襄公 10年(紀元前 563年)
十年春, 會于柤, 會吳子壽夢也. 三月癸丑, 齊高厚相大子光, 以先會諸侯于鍾離, 不敬. 士莊子曰 : 「高子相大子以會諸侯, 將社稷是衛, 而皆不敬, 棄社稷也, 其將不免乎.」 夏四月戊午, 會于柤.
십년춘, 회우사, 회오자수몽야. 삼월계축, 제고후상대자광, 이선회제후우종리, 불경. 사장자왈 : 「고자상대자이회제후, 장사직시위, 이개불경, 기사직야, 기장불면호.」 하사월무오, 회우사.
[解釋] 양공 10년 봄에, 柤지방에서 회합한 것은, 요나라 임금 수동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3월 계축일에, 제나라 고후가 태자 광의 고문이 되어, 제후들과 종리에서 회합했으나, 무례한 일이 있었다. 이에 진나라의 사장자가 말하기를, 「고후가 태자의 고문이 되어 제후들을 만난 것은, 나라를 위하는 일이었으나, 모든 행동이 심히 불경해서, 나라를 해치는 결과가 됐으니, 장차 죽음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고 했다. 그래서 여름 4월 무오일에, 柤에서 회합한 것이다.
晉荀偃士匃, 請伐偪陽, 而封宋向戌焉. 荀罃曰 : 「城小而固, 勝之不武, 弗勝爲笑.」 固請. 丙寅, 圍之, 弗克.
진순언사개, 청벌핍양, 이봉송향술언. 순앵왈 : 「성소이고, 승지불무, 불승위소.」 고청. 병인, 위지, 불극.
[解釋] 진나라 대부 순언`사개가 핍양을 정벌하여, 송나라의 향술에게 봉해주기를 요청했다. 이때 순앵이 말하기를, 「핍양의 성은 비록 작으나 견고하여, 이겨도 무위를 떨칠 수가 없고, 이기지 못하면 웃음거리가 됩니다.」고 했으나, 두 사람은 고집했다. 그래서 병인일에, 그곳을 포위했으나, 이기지 못했다.
孟氏之臣秦菫父輦重如役. 偪陽人啓門, 諸侯之士門焉. 縣門發. 郰人紇抉之, 以出門者. 狄虒彌建大車之輪, 而蒙之以甲, 以爲櫓, 左執之, 右拔戟, 以成一隊.
맹씨지신진근보련중여역. 핍양인계문, 제후지사문언. 현문발. 추인흘결지, 이출문자. 적사미건대거지륜, 이몽지이갑, 이위노, 좌집지, 우발극, 이성일대.
[解釋] 노나라 맹씨의 신하 진근보란 자가 기다란 짐수레을 끌고 이 전투에 참가했다. 핍양 사람들은 성문을 열어 그들을 속이자, 제후의 군대들은 성문이 열린 것을 보고 곧장 쳐들어갔다. 그러나 뜻밖에 성문이 내려와 닫혀 버렸다. 이때 郰지방 사람 紇이란 자가 성문을 위로 올려 열었으므로, 갇혔던 군사들이 나올 수가 있었다. 또 적사미한 자가 있어 큰 수레바퀴를 세워, 갑옷을 뒤집어 쉬워, 방패로 삼아, 왼손으로 그것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쌍갈래 창을 잡고서, 한 부대를 이루어 쳐들어갔다.
孟獻子曰 : 「≪詩≫所謂, 有力如虎者也.」 主人縣布, 菫父登之, 及堞而絶之. 隊則又縣之. 蘇而復上者三, 主人辭焉. 乃退, 帶其斷以徇於軍三日. 諸侯之師久於偪陽, 荀偃士匃請於荀罃曰 : 「水潦將降, 懼不能歸. 請班師.」
맹헌자왈 : 「≪시≫소위, 유력여호자야.」 주인현포, 근보등지, 급첩이절지. 대즉우현지. 소이부상자삼, 주인사언. 내퇴, 대기단이순어군삼일. 제후지사구어핍양, 순언사개청어순앵왈 : 「수료장강, 구불능귀. 청반사.」
[解釋] 이를 본 맹헌자는 말하기를, 「≪詩經≫에 이른 바, 힘이 호랑이와 같다는 말이 바로 이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고 했다. 또 성 안의 사람들이 긴 천을 성 아래로 내려뜨리자, 진근보가 그것을 타고 올라가는데, 성가퀴에 도달하지 성안 사람들은 그 천을 끊어 버렸다. 진근보가 땅에 떨어지자 성 안에서는 다시 천을 내걸었다. 근보는 정신이 깨자 다시 기어 올라갔다 이러기를 세 번까지 하자, 성안의 사람들은 혀를 차면서 다시는 천을 내려 보내지 않았다. 진근보는 곧 돌아와, 잘라진 천을 몸에 감고 3일 동안 군중을 돌아다녔다. 그때 제후의 군대들은 핍양 땅에 오래도록 머물러 있었으므로, 순언과 사개가 순앵에게 요청하기를, 「장마가 지려 하니, 돌아가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후퇴합시다.」고 했다.
