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全裸)의 두 여인
웅묘아가 한팔로 그를 잡아끌면서 말했다.
그것이 예술품이라도 좋고 장난질이라도 좋소. 나는 상관하지 않소이다.
다만 나는 왕 형이 이 두분 아가씨의 본래의 얼굴을 찾아주기를
바랄뿐이오. 왕형께서는 할 건지 안 할 건지 대답이나 하시오!
왕련화가 씁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웅 형과 같은 들고양이를 만난 이상 아무리 뛰어난 예술품이라도 아낄
수가 있겠소? 그렇다면 먼저 내 손을 놔 줘야 어떻게 해볼 게 아니겠소?
웅묘아가 웃으며 그의 손을 놓아주며 말했다.
그리고 또 이 두 분 아가씨는 이미 미약을 복용당하여 말도 할 수 없고
기력이 조금도 없소. 왕 형께서는 의술이 고명하다고 스스로 직접 말하고
있으니, 틀림없이 그녀들을 구할 수 있는 방법도 있겠지요.
왕련화가 신중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것도...... 그것도 한 번 시도해 보겠소. 그렇지만 내가 이렇게 애를
쓰는데 당신들도 한가히 있을 수는 없을 것이오. 내가 만약 당신들이 나를
도와주라고 말했을 때, 당신들은 절대 그것을 거절해서는 안 될 것이오.
이 말을 할때 그의 눈빛은 의식적인지 무의식적인지 심랑을 힐끗
바라봤다.
심랑이 웃으면서 말했다.
제가 힘을 쓸 곳이 있다면 형씨께서 분부만 하신다면 그대로 할 것이오.
왕련화가 얼굴을 활짝 펴고 웃으면서 말했다.
좋소이다! 한마디로 그렇게 하도록 합시다!
이번에는 그의 눈빛이 구양희에게 향해졌다.
구양희가 실소하면서 말했다.
왕 형께서는 나도 놓아주지 못하겠다는 거죠? 복이 되든 화가 되든 왕
대공자께서는 분부만 하시오. 내가 따르리다.
왕련화가 웃으면서 말했다.
좋소. 구양 형께서는 잘 들으시오. 검은 식초 일등품 네 병, 여러해 묵은
술 일등품 네 병, 깨끗한 소금 열 근, 일등품 마포 네 필.......
구양희가 말했다.
왕 형, 당신은...... 당신은 잡화점을 여실 생각이오?
왕련화는 그 말에는 대답을 않고 계속 말했다.
그리고 동으로 만든 새 대야 둘, 이것은 특대호라야 하오. 그리고 새
가위 둘, 작은 칼 두 자루, 또 화로 네 개, 동주전자 네 개, 이것도 모두
특대호라야 하오. 그리고 화력이 가장 강한 석탄 이백근, 그리고 또 빨리
구양 형께서는 집안의 여종들을 불러서 반 시간내에 깨끗하고 가장
일등품인 흰 마포로 나와 심 상공이 입을 두 벌의 장포를 준비해 주시오.
잘 만들 필요는 없으나 반드시 깨끗해야 하오.
사람들은 그의 이러한 잡다한 물건들을 요구하는 것을 보고 모두
멍청해졌다.
웅묘아가 웃으며 말했다.
왕 형이 요구하는 이 물건들을 보니 잡화점을 열려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애를 받으려는 산파가 되려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얼핏 보면 인육(人肉)을
파는 상점 주인으로서 이 아가씨들을 삶아서 먹으려는 것 같기도 하구려?
구양희도 웃으며 말했다.
그렇지만 그의 요구는 나를 괴롭히는 게 아니겠소? 반 시간 내에 이러한
잡다한 물건들을 준비하도록 하라니 말이오? 나를 죽으라는 것과 같지요!
그는 입으로는 비록 이렇게 말을 하고 있었으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
떠올라 있었다. 왕련화가 이처럼 잡다하고도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하는
물건들을 요구하는 이상 틀림없이 그가 사람들을 놀라게 할 만한 기술을
보이려는 것이다.
