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우연을 가장한 필연
혜진의 소개팅은 완벽하게 망했다. 얼결에 받은 소개팅이기는 했다. 커플 성사에 대한 강렬한 의지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애당초 기대감이 없었으니 서운함도 없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혜진은 집에 가는 길목에서 계속 핸드폰을 확인했다. 체크 남방에게서는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괜스레 서운한 마음이 몽글몽글 솟았다.
“애프터도 없어?”
혜진은 이토록 처참하게 차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애프터는 커녕 커피 제안도 거절 당하다니. 못내 자존심이 꿈틀거렸다. 집으로 돌아가면서 혜진은 처음에는 화가 났다. 길거리에 체크 남방만 봐도 부글부글 속이 끓는 것 같았다. 못난 놈. 예의도 없는 놈. 누구는 소개팅에 나가고 싶었냐. 궁싯거림이 심해졌다. 실컷 욕설을 퍼붓던 혜진의 마음이 한결 잠잠해지면서 이내 자기합리화가 시작됐다.
“차라리 잘됐다. 됐어.”
손이 예쁜 것이 일 하나 하지 못하게 생긴 손이다. 곱상하게 자라서 풍파를 만나면 이기지 못할 것이다. 혜진은 체크 남방이 마음에 들지 않는 온갖 구실을 떠올렸다. 참 우스운 변명이기는 했다. 구태여 찾아낸 단점도 결국 장점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혜진은 한참 자기합리화를 하다가 결국에는 체크 남방을 두둔하기에 이르렀다.
“일이 있었겠지. 확실해 일이 있어. 그래. 급한 일이 있으니까 그랬겠지.”
정말 급한 일이 있다거나 급한 일이 있다거나 급한 일이 있을 예정이든가. 혜진의 내린 애매모호한 결론이었다. 변화무쌍한 날씨처럼 급격하게 변하던 마음은 결국 분노가 가득찬 욕설로 끝났다.
개나리반 조카의 십팔색 크레파스 같은 인간.
혜진은 집에 돌아와 종일 청소에 매달렸다. 주변이 어둑해졌다. 작은 창문을 타고, 흐릿한 가로등 불빛이 들어왔다. 깜빡, 가로등도 외롭게 깜빡거리는 것 같았다. 나도 있다고. 그 존재를 알리는 것 같기도 했다. 혜진은 창밖을 봤다. 찬바람을 맞고 있는 가로등이 유난히 외로워보였다. 가로등을 더욱 시리게 만드는 커플이 깜빡거리는 가로등 아래에 섰다. 커플은 쾌재를 불렀다. 어둠이라니. 이보다 간절하게 기다린 어둠은 없을 것이라는 얼굴로 커플은 서로를 바라봤다.
“우리 좀 쉴까.”
“아잇! 몰라.”
“쉬자.”
“피곤한 것 같기도 하구우.”
“아이구! 우리 예쁜이가 피곤하면 큰일이지. 얼른 가서 쉬자.”
속이 뻔히 보이는 거짓말이었다.
“참 좋을 때다. 예쁜이들아 남의 집앞에서 뭐하니.”
혜진의 궁싯거림을 들은 것처럼 가로등 아래에서 밀당을 하던 커플은 버뮤다 삼각지대에 돌진한 것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관음증에 걸린 환자처럼 바깥을 내다보던 혜진의 귀에 진동소리가 들렸다. 십팔색 크레파스가 마지막 매너는 그래도 지킨 것이 아닐까. 내심 승리의 기쁨을 누리면서 혜진은 잽싸게, 그렇지만, 너무 기다린 것 같지는 않은 속도로 핸드폰을 봤다.
-상담은 문자로만 꼭! 정력의 b그라 캡슐 한통 30개 판매 후 결제
혜진의 승리는 곧 패배로 얼룩졌다. 정력 넘치는 비아그라 광고에 분노가 치밀었다. 박준우가 박준우인 것처럼 십팔색 크레파스는 십팔색 크레파스였다.
“것두 먹일 사람이 있어야 사는 거지.”
한강에서 뺨을 맞고 종로에서 화풀이하는 사람처럼 혜진은 비아그라 광고에게 고했다.
-댁이나 배 터지게 드세요.
비아그라 광고도 대답이 없었다.
혜진은 유리에게 받았던 십팔색 크레파스의 번호를 지웠다. 깔끔한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카카오톡에서 친구 차단을 하기 전에 장문의 욕설을 작성했다. 마지막 매너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던 십팔색 크레파스에 대한 분노는 아니었다. 박준우에 대한, 아니, 박준우의 그늘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분노가 담긴 문자였다. 하이에나처럼 박준우의 자리를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이면 대환영이라고 외치던 스스로에 대한 질책이기도 했다.
“그래. 십팔색 크레파스가 무슨 죄겠냐. 됐다. 됐어. 쿨하게 살자!”
십팔색 크레파스는 비난을 받을 이유는 없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방을 깔끔하게 잘라내는 것은 나름 매너라면 매너였다. 고작 한 번 본 사이에 즐거웠다는 문자 정도는 생략할 수도 있었을 것이었다. 혜진은 괜한 사람한테 분풀이는 하지 말자고 생각하면서 빽빽하게 적힌 글자를 하나하나 지워 나갔다. 글자 하나가 사라질 때마다 아주 조금씩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것 같았다.
이제 자신에게 집중하자 싶었다. 남자 생각은 말고, 완연하게 나에게 집중하자. 슬퍼한 시간만큼 이제는 자신을 위해 웃자고 다짐했다.
-개나리반 조카의 십팔색 크레파스
마지막 문장이 남았을 때였다. 마카오 육포에 취해 떨어뜨린 핸드폰이 결국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갑작스럽게 걸린 에러에 신경질적으로 스마트폰 화면을 톡톡, 건드리다가 마지막 문장이 십팔색 크레파스에게 전송됐다.
“제발, 취소. 취소! 취소! 하느님 아부지, 살려주세요.”
혜진은 취소를 해보려 몸부림을 쳤지만 모두 헛수고였다. 의자가 뱅글뱅글 돌아갔다. 넋이 나간 그녀의 얼굴에서 영혼이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십팔색 크레파스가 혜진에게 십팔색 크레파스가 된 것처럼 혜진은 십팔색 크레파스에게 개나리반 조카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핸드폰이 울렸다. 유리의 전화였다. 빙글빙글 회전하던 의자가 멈췄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혜진의 내적 갈등이 극에 달했다. 받을까, 말까. 손톱을 잘근 깨물다가 전화를 받았다. 당황하지 않고 받으면 끝일 것이다. 그러기를 바랐다.
