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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 ‘은행나무숲’ 풍경… 3년 만에 내보인다
윤상진 기자 조선일보 2022.09.23
강원 홍천군 내면 은행나무숲. 유기춘씨는 “소화불량에 시달리던 아내를 위해 심기 시작한 은행나무가 모여 지금의 숲이 되었다”고 했다. /오종찬 기자
홍천군에 위치한 은행나무숲이 10월 1일부터 한 달간 대중에게 개방된다. 코로나 확산으로 인해 입장을 통제한 지 3년 만이다. 4만여㎡의 은행나무숲엔 1000여 그루의 은행나무가 5m 간격으로 줄지어 있고, 푸른 클로버가 은행나무 사이사이를 잇는다. 은행나무숲은 이곳 숲지기 유기춘(78)씨가 아내의 건강을 위해 1986년부터 한두 그루씩 은행나무를 심어 생겼다. 사유지인 이곳은 2010년 대중에게 처음으로 공개된 뒤 지금은 매년 약 20만 명이 찾는 전국적 명소가 됐다.
10월의 숲은 사방이 노란 빛깔로 휩싸인다. 은행 열매가 떨어지기 전 미리 걷어내기 때문에 악취 걱정은 덜어도 된다. 숲 입구에 위치한 지역 농산물 장터를 구경하는 것도 하나의 재미. 관람 시간은 8시30분부터 일몰까지다.
입장료 무료. 주소는 홍천군 내면 광원리 686-4.
강원도라서 단풍이 일찍 물들더라구요 한7-8년전에 갔었는데 넓고 좋았고 정말 무료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사진과 같은 노란은행잎을 못보고 와서 많이 아쉬운데 거리가 멀어서 못가고 있네요 ... 10월초에 다녀오세요^^
금빛 비밀의 숲
[아무튼, 주말- 오종찬 기자의 Oh!컷]
입력 2019.10.12
비밀의 숲이 열렸다. 1년에 10월 딱 한 달만 개방되는 강원도 홍천의 은행나무숲. 이때는 누구나 들어가서 무료로 금빛 세상을 즐길 수 있다. 이제는 유명해져서 내비게이션에도 '홍천 은행나무숲'으로 찾을 수 있다. 서울~양양 고속도로에서 인제IC를 통해 국도로 접어들면 계곡을 따라 구불구불 나 있는 편도 1차로 도로가 이어진다. 국도를 따라 홍천군 내면 광원리까지 한 시간.
암 투병 중인 아내를 위해 어느 로맨틱 가이가 이 은행나무숲을 만들었다는 소문이 사실이냐고 주인에게 묻자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그는 34년 전 소화불량에 고생하던 아내를 위해 몸에 좋다는 약수터를 찾아 서울에서 홍천까지 내려왔다고 한다. 이곳이 마음에 들어 계곡 옆에 있는 널찍한 땅을 사서 은행나무 묘목 2000그루를 심었다. 어릴 때 커다란 은행나무 위에서 뛰어놀던 향수 때문이라고 한다. 정성껏 돌봐온 작은 묘목들이 자라서 울창한 은행나무숲이 만들어졌다.
비스듬히 들어오는 햇살에 은행잎이 유독 노랗게 빛나는 늦은 오후. 카메라로 '인생샷'을 담는 사람들 얼굴에 낭만에 젖은 미소가 가득하다. 로맨틱 가이가 선물한 가을이다.
비밀의 숲이 열렸다. 1년에 10월 딱 한 달만 개방되는 강원도 홍천의 은행나무숲. 이때는 누구나 들어가서 무료로 금빛 세상을 즐길 수 있다. 이제는 유명해져서 내비게이션에도 '홍천 은행나무숲'으로 찾을 수 있다. 서울~양양 고속도로에서 인제IC를 통해 국도로 접어들면 계곡을 따라 구불구불 나 있는 편도 1차로 도로가 이어진다. 국도를 따라 홍천군 내면 광원리까지 한 시간.
[이현군의 옛지도 여행] 강원도 홍천
이현군 역사지리학자
조선일보 2015.10.31
홍천지도(洪川地圖, 규10652), 조선후기 지방지도,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소장
홍천 위치. 네이버 지도 참조
가을을 느끼려 강원도로 향했다. 목적지는 홍천군. 그 지역에 대해 잘 모를 때는 일단 군청으로 간다. 군청 주차장 오른쪽 옆에 홍천 향교가 보인다. 홍살문을 지나 이층 다락문인 석화루(石花樓)를 거쳐 안으로 들어갔다. 석화루는 향교 뒤쪽에 있는 산, 홍천의 진산(鎭山)인 석화산에서 따온 명칭이다.