소위 말하는 역용술이란 것은 비록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었으나,
대부분의 경우는 다른 사람에게 얻어들은 것에 불과하고 직접 본 적은
드문 것이었다.
구양희도 강호에 오랫동안 돌아다녔으나, 오늘에 이르러서야 직접 이
역용술의 기묘한 기술을 보게 된다는 생각에 그의 얼굴에는 웃음이
떠올랐던 것이다.
말을 마친 그는 총총히 왕련화가 요구하는 물건들을 준비하기 위해서
그곳을 떠났다.
반 시간도 채 못 되서 구양희는 왕련화가 요구하는 모든 물건들을 준비해
보내왔다. 화롯불은 이미 활활 타오르고 있었고 동주전자에 가득 채워진
물도 이미 끓을 기세였다.
왕련화는 흰 마포로 만든 장포 한 벌을 집어들고 심랑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수고스럽지만, 심 형께서는 이 장포를 입으시고 제 조수가 되어 줄 수
있겠소?
분부대로 하겠소이다.
웅묘아가 더이상 참지 못하고 물었다.
나는? 나는 뭘 해야지?
웅 형께서는 빨리 나가주시오. 밖에서 얌전히 기다리기만 하면 되오.
웅묘아가 멍청한 듯 우물쭈물 말했다.
나가라고? 여기서 보면 안 된단 말이오?
구양희가 웃으면서 끼어 들었다.
웅 형께선 왕 형이 나가라고 했으니 빨리 나가기나 하시죠.
우리들은.......
왕련화가 말했다.
구양 형께서도 나가 주시오.
구양희도 멍청한 듯 말했다.
나...... 나도 보면 안 된단다는 거요?
왕련화가 정색을 하고 말했다.
제가 시술을 할때는 반드시 마음이 안정되어야 합니다. 어떠한 사람도
소란스럽게 해서는 안 되죠. 만약 소재가 약간의 실수를 하게 될 경우에,
그래서 만일 이 두 아가씨의 얼굴에 약간의 흠집이라도 남기게 될 때에는
비록 신선이 나타난다 해도 원상을 복구시키지는 못하게 될 겁니다.
그래서 당신들 두 사람은 나가야 될 뿐 아니라 심지어 이분 김 대협께서도
잠시 이 자리를 피해주셨으면 합니다.
구양희와 웅묘아는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얼굴 가득 실망한 기색을
떠올렸다. 그러나 김무망은 차갑게 '흥' 하고 코웃음을 치면서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가버렸다. 구양희와 웅묘아는 더이상 시간을 끌어봤자 별 도리가
없음을 알고 풀이 죽은 기색으로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그들이 나간 후 왕련화는 문을 꼭 닫아 걸고 사방에 걸려있던 주렴을 모두
내렸다. 주렴이 내려지자 그 밀실은 캄캄해 졌으며 갑자기 일종의 신비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활활 타고 있는 화롯불은 이러한 신비한 기색을 더욱 농후하게 만들었다.
심랑은 조용히 서서 그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화로에 올려진 물은
끓어서 수증기가 뿜어져 나왔으며, 일진의 '식식' 하는 소리를 뿜어내고
있었다.
왕련화가 갑자기 몸을 돌려 심랑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제가 그분들을 잠시 피해달라고 한 것은 역용술의 비밀을 그들이 알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점, 심 형께서는 이미 알아차리셨겠죠?
심랑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소이다!
왕련화가 신중한 음성으로 말했다.
구양희와 웅묘아는 이 소재가 여러 해 동안 사귄 친구인데, 형씨와
소재는 오늘 처음으로 만났소이다. 제가 역용술의 비밀을 그 두 사람이
알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그들을 나가라고 하면서도 형씨에게 도와달라고
했던 것은 까닭이 있기 때문입니다. 형씨께서는 뛰어난 지혜를 갖추신
분이니 지금 틀림없이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계시겠지요?
심랑이 가볍게 웃으면서 말했다.
본인은 왕 형의 가르침을 받고 싶소이다.