“여보세요?”
꿀꺽. 혜진이 마른 침을 삼켰다. 수능을 보는 날과 견줄 만큼의 긴장감이었다.
-소개팅 잘했어? 오빠 괜찮지?
혜진이 생각하지 못한 전개였다. 유리의 차분한 어조는 그녀가 십팔색 크레파스에게 아무 것도 듣지 못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혜진은 십팔색 크레파스가 애프터 신청이나 헤어짐에 대한 문자가 없었던 것을 제외하고는 꽤 매너가 있는 남자라고 생각했다.
“그냥…… 독특했어.”
-독특해? 평범의 끝인데. 그 오빠.
“순댓국 먹고 신세계라고 했다니까. 표현 자체가 범상치 않아.”
-헐! 대박. 웃기네. 그 오빠 순댓국 킬런데. 언제 다시 보기로 했어?
“그게 말이야. 우리가 좀 성격 차이가 나는 것 같았어.”
혜진은 순간적으로 멈칫 했다. 십팔색 크레파스 카톡에 집중하느라 애프터에 대한 질문에 대한 변명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차마 애프터도 받지 못하고 차였다는 말을 스스로 내뱉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는 대충 얼버무렸다. 가장 손쉬운 성격차이를 들먹이면서.
-성격 차이?
“난 자상한 남자가 좋더라고. 내가 한 까칠하잖아. 하여튼 이분은 너무 철옹성 같았어. 차가워도 너무 차가워.”
-그랬나.
“만나서 딱 한 번 웃었다니까. 개그 코드가 문제인가.”
유리는 포장에 포장을 거듭하는 혜진의 말을 잠자코 들었다. 소개팅이 완벽하게 망했다는 것을 단번에 눈치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괜한 짓을 했나. 유리는 괜스레 혜진에게 미안해지기도 했다. 부드러운 김원종의 성격이 혜진에게 잘 맞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혜진의 말을 종합하면 김원종의 성격이 갑작스럽게 철옹성으로 변한 이유는 두 가지 중에 하나였다.
여자 앞에서는 차가워지거나 혜진이 마음에 들지 않던가. 이유가 무엇이든 좋은 결말은 아니었던 것 같았다. 유리는 애프터 문제에 대해서 더 캐묻지 않았다. 때로는 묻어두는 것이 더 좋을 때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나와라. 배고픈데 혼자 저녁 먹기 싫어.
“귀찮은데.”
-임총무가 쏜다.
“오예. 그럼 가야지.”
-이 얇은 우정 좀 보소.
“왜 으으리! 넘치는데.”
-으으리! 검은집으로 오라.
의리 넘치는 대답과 함께 혜진은 전화를 끊었다. 거울을 봤다. 거무칙칙한 피부는 살며시 무시하기로 했다. 화장은 과감히 포기하고 넝마 같은 옷만 사람답게 갈아 입었다. 한밤에 모자를 쓰고 학교 후문에 있는 검은집에 도착했다.
찌그러진 주전자로 대강 인테리어를 끝낸 검은집은 경영학과 사람들이 자주 애용하는 술집이었다. 맛도 맛이었지만 무엇보다 가격 대비 푸짐한 양에 만족도가 높은 곳이기도 했다. 유리와 혜진은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일단 매화수 한 병에 뭐 시켜?”
“파전, 계란말이, 골뱅이, 부대찌개, 닭똥집.”
“매화수로 맞아 본 적 없지?”
“나쁜쉐이. 그럼 일단 계란말이.”
“콜. 계란말이. 이모! 여기 계란말이랑 매화수 하나씩요.”
주문을 끝내고 테이블을 세팅했다. 매화수와 함께 따끈따끈한 계란말이가 등장했다. 두툼한 계란말이에는 케찹이 황금비율로 뿌려져 있었다. 건배. 두 사람은 꽃향기가 나는 매화수 한 잔을 마셨다. 코를 간질이는 알코올과 꽃내음과 함께 입 안이 알싸해졌다. 말캉한 계란말이를 씹으면서 혜진은 십팔색 크레파스 사건은 말끔하게 잊어버렸다. 그래도 우정은 남았으니까.
“홍콩 좋지?”
“아니. 그냥 뭐. 사람 사는 곳이던데.”
“나도 비행기 타고 어디라도 갈 걸 그랬나. 삼학년 되니까 알바에 토익에 복전 학점에 교환학생 갈 돈도 없다.”
“너한테는 괜찮을 것 같은데. 나는 별로였어. 다른 공기 좀 맡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공기가 거기서 거기지 뭐.”
혜진이 잔을 비웠다. 홍콩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그녀는 설렘이 가득했다. 낯선 도시에서 서울과 다른 공기를 마시면서 지쳤던 마음을 달랠 생각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던 것이었다. 기내식을 먹고 강민의 어깨에 기대어 늘어지게 잠을 자다가 비행기에 내린 순간, 아주 짧은 시간에 혜진은 깨닫고 말았다. 벚꽃이 거기서 거기라는 박준우의 말처럼 한국이나 홍콩의 공기는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그러게. 거기서 거기인데.”
“홍콩에 괜찮은 사람은 없었냐.”
“괜찮은 사람……,”
홍콩에 도착한 혜진은 교환학생을 위해 자기소개서를 내고, 추천서를 받고, 면접을 보고, 미친 사람처럼 아르바이트를 하고, 새벽에 일어나 비행기를 타게 된 순간이 모두 허무하게 느껴졌다. 커다란 수화물을 찾아서 공항 밖으로 나온 혜진은 바닥에 쪼그려앉았다.
“괜찮아요?”
강민이 창백한 그녀의 앞에 앉았다.
“어디 아파요?”
“아뇨. 그냥 머리가 아파서…….”
“약이라도 줄까요? 상비약이,”
“괜찮아요. 잠깐 있으면 괜찮아질 것 같아서요. 먼저 가셔도 돼요. 나중에 차 타고 갈게요.”
강민은 연고도 없는 곳에서 무작정 학교로 찾아오겠다는 혜진이 걱정됐다. 강민은 혜진의 옆에 아예 눌러앉았다.
“나도 쉬는 셈 치죠.”