知伯怒, 投之以机, 出於其間曰 : 「女成二事, 而後告余. 余恐亂命, 以不女違. 女旣勤君而興諸侯, 牽帥老夫以至於此. 旣無武守, 而又欲易余罪曰, '是實班師. 不然, 克矣.' 余羸老也, 可重任乎? 七日不克, 必爾乎取之.」
지백노, 투지이궤, 출어기간왈 : 「여성이사, 이후고여. 여공란명, 이불여위. 여기근군이흥제후, 견수노부이지어차. 기무무수, 이우욕역여죄왈, '시실반사. 불연, 극의.' 여리노야, 가중임호? 칠일불극, 필이호취지.」
[解釋] 이에 지백이 화를 내고, 궤를 던졌으나, 두 사람 사이로 빠져 나가니 지백이 말하기를, 「너희들은 평양성을 함락하고 향술에게 봉해 주는 두 가지 일을 이룬 뒤에, 나에게 말하라. 나는 임금님의 명령을 어지럽힐까 봐, 너희들의 고집을 어기지 않는 것이다. 너희들이 임금님께 권해서 제후들을 일으켜, 늙은 나까지 여기에 호도록 하였다. 그런데 이임 무력을 다하여 수비하지도 못하고, 또한 나에게 죄를 돌려 이르기를, '그가 군대를 후퇴시켰소. 그렇지 않으면, 이길 것인데.'라고 하니, 내 늙은 몸이, 이런 중임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만약 7일 안에 이기지 못하면, 반드시 너희들을 벌주리라.」고 했다.
五月庚寅, 荀偃士匃帥卒攻偪陽, 親受矢石, 甲午, 滅之. 書曰 : 「遂滅偪陽.」 言自會也. 以與向戌, 向戌辭曰 : 「君若猶辱鎭撫宋國, 而以偪陽光啓寡君, 羣臣安矣. 其何貺如之? 若惠賜臣, 是臣興諸侯以自封也, 其何罪大焉? 敢以死請.」 乃予宋公.
오월경인, 순언사개솔졸공핍양, 친수시석, 갑오, 멸지. 서왈 : 「수멸핍양.」 언자회야. 이여향술, 향술사왈 : 「군약유욕진무송국, 이이핍양광계과군, 군신안의. 기하황여지? 약혜사신, 시신흥제후이자봉야, 기하죄대언? 감이사청.」 내여송공.
[解釋] 그래서 5월 경인일에, 순언과 사개는 군대를 거느리고 핍양성을 공격하는 데 몸소 앞장서서, 날아오는 화살과 돌을 무릅쓰고 쳐들어가, 갑오일에, 성을 함락했다. 경문에 이르기를, 「드디어 핍양을 멸했다.」고 한 것은, 제후들과의 회합에 이어서 곧장 핍양성을 함락시켰다는 뜻이다. 이에 함락시킨 핍양성를 향술에게 념겨 주자, 향술은 사양하면서 말하기를, 「임금님께서 만약 욕되이 우리 송나라를 어루만지시고, 이 핍양 땅을 우리 임금님에게 넘겨주시면, 저희 신하들은 안심하겠습니다. 그 어느 선물이 이보다 나은 것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만약 저에게만 하사 하신다면, 이것은 신이 여러 제후들을 일으켜 땅을 얻은 뒤에 스스로 봉임을 받는 격이니, 어느 죄가 이보다 더 크겠습니까? 감히 죽음으로써 요청합니다.」고 말했다. 그래서 곧 이 핍양성을 송나라 임금에게 주었다.
