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28일 오전 5시 30분. 밤새 비가 오락가락. 여전히 잔뜩 흐리다. 눈 뜨자마자 쓰레기 등을 정리하고 항해 준비를 시작한다. 다운 받은 아내의 선상 노래방 파일과 뽀로로 파일을 패드에 옮긴다. 곧 아내가 일어나면 살림살이들을 배가 흔들려도 쓰러지지 않도록 정리 할 거다. 리나의 안전조끼와 안전 줄도 찾아 놓는다. 리나의 안전도 최우선이다. 리나 없으면 미래도 없다. 조심 또 조심하자.
윈디로 바람과 파도를 본다. 풍향은 노고 존이지만 수요일 저녁부터 바뀐다. 오늘부터 토요일까지는 가는 항로내의 파도는 1미터 내외다. 다만 기온이 6~15도라 밤에는 상당히 추울 것같다. 단단히 대비하자. 여기서 그리스 Chania 마리나까지는 3일 5시간. 애매하다. 자칫하면 한밤에 도착할 수 있다. 가면서 시간 조절을 잘 해야 한다. 낮선 곳에 갈 때는 반드시 해가 있을 때 들어가야 한다. 사고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Chania 마리나에 미리 메일을 두통이나 보냈지만 읽지 않는다. 그냥 전화를 해야 할 것 같다. 오전 중 시간이 되면 전화하고 아니면 가다가 위성전화기로 통화를 시도하자.
혹시 몰라서 이집트 포토사이드의 에이전트에게 메일 보냈는데, 오히려 그건 이미 읽었다. 답이 오겠지. 수에즈 운하를 통과할 때는 반드시 에이전트를 쓰라는 조언들이다. 그래서 좀 더 수월하게 운하 통과에 필요한 서류나 절차 등을 준비하고 지나갈 수 있다는 거다. 절차를 까다롭게 하고 자국 인원을 에이전트로? 이런 건 일자리 창출인가? 일단 메일로 답이 오면 절차를 알 수 있을터니 너무 앞서서 고민하지 말자. 뭐든 다 잘 될 거다.
오전 7시 출항의 아침엔 계란 볶음밥이다. 잠시 후 9시가 되면, 이탈리아 해양경찰에 가서 출항허가서를 제출하고(이탈리아 최종 마리나에 제출한다.) 약간의 식수를 사고, 배에 물을 가득 채우고, 파브리치오에게 7일치 140유로를 지불하고 떠나면 된다. 정오 쯤 출항 가능 하겠다.
9시 10분에 코스트 가드에 갔다. 입구의 군인이 코레아? 타꿘도? 라고 묻는다. 오케이 태권도 하고 답하고 잠시 기다리니 출항 담당자에게로 안내한다. 담당자는 누가 봐도 군인이다. 나에게 에스프레소 한 잔을 권하더니, 딱 필요한 말만 한다. 내가 부연 설명을 할라치면 ‘리슨!’ 하고 자기가 물을 말만 한다. 나도 그가 원하는 답과 서류만 전달한다. 서로 편하다. 배의 국적서류. 여기. 보험서류. 여기. 이탈리아 등록서류. 여기. 여권. 여기. 테르몰리에서 받은 출항 허가서. 여기. 그는 사진을 찍고, 컴퓨터에 입력한다. 아 이러다 며칠 걸리는 거 아냐? 걱정이 될 때쯤. 그가 말한다. 이 서류를 하나씩 복사할 거다. 그러면 너는 자유다. 너는 갈 수 있다. (You are Free, You can go) 딱 이렇게 말한다. 그러면서 다음 항해지는? 그리스 크레타다. 그다음은? 수에즈다. 그 다음은? 지부티, 몰디브… 그러자 그가 놀란다. 너는 그럼 한국까지 항해 하는 거냐? 그렇다. 오 대단하네. 네 딸은? 18개월이다. 그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옆의 손님에게 다시 설명한다. 그러더니 다시 군인의 태도로 묻는다. 구명조끼는? 있다. 라이프라프트는? 있다. 텐더 보트는? 있다. 그러더니 다시 표정이 부드러워진다.
잠시 후 부관이 서류를 복사하고 돌려준다. 그는 다시 말한다. 리슨! 너는 유럽국가의 마지막 출항지에서 여권에 출국 도장을 반드시 받아야 한다. 오케이. You are Free, You can go. 나는 해양경찰서를 빠져 나왔고, 요리 준비에 여념이 없는 아내에게로 왔다. Chania 마리나의 Mr. Spyros가 메일을 읽기 않는다. 전화하자. Mr. Spyros? yes! 나는 네게 메일 보냈는데 네가 안 읽는다. 난 아무런 메일도 못 받았는데. 너는 뭘 원하니? 나는 거기서 출국 수속을 하고 이집트로 갈 거다. 며칠 머물 거니? 날씨에 달렸다. 가능 하면 빨리 떠날 거다. 배 길이는? 배 깊이는? 몇 가지 질문을 마치고 그가 기다릴테니 안전하게 오란다. 도착 할 때 쯤 되어 Mr. Spyros에게 다시 전화하면 되겠다.
이제 출항 준비는 끝났다. 아내의 식재료 준비가 끝나는 대로 우리는 그리스 크레타 Chania 마리나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