혜진은 강민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낯선 곳에서의 설렘이 사라지기 무섭게 두려움이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낯선 땅에서 잘 지낼 수 있을까. 생각지도 못한 두려움이었다. 강민의 도움으로 공항에서 벗어난 혜진은 홍콩의 학교로 가는 버스에서도 내내 잠만 잤다. 어차피 같은 공기라면 살 수도 있지 않을까. 나름대로의 충전을 하면서 그녀는 강민에게 고마웠다. 교환학생 생활을 잘 시작할 수 있었던, 잘 마칠 수 있었던 힘이 되어주었기 때문이었다.
참 좋은 인연이라고 생각했다.
“있었으면 내가 딱 쟁취했지.”
“개쉐이. 친구부터 생각해주라.”
혜진이 다시금 잔을 비웠다.
“그런데……내가 이상하기는 한 것 같아.”
“왜?”
“한국이랑 홍콩 공기가 다르다고 우기고 싶더라구.”
버스에서 내려 혜진이 홍콩에 있는 학교에 도착한 순간, 후덥지근한 바람이 불었었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뒤흔들 수 있을 정도의 바람이었다. 그 바람에 우울한 마음이 잠깐 들썩였었다. 바람이 만든 균열 속에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박준우와의 이별이 온전히 박준우의 잘못이 아닐 수도 있겠구나. 박준우와의 이별이 온전히 자신의 잘못이 아닐 수도 있겠구나.
“잘 우겼냐.”
“조금. 아주 조금은 우긴 것 같아.”
그럼에도 혜진은 박준우를 잊기 위해 모두 박준우의 잘못이라고 우기고 싶어졌다. 박준우와의 이별에는 박준우의 잘못과 자신의 잘못이 모두 들어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빨리 박준우를 잊기 위해 원망하는 방법을 택했던 것이었다. 홍콩에 있는 동안, 열심히 박준우를 탓했다. 이별은 모두 박준우의 잘못이라고.
모두 다 네 잘못이야.
“잘했네. 역시 내 친구라니까. 그런 의미로 건배.”
두 사람은 건배를 하고 잔을 비웠다. 작은 테이블에 빈 병이 점차 늘었다. 유리에게 속시원하게 말하니, 무거웠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혜진은 술에 취해 눈을 꿈뻑거리면서 골목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봤다. 모두 행복해보였다. 부러워 죽을 정도로. 멍청하게 눈만 꿈뻑거리던 혜진의 시야에 익숙한 체크 남방이 보였다.
문득 혜진은 십팔색 크레파스와 마카오에서의 일을 이야기 할 때가 생각났다. 그래도 참 재밌었는데. 카톡 사건만 아니었어도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었을 수도. 체크 남방이 뒤를 돌았다. 쓸데없는 생각으로 얼룩진 혜진의 머릿속이 일순간 멈췄다. 십팔색 크레파스였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술기운에 미안하다는 말을 꼭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가.”
“십팔색, 아니, 소개팅!”
“미쳤냐. 갑자기 무슨 소개팅이야. 곱게 먹고 갑시다.”
“그게 아니라 소개팅남.”
“그 오빠 학원이란다. 착각 말고 술이나 드쇼.”
“진짜라니까!”
유리를 두고, 혜진은 밖으로 뛰쳐나왔다. 골목을 둘러봤다. 사람들 사이로 사라지는 십팔색 크레파스의 모습이 보였다. 잰걸음으로 십팔색 크레파스의 뒤를 쫓았다. 손에 잡힐 듯, 십팔색 크레파스는 잡히지 않았다. 곧, 십팔색 크레파스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가버렸네.”
오직 혜진만이 텅 빈 골목에 덩그러니 서 있었다. 사과를 하고 싶어서 환영이라도 본 모양이었다. 작은 수확도 얻지 못하고, 혜진은 다시 가게로 돌아왔다. 십팔색 크레파스를 따라갔다는 말을 들은 유리가 배꼽이 빠져라 웃었다.
“이거, 반했네. 그 오빠가 첫눈에 반할 만한 페이스는 아닌데. 참 취향 독특해.”
“아니야. 그럴 일이 좀 있어서 그래. 반하기는 누가 반했다구.”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인 법이지.”
“아닙니다요. 술이나 마십시다.”
“아님 외로워서 그런가. 걱정마. 다음에는 꼭 성공시켜준다!”
거나하게 술에 취한 두 사람은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차가운 공기에 술이 깨면서 혜진의 머리가 지끈거렸다. 혜진은 관자놀이를 누르면서 집으로 가는 걸음을 재촉했다. 그러면서도 캄캄한 골목길에 주변을 살펴댔다. 뚜벅뚜벅.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괜스레 무서운 마음에 걸음 속도를 높였다. 차라리 유리 집에서 잘 걸 그랬나. 후회가 밀려왔지만 이미 소용 없는 일이었다.
뒤에서 들리는 걸음도 점차 빨라졌다. 걸음 하나에 혜진은 술이 확 깨는 것 같았다. 가로등이 여전히 깜빡거리고 있었다. 가로등 아래로 지나가는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백팩에 체크 남방. 설마! 가로등 아래에 있던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깜빡이는 가로등 사이로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십팔색 크레파스였다. 혜진은 그가 죽도록 반가웠다. 카톡 사건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혜진은 재빨리 십팔색 크레파스에게 풀쩍 달려갔다.
“안녕하세요!”
반갑게 그에게 인사했다. 그의 걸음이 멈췄다. 혜진의 걸음도 덩달아 멈췄다.
“저번에 소개팅했던.”
“예.”
그는 차가운 눈빛으로 혜진의 뒤를 밟던 남자를 봤다. 남자가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십팔색 크레파스의 시선을 따라 움직이던 혜진의 고개가 움직였다. 조윤은 혜진이 뒤를 돌아보기 전에 그녀를 급히 안았다. 자신의 뒤를 밟는 남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면 혜진의 공포가 극에 달할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십팔색 크레파스의 날카로운 눈빛에 혜진의 뒤를 밟던 남자가 줄행랑을 쳤다.
“누구 있었죠?”
십팔색 크레파스의 품에서 혜진이 낮게 속삭였다. 그녀의 눈빛에는 공포가 가득했다.
“쥐.”
“쥐요? 헐. 진짜요?”
“갔네요.”
그의 말에 혜진은 그의 품에서 떨어졌다. 어색한 기운이 감돌았다.
“이 동네 사세요?”
“집이 근처라서.”
“그러시구나. 저희 집도 근천데. 되게 신기하다.”
“시간도 늦었는데 가죠.”
두 사람이 함께 길을 걸었다. 그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캄캄한 밤길에서 그와 함께 걷는다는 사실이 혜진은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혜진은 빌라의 입구를 보고, 익숙함이 주는 반가움에 폴짝 입구에 섰다.