宋公享晉侯於楚丘, 請以桑林, 荀罃辭. 荀偃士匃曰 : 「諸侯宋魯於是觀禮. 魯有禘樂, 賓祭用之, 宋以桑林享君, 不亦可乎?」
송공향진후어초구, 청이상림, 순앵사. 순언사개왈 : 「제후송노어시관례. 노유체악, 빈제용지, 송이상림향군, 불역가호?」
[解釋] 그 뒤에 송나라 임금은 진나라 임금을 초구 지방에서 대접하는데, 桑林의 음악을 연주하겠다고 하니, 荀罃은 사양했다. 그러나 荀偃과 士匃는 말하기를, 「제후들 중에 송나라와 노나라에서만이 천자의 예악을 사용하는 것을 불 수 있습니다. 노나라에서는 체제의 음악이 있어, 손님을 대접하고 제사지낼 때에 연주하고, 宋나라에는 桑林이라는 음악이 있어 우리 임금님을 대접할 때에 연주하니, 또한 좋지 않습니까?」라고 했다.
舞師題以旌夏, 晉侯懼而退入于房. 去旌, 卒享而還. 及著雍疾, 卜桑林見. 荀偃士匃欲奔請禱焉, 荀罃不可曰 : 「我辭禮矣, 彼則以之, 猶有鬼神, 於彼加之.」
무사제이정하, 진후구이퇴입우방. 거정, 졸향이환. 급저옹질, 복상림견. 순언사개욕분청도언, 순앵불가왈 : 「아사례의, 피즉이지, 유유귀신, 어피가지.」
[解釋] 그리하여 악사가 폭이 넓은 것은 깃발을 들고 행렬의 표시를 하자, 진나라 임금은 갑자기 두려운 생각이 들어 탈의실로 들어가 버렸다. 송나라 임금이 악사에게 그 큰 깃발을 치우게 하고서야, 진나라 임금은 다시 나와 연주회를 끝날 수가 있었다. 진나라 임금이 대접을 받고 돌아가다가, 著雍지방에 이르렀을 때 몸에 병이 나서, 점을 쳐보게 하니 상림의 신이 나타났다고 했다. 그래서 순언과 사개가 달려가 기도를 하지고 하니, 荀罃이 불가하다고 하면서 말하기를, 「내가 이미 사양했으나, 송나라가 이런 예를 행했으니, 진실로 귀신이 있다면, 응당히 그들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다.」고 했다.
晉侯有間, 以偪陽子歸, 獻于武宮, 謂之夷俘. 偪陽, 妘姓也. 使周內史選其族嗣納諸霍人, 禮也. 師歸, 孟獻子以秦菫父爲右, 生秦丕玆, 事仲尼.
진후유간, 이핍양자귀, 헌우무궁, 위지이부. 핍양, 운성야. 사주내사선기족사납저곽인, 예야. 사귀, 맹헌자이진근보위우, 생진비자, 사중니.
[解釋] 그 뒤 진나라 임금은 다소 병이 좋아져서, 데리고 갔던 핍양자를, 무궁의 사당에 바치니, 이를 오랑캐 포로라고 했었다. 핍양자는, 윈래 운성이었다. 그래서 주나라 내사에게 의뢰하여 핍양자의 일가 중에서 한 사람을 뽑아 곽에 사는 운씨 집안을 있게 하니, 이것은 예의에 맞는 일이었다. 우리 노나라 군대가 돌아오자, 孟獻子는 秦菫父로 하여금 우익을 삼으니, 秦菫父가 秦丕玆란 아들을 낳았는데, 그는 공자를 스승으로 섬겼다.
六月, 楚子囊, 鄭子耳伐宋師于訾毋, 庚午, 圍宋, 門于桐門. 晉荀罃伐秦, 報其侵也. 衛侯救宋師于襄牛. 鄭子展曰 : 「必伐衛. 不然, 是不與楚也. 得罪於晉, 又得罪於楚, 國將若之何?」
육월, 초자낭, 정자이벌송사우자무, 경오, 위송, 문우동문. 진순앵벌진, 보기침야. 위후구송사우양우. 정자전왈 : 「필벌위. 불연, 시불여초야. 득죄어진, 우득죄어초, 국장약지하?」
[解釋] 6월에, 초나라 공자 子囊과 鄭나라 子耳가 訾毋에서 송나라 군대를 정벌하고, 庚午日에, 宋나라 서울을 포위하고서, 桐門을 공격했다. 晉나라 荀罃이 秦나라를 정벌하니, 이는 그들의 침략을 보복한 것이다. 衛나라 임금이 襄牛지방에서 宋나라 군대를 구원했다. 鄭나라 대부 子展이 말하기를, 「위나라를 반드시 정벌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초나라와 합작할 수가 없습니다. 진나라에 죄를 지고, 초나라에도 또 죄를 지면, 우리나라가 장차 어떻게 되겠습니까?」라고 했다.
