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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성지순례 첫째 날
주임 신부님, 수녀님을 모시고 교우들 110명이 2박 3일 일정(4월16일-4월18일)으로 제주도 성지순례를 다녀왔다.
순례 첫째 날 군사항공훈련으로 비행기가 1시간가량 지연되어 낮 12시 청주공항을 출발해 제주공항에 도착하니 푸른 하늘과 두 볼에 느껴지는 제주의 바람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우리는 해안가 식당에서 보말 미역국과 고등어 구이로 요란하게 울렸던 배꼽시계를 멈추게 하고 첫 번째 일정인 이시돌 목장에 있는 새미은총의 동산으로 갔다.
새미은총의 동산은 예수님 생애의 주요 사건을 실제 인체 크기의 조각품으로 표현한 공원이다.
우리가 이용한 여행사 사장님은 친절하게도 공원까지 직접 와서 ‘존재 안에서 나를 비우면 비울수록 가득 채워진다’는 주제로 설명을 하며 예수님의 일생을 묵상하게 했다.
우리는 예수님 생애 공원을 지나 삼위일체 야외 대성당에서 은혜로운 순례가 되기를 바라며 주님의 기도를 바치고, 십자가의 길 14처, 새미소 묵주의 기도 길을 산책하며 제주의 자연을 느꼈다.
이어서 미사를 봉헌하기 위해 용수성지로 향했다.
용수성지는 성 김대건(안드레아) 신부님이 사제품을 받은 후, 페레올 주교와 다블뤼 신부 등 일행 13명과 함께 라파엘호를 타고 귀국하는 도중 폭풍을 만나 보름 동안 표류하다가 표착한 곳이다.
이곳에서 김대건 신부님은 죽을 위험에서 구해주신 하느님의 섭리와 성모님의 도우심에 감사하면서 고국 땅에서 감격의 첫 미사를 올렸다.
우리 또한 김대건 신부님이 지니셨던 불굴의 용기와 굳은 믿음을 다시 한번 깊이 묵상하며 미사를 봉헌했다.
주임 신부님은 강론에서
“나를 비워야 채워진다는 말은 정답인데 나를 비운다는 것이 제일 어려운 부분 중의 하나인 것 같다. 죽을 때까지 내려놓을 수가 없기 때문에 그런 나를 바라보면서 주님께 의탁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느님의 크신 사랑 안에 머물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것만 기억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다. 하느님의 사랑을 잊어버릴 때는 나로 가득 찰 때이다. 내가 원하고 바라는 것이 내 생각에서 머물면 안 된다. 내가 원하고 바라는 것을 주님께 봉헌하면서 주님이 나를 어떻게 이끄시는지를 알아볼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오늘 이 성지순례를 통해서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모든 것이 하느님의 뜻 안에서 이루는 은총이 되고 축복의 삶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하겠다. 이제 우리가 바랐던 것을 주님께 봉헌하고 우리의 걱정거리를 주님께 봉헌하자.”라고 하셨다.
*제주도 성지순례 둘째 날
둘째 날, 첫 번째 일정은 우리나라 땅끝 마라도 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하기로 했다. 모슬포 운진항에서 배를 타고 도착한 마라도는 누군가 바람의 제국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연중 거센 바람이 부는 곳인데 놀랍게도 바람 한 점 없이 하느님 품처럼 따뜻하게 우리를 맞아주었다. 마라도는 작은 섬이어서 볼거리가 많지 않았지만 섬 전체가 완만한 경사를 가진 넓은 초원을 이루고 있어 가슴이 탁 트이는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문어와 전복, 소라를 형상화했다는 마라도 성당 외관은 너무나 예쁘고 귀여웠다. 정돈이 잘 된 성당 안은 의자 없이 110명 전체가 몸을 밀착하여 앉아 미사를 드릴만큼 작고 소박했다.
신부님은 미사에서 다음과 같은 강론을 하셨다.
주일미사 빠졌다고 누구를 괴롭혔다고 우리에게 벌을 주시는 하느님이 아니다. 그런 하느님이라면 우리는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죄를 안 짓겠다고 결심하고 또 죄를 짓는 모습이 우리들의 모습이다. 하느님이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시는 순간은 우리가 죄를 짓는 그 순간이다. 우리는 늘 하느님의 크신 사랑 안에 머물고 있음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는 데 필요한 많은 사람이 있다. 하느님의 사랑은 천주교 신자들만의 모습 안에서 드러나는 게 아니다. 모르는 사람들에게서도 하느님을 만날 수 있고, 하느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다. 내가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데 필요했던 시어머니 시아버지 장인 장모 등 떠오르는 많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 하느님 사랑 안에 머물 수 있는 삶이 됐으면 좋겠다.