왕련화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 까닭은 저와 형씨는 비록 처음 만났지만, 형씨의 풍채는 이 소재가
평생 동안 보지 못한 그러한 것으로서 소재로 하여금 탄복하지 않을 수
없게 하였기 때문이외다.
지나친 과찬이시오. 사실, 본인도 평생 동안 많은 사람을 만나 보았으나,
호강한 기개로 말할 것 같으면 웅 형 같은 사람을 따를 사람이 없었고,
만약 학식이나 재주 혹은 지혜로 말한다면 이 천하에 왕 형을 따를 사람이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하오이다.
그가 잠깐 말을 멈추더니 눈빛이 번쩍 하며 이어서 말했다.
이 이외에도 형씨께서는 다른 까닭이 있을 것 같은데, 본인에게.......
왕련화는 심랑이 말을 다 마치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가로채서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소. 제게는 확실히 다른 까닭이 있습니다. 그래서 형씨에게 조금 더
접근해 보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 까닭이라는 것이 틀림없이 아주 재미있을 것 같소이다만?
확실히 아주 재미있는 겁니다.
그렇게 재미있는 것이라면, 형씨께서 말씀을 해 주실 수 있을는지요?
왕련화는 그 말에는 대답을 하지 않고 한참을 생각에 잠겨 있더니 이어서
말했다.
방금 구양희가 형씨를 저에게 소개시킬 때 형씨의 성함을 말하지 않은 것
같은데, 그렇죠?
구양 형은 틀림없이 소재의 이름을 잘 듣지 못했거나 혹은 잘 들었다
해도 곧 잊어버렸기 때문이겠죠. 이러한 것은 이미 많은 사람을 만나는
구양 형 같은 사람으로서는 당연한 일이 아니겠소?
그렇지만 소재는 형씨의 성함을 추측할 수 있을 것 같소이다.
형씨에게 그러한 재주가 있다는 거요?
형씨의 대명은 심랑이 아니신가요?
심랑이 결국 얼굴에 깜짝 놀라는 기색을 드러내면서 말했다.
그렇소. 왕 형께서 바로 알아 맞추셨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왕
형께서는 어떻게 제 이름을 짐작할 수 있었던 거죠? 혹시 다른 사람이
이미 형씨에게 저에 대해서 말한 적이라도 있다는 겁니까?
두 사람이 말을 주고받는 순간, 그 곁에서 이 말을 듣고 있던 주칠칠은
놀랍고 부끄럽고 기쁨에 들떠 있었다. 그녀는 왕련화가 심랑의 이름을
말하기를 원치 않았으나 한편에서는 왕련화가 심랑의 이름을 말해줬으면
하고 바라고 있었다. 또 왕련화가 심랑에게 공격을 하기를 바라지
않았으나, 한편으로는 심랑이 한주먹으로 왕련화를 때려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녀는 더이상 참지 못하고 번쩍 눈을 떠서 왕련화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도대체 왕련화가 어떻게 심랑을 상대할 것인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할
것인가를 알고 싶었던 것이다.
왕련화가 웃으면서 말했다.
형씨께서 제가 어떻게 형씨의 대명을 알고 있는가를 모르신다면, 그
문제는...... 그문제는 후일 형씨께서 자연히 알게 되실 겁니다.
말을 마친 그는 몸을 돌려서 식초병을 열였다. 그는 더이상 심랑을
바라보지 않았으나 식초병을 들은 그의 손은 미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주칠칠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불어내었다. 그러나 그녀는 실망인지 혹은
다행스러움인지 모를 묘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이순간 그녀의 생각의
복잡함은 그녀 자신도 도대체 어찌된 영문인지를 모를 지경이었다.
왕련화는 동으로 된 주전자의 수증기 구멍을 백비비의 얼굴을 향하게
돌려놓았다.
그 일진의 뜨거운 수증기가 백비비의 얼굴로 쏘아 들어가자 백비비는 눈을
감을 수밖게 없었다.
약 차 한 잔 마실 만한 시간이 지나서 왕련화가 말했다.
심 형께서는 주전자 뚜껑을 열어 주시오.