홍천향교 명륜당
홍천 향교는 1635년부터 이 자리에 있었다. 1872년 고지도에 교궁(校宮)이라 표시된 곳과 같은 위치다. 건물은 한국전쟁 때 모두 불탔기에 1957년에 새로 지었다. 명륜당 양쪽 느티나무 잎이 예쁘게 물들었다.
구 홍천군청
현재 군청에서 남쪽으로 가면 홍천미술관 건물이 보인다. 1956년에 지은 건물인데 옛 홍천군청이다. 1986년부터 2007년까지는 홍천읍사무소로 쓰였다. 이곳에서 남쪽을 보면 길이 쭉 뻗어 있다. 이 일대에 조선시대 홍천의 관아들이 있었음을 느낄 수 있다.
미술관 앞 두 개의 석탑
미술관 앞 공원에 두 개의 석탑이 세워져 있다. 홍천군 관광 안내도에는 희망리 삼층석탑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두 탑 모두 고려 후기의 것으로 추정한다. 사진 앞쪽에서 사자 네 마리가 떠 받치고 있는 탑은 두촌면 괘석리에 있던 것을 1969년에 이곳으로 옮겨온 것이다.
뒤쪽의 탑은 홍천초등학교 뒤편에 방치되어 있었는데, 1949년에 옛 홍천교육청 앞으로 옮겼다가 1957년에 다시 이곳으로 옮겨 놓았다고 설명해 놓았다. 홍천초등학교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 장소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가보았다.
홍천초등학교
조선시대 건물은 보이지 않았다. 학교 건물 앞에는 개교 100주년을 기념하여 2008년에 세운 큰 돌이 보인다. 개교 당시의 흔적을 찾으려 학교 안을 살펴보다 기념비 오른쪽에서 오래된 돌기둥 두 개를 발견하였다. ‘홍천화산공립심상소학교’라고 한자로 적혀 있다. 개교 당시의 교문이었던 것 같다. 오래된 학교다.
홍천 장날
이제 동네 구경을 할 차례이다. 가는 날이 장날이었다. 끝자리가 1일, 6일이 홍천 오일장이 서는 날이다. 혼잡하지 않고 잘 정리되어 있었다. 장을 보고 홍천강변으로 나왔다. 옛 지도에는 범파정(泛波亭)이 표시되었는데 찾을 수는 없었다.
지금은 강변에 주차장이 있지만, 옛날에는 경치가 아주 좋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범파정에 올라 지은 시들도 많으니 복원을 고려해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희망리 당간지주
강변 도로를 따라 걷다 보면 당간지주(幢竿支柱)를 볼 수 있다. 절 앞에 걸었던 깃발이 당(幢), 깃발이 걸리는 곳이 당간(幢竿), 양쪽에서 당간을 버티게 해 주는 돌이 당간지주(幢竿支柱)이다. 고려 시대 양식이라고 설명해 놓았지만, 절 이름이 없다. 아쉽다.
수타사
그렇다면, 이제 홍천에 남아있는 유명한 사찰을 하나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간 곳이 수타사이다. 옛지도에는 수타사(水陀寺)로, 지금은 수타사(壽陀寺)로 표기한다.
절 입구에 많은 음식점과 차와 사람들이 보였다. 주차장 부근은 번잡스러웠지만, 절 입구를 들어가니 주변 풍경이 너무나 좋았다. 산도 멋지지만 계곡에 물도 많이 흘러서 들어가는 길이 더 좋았다. 명당이라는 느낌이 절로 들었다.
임진왜란 때 절 전체가 불탔다 한다. 이후 1636년(인조 14)에 새로 지은 대적광전(大寂光殿)은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다.
절 입구에 들어서면 사천왕문이 보인다. 이곳의 사천왕은 다른 절과 좀 다르다. 소조사천왕상(塑造四天王像)이라 부르는데 나무 위에 새끼줄을 감고 그 위에 진흙을 발라 만든 것이다. 1676년(숙종 2)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한다.