“저는 여기 살아서.”
“그럼 가보겠습니다.”
“저기…… 우연히 만나서 반가웠어요. 아는 사람 만날 줄은 몰랐거든요. 덕분에 잘 왔어요.”
“다행이네요.”
“그리구 저녁에 보낸 문자는 죄송해요. 실수로 잘못 가서. 놀라셨죠?”
“예. 개나리반 조카가 나올 줄은 몰라서.”
저녁에 보냈던 문자 내용이 그에게서 나오고 있었다. 밀려드는 민망함에 혜진은 두 손으로 그의 입을 막아버렸다. 도저히 풀 수 없는 상황으로 돌진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말캉한 입술의 감촉이 손바닥에 느껴졌다. 입술이 벌어지면서 밀려드는 따스한 공기에 손이 그의 입술에서 떨어졌다. 어색해서 죽을 것 같다는 말을 혜진은 이제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먼저 들어갈게요. 안녕히계세, 아니, 가세요.”
“예.”
“그럼 조심히 가세요.”
혜진은 그에게 냉큼 인사를 했다.
“최혜진씨.”
남자가 집으로 돌아가려던 혜진을 불렀다.
“앞으로는 일찍 다녀요.”
진심이 담긴 말이었다. 남자는 마지막말을 남기고 집으로 돌아갔다. 벙찐 얼굴로 계단에 서 있던 혜진이 느릿하게 집으로 올라갔다. 그녀는 현관문에 서서 손바닥을 내려다봤다. 손바닥에 번진 그의 숨이 그의 인상을 변화시켰다. 냉랭하던 대답과 인상이 조금은 따뜻하게 느껴져왔다.
폭식한 침대에 누우면서 혜진은 그가 유리의 말처럼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소개팅의 실패로 십팔색 크레파스와 그녀가 더 진전되거나 만날 일은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소개팅을 잘 했다고 생각했다. 유리에게 고마웠다. 괜찮은 사람을 통해 이별로 잠시 망가졌던 평범한 일상의 즐거움을 다시 알려주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혜진은 실수투성이에 바람 잘 날 없던 그 평범했던 일상이 눈물나게 반가웠다.
혜진과 조윤이 만나고 엿새가 흐른 날이었다. 그녀의 일상 복귀를 환영이라도 하는 것처럼 언제 꺼질지 모르게 껌뻑거리던 가로등 전구 교체 작업이 시작됐다. 닷새 전에 들어온 민원 때문에 진행된 전구 교체 작업은 순식간에 완료됐다. 작업하던 인부는 닷새 전에 들어온 민원으로 급히 교체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혜진의 집앞은 예전처럼 다시 환해졌다.
“한결 낫네.”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밝아진 가로등을 보고 있던 조윤이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창가에서 밝아진 가로등을 보고 있던 혜진의 입가에도 미소가 물들었다.
반갑다. 한국.
너무 반갑다. 내 일상.
***
십팔색 크레파스와 헤어지고 정확히 일주일이 되는 날. 혜진은 아버지 꿈을 꾸었다. 실로 오랜만에 꾸어보는 아버지 꿈이었다.
혜진이 초등학교 때였다. 그녀는 아버지와 바다에 간 적이 있었다. 서해였나. 아니. 갯벌이 없었던 것을 보니, 서해는 아니었던 것 같기도 했다. 그날은 참으로 아픈 칼바람이 불었던 것으로 그녀는 기억했다. 혜진은 아버지와 단둘이 모래사장에 앉았다. 푸른 바다는 끝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말끔하게 양복을 입은 아버지와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바다를 번갈아보면서 혜진은 마음이 이상했다.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기도 했다. 바다에 있는 부표가 출렁거렸다. 부표가 부럽다고 생각했다.
“아빠는?”
“오늘도 바쁘시다네.”
“또?”
“대신 엄마가 아빠 몫까지 생일 축하해줄게!”
“응.”
“착하네, 우리 딸.”
혜진의 엄마와 혜진은 아버지의 삶에서 언제나 부표가 되고 싶었다. 아버지의 삶의 구석에 자리잡고 있다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의 엄마와 그녀는 아버지의 품에서 언제나 표류했다. 아버지의 삶에 조금도 섞이지 못했던 것이다.
아버지가 유명 로펌의 변호사라는 것이 혜진은 조금도 자랑스럽지 않았다. 그녀의 아버지는 정의보다는 이익이 최우선인 사람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항상 강자의 옆에 서 있었다. 부실공사로 인부들과 구조 작업을 진행하던 소방대원이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 부실공사의 뒤에는 검은 돈이 있었다. 사고가 일어나고 일주일이 되던 날에 뉴스에 그녀의 아버지가 나왔다.
“한세건설의 설계에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명됐습니다. 이번 사건의 책임은 시공사에 있음을,”
“내 새끼 살려내!”
“한세그룹에서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소방관에 대한 후원을,”
“살인자!”
기업의 슈퍼맨이었던 그녀의 아버지는 기업의 잘못이 조금도 없다는 것을 누차 강조했다. 혜진은 자신의 아버지가 미웠다. 아버지가 너무도 부끄러워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의 마음을 읽었다는 것처럼 그녀가 중학교에 올라가기도 전에 그녀의 아버지는 엄마와 이혼을 했다. 그녀에게 언제나 멀게만 느껴졌던 아버지는 그녀에게 영원히 아버지로 남았다.
부녀의 이별 여행은 조금도 특별한 것이 없었다. 모래사장에 앉았던 그녀의 아버지가 일어났다. 양복에 묻은 모래가 우수수 떨어졌다. 모래를 따라 혜진의 마음도 울고 있는 것 같았다.
“이제 가자.”
“네.”
“어머니 잘 돌봐드리고.”
“네.”
그녀의 아버지는 양육권을 모두 포기하고, 새로운 사람과 결혼을 했다. 상대는 재력가의 딸이라고 했다.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의 엄마 통장으로 보내는 돈은 자신이 잘 살고 있다는 징표와도 같았다. 그녀의 아버지는 지방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는데 혜진과 혜진의 어머니는 구태여 개표 방송의 당선 여부를 확인하지는 않았다. 이미 두 사람에게 그녀의 아버지는 죽은 존재와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혜진이 고등학교에 올라오면서 그녀의 어머니도 새 가장을 꾸렸다. 참 좋은 아저씨였다.
“자취하고 싶어.”
“같이 서울 올라가자.”
“됐어. 혼자가도 충분히 잘 살 수 있어. 나 이제 어른이라니까.”