심랑은 그때까지 조용히 왕련화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으나 왕련화의
이러한 말이 떨어지자 즉각 미소를 짓고 그가 시키는대로 손을 뻗어서
주전자 뚜껑을 움켜 쥐었다.
그 뜨겁기가 불덩이보다도 더 심한 청동 주전자의 뚜껑을 그는 손으로
움켜쥐면서도 전혀 개의치 아니하는 듯했다.
왕련화는 겉으로는 심랑의 그러한 모습을 보지 않는 듯했으나, 눈길을
옆으로 돌려 심랑이 청동 주전자 뚜껑을 움켜 쥐는 모습을 보고 얼굴에
약간의 변화가 나타났다.
그 변화는 놀라움인지 탄복인지 흠모인지, 아니면 질투인지 모를 그러한
변화였다. 아마도 이러한 네 가지의 심정이 약간씩 모두 섞여 있는 듯한
변화일지도 몰랐다.
왕련화는 식초를 동주전자 속으로 부어넣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서
주전자 수증기 구멍에서는 다시 뜨거운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으며, 그 수증기는 아주 강렬한 식초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이 강렬한 식초냄새는 백비비로 하여금 더욱 눈을 꼭 감게 만들었다.
이러한 상태로 밥 한끼 먹을 만한 시간이 흘러가자 백비비의 입가에
굳어있던 근육이 약간 풀어지는 듯하였으며, 그 입에서 침을 흘리기
시작했다.
왕련화는 식초병을 내려놓고 술병을 들더니 술을 다시 주전자에 쏟아
부었다. 시큼한 식초냄새는 술냄새로 변했다. 순식간에 백비비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방 안 가득 화롯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으며, 심랑과 왕련화의
이마에서는 이미 땀방울이 흘러 내리고 있었다. 왕련화는 다시 두개의
대야에 술과 식초와 맑은 물을 가득 부은 다음 말했다.
번거롭지만 심 형께서는 이 아가씨의 옷을 모두 벗겨내시고 아가씨를 이
대야 속으로 집어 넣으시오.
심랑이 당황한 듯 우물쭈물 말했다.
옷도...... 옷도 벗겨야 한단 말입니까?
그렇소이다! 지금 그녀의 전신의 털구멍이 모두 역용의 약물로 막혀 있는
상태라서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녀를 구할 수가 없습니다.
말을 하면서 그는 품속에서 세 개의 조그마한 나무로 만든 병들을 꺼냈다.
그는 그 병에서 약간의 가루들을 부어내더니 그 두 개의 동으로 만든
대야에 조금씩 부어놓고 웃으면서 말했다.
당당한 남자 대장부가 여인의 옷도 벗기지 못한단 말이오?
심랑은 고개를 돌려 백비비를 쳐다보았다.
백비비의 한쌍의 눈에서는 놀람인지 부끄러움인지 애걸인지 모를 기색을
띠고 있었다.
그는 가볍게 탄식하고 말했다.
상황이 그렇다니 아가씨를 구하기 위해서 본인도 어쩔 수가 없구려!
아가씨께서 용서하시기 바라오!
말을 마친 그는 천천히 손을 뻗어 백비비의 겨드랑이 아랫부분을 잔뜩
동여맨 끈을 풀기 시작했다.
한편, 웅묘아와 구양희는 방문 밖에서 쉬지않고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그들은 얼굴 가득 조급한 기색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들의 마음은 마치
부인이 애를 낳는 방 밖에서 자기의 부인이 낳는 첫 애가 도대체 어떤
애인지를 알고 싶어하는 애 아버지의 마음과 흡사했다.
김무망 역시 비록 꼼짝않고 앉아 있었으나 그의 눈빛도 이미 평정을 잃고
있었다. 방 안에서는 일진의 불이 활활 타는 소리, '칙칙'하는 물이 끓는
소리, 무엇인가를 대야에 쏟아붓는 소리, 칼소리, 가위소리, 그리고
목욕을 하는 소리, 이러한 소리들이 쉬지않고 들려왔다.