子駟曰 : 「國病矣.」 子展曰 : 「得罪於二大國, 必亡. 病不猶愈於亡乎.」 諸大夫皆以爲然. 故鄭皇耳帥師侵衛, 楚令也. 孫文子卜追之, 獻兆於定姜.
자사왈 : 「국병의.」 자전왈 : 「득죄어이대국, 필망. 병불유유어망호.」 제대부개이위연. 고정황이솔사침위, 초령야. 손문자복추지, 헌조어정강.
[解釋] 이에 대부 子駟는 말하기를, 「위나라를 정벌하면 나라의 비용이 모자라 나라가 병들 게 됩니다.」고 하였다. 이에 子展이 말하기를, 「두 나라에게 죄를 지면, 반드시 망합니다. 나라가 병드는 것은 망하는 것과는 나을 것입니다.」고 했다. 여러 대부들은 그렇게 여겼다. 그래서 정나라 황이가 군대를 이끌고 위나라를 정벌하니, 이는 초나라의 명령을 따른 것이다. 이때 위나라의 손문자는 정나라 군대를 추격하는 것에 대해서, 점을 치게 하고 그 징조를 대부 정강에게 알렸다.
姜氏問繇曰 : 「兆如山陵, 有夫出征, 而喪其雄. 姜氏曰 : 「征者喪雄, 禦寇之利也. 大夫圖之.」 衛人追之, 孫蒯獲鄭皇耳于犬丘.
강씨문요왈 : 「조여산릉, 유부출정, 이상기웅. 강씨왈 : 「정자상웅, 어구지리야. 대부도지.」 위인추지, 손괴획정황이우견구.
[解釋] 정강이 점괘의 풀이를 물으니 말하기를, 「그 조짐이 산의 언덕과 같아, 한 사나이가 전쟁에 나가는데, 장수를 잃은 격입니다.」고 했다. 그래서 정강이 말하기를, 「출전하는 자가 장수를 잃었으니, 적을 방어하는 편이 좋겠소. 그러니 대부들은 잘 생각해 보시오.」라고 했다. 위나라 사람들이 정나라 군대를 쫓아가, 손임보의 아들 孫蒯가 정나라 황이를 犬丘지방에서 사로잡았다.
秋七月, 楚子囊鄭子耳, 伐我西鄙, 還圍蕭, 八月丙寅, 克之. 九月, 子耳侵宋北鄙. 孟獻子曰 : 「鄭其有滅乎. 師競已甚. 周猶不堪競, 況鄭乎? 有災, 其執政之三士乎.」
추칠월, 초자낭정자이, 벌아서비, 환위소, 팔월병인, 극지. 구월, 자이침송북비. 맹헌자왈 : 「정기유멸호. 사경이심. 주유불감경, 황정호? 유재, 기집정지삼사호.」
[解釋] 가을 7월에, 楚나라 子囊과 鄭나라 子耳가 노나라의 서쪽 변경을 정벌하고 돌아가다가, 蕭지방을 포위하여, 8월 丙寅日에, 이를 함락했다. 그리고 다시 9월에는, 정나라 子耳가 송나라의 북쪽 변경을 침략했다. 孟獻子가 말하기를, 「정나라에는 반드시 재앙이 있을 것이다. 출전의 경쟁이 이미 심하니 말이다. 周나라도 출전의 경쟁은 감당하기 어렵거늘, 하물며 정나라가 어떻게 감당하겠는가? 재앙이 내린다면, 정권을 장악하고 있는 세 사람인 子駟, 子國, 子耳에게 내릴 것이다.」고 했다.
莒人間諸侯之有事也, 故伐我東鄙. 諸侯伐鄭, 齊崔杼使大子光先至于師. 故長於滕. 己酉, 師于牛首.
거인간제후지유사야, 고벌아동비. 제후벌정, 제최저사태자광선지우사. 고장어등. 기유, 사우우수.
[解釋] 莒나라 사람이 제후들이 일이 있는 틈을 타서, 우리 노나라 동쪽 변경으로 쳐들어왔다. 제후들이 정나라를 정벌할 때, 제나라 최저가 태자 광으로 하여금 먼저 군대들이 있는 곳으로 가게 했다. 그러므로 경문에 등나라보다 앞에 다 기록했다. 己酉日에, 군사들이 牛首지방으로 모였다.