대학교에 올라오면서 혜진은 자취를 결정했다. 엄마와 아저씨의 격렬한 고집에도 그녀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녀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그녀의 어머니도 아저씨와 알콩달콩, 자신의 눈치는 보지 않고, 행복하게 지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침묵 속에 살았던 발랄한 엄마의 모습을 아저씨가 찾아주기를 바랐다.
혜진이 서울로 올라오는 집을 떠나는 날이었다. 혜진은 아저씨의 차에서 아버지와 함께 갔던 그 바다가 생각났다. 아버지에게 자신의 마음을 모두 내뱉었다면 아버지 생각은 조금도 나지 않았을 것이었다.
‘아빠가 미워요.’
초등학생인 혜진이 아버지에게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
혜진이 한국이나 홍콩에서 계속 박준우 생각이 났던 이유도 결국에는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모두 내뱉었어야 했었다. 하지만 기회는 사라졌고 이제는 무조건 기운을 낼 수 밖에 없었다. 스스로 이기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혜진은 개강 전까지 여러 일을 처리했다. 수강 신청도 하고 영어 학원에 등록하기도 했다. 중국어도 배우면 좋을 것 같아 인터넷 강의도 신청했다. 심심할 때는 팝콘과 맥주를 사서 노트북으로 영화를 봤다. 침대에 누워 팝콘을 먹었다. 덜 튀겨진 팝콘이 이불 위로 떨어졌다. 혜진은 아무렇지 않게 이불을 털고 그 자리에서 잠을 잤다.
개강과 동시에 여유는 끝났다. 오리엔테이션 시간에 각 강의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발표에 쪽지 시험에 토론까지 있었다. 만만찮은 학기가 될 것 같았다. 숨가쁘게 달려왔던 한 주가 끝나고 있었다. 글로벌 경영을 끝으로 행복한 주말을 꿈꾸던 혜진은 순간적으로 멈칫 했다. 글로벌 경영 수업에 그녀보다 한 학번 위인 경미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모른 척 할 수 없을 정도로 정확히 눈이 마주쳤다. 망했다.
“안녕하세요.”
“어맛! 넬쓰네. 완전 반갑다. 이 수업 혼자 듣는 줄 알았는데. 여기 앉아.”
“네.”
“첫 수업부터 넬쓰라니. 인연은 인연이네.”
경미의 옆은 가시방석이었다. 뼈가 있는 농담을 던지던 경미의 말은 교수님이 들어오시자, 단칼에 끊어졌다.
경미는 아직도 혜진을 넬쓰라고 불렀다. 넬쓰는 샤넬 쓰레기의 줄임말이었다. 혜진을 지독히 괴롭히는 이 별명의 시작은 그녀의 생애 첫 신입생 엠티 때부터 시작됐다. 경미는 진짜 샤넬 가방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고품질의 샤넬 가짜 가방을 구입했다. 가짜 가방임을 알면서도 그녀의 동기들은 경미의 가방 칭찬에 열을 올렸다. 칭찬으로 끝났으면 그녀는 넬쓰라는 별명을 얻지 않았을 것이었다.
“샤네엘!”
“야! 최혜진!”
“선배님, 진짜 샤넬 드릴게요. 짜아란!”
거나하게 술이 취한 밤이었다. 혜진은 매직을 들고 경미의 가방에 삐뚤빼뚤하게 샤넬 마크를 그렸다. 마크의 완성과 동시에 혜진은 잠이 들었다. 혜진이 전혀 생각나지 않는 일이었지만 증거가 있으니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경미에게 똑같은 제품을 사주기도 하고 계속해서 사과를 했지만 혜진은 그 날 이후, 경미에게 영원한 넬쓰가 됐다.
교수님의 말보다 경미의 눈치를 더 살피고 있을 때였다. 강의실 뒷문이 열렸다.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보던 혜진의 입이 떡 벌어졌다. 십팔색 크레파스! 분명히 십팔색 크레파스였다. 혜진은 눈을 껌뻑거렸다. 십팔색 크레파스는 법학과였다. 복수전공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도 없었다. 경영학과 전문 수업에는 웬일이람.
“안녕하세요.”
힐끔 뒤를 돌아보던 혜진과 십팔색 크레파스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가볍게 인사를 했다. 십팔색 크레파스도 살짝 목을 숙여 인사를 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여러모로 신기한 인연이라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길게 하면 싫어하겠죠? 오늘은 이만 할게요. 다음에 책 준비해서 오세요.”
수업이 끝났다. 주섬주섬 가방을 챙겼다. 개강 총회에 참가하라는 경미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리면서도 혜진은 십팔색 크레파스의 동태를 살피느라 정신이 없었다. 십팔색 크레파스가 강의실을 나섰다.
“급한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보겠습니다! 안녕히계세요.”
“저게, 저게, 저거 진짜 넬쓰야.”
혜진은 경미에게 인사를 하고 그의 뒤를 따랐다. 이정도의 인연이라면 연인은 아니더라도 정말이지 좋은 친구는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부리나케 십팔색 크레파스를 쫓았지만, 술을 마셨던 그날처럼 십팔색 크레파스는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정말 순식간이었다.
다음 수업에 만나지 뭐. 혜진은 다음을 기약하면서 발걸음을 돌렸다.
다음을 기약하던 혜진의 혼자만의 약속은 생각보다 빠르게 실현됐다. 저녁 여섯 시. 가히 공포의 시간에 십팔색 크레파스가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개강 총회가 있는 날이었다. 혜진은 생리통에 학원 수업까지 온갖 핑계를 댔지만, 결국 경미에게 뒷덜미를 잡혀 개강 총회가 있는 강의실에 도착했다. 그녀는 유리와 함께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집에 가고 싶다.”
“마찬가지.”
“고학번이 여기 있으면 눈치도 없는 거라니까.”
“이하동문.”
두 사람은 사람으로 북적거리는 강의실에서 집에 가고 싶다고 궁싯거렸다. 소리 없는 아우성이었다. 과 회장의 주도 아래 여러 사안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신입생이나 고학번이나 일심동체로 하품을 해댔다. 회장의 목소리가 모두에게 달콤한 자장가처럼 들렸다. 짤막한 회의를 끝내고, 뒤풀이 장소로 이동했다. 뒤풀이 장소는 이번에도 검은집이었다. 술과 함께 안주들이 올라왔다. 혜진은 옆에 앉은 신입생과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면서 파전을 날름 집어 먹었다.
“그 훈남은 언제 온대?”