웅묘아가 갑자기 웃으면서 말했다.
이러한 소리들로 볼 때, 그 두 친구가 안에서 마치 소나 돼지를 잡고
있는 듯한 형상이군! 그 두 아가씨가 도대체 어떠한 상태에 있는지
모르겠소!
구양희가 씁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왕 형이 만약 나를 들어가서 보게만 해준다면 내가 그 친구에게 세 번 큰
절을 한다고 해도 달갑게 받아들일 텐데.......
웅묘아가 고개를 끄덕거리고 탄식하며 말했다.
누군 그런 마음이 아니겠소? 그렇지만 애석하게도.......
이때 갑자기 방 안에서 놀람에 찬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바로 심랑의
목소리였다.
김무망이 갑자기 몸을 벌떡 일으키더니 방 안으로 뚫고 들어가려고
하였으나, 웅묘아가 한 팔로 그를 잡았다.
김무망이 노한 소리로 부르짖었다.
왜 가로 막는거지?
웅묘아가 웃으면서 말했다.
형씨께서는 이렇게 긴장하실 필요가 있습니까? 심 형과 같은 인물이 무슨
큰 일이라도 당한단 말입니까? 김 형께서 만약 이렇게 뚫고 들어가신다면,
왕련화가 화가 나서 반쯤밖에 하지 않은 일을 더이상 하지 않을지도
모르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되죠? 그 두 아가씨는 평생 다른
사람을 똑바로 보지도 못하고 살아가게 되지 않을까요?
김무망이 신음소리를 발하며 한참을 그대로 있더니, '흥'하고 코웃음 치고
웅묘아의 손을 부리친 다음 큰 걸음걸이로 앉았던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김무망 그 자신도 심랑과 같은 인물은 절대 어떤 일을 당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이때, 방에서는 또 일진의 급박한 손이 부딪히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김무망의 얼굴색이 또 변하며 벌떡 몸을 일으켰다.
구양희도 눈썹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이건 무슨 소리죠?
웅묘아가 침중한 음성으로 말했다.
아마도 왕련화가 그 두 아가씨의 굳어진 몸을 풀기 위해서 등이라도
두드려주고 있는 것 같은데요.
구양희가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말했다.
그런 것 같군요! 그런 것 같군요!
김무망은 비록 말은 하지 않았으나, 아마 웅묘아의 생각을 받아들이는
듯하였다.
그러나 그가 다시 자리에 내려 앉는 순간, 그 방에서는 다시 놀람에 찬
부르짖음이 들려왔다.
이번의 부르짖음은 왕련화가 낸 것이었다.
구양희의 안색이 갑자기 변하며 방으로 뛰쳐 들어가려고 했다. 또
웅묘아가 이를 저지했다.
구양희는 방에서 왕련화의 놀람에 찬 부르짖음 소리를 듣고 중얼거렸다.
왕 형의 성격은 상당히 침착한 편인데, 지금 이렇게 놀란 부르짖음
소리를 내다니. 혹시, 혹시......?
웅묘아가 그 말을 가로채고 말했다.
혹시 어떻다는 거요? 왕련화는 마침 그 두 아가씨를 구하려고 손을 쓰고
있는데, 심 형이 이 기회를 틈타서 공격이라도 했다는 거요? 그 두 사람은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이라서 서로 원수진 일이 없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서로가 서로를 존경하는 듯한 기색까지 보였는데. 헤헤. 내가 생각하건대
구양 형께서는 그 소리를 핑계로 방으로 뛰쳐 들어가서 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 구경하고 싶으신 거겠죠?
구양희가 실소를 날리면서 말했다.
상당히 말재주가 좋은 고양이로군. 웅 형께서는 그 부르짖음이
이상하지도 않다는 거요?
웅묘아가 웃으면서 말했다.
아마 내가 생각하건대, 그 두 친구는 그 두 아가씨가 너무 예뻐서 깜짝
놀란 소리를 낸게 아닐까 하오. 특히 왕련화 그 친구는 우리가 모두 잘
알고 있는 색마이지 않소? 아마 이순간, 그 친구의 뼈마디가 전부
흐물흐물 하고 있겠죠?