이 절은 보물들을 소유하고 있다. 사천왕문을 지나 왼쪽에 보이는 동종(銅鐘)은 1670년(현종 11)에 제작된 것으로 보물 11-3호 이다. 이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보물 745-5호로 지정된 월인석보(月印釋譜)의 일부이다. 조선 전기에 훈민정음을 널리 보급하기 위해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과 석보상절(釋譜詳節)을 합하여 편집한 책이다.
수타사 계곡에서 가을을 흠뻑 만났다. 하지만 가을에는 역시 은행나무 아닌가? 조선시대 홍천 땅은 아니지만 1년 중 10월 한달 동안만 개방한다는 내면 광원리에 조성된 은행나무 숲이 유명하다기에 가 보았다.
은행나무는 많았지만 크지는 않았다. 공자가 행단(杏壇) 아래에서 제자들을 가르쳤다고 향교에는 은행나무를 심어놓는다. 오래된 향교에는 큰 은행나무가 있고 생긴지 얼마 안되는 향교의 은행나무는 작다.
그동안 향교를 다니며 몇 백년 된 은행나무를 보다가 이 곳의 작은 은행나무를 보니 감동이 생기지는 않는다. 시간이 더 지나야 멋있어 질 듯 하다.
[박종인의 땅의 歷史] 구룡령과 조침령을 넘어 우리는 방태산으로 숨었다
[48] 방태산 순환드라이브와 정감록 사람들
세상 피해 은둔한 사람들 모여 살았던 방태산 자락
깊은 계곡과 고개 지나는 110km 순환 드라이브
숨어든 사람들이 만든 은행나무숲… 펜션마을…
방태산 깊은 산중에는 '이 폭포 저 폭포'
別有天地非人間
조선일보 2016.08.10 03:00
풍수학자 최창조는 충격을 받았다. 전화(戰禍)를 피하겠다는 일념으로 황해도에서 경북 풍기로, 풍기에서 신도안으로 떠돌다가 충남 공주 명당골에 자리 잡은 노인이 이리 말하는 것이다. "자본(資本)이 명당이외다. 돈만 많다면 아들 사는 도시로 나가 살지 미쳤다고 여기에서 살겠나." 예언서 '정감록'에 의지해 피장처(避藏處)를 찾아 팔도를 떠돌았던 노인이 칠순 넘어 털어놓은 비밀이었다. 최창조가 묻는다. "전쟁이 태평성대와 난세(亂世)를 가르는 기준이던 시절, 사람들이 전쟁을 피할 곳은 군사적으로 가치가 없는 산골이 대부분이었다. 지금은?"
방태산과 피장처
강원도 방태산 주변에는 '정감록'에 나오는 피장처가 많았다. 방태산은 닿을 수 없는 오지였다. 20세기 말까지도 그랬다. 북쪽으로 418번 지방도와 남쪽으로 56번 국도가 방태산 언저리를 지나가지만, 방태산을 잇는 조침령과 구룡령은 섣불리 넘어갈 수 없는 아득한 고개였다.
많은 사람이 전쟁을 피하려고 이 오지로 숨어들었다. 80종이 넘는 '정감록' 판본 가운데 필사본 하나가 방태산 주변 피장처를 삼둔사가리라고 불렀다. 홍천에 있는 살둔, 달둔과 월둔, 인제에 있는 아침가리, 적가리, 연가리, 명지가리다. 달둔에 사는 한 노인이 말했다. "정감록? 허… 나 젊을 때 울진에서 무장공비가 우리 마을로 들어와서 우리가 몽땅 강제로 쫓겨났었는데."
강원도 인제와 홍천에 걸쳐 있는 방태산은 꽃 방(芳)에 별 태(台), 꽃별산이다. 그 산중에 숨어 있는 폭포 이름은 ‘이 폭포 저 폭포’다. 세상이 어찌 됐든 개의치 않겠다는 달관한 작명(作名)이다.
천지가 개벽했다. 자본과 돈이 전쟁을 대신하는 세상이 되었다. 418번 지방도가 산 북쪽으로 뚫리고 56번 국도가 남쪽으로 양양까지 뚫렸다. 2006년 12월 진동과 양양을 잇는 조침령 터널이 뚫리면서 마침내 방태산을 한 바퀴 도는 110㎞ 길이 순환 드라이브 코스가 완성됐다. 길 막히지 않는 날, 두 시간 반이면 서울에서 닿는 신천지가 되었다. 사람들은 '정감록' 피장처라 주장하는 숨은 장소들을 찾아가 돈을 뿌리고 대신 휴식을 구입한다. 땅은 변함없으되 그 쓰임과 용도가 이리도 격변했으니, '정감록' 예언이 21세기에 실현된 게 아닌가.