“뒤풀이는 온다고 하던데.”
“그런데 걔 LBS에서 여기로 왔다는데. 뻥이지?”
“진짜래. 미쳤거나 미쳤거나 아니다. 그냥 미친겨.”
혜진은 선배들이 나누는 이야기에 귀가 쫑긋했다. LBS는 영국에서 유명한 대학이었다. 경영에서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학교이기도 했다. 혜진은 LBS를 포기한 신입생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자신의 대학과 LBS 중에 선택을 하라고 한다면 LBS를 선택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취업 불황의 시대에 한국행이라니.
혜진은 사이코 신입생의 소문에 대한 진실은 알 수 없었지만 둘 중에 하나는 분명한 것 같았다. LBS를 다니지 않았거나 정말 미친놈이거나.
“근데 겉모습은 멀쩡하던데.”
“여자친구는 있대?”
“있다던데. 연극영화과래.”
“훈남 잡나 했더니. 아옷!”
“훈남도 눈은 있다.”
“죽을래.”
사이코 신입생은 한국에 돌아와 수능 준비를 했다고 했다. 그가 구태여 혜진의 학교에 온 것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그녀의 학교에 존경하는 인물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여자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아마 진실은 사이코 신입생만이 알 것이었다.
“신입들도 들어왔는데 내가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해줘야지. 여기 앞에 앉은 선배는 넬쓰야. 왜 넬쓰가 됐냐면.”
술자리의 안주처럼 등장하던 경미의 말이 멈췄다.
“훈남 왔다.”
“LBS 떴다.”
LBS가 떴기 때문이었다.
술잔을 들고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사이코 신입생에게로 향했다. 혜진도 목을 빼고, LBS를 구경하기에 바빴다. 경미의 말을 멈추게 만들어준 기막힌 타이밍이 고맙기도 하고. 쫄깃한 모래주머니를 씹으면서 뒤를 도는 순간이었다. 혜진의 입에 있던 모래주머니가 테이블에 툭 떨어졌다.
“환영인가. 환영이겠지. 전과했나. 그럼 신입생은?”
십팔색 크레파스였다. 정신을 다잡기 위해 고개를 흔들어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모두가 반기는 사이코 신입생이 십팔색 크레파스라는 사실은 절대로 변하지 않았다. 십팔색 크레파스와 혜진의 눈이 마주쳤다. 그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검은집에 있던 테이블에서는 때 아닌 경쟁이 벌어졌다. 모두 십팔색 크레파스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었다. 십팔색 크레파스는 작은 고민도 없이 혜진의 테이블을 선택했다.
혜진은 재빠르게 십팔색 크레파스의 얼굴을 살폈다. 십팔색 크레파스의 도플갱어인가. 십팔색 크레파스의 동생일 수도 있었다. 그것이 십팔색 크레파스가 LBS 출신의 신입생이라는 것보다는 더 설득력이 있을 것 같았다. 혜진은 그가 십팔색 크레파스와 다른 점을 찾으려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그는 십팔색 크레파스가 분명했다.
“오랜만에 뵙네요.”
“아…… 안녕하세요.”
허리를 굽혀 그에게 인사했다. 선배의 체면은 없었다. 유리가 팔꿈치로 옆구리를 찔렀다.
“아는 사이야?”
“김원종.”
“아직도 그 오빠 생각나냐.”
“그게 아니라,”
십팔색 크레파스가 자연스럽게 혜진의 옆에 앉았다. 십팔색 크레파스를 위해 자신의 옆자리를 준비했던 경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제 2차 넬쓰 사태 발발 직전이었다.
“새 신입생도 왔는데 자기소개 어때요. 간단하게 하면 좋을 것 같은데. 언니, 괜찮죠?”
“그래. LBS의 소개는 남다르겠지. LBS니까.”
고려에 전쟁을 막았던 서희가 있었다면 경영학과에는 유리가 있었다. 유리가 화제를 옮기면서 제 2차 넬쓰 사태는 평화롭게 마무리됐다. 경미는 술을 마시면서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했다. 경미는 학번을 유난히 강조했는데 아마 그것은 십팔색 크레파스에게 날리는 일종의 경고였다. 고학번이니 내 심기는 건드리지 말라는 정도의. 자기소개는 끝도 없이 이어지다가 십팔색 크레파스에게 도착했다.
“조윤입니다.”
개명이라도 했나.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김원종이라 불리던 그는 자신이 조윤이라고 했다. 이름을 끝으로 그는 자기소개를 끝냈다. 경미의 눈이 번뜩였다. 사냥감을 발견한 야심 가득한 사냥꾼의 눈빛이었다.
“나이는?”
“스물 셋입니다.”
“LBS 나왔다는데 사실이야?”
“예.”
“거기는 왜 나왔어? 사고라도 쳐서 쫓겨난 건가. 솔직히 여기 있는 사람들 LBS 보내준다면 갈 거잖아. 안 그래?”
경미의 말에 일순간 주변이 고요해졌다. 경미의 말이 틀렸던 것은 아니었다. LBS에 보내준다고 하면 누구든 그곳으로 갈 것이었다.
하지만 십팔색 크레파스의 선택이 잘못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누구든 자신의 기준에 따른 선택이 있고 그 선택을 존중 받을 필요가 있었다. 세상에 틀린 것은 없었다. 그냥 생각이 다른 사람만 있을 뿐이지. 혜진은 십팔색 크레파스의 얼굴을 힐끔 쳐다봤다. 조윤은 경미의 말에도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특별한 이유 없습니다.”
담담히 말하던 조윤이 혜진을 봤다.
“선택 할 순간이 와서 선택한 것뿐이죠.”
경미를 보는 조윤의 눈빛에는 형언할 수 없는 신념이 담겨 있었다. 경미는 조윤의 기에 눌러 괜스레 시선을 돌렸다.
“넬쓰 보니까 취할 것 같다. 자리나 옮겨볼까. 오징어 땅콩 있는 쪽으로. 어디 있나. 맛있는 오징어 땅콩.”
경미는 후배들 앞에서는 자존심을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한껏 취한 연기를 선보이면서 자리를 옮겼다. 혜진은 경미가 없는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넬쓰이니 뭐니 하는 별명에 얽힌 이야기를 다시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십팔색 크레파스를 힐끔 쳐다봤다. 그에게 묻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사람들의 시선에 혜진은 연거푸 술만 들이켰다.
김원종이 아니라 조윤이랬다. 법학과가 아니라 경영학과란다. 게다가 오빠가 아니라 동갑이란다. 오빠라고 불렀는데.