初鄭子駟與尉止有爭, 將禦諸侯之師, 而黜其車. 尉止獲, 又與之爭. 子駟抑尉止曰 : 「爾車非禮也.」 遂弗使獻.
초정자사여위지유쟁, 장어제후지사, 이출기거. 위지획, 우여지쟁. 자사억위지왈 : 「이거비례야.」 수불사헌.
[解釋] 처음에 정나라의 자사와 위지가 서로 다투었는데, 이번에 제후의 군대를 막음에 있어서, 위지의 군대를 줄여버렸다. 위지가 적병을 체로하자, 자사는 위지와 또 다투었다. 자사가 위지를 억압하면서 말하기를, 「너의 수레는 너무나 화려하니 예의에 맞지 않는다.」고 하고, 우지가 체포한 적병을 조정에 바치는 것을 방해했다.
初子駟爲田洫, 司氏, `堵氏, 侯氏, 子師氏皆喪田焉. 故五族聚羣不逞之人, 因公子之徒以作亂. 於是子駟當國, 子國爲司馬, 子耳爲司空, 子孔爲司徒.
초자사위전혁, 사씨, `도씨, 후씨, 자사씨개상전언. 고오족취군불령지인, 인공자지도이작란. 어시자사당국, 자국위사마, 자이위사공, 자공위사도.
[解釋] 처음에 자사가 밭도랑을 만들 때에, 司氏, 堵氏, 侯氏, 子師氏 등이 모두 밭을 빼았겼다. 그래서 이 다섯 족속이 불평분자를 모으고, 전에 자사가 죽인 공자 희의 무리들을 모아 난을 일으켰다. 이때 자사는 정나라의 정권을 작고 있었고, 자국은 사마가 되었으며, 자이는 사공이 되었고, 자공은 사도가 되었다.
冬十月戊辰, 尉止, 司臣, 侯晉, 堵女父, 子師僕帥賊以入, 晨攻執政于西宮之朝, 殺子駟子國子耳, 劫鄭伯以如北宮. 子孔知之. 故不死.
동십월무진, 위지, 사신, 후진, 도여보, 자사복솔적이입, 신공집정우서궁지조, 살자사자국자이, 겁정백이여북궁. 자공지지. 고불사.
[解釋] 겨울 10월 무진일에, 尉止, 司臣, 侯晉, 堵女父, 子師僕 등이 도적을 데리고 들어와, 새벽에 집정관을 서궁의 조회하는 곳에서 공격하여, 子駟, 子國, 子耳를 죽이고, 정나라 임금을 겁탈하여 북쪽 궁전으로 데리고 갔다. 子孔은 이런 일을 미리 알았다. 그래서 죽음을 면했다.
書曰盜, 言無大夫焉. 子西聞盜, 不儆而出, 尸而追盜. 盜入於北宮. 乃歸, 授甲, 臣妾多逃, 器用多喪.
서왈도, 언무대부언. 자서문도, 불경이출, 시이추도. 도입어북궁. 내귀, 수갑, 신첩다도, 기용다상.
[解釋] 경문에 盜賊이라고 쓴 것은, 이 반란자들 중에 대부가 없음을 의미한 것이다. 자사의 아들 자서는 도적이 난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듣고, 경계함이 없이 곧 뛰어나가, 먼저 그의 아버지 자사의 시체가 있는 데로 갔다가 후에 도적들을 쫓아갔다. 그러나 도적들은 북쪽 궁전으로 도망가 버렸다. 그 뒤에 자서는 돌아와, 군대를 소집했으나, 말단 관리들과 자사의 첩들이 모두 도망가고, 기물들은 모두 없어져 버렸다.
子産聞盜, 爲門者, 庀羣司, 閉府庫, 愼閉藏, 完守備, 成列而後出, 兵車十七乘. 尸而攻盜於北宮.
자산문도, 위문자, 비군사, 폐부고, 신폐장, 완수비, 성렬이후출, 병거십칠승. 시이공도어북궁.
[解釋] 자국의 아들 자산은 도적들의 난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사람을 보내어 먼저 자기 집을 지키게 하고, 각 관리들에게, 정부의 창고들을 모가 봉하게 하고, 소유하고 있는 물건을 잘 간수하게 하고, 지키는 자들에게 수비를 튼튼히 하게하고서, 군대를 편성한 뒤에 출전하니, 兵車가 17승이었다. 그는 먼저 아버지의 시체를 가서 본 뒤에 북쪽 궁전으로 가서 도적들을 공격했다.