이 여름날 큰 산 방태산 주위를 한 바퀴 둘러본다. 살둔계곡, 미천골계곡, 구룡령, 조침령, 진동계곡, 방동계곡. 이름 하나하나 의미심장한 은둔지들을 만나본다. 은둔지를 잇는 길도 하나같이 아름답다.
인제 상남에서 살둔까지 20㎞
상남면에서 살둔계곡까지 자동차로 30분이 걸린다. 도로 번호는 446번 지방도다. 미산계곡이 길 내내 뻗어 있다. 내린천이 휘돌아 흐르는 첩첩산중에 평평한 땅이 보인다. 누가 보아도 정감록을 떠올릴 풍경이다. 오지였던 시절, 살둔에 있는 산장은 산꾼들 아지트였다. 한옥도 일옥도 아닌 희한한 목조 산장에서 사람들은 풍월을 읊고 놀았다. 길이 뚫리고 누구나 살둔을 찾는 지금, 산장은 만인을 위한 펜션으로 변했다. 야영장으로 변한 폐분교 주변에 차를 대고 계곡을 즐겨본다.
살둔에서 구룡령까지 25㎞
구룡령으로 가는 길목 13㎞ 지점에 칡소폭포가 있다. 규모는 크지 않으나 수량이 풍부하다. 폭포 위쪽은 을수계곡이다. 내린천 발원지다. 여름에도 나무 그늘이 시커멓고 물은 냉수다. 폭포 앞에서 내린천과 계방천이 만난다. 차갑기 그지없는 내린천 줄기에서 양지바른 계방천 줄기로 몸을 옮기면 순간 온탕에 들어왔다는 착각에 빠진다. 칡소폭포에서 2.5㎞를 가면 홍천 내면이 나온다. 내면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달둔계곡이다. 역시 정감록이 떠오르는 풍경이다.
홍천 내면 광원리에 있는 칡소폭포. 56번 국도와 붙어 있다.
영동고속도로에 교통량을 빼앗긴 후 56번 국도는 쓸쓸했다. 2010년 이 달둔계곡에 숨어 있던 은행나무숲이 대중에 개방되면서 세상이 바뀌었다. 아내 병 고치러 달둔을 드나들던 사내 류기춘이 아예 은행을 심고 살다가 20년 만에 개방한 숲이다. 10월만 되면 달둔계곡 앞뒤 10km에 차량 사태가 나고 전직 금융인 문제경 부부가 숨어들어와 만든 펜션 티롤에서 은행나무숲까지 길섶에 장터가 선다. 다른 계절에도 아름답다. 내린천이 흐르는 계곡 풍경은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과 동일하다.
길이 서서히 상승한다. 구룡령으로 간다. 구불구불 구부러진 고개를 과장해서 아홉 구비라 했다. 아홉 구비가 훨씬 넘지만, 고개 이름을 십룡령, 이십룡령이라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구룡령을 넘는 56번 국도 구간은 일제 강점기 임도였다. 그 길을 포장해서 1990년대에 완공된 도로가 56번 국도다. 고개를 넘을 때는 가랑비가 뿌렸으면 좋겠다. 고개 아래는 비가 오지만 고개는 운무에 뒤덮인다. 양편 그리고 앞뒤 산자락이 운무에 사라진다. 그 몽환(夢幻), 잊기 힘들다.
구룡령에서 조침령까지 25㎞
구룡령 아래 마을 이름은 갈천이다. 화전민들이 칡뿌리 갈아 먹던 마을이라 개울에도 칡가루가 부유했다. 그래서 갈천(葛川)이었다. 마을에 있는 약수 이름도 갈천이다. 약수터로 오르는 1.5㎞ 산길은 꼭 올라가 본다. 온갖 활엽수에 에워싸인 약수터는 신비하고 춥다. 교통량이 줄어들면서 구룡령휴게소는 문을 닫았다.
미천골 휴양림은 빼놓을 수 없다. 입구에서 7㎞까지 차량으로 들어갈 수 있는 거대한 계곡이다. 입구에 있는 절터는 선림원지다. 절집 사람이 하도 많아서, 밥을 할 때마다 계곡수가 하얗게 됐다고 미천(米川)이다. 휴양림 안에는 예쁜 펜션도 많고 밥 먹을 식당도 있다.