개나리반 조카의 십팔색 크레파스.
나쁜쉐이.
***
술자리는 끝에 다다랐다. 거나하게 술이 취한 혜진은 테이블에 엎드려 조윤을 봤다. 십팔색 크레파스. 영원한 십팔색 크레파스로 남아 있을 것 같았던 남자가 후배였다니. 다시 곱씹어도 도무지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조윤은 아주 덤덤한 얼굴로 혜진을 봤다. 혜진의 시선을 피하거나 당황하지도 않았다. 조윤의 눈동자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눈빛이었다. 그 모든 것을 알려주어도 상관 없다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다 알려주고 싶은 조급함마저 느껴졌다.
태연한 조윤의 태도에 혜진은 그를 붙잡고 따지고 싶었다. 너는 누구냐. 소개팅에 나왔던 사람이 진짜인지. 소문만 무성한 조윤이라는 사람이 진짜인지. 궁금하고도 분했다. 하지만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는 사람들 때문에 그녀는 애꿎은 술만 연거푸 들이켰다.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질문들이 많아질수록 초점이 흐릿해졌다. 혜진은 일단 자고 싶어졌다. 연거푸 하품이 나왔다. 모든 것이 귀찮아지더니 집이 아니라 그냥 술자리에서 자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술집이 순식간에 집으로 변하면 얼마나 좋을까 싶기도 했다.
“임유리.”
“왜.”
“너도 알고 있었지. 십팔색 크레파스 다 알고 있었지.”
“술 취했냐. 무슨 소리야. 그만 마시고 일어나. 완전 취했네.”
혜진은 자신이 트루먼 쇼의 최트루먼이 된 것 같았다. 쇼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모든 것이 이질적이게 느껴졌다. 쓸데 없는 공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길어졌다. 조윤을 바라보던 혜진의 눈이 계속 무거워졌다.
“일단 졸리니까 한숨 자구.”
“집에 가서 자.”
“그럼 너는 왜 눕냐.”
“나도 한숨 자고 가게.”
유리와 얼굴을 맞대고 비실비실 웃던 혜진의 눈이 감겼다. 졸음에 완패한 것이었다. 순식간에 몰려온 어둠 속에서 혜진은 어렴풋이 아버지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어둠에서 보이는 그녀의 아버지는 지쳐있었다. 혜진은 아마 종일 카메라에 시달렸던 그녀의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온 날이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 일을 골치아픈 사건이라고 불렀다.
“일은 어떻게 됐어요?”
“보면 몰라?”
“그럼 그 사람들은……,”
인부와 소방대원이 건물에 매몰된 사건으로 대한민국은 들썩거렸다.
“적당히 보상해주고 끝내야지.”
그녀의 아버지는 최선을 다해 기업을 변호했다. 모든 것을 시공사의 책임으로 돌렸다. 검찰은 사건을 수습하기 위해 기업과 시공사를 뒤엎었다. 사람이 매몰된 사건은 그룹 비자금 문제로 번졌다. 3개월. 그녀의 아버지와 기업과 국가가 분주하게 움직였던 시간이었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사건의 논지는 흐릿해졌다. 잿빛으로 변한 흙탕물에 피해자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한세그룹 숨진 소방관들을 위해 5억 기부’
‘한세그룹, 소방관 안전장비 구입에 힘써’
‘특별한 기부, 한세그룹 5억 쾌척 화제’
한세그룹 언론홍보팀에서 나온 기사가 삽시간에 대한민국 신문과 인터넷을 뒤덮었다. 시간은 그녀의 아버지를 능력있는 변호사로 변모시켰다. 사건의 중심부에 있던 기업도 다시 건실한 회사로 돌아왔다.
“저녁은요?”
“피곤해.”
혜진의 아버지는 패소했다. 하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꽤 괜찮은 패소였다. 사건의 크기에 작은 타격을 입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과실을 시공사에 돌리면서 큰 타격을 면했기 때문이었다. 숨진 사람들에게 적당한 금액을 보상하는 것으로 일을 끝낸 것으로도 그들은 성공적이라고 숨을 돌리기에 바빴다.
“그래도 밥 한술이라도,”
“됐어. 조용히 있고 싶으니까 그렇게 알아.”
그녀의 아버지의 말은 일종의 명령이었다. 숨을 죽이라고 하면 숨을 죽여야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서재로 들어갔다. 거실에 서 있던 혜진은 멍하니 뉴스를 봤다. 숨진 사람들의 가족들은 시위를 멈추지 않았다. 계란으로 바위를 깰 수는 없어도 그들은 싸웠다. 분명 침묵으로 가득한 시위였는데 혜진은 사람들이 절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누군가의 아버지이자 아들이었던, 누군가의 남편이지 친구였던 사람들의 죽음이 값으로 매겨진 그 날부터 그녀의 아버지는 완벽하게 달라졌다. 혜진의 아버지는 커다란 식탁에 앉아 혼자 밥을 먹었고, 불필요한 대화는 하지 않았다. 식사가 끝나면 그녀의 아버지는 곧장 서재로 돌아갔다. 혜진은 그녀의 아버지가 사람들의 절규를 듣지 않기 위해 서재로 들어간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아빠가 피곤하시대. 우리 나가서 외식할까. 엄마가 피자 사줄게.”
혜진의 집에서는 정숙이 필수였다. 그녀는 언제나 굳게 닫힌 아버지의 서재 앞에 서 있었다. 인부와 소방대원이 죽은 날도, 첫 재판이 끝난 나로, 패소한 날도, 유능한 변호사로 소문이 난 날도 아버지는 아마 서재에 묻혀 책을 보았을 거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밖에 있는 사람들의 울음과 절규를 듣지 않기 위해 아주 담담하게 책을 보고 있었을 것이라고.
혜진은 아버지가 사람이라고.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일어나죠.”
굳게 닫힌 방문을 보고 있던 혜진의 귓가에 조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혜진은 꿈결에 들리는 환청이라고 생각했다. 그 목소리가 그녀의 아버지 서재를 쾅쾅, 두드리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었다.
“넬쓰. 이거 완전 갔네.”
경미가 혜진을 보면서 고개를 내저었다. 샤넬 쓰레기를 외치고 다니는 경미의 목소리에 혜진이 힘겹게 눈을 떴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사람은 조윤이었다. 조윤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혜진은 괜스레 멀쩡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방긋 웃음을 지어보였다. 참으로 맹구같은 웃음이었다.