子蟜帥國人助之, 殺尉止子師僕, 盜衆盡死. 侯晉奔晉, 堵女父, 司臣, 尉翩, 司齊奔宋. 子孔當國, 爲載書, 以位序, 聽政辟. 大夫諸司門子弗順, 將誅之.
자교솔국인조지, 살위지자사복, 도중진사. 후진분진, 도여보, 사신, 위편, 사제분송. 자공당국, 위재서, 이위서, 청정벽. 대부제사문자불순, 장주지.
[解釋] 자이의 아들 子蟜는 귀족들을 거느리고 그들의 도움을 받아, 尉止와 子師僕을 죽이니, 강도들이 전멸했다. 그때 후씨는 진나라로 도망가고, 堵女父와 司臣과 위지의 아들 자편과 사신의 아들 사제는 송나라로 도망갔다. 이에 자공이 정나라의 정권을 잡게 되자, 한 가지 규정을 만들어, 차례로 정권을 담당하게 했다. 그러나 대부와 관료들은 자공의 말에 순종하지 않았으므로, 자공은 그들을 죽이려고 했다.
子産止之, 請爲之焚書. 子孔不可曰 : 「爲書以定國, 衆怒而焚之, 是衆爲政也, 國不亦難乎?」
자산지지, 청위지분서. 자공불가왈 : 「위서이정국, 중노이분지, 시중위정야, 국불역난호?」
[解釋] 이에 子産이 그것을 말리면서, 그 규정을 불사르자고 했다. 그러나 자공은 반대하면서 말하기를, 「이런 규정을 만든 것은 나라를 편안하게 하고자 함이오. 그런데 여러분이 노하여 그것을 불태우고자 하니, 이것은 여러분들이 다 같이 정치에 참여하고자 하는 것이오. 이런 식으로 나라를 다스린다면 매우 힘들지 않겠소?」라고 했다.
子産曰 : 「衆怒難犯, 專欲難成. 合二難以安國, 危之道也. 不如焚書以安衆. 子得所欲, 衆亦得安, 不亦可乎? 專欲無成, 犯衆興禍, 子必從之.」 乃焚書於倉門之外, 衆而後定.
자산왈 : 「중노난범, 전욕난성. 합이난이안국, 위지도야. 불여분서이안중. 자득소욕, 중역득안, 불역가호? 전욕무성, 범중흥화, 자필종지.」 내분서어창문지외, 중이후정.
[解釋] 이에 子産이 말하기를, 「여러 사람의 노여움을 거슬릴 수가 없고, 각자의 욕망을 이룰 수도 없습니다. 두 가지 어려운 일을 그대로 두고서 나라를 편안하게 하고자 하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그 규정을 불태워 버려 여러 사람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당신이 희망하는 바를 달성하고, 여러 사람들의 마음이 편안해진다면, 또한 좋지 않습니까? 한 사람의 욕망을 달성할 수가 없다고 해서, 여러 사람을 거슬린다면 반드시 화가 생기니, 당신은 반드시 저의 의견을 따라 주십시오.」라고 했다. 그래서 곧 창문 밖에서 그 규정을 불태워 버리니, 여러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서 비로소 마음이 안정되었다.
諸侯之師城虎牢而戍之, 晉師城梧及制, 士魴魏絳戍之. 書曰 : 「戍鄭虎牢.」 非鄭地也, 言將歸焉. 鄭及晉平. 楚子囊救鄭.
제후지사성호뢰이수지, 진사성오급제, 사방위강수지. 서왈 : 「수정호뢰.」 비정지야, 언장귀언. 정급진평. 초자낭구정.
[解釋] 諸侯의 군대들이 虎牢에 성을 쌓고 수비하니, 진나라 군대들도 梧와 制에 성을 쌓고, 진나라 士魴과 魏絳이 그곳을 지켰다. 경문에 이르기를, 「정나라 虎牢지방을 지켰다.」고 했으나, 정나라 땅이 아니고, 장차 정나라로 돌려 보내줄 것을 의미한 것이다. 정나라와 진나라가 화평을 맺었다. 楚나라 영윤 子囊이 鄭나라를 구제했다.