구양희가 고개를 가로젓고 웃으면서 말했다.
그 여복은 그 두 친구들만 나눠 가질 수 있는건데, 웅 형! 당신은 뭐가
그리 안타까와서 얼굴색이 변하는 거요?
방문은 여전히 꼭 닫혀 있었으며, 비교적 크게 들리는 깜짝 놀라는
부르짖음 소리를 제외하고는 더 아무말도 들리지 않았다.
심지어 심랑과 왕련화의 목소리는 문밖에서는 들을 수조차 없는 것이었다.
구양희는 창으로 고개를 내밀어 밖을 살펴보았다. 해는 이미 하늘
가운데까지 떠올라 있었다. 그는 또 조급한 마음이 들기 시작하여
왔다갔다 하면서 중얼중얼거렸다.
그 두 사람이 왜 지금까지 안 나오는 것이지? 혹시? 혹시
무슨일이라도......?
심랑이 백비비의 겨드랑이 아래에 꼭 묶여 있던 옷깃을 푸는 순간,
백비비는 눈을 꼭 감고 있었으나 그녀의 손 발은 가볍게 떨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얼굴은 비록 더할 수 없이 추하게 보였으나, 그녀가 눈을 감기
이전에 눈가에 나타난 부끄러워 하는 듯한 기색은 사람의 마음을 동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처럼 유약한 소녀들의 부끄러워 하는 모습은 바로
주칠칠 같은 여자에게서는 볼 수 없는 것이었다. 이순간, 그녀가 비록
눈을 감고 있었으나 심랑은 심지어 그녀의 눈을 바라볼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그는 가볍게 그녀의 옷을 벗겨내렸으나 손가락 끝도 그녀의 몸에 직접
닿게 하지는 않았다.
백비비는 장삼 속에 내의를 입고 있지 않았다. 순식간에 백비비의 그
옥처럼 매끄럽고 눈처럼 부드럽고 학처럼 아름다운 몸매가 심랑의 눈앞에
드러났다. 그녀의 동체는 사람을 미치도록 끌어들이는 그러한 매력은
없었으나, 도리어 형용하기 어려운, 사람들로 하여금 가련하게 여기게
하는 그러한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그것은 일종의 깨끗한 소녀들만이
갖고 있는 그러한 매력이었다.
심랑은 그녀의 몸을 바라보지 않으려 했으나, 이미 바라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백비비의 발가벗은 몸을 바라보는 순간, 그는 그녀의
아름다운 몸매에 홀린 듯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는 비록 영웅이었으나,
어쩔 수 없는 남자였던 것이다.
주칠칠은 심랑이 백비비의 옷을 벗겨야 한다는 말을 듣는 순간, 눈을
부릅뜨고 표독스럽게 그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지금 이순간, 심랑이
이처럼 얼빠진 모습으로 백비비의 벌거벗은 몸을 바라보는 것을 보고
그녀의 눈에서는 더이상 참지 못하고 질투에 찬 원망스러운 기색이 뿜어져
나왔다. 그녀는 한스러운 듯 속으로 중얼거렸다.
(심랑, 심랑. 원래 당신도 호색한에 지나지 않았군요. 내가 다른 남자들을
거들떠 보지도 않고 당신만을 바라보고 있는데, 당신은 이처럼 정신나간
듯 다른 여자를 보고 있다니...... 나, 나는 왜......?)
생각을 하면서 그가 눈을 돌려 바라보자 왕련화는 구석자리에 꼼짝않고 서
있었다. 그는 등을 심랑과 백비비에게 돌린 채 그들을 곁눈질로도 바라볼
생각을 않고 있는 듯했다.
이때 그가 마른 기침을 하고나서 말했다.
옷을 다 벗기셨소? 됐습니다. 그렇다면 심 형께서는 그녀를 그
세숫대야로 안아다 넣으시오. 그리고 제가 이미 재단해 놓은 천으로
그녀의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자세히 두 번을 씻어주시오. 첫번 씻을
때는 좌측에 있는 대야의 물을 사용하여야 하고 두 번째 씻을 때는 우측에
있는 대야의 물을 사용해야 합니다. 절대 그 순서를 바꿔서는 안 됩니다.