“술 취해서 난리네. 넬쓰. 집에 가야지. 여기 집 아니다.”
“옙. 선배니임.”
“뭐래. LBS 잠깐 넬쓰 좀 부탁한다. 얏! 거기서 토하냐. 돌아이들. 곱게 먹어라. 곱게!”
경미가 다른 후배를 챙기러 사라지는 순간에도 혜진은 테이블에 누워 눈만 꿈뻑거렸다.
“거짓말쟁이.”
“괜찮으면 일어나죠. 데려다줄게요.”
“오빠도 아니면서 거짓말했어.”
“거짓말쟁이라도 기억에 단단히 박힌 것 같으니 다행이네.”
“웃기고 있네. 박히기는 누가 박혔다구.”
혜진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웃음기가 사라졌다. 지킬 앤 하이드만큼이나 변화무쌍한 얼굴이었다. 혜진의 눈이 다시금 감겼다. 조윤은 그녀를 깨우지 않은 채로 가만히 그녀의 얼굴을 봤다. 얼마나 기다렸던 사람이었나. 얼마나 보고 싶던 사람이었나. 조윤의 손가락이 움찔거렸다. 단번에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의 머리칼을 쓸어주고 싶었다. 조윤의 손이 단번에 테이블 위로 올라왔다. 그녀의 머리칼로 향하던 손은 그녀의 꿈틀거림에 멈칫했다.
“미치겠네.”
조윤이 손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의 입술 사이로 한숨이 새나왔다. 급하게 다가서지 말자고 다짐했었다. 오랜 시간이 만든 간극을 아주 조금씩 채워나가자고 생각했지만 혜진을 보면서 마음을 제어하기가 쉽지 않았다. 모두 제멋대로였다. 마음부터 손가락 하나까지. 엉망진창이다. 참는 것에는 이골이 날 정도로 익숙해졌는데. 그녀 앞에서는 인내라는 단어가 낯설게 느껴졌다.
“유권 선배. 넬쓰하고 같은 방향이죠? 선배 가는 길에 넬쓰 집에 좀 데려다줘요.”
“나 안 돼.”
“왜요.”
“난 임자가 있어.”
경미는 유권을 붙잡고 혜진을 부탁하고 있었다. 거절을 하고 있는 유권은 당혹스러웠다. 이미 데면데면한 상대로 변해버린 혜진을 집에 바래다주는 것은 애당초 말이 안되는 일이었다. 유권은 복학을 하고나서 지속적으로 혜진에게 호감을 표했다. 엠티에서 유권이 혜진에게 고백하지 않았다면 두 사람은 아직도 좋은 사이로 남아있을 것이었다.
“여친이 알면 죽어.”
“그냥 가는 길에 데려다만 주는 건데요. 언제는 넬쓰 데려다준다고 우기더니.”
“그건 옛날이고.”
“그럼 혼자 보내요? 야심한 시각에. 요즘 이상한 사건도 많은데.”
유권은 혜진에게 예전과 같은 관계로 돌아가는 것은 무리일 것 같다고 선을 그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행동 할 자신도 없다고 했다. 그래도 고백을 거절하겠냐고 유권은 마지막으로 혜진에게 물었다. 혜진은 무조건 알겠다고 했다. 결국 친해보이지만 친하지 않은 어정쩡한 선후배 사이가 되기로 두 사람은 협상을 본 것이었다.
그 날 이후에 두 사람은 마주치는 일이 없었다. 듣는 수업이 달랐고 무엇보다 유권이 혜진을 피했다. 혜진이 박준우와 사귀게 되면서 두 사람은 완전하게 모르는 사이처럼 지냈다. 유권이 소개팅으로 몇 명의 여자를 사귀기는 했지만 오래 사귀지는 못했다. 가끔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난 이후에는 구질구질하게 혜진에게 문자를 보내는 날도 있었다.
-자니?
유권의 입장에서는 죽고 싶을 정도의 흑역사였다. 답장을 고심하던 혜진은 유리에게 연애상담을 신청했다. 유리는 마음이 없는 남자에게 조금의 틈새도 보여주지 않는 것이 예의라고 딱 잘라 말했다.
-밤에 연락하기가 곤란해서. 앞으로는 밤에 연락은 안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안녕히주무세요.
마지막 문자를 끝으로 유권은 술에 취해도 더는 혜진에게 문자를 보내지 않았다. 유권은 혜진의 문자를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사람을 만났다. 사랑 가득한 멘트로 카카오톡과 핸드폰 배경 화면을 물들였다. 아무리 연애곡선이 최고점을 향해 가고 있다고 해도 유권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흑역사를 알고 있는 혜진을 멀리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아 몰라! 왜 나한테만 그래.”
“넬쓰랑 방향이 같으니까 부탁하죠.”
“여자 보기를 돌같이 하라고 내 여친이 그랬다. 꺼졋!”
“신입생한테 아까 되게 적극적이셨으면서.”
“어헛! 무슨 소리. 이 순정남에게.”
결국 경미는 타깃 설정에 실패한 것이었다. 유권은 단호하게 거절하면서 경미에게 등을 돌렸다.
“꺼졋! 선배의 어깨는 건드리는 것이 아니다.”
“그럼 넬쓰,”
잠자코 경미의 말을 듣고 있던 조윤이 움직였다.
“제가 데려다주겠습니다.”
“넬쓰하고 같은 동네 아니잖아.”
“돌아가는 셈 치죠.”
혜진을 바래다주겠다는 조윤의 솔선수범에 등을 돌렸던 유권이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첫댓글 빠름쟁이.. 부럽다 새연재 흡 우리 윤뎡 화이팅♡
다음화가 필요해요~
작가님은 진짜....♡꿀잼이에요♡
오...혜진이의 짝은 강민인줄 알았는데... 조윤..! 커피 거절하고 갈 땐 안좋게 봤는데 매력있당 ㅎㅎ 숨겨진 이야기가 있나봐요^~^
저도요. 1편만보고 강민인줄 알았는데 조윤이 치고나올줄은....ㅎㅎ 잘보고갑니다~
오오--!
조윤 너무 멋있어요 ㅎㅎㅎ 재밌습니당
뭐지신기하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6.06.05 03:34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6.06.05 09:23
오오! 저도 다른분들처럼 강민이인줄 알았는데 윤이였군요!!
어쩜 이름도 외자라서 멋있네요.. 조윤 흐헤헤헿ㅎㅎ
도대체 과거에 혜진이랑 어떻게 알던 사이였는지 너무 궁금해요! 계속 정주행합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