또 하느님의 사랑을 느낀 만큼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는 삶이 되면 좋겠다.
오늘 하느님을 만날 수 있기에 감사하고, 늘 함께하기에 감사하는 삶이 되어야 하는데, 나를 비우지 못하고 내 안에 갇혀있어서 잘 안된다. 그래서 우리는 늘 자신을 되돌아보며 하느님의 사랑을 찾고 그 사랑으로 다가가는 삶, 그것이 영광의 삶이고 축복의 삶임을 기억하며 살아가도록 해야 하겠다. 그러한 하느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그 사랑으로 다른 이들을 만날 수 있는 은총을 청하자.
우리는 미사 후 최남단 표지석 앞에서 기념사진들을 찍고 다음 일정인 한림공원으로 이동을 했다.
한림공원은 9가지 테마가 있는 공원으로 1971년 송봉규 선생이 10만여 평의 황무지 모래밭에 야자수 씨앗을 파종하여 만든 녹색의 낙원이다. 우리는 잘 표시해 둔 관람길을 따라 아열대 식물원, 야자수길, 산야초원 등을 걸으며 구경을 했다.
아열대 식물원은 실내 온실 관람으로 되어 있는데 세계 각국에서 수집한 아름답고 신기한 열대식물이 많아 발걸음을 자주 멈추고 사진을 찍으며 구경하기에 바빴다.
야자수와 선인장으로 조성된 야자수 길은 하늘 높이 치솟은 야자수들이 멋진 장관을 뽐내고 있어 길을 걸으며 이국적인 풍경을 즐길 수 있었다.
산야초원은 입구 양쪽으로 다양한 표정을 하고 있는 돌하르방을 따라가다 오솔길을 걷다 보니 산속을 걷는 기분이 들었다. 산야초가 산이나 들에 자생하는 풀들을 이야기한다고 하듯이 숲속에 작고 소소한 이름 모를 꽃들이 많았다. 봄의 상징인 튤립도 만나게 되는데 튤립은 이미 만개해서 거의 지고 있었다.
한림공원에 각양각색의 아름다운 꽃들이 피고 지고 있었지만 우리는 멋진 풍경을 배경 삼아 사진도 찍고 산책도 즐기며 자연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어서 환상숲 곶자왈로 갔다. 고유 제주어로 '곷'은 숲을 뜻하고, '자왈'은 덤불이다. 곶자왈은 울창한 나무숲으로 하늘이 보일 듯 말 듯하였다. 우리를 안내한 숲 해설사에 의하면 곶자왈은 화산이 터지며 분출한 용암이 땅 위를 흐르면서 굳어간 불규칙한 자리에 식물들이 뿌리를 내려 사시사철 푸르른 지금의 숲이 되었다. 곶자왈은 다른 지역과 달리 지형이 크고 작은 암석들로 이루어진 지반이어서 지질 투수성이 높아 아무리 비가 많이 오더라도 비들이 모두 스며들어서 우리에게 소중한 지하수를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또한 제주도의 저지대에 존재하는 자연림으로 충분한 산소 공급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어 제주를 지켜주는 생명수이자 제주의 허파인 곶자왈이다. 곶자왈의 울창한 숲속 내음을 맡으며 걸으니 건강해지는 기분이었다. 제주에 곶자왈이 굉장히 많았는데 대부분 골프장으로 개발이 되고 현재 남은 건 5% 정도라고 한다. 오랜 세월 동안 제주를 지탱해오고 마르지 않는 샘물을 만들어 내어 아낌없이 주는 어머니 같은 숲 곶자왈이 미래에도 잘 전달 되어져서 모두가 곶자왈의 아름다운 자연을 누리기를 기도했다.
해설사의 설명이 끝난 후 우리는 둘째 날 마지막 일정인 족욕체험을 하기 위해 족욕 까페로 갔다. 곶자왈의 풍경을 바라보며 귤껍질과 비트 등이 들어있는 입욕제를 담근 따뜻한 물에 발을 담그고 따뜻한 석창포 차까지 마시니 피로가 풀리는 것 같았다. 족욕 후 나서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웠다. 이렇게 알찬 둘째 날 일정을 마쳤다.