十一月, 諸侯之師還鄭而南, 至於陽陵, 楚師不退. 知武子欲退曰 : 「今我逃楚, 楚必驕, 驕則可與戰矣.」 欒黶曰 : 「逃楚, 晉之恥也, 合諸侯以益恥. 不如死. 我將獨進.」 師遂進.
십일월, 제후지사환정이남, 지어양릉, 초사불퇴. 지무자욕퇴왈 : 「금아도초, 초필교, 교즉가여전의.」 난염왈 : 「도초, 진지치야, 합제후이익치. 불여사. 아장독진.」 사수진.
[解釋] 11월에, 諸侯의 군대들이 정나라로 돌아갔다가 남쪽으로 서서, 陽陵에 이르러도, 초나라 군대는 후퇴하지 않았다. 그래서 진나라 知武子가 후퇴하고자 하여 말하기를, 「지금 우리가 초나라를 피하면, 초나라는 반드시 교만해질 것이니, 교만해진 후에 그들과 싸울 수 있습니다.」고 했다. 이에 欒黶이 말하기를, 「초나라를 피하는 것은, 우리 진나라의 수치요, 제후들을 모아 놓았으니 더욱 부끄럽소. 죽는 것만도 못하오. 그러니 나 혼자라도 진군하겠소.」라고 하고, 드디어 진군했다.
己亥, 與楚師夾潁而軍. 子蟜曰 : 「諸侯旣有成行, 必不戰矣. 從之將退, 不從亦退. 退楚必圍我. 猶將退也. 不如從楚亦以退之.」 宵涉穎, 與楚人盟.
기해, 여초사협영이군. 자교왈 : 「제후기유성행, 필부전의. 종지장퇴, 부종역퇴. 퇴초필위아. 유장퇴야. 불여종초역이퇴지.」 소섭영, 여초인맹.
[解釋] 己亥年에, 초나라 군사와 영수를 사이에 두고 주둔했다. 정나라의 子蟜가 말하기를, 「제후들에게는 후퇴할 의사가 있어, 반드시 싸우지 않을 것이오. 그러니 그들에게 복종해도 후퇴할 것이고, 복종하지 않아도 후퇴할 것입니다. 그들이 후퇴하면 초나라가 반드시 우리를 포위할 것이오. 제후들은 그것을 보고서도 후퇴할 것입니다. 그러니 초나라에 굴복해서 초나라로 하여금 물리치게 하는 것만 못하오.」라고 하고서, 밤에 영수를 건너가, 초나라 사람과 동맹을 맺었다.
欒黶欲伐鄭師, 荀罃不可曰 : 「我實不能禦楚, 又不能庇鄭, 鄭何罪? 不如致怨焉而還. 今伐其師, 楚必救之, 戰而不克, 爲諸侯笑. 克不可命, 不如還也.」
난염욕벌정사, 순앵불가왈 : 「아실불능어초, 우불능비정, 정하죄? 불여치원언이환. 금벌기사, 초필구지, 전이불극, 위제후소. 극불가명, 불여환야.」
[解釋] 欒黶이 정나라 군대를 정벌하고자 하니, 荀罃이 불가하다고 하면서 말하기를, 「우리가 초나라를 방어할 수가 없고, 또한 정나라를 비호할 수도 없으니, 정나라가 무슨 죄가 있습니까? 그들로 하여금 원한을 사게 하고서 진나라로 돌아가는 것만 못합니다. 지금 정나라를 정벌하면, 초나라가 반드시 정나라를 구할 것이고, 싸워서 이기지 못하면, 제후들의 웃음거리가 될 것입니다. 이겨서 복종시킬 수가 없다면, 돌아가는 것만 못합니다.」고 했다.
丁未, 諸侯之師還, 侵鄭北鄙而歸, 楚人亦還. 王叔陳生與伯輿爭政, 王右伯輿, 王叔陳生怒而出奔.
정미, 제후지사환, 침정북비이귀, 초인역환. 왕숙진생여백여쟁정, 왕우백여, 왕숙진생노이출분.
[解釋] 그래서 정미일에, 제후의 군대들이 돌아가다가, 정나라 북쪽 변경을 침략하고 돌아가니, 초나라 사람들도 또한 후퇴했다. 주나라 천자의 두 경인 王叔陳生과 伯輿가 정권을 다투니, 천자는 伯輿를 도우므로, 王叔陳生이 성을 내고 달아나 진나라로 가려 했다.