미천골에서 나와 서림삼거리에서 좌회전하면 길은 418지방도로 바뀐다. 조침령이 나온다. 새도 하룻밤을 자고 넘었다는 악명 높은 고개다. 그 고개 아래에 터널이 뚫렸다. 2006년 일이다. 방태산 자락이 1145m짜리 터널 하나로 순환고리가 완성된 것이다. 양양으로 가려면 한참을 돌아야 했던 진동마을 사람들은 신천지를 맞았다.
조침령에서 방태산 18㎞
피장처를 찾아 진동마을 두메로 숨어들었던 사람들에게는 비보(悲報)였다. 조침령은 마지막 남은 오지였다. 언론, 방송 할 것 없이 진동계곡을 찾아 '천혜의 비경'을 찬미했다. 그래도 좋았다. 쉰여섯 먹은 사내 김시륜은 서울에서 사륜구동차를 타고 물 좋은 계곡만 찾아다닌다고 했다. 그가 말했다. "2박3일 동안 계곡에서 내 손으로 밥을 해먹은 적이 없다. 옆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 밥이며 삼겹살을 나눠줬다. 대한민국, 아직 살 만하다." 김시륜의 담배연기 너머 물가에서 청년들이 꺽지 낚시에 한창이었다. 무성하게 자란 갈대밭 속에서 웃음소리가 끝이 없었다.
진동계곡 솔밭 옆 내린천에서 만난 낚시꾼들.
문득 방태산이었다. 이 모든 현대판 피장처를 품고 있는 큰 산이었다. 계곡 끝에 폭포수가 쏟아졌다. 10m 높이 위쪽 폭포와 3m 높이 아래쪽 폭포를 합쳐서 '이 폭포 저 폭포'라 부른다. 휴양림 입구에 있는 방동약수를 한 모금 마신다. 음나무 무성한 숲 속에 철분 가득한 탄산수를 마신다.
방태산 옆 고향집에는 최균택과 박순옥 부부가 산다. 예순여덟 살 먹은 최균택과 세 살 연하 박순옥은 인제군 현리 마을에서 함께 자랐다. 그리고 혼인을 하여 지금껏 현리에 산다. 박순옥이 만드는 두부가 하도 맛있다고 마을 사람들이 호들갑이라, 25년 전 집에 두부집을 열었다. 그 이름이 '고향집'이다. 두부 싫다고 징징거리는 아이들도 이 집 두부를 먹고 나면 맛있다고 호들갑이다. 개명천지가 아닌 주술의 시대였다면 "인육(人肉)을 넣었다"는 괴소문이 떠돌 법할 정도로 맛있다.
110㎞ 방태산 자락 끝에서 두부 만드는 부부를 만났다. 현리에서 태어나 현리에서 자라나 현리에서 사랑을 하여 현리에서 혼인을 했고 현리에서 늙어가는 부부다. 그들에게 '정감록'은 덧없고 의미 없다. 하여, 묻는다. 당신의 피장처는 어디인가.
[방태산 여행수첩]
〈드라이브 순서〉 상남면-살둔계곡-칡소폭포-티롤-갈천약수-미천골자연휴양림-조침령-진동계곡-방태산자연휴양림-방동약수-고향집
〈볼거리〉
1.칡소폭포: 주차장 반대편으로 개울 내려가는 길. 개울 물놀이도 가능.
2.갈천약수: 구룡령휴게소 건너편 마을 소로로 들어갈 것. 산길 1.5㎞.
3.미천골휴양림: 발굴 작업 중인 휴양림 초입 선림원지 석탑을 볼 것. 휴양림 길이는 7㎞.
4.방태산휴양림과 방동약수: 휴양림 끝 '이 폭포와 저 폭포'. 방동약수는 휴양림 입구에서 왼쪽 도로.
〈맛집〉
1.서석면 한정식 곳간: 이른 아침 여행길 아침 끼니. 홍천 서석면 구룡령로 2545-1, (033)433-5450
2.불바라기카페: 미천골휴양림 속 점심식사. 된장찌개 추천. 숙박도 겸. 양양 서면 미천골길 298, (033)673-4589
3.고향집 손두부: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 다 취소해도 이곳만은! 구이 7000원, 전골 8000원 등. 인제 기린면 현리 조침령로 115, (033)461-7391. 휴무 여부 확인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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