*제주도 성지순례 셋째 날
제주도 순례 마지막 날 첫 일정은 에코랜드에서 시작되었다. 에코랜드는 수제품으로 제작된 1800년대 영국 증기기관차를 타고 약 4.5km 거리의 곶자왈을 체험하는 테마파크이다. 에코랜드에는 4개의 역이 있는데 각각의 역에는 서로 다른 테마로 구성해 놓았다. 우리는 양쪽으로 숲이 우거져 있는 선로를 따라 달리는 기차를 기분 좋게 타고 첫 번째 역인 에코브리지 역에서 내려 두 번째 역인 레이크사이드 역까지 걸어갔다. 에코브리지 역은 규모가 큰 호수와 수상 테크가 설치되어 있었다. 호수를 따라 늘어선 우거진 나무들과 호수 위 풍경들을 보며 테크길을 걷다보니 마음이 상쾌하고 즐거웠다.
두 번째 레이크 사이드 역에는 푸르른 초원 위에 풍차가 주는 이국적인 풍경을 즐길 수 있었다. 가장 인기 포토 존인 커다란 풍차 주변에는 사진들을 담느라 분주했다. 두 번째 역에서 함께 기차를 탄 일행은 키즈타운이 있어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세 번째 피크닉가든 역을 그냥 통과하여 네 번째 역인 라벤더, 그린티 & 로즈가든 역으로 갔다.
네 번째 역에서 내려 하얀 다리를 건너가니 넓은 야외정원, 라벤더밭, 목장 산책로가 있었다. 라벤더는 개화시기가 아니어서 꽃은 보지를 못했다. 목장 산책로를 가기 위해서는 카페 & 기프트샵이 있는 안으로 통과를 해야 했다. 함께 온 일행은 야외 카페에서 신부님이 사준 찹쌀호떡을 나누어 먹으며 목장으로 가는 들판과 메밀밭 등 넓은 초원을 바라보며 잠시의 여유를 즐겼다.
에코랜드를 떠나 미사를 봉헌하기 위해 제주도 동쪽 끝 해안가에 있는 김녕성당으로 갔다. 김녕 성당은 제주도 동쪽 끝에 있어 올레길을 걷는 사람들이나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이 일부러 시간을 내야만 찾아갈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성당이 보이는 골목길에 들어서자 낮은 돌탑 위에 세워진 십자가와 높은 3단 돌탑 위에서 제주도를 끌어안을 듯 두 팔을 벌리고 서 있는 자비의 예수님상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김녕 성당은 작고 소박했다. 하느님 집의 소박함에 저절로 두 손 모아 겸손해져 감사의 기도를 하게 되었다.
주임 신부님 강론
하느님이 인간을 만드실 때는 다른 피조물을 만드실 때처럼 “생겨라” 하고 말씀으로 만드시지 않고 정성을 다해 만드셨다. 손수 흙을 빚어서 모양을 잡고 당신의 숨을 불어 넣으셨다.
하느님이 우리 인간의 존재에 심어주시는 그 큰 사랑을 생각해 본다면 우리가 특별히 하느님으로부터 사랑받고 있는 존재라는 것에서부터 감사가 시작된다. 감사의 삶은 하느님 그분의 사랑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더 나아가서 그 사랑은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정점에 이른다.
하느님은 나를 만드신 당신을 아버지로 고백하게 하고, 하느님의 사랑을 우리가 입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사랑으로 살아가게끔 우리를 선택해 주신다. 단순히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존재로만 머무르지 않고 또한 하느님의 사랑을 세상에 전하는 도구로 하느님의 아들로 살아가라고 요구하고 계신다.
그 요구는 선물이며 은총이다. 예수님께서는 “살아있는 빵이다”라고 하시면서 당신의 몸과 피를 먹으라고 내어주신다. 우리 또한 하느님의 아들로서 불림을 받고 있기에 우리를 필요로 하는 모든 이에게 나를 기꺼이 양식으로 내어주는 희생의 삶, 나눔의 삶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삶을 살 수 있도록 불러주신 것에 감사하는 삶이 되면 좋겠다. 이제 우리의 삶으로 돌아가서 나의 노동, 자존심 등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봉헌하는 기쁨과 감사함의 삶에 나아가도록 노력하자.