及河, 王復之, 殺史狡以說焉. 不入, 遂處之, 晉侯使士匃平王室. 王叔與伯輿訟焉. 王叔之宰與伯輿之大夫瑕禽, 坐獄於王庭, 士匃聽之.
급하, 왕복지, 살사교이설언. 불입, 수처지, 진후사사개평왕실. 왕숙여백여송언. 왕숙지재여백여지대부하금, 좌옥어왕정, 사개청지.
[解釋] 그래서 그가 황하에 이르자, 천자는 그를 불러 오게 하여, 史狡를 죽여 변명하려 했다. 그러나 王叔陳生은 그대로 돌아오지 않고, 황하 가에 이르자, 천자는 그를 불러 오게 하여 사교를 죽여 변명하려 했다. 그러나 왕숙진생은 그대로 돌아오지 않고 황하 가에 머물러 있었다. 이에 진나라 도공이 사개로 하여금 주나라 왕실과 강화하도록 하니 왕숙진생과 백여는 소송을 제기했다. 왕숙진생의 가신이 백여의 대부 가금과 대부 瑕禽이 왕정에 출두하니, 士匃가 그들의 시비를 들었다.
王叔之宰曰 : 「篳門閨竇之人, 而皆陵其上, 其難爲上矣.」 瑕禽曰 : 「昔平王東遷, 吾七姓從王, 牲用備具, 王賴之, 而賜之騂旄之盟曰, '世世無失職.'
왕숙지재왈 : 「필문규두지인, 이개릉기상, 기난위상의.」 하금왈 : 「석평왕동천, 오칠성종왕, 생용비구, 왕뢰지, 이사지성모지맹왈, '세세무실직.'
[解釋] 왕숙진생의 가신이 말하기를, 「미천한 가문의 사람이, 윗사람을 능욕하니, 윗사람이 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고 하자, 瑕禽은 말하기를, 「옛날 평왕이 동쪽으로 천도할 때에, 우리들 일곱 성의 집안사람들이 왕을 따라와, 각종 제사에 쓰이는 희생을 모두 준비하여, 왕이 우리들을 의지했고, 우리들에게 붉은 빛의 소를 잡아 맹세하면서 말하기를, '대대로 이 직책을 잃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若篳門閨竇, 其能來東厎乎? 且王何賴焉? 今自王叔之相也, 政以賄成, 而刑放於寵, 官之師旅, 不勝其富. 吾能無篳門閨竇乎? 唯大國圖之. 下而無直, 則何謂正矣?」
약필문규두, 기능래동지호? 차왕하뢰언? 금자왕숙지상야, 정이회성, 이형방어총, 관지사려, 불승기부. 오능무필문규두호? 유대국도지. 하이무직, 즉하위정의?」
[解釋] 그러니 미천한 집안사람이, 어떻게 평왕을 따라올 수 있었겠소? 또 평왕께서 어째서 우리에게 의지했겠소? 지금 당신의 주인 왕숙진생이 정권을 잡은 후로는, 정치는 오로지 뇌물로써 이루고, 총애를 받는 신하들이 법을 멋대로 집행하며, 군사를 부리는 관리들은, 富를 이룸이 형용할 수 없소. 그러니 우리들이 미천한 집안이 될 수밖에 없었소? 그러니 대국에서 잘 처리해 주십시오. 밑에 곧은 사람이 없으니, 어찌 바로 잡는다고 일할 수가 있겠습니까?」라고 했다.
范宣子曰 : 「天子所右, 寡君亦右之, 所左亦左之.」 使王叔氏與伯輿合要, 王叔氏不能擧其契, 王叔奔晉. 不書, 不告也. 單靖公爲卿士以相王室.
범선자왈 : 「천자소우, 과군역우지, 소좌역좌지.」 사왕숙씨여백여합요, 왕숙씨불능거기계, 왕숙분진. 불서, 불고야. 선정공위경사이상왕실.
[解釋] 이에 范宣子가 말하기를, 「天子가 옳게 여기는 바를, 우리나라 임금도 옳게 여기고, 천자가 틀렸다고 생각하는 것을 우리 임금도 틀렸다고 여깁니다.」고 하고서, 왕숙진생과 백여에게 증거를 맞춰 보게 하니, 왕숙진생은 그 증거를 제출할 수 없어서, 진나로 도망가 버렸다. 경문에 이런 사실을 기록하지 않는 것은, 노나라에 알려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뒤 單의 靖公이 주나라의 경이 되어 왕숙진생을 대신해서 진나라 왕실의 정권을 장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