝氏)의 주(註)에, “외물(外物)을 이길 수 있는 힘을 강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만물의 위에자신의 뜻을 펼칠 수가 있는 것이다.[能勝物之謂强 故常伸於萬物之上]”
강함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공자가 생각하는 바는 ‘외물을 이길 수 있는 힘’ 그 너머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바로 욕(慾)의 문제다. 그런데 ‘만물의 위에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는 것’에서 욕망을 제거한 실체가 강함이라는 공자의 인식은 존재보다는 당위를 우선시하고 있다.
마키아벨리의 현실 인식과는 정반대의 위치에 있는 셈이다.
중국이 자신들을 강자로 인정해줄 것을 주변국에 시위하고 있다. 중국몽(中國夢)은 이른바 중화민족의 부흥을 이념화한 것이고 대외적으로 그것을 구현하기 위한 세계정책이 일대일로(一帶一路)란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주변국들을 향한 고압적 외교정책이 전랑외교(戰狼外交)다. 중국몽이 게르만 우월주의와 다른 점이 무엇인지에 대해 우선 생각해봐야 할 당사자는 바로 중국인이다. 일대일로가 그들의 선전과는 다르게 해당국을 경제적으로 침탈하고 족쇄를 채우는 제국주의 정책은 아닌지에 대해서도 답할 의무가 있다.
중국인이 지구를 구원한다는 메시아적 사명감을 가지고 군림하려는 전랑외교를 정당화 할 수 있는 보편타당한 규범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중국인은 답해야 한다.
영원한 우방은 없고 불멸의 국익만 존재하는 국제사회에서 국가관계가 항상 좋을 수는 없다.
그럼에도 구성원인 사람 사이의 문제는 그것을 초월한 규범을 가질 수 있다. 현재 중국의 문제는 단순히 국가의 패권추구에 있지 않다. 우려되는 것은 습근평(習近平)의 종신집권이 아니라 중국인의 민족주의에 있다. 중국인이 보여주고 있는 애국심의 과잉이야말로 모든 불행의 씨앗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중국이 강자가 될 수 없는 근본적 장애 요인이다.
민족주의가 선이 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약자일 때이다. 블라디보스톡 독수리 전망대에서 오성홍기를 흔들며 고토회복을 목 놓아 외치는 중국인을 보면서 나는 중국이 여전히 약자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확인했다. 강자와 약자의 애국심은 발현 양상이 달라야 한다.
중국은 오랜 역사와 찬란한 문화를 가진 국가다. 그들이 좀 더 겸손하고 타국을 존중할 수 있다면 지구상의 다른 국민들로부터 존경을 받게 될 것이다. 중국이 강자가 되는 길이기도 하다.
그것은 우리를 향한 말이기도 하다. 오래 전 영어 강사 한 분이 이런 얘기를 들려줬다.
“미국인의 애국심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강하다. 그런데 유치원이나 초등교육 과정에서는애국심보다는 세계인으로서의 소양을 먼저 가르친다.” 인상 깊은 말이었다. 아울러 되돌아보기 민망한 내 흑역사를 소환한다. 고3때인 1985년 항공사고가 있었다. 일본항공 123편이 추락해 520명이 사망한 비극이었다. 그런데 그 소식을 듣고 나는 슬픔을 느끼지 못했다.
‘우리 민족을 핍박하고 반성하지 않으며 교과서를 왜곡하고 독도를 자신들 땅이라 우기는 일본인들 죽음이 무슨 대수인가?’ 돌아보면 참으로 섬찟하고 얼굴이 화끈거린다.
당시 희생된 분들은 물론 일본 국민들께도 참으로 송구한 마음이다.
어린이에게 역사와 세계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는 단순한 교육만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나에 한해 한정해서 말하자면 애국심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인간으로서의 소양을 잃은 애국심은 그 자체가 흉기이자 야만이 된다.
한국에 대해 협박과 공갈을 일삼는 중국이 한국인의 마음을 얻을 수는 없다.
나는 중국인을 미워하지 않는다. 더 이상 일본인을 미워하지 않듯이.
죽창가를 부르던 586세대에겐 나름의 당위가 존재했다.
‘약자의 민족주의는 선’이라는 보호막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한국은 다르다.
일본과 중국에 대해 쿨한 MZ세대야 말로 진정한 강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