언제나 내 앞에 주어지는 모든 게 어떠한 모습이건 상관없이 감사함으로 받아들이고, 기꺼이 우리의 모든 것을 내어주는 축복의 삶이 될 수 있기를 청하자.
착해진 마음으로 순례 마지막 날 감사 미사를 봉헌하고 마지막 일정인 김기량 펠릭스 베드로 기념관을 방문하기 전에 30분 동안 김녕해수욕장에 들러서 가기로 했다. 김녕해수욕장은 제주도 동쪽 끄트머리 지점에 있다보니 한적하고 고요했다. 날씨가 좋아 햇살을 받은 바다는 너무나 예쁜 에메랄드빛을 띠고 있었다. 바다는 시즌이 아니어서 모래를 보호하기 위해 차광막을 씌워놓았는데 바다 가까이는 모래사장이 있었다. 제주의 모래는 일반 해수욕장의 모래와는 다르게 입자가 굉장히 고왔다. 제주도의 모래는 조개 가루와 산호 가루들이 부서져서 모여있는 패사층의 모래이기 때문이란다. 잠시동안이지만 맨발로 모래 체험을 하는 교우들도 있었다. 예쁜 색깔의 바다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하는 모습들 또한 아름다운 풍경이 되었다.
아쉬운 김녕 해수욕장을 뒤로 하고 김기량 펠릭스 베드로 기념관으로 갔다. 김기량 펠릭스 베드로는(1816~1867) 제주 함덕리 출신으로 소규모 무역상이었다. 1857년 풍랑을 만나 중국 광동성 해역에서 표류하다 영국 배에 구조되어 홍콩의 파리 외방 전교회에 보내졌다. 그곳에서 조선 신학생 이만돌 바울리노를 만나 교리를 배우고 세례를 받아 제주 출신 첫 신자가 되었다. 1858년 1월 귀국 후 제주도에서 복음을 전파하다가 1866년 병인박해 때 통영에서 장사하던 중 체포되어 통제영으로 압송되었다. 모진 형벌 속에서도 신앙을 지키다가 1867년 1월 옥에서 교수형으로 51세에 순교하였고, 2024년 8월 16일 복자가 되었다.
순교기념관 1층 전시관에서는 김기량의 표류와 세례, 최양업 신부를 비롯한 이들과의 만남, 순교자의 얼굴을 상징하는 김형기 작가의 미디어 아트 ‘빛의 얼굴’을 만날 수 있었다. 지하 경당에 잠시 들러 김기량 복자의 신앙에 대한 굳은 신념을 묵상하며 기도를 드리고 나오다 기념관 외부 회랑 창살 벽에 새겨져 있는 복자가 지은 천주가사가 눈에 들어왔다. 제주도 성지순례를 할 수 있는 은총을 주심에 감사드리며 천주가사를 읽어 내려갔다.
“어와 벗님네야 치명길로 횡행하세. 어렵다 치명길이야. 평생 소원 사주모요. 주야 앙망 천당이로다. 펠릭스 베드로는 능도주대전 하옵소서”(복자 김기량의 천주가사)
(“어와 벗님들아 순교의 길로 나아가세. 그러나 순교의 길로 나아가기는 어렵다네. 나의 평생 소원은 천주와 성모 마리아를 섬기는 것이요. 밤낮으로 바라는 것은 천당뿐이로다. 펠릭스 베드로는 능히 주님 대전에 오르기를 바라옵나이다.”)
기념관 방문을 끝으로 2박 3일의 일정을 마쳤다. 2박 3일 동안 좋은 날씨로 축복해 주시고 순례를 은혜롭게 인도해 주신 주님께 감사드린다. 또한 순례 여정에 함께하시어 순례의 행복을 더해주신 주임 신부님과 수녀님께도 감사드린다. 그리고 따사로운 햇살 아래 함께 걸으며 순례를 했던 교우들에게도 감사드린다. 순례하면서 받은 은총이 주님 사랑의 갚음을 향해 걸어가는 삶에 은총의 고리가 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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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알찬 시간 보내셨군요~
자세한 설명과 사진 감사합니다.^^
젬마 회장님~ 2박3일 순례일정중 놓치기쉬운 귀한말씀과 멋진 사진 감사드립니다. 👍
모든 일정 준비하고 이끄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덕분에 가득한 주님 은총 함께 받으며 순례에 참여한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