심랑이 고개를 돌리고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형씨께서는 왜 같이 손을 안 쓰시는거죠?
왕련화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가볍게 웃으면서 말했다.
깨끗한 처녀의 몸을 어떻게 마음대로 본단 말입니까? 지금 이순간,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어쩔 수 없이 이 지경이 되었지만......!
그렇지만 한 사람이라도 깨끗한 처녀의 몸을 덜 보게 된다면 그게 더 좋은
게 아니겠습니까? 그녀는 이미 심 형의 사람이 되었으니 심 형께서 끝까지
도와 주셔야 되겠지요.
심랑이 조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 그녀가 소재의 사람이라구요? 도대체 무슨 말씀이지요?
왕련화가 웃으면서 그 말에는 대답을 하지 않고 말했다.
물 속에 풀어 놓은 약의 효력이 이미 사라지려 하고 있습니다. 심
형께서는 빨리 손을 쓰시지요.
심랑은 한참을 멍하니 있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불어 내고
백비비의 몸을 안아 일으켜서 세숫대야의 물 속으로 집어 넣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세숫대야 모서리에 걸려 있던 천을 집어들어 백비비의 몸을
씻기려고 하였다.
왕련화는 여전히 뒷짐을 진 채 천천히 또 말을 했다.
이 두 아가씨는 틀림없이 경국지색일 겁니다. 오늘 심 형께서는 여복이
터진 것 같소이다.
심랑은 더이상 참지 못하고 얼굴에 노한 기색을 띠며 신중한 기색으로
말했다.
형씨의 이러한 말씀은 이 소재를 어떠한 사람으로 보고 하시는
말씀이오?
왕련화가 말했다.
저는 잠깐 농담을 한 것에 불과합니다. 형씨께서는 제발 화를 내지
마시기 바라오. 그렇지만.......
그렇지만 뭐요?
이 두 아가씨는 심형께서 데리고 온 사람들이고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그녀들의 깨끗한 몸이 모두 심 형의 눈에 들어왔으며, 또 그 몸은 심 형의
손에 들어 왔습니다. 심 형께서 이후에 이 두 여인에게 대해서 모른 척
해서는 결코 안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심 형께서 만약 조금이라도
협의심이 있다면 이 두 여인의 평생을 심 형의 책임이라고 생각해야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절대 제 3의 여자에게 대해서 마음이 흔들려서는
아니 되겠지요.
심랑은 왕련화의 말을 들으면서 놀라고 화도 났으나 왕련화의 말은 한마디
한마디 모두 정당한 것이었고 틀린 게 없었다.
심랑은 일순간 어떻게 반박해야 될지를 몰랐다. 그러나 왕련화가 이러한
말을 하고 있는 원인을 주칠칠은 알고 있었다. 다만 이순간 그녀 자신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그녀가 주칠칠인줄 몰랐기 때문에 왕련화가 이런 말을
하였던 것이다.
왕련화가 이러한 말을 하는 근본적인 까닭은 심랑으로 하여금 깨끗한
처녀의 몸을 보고, 만진 이상 그 처녀들을 책임져야 한다는 의무감을 갖게
만들고 그 처녀들에게는 심랑을 자기의 남자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그녀들이 심랑을 그녀들의 남자로 받아들이는 이상 심랑을 다른 제 3의
여자에게 눈을 돌리지 못하게 올가 매기 위한 것이었다.
왕련화가 말했던 제 3의 여자라는 것은 바로 주칠칠을 가리키는 것이다.
왕련화의 이러한 계책은 더없이 훌륭한 것이었으나 그 두 여자 중 한
여자가 바로 주칠칠이란 점은 그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심랑은 더이상 말을 하지 않았으나 그의 입가에는 다시 미소가 번져나오고
있었다.
왕련화가 말했다.
심 형께서는 이미 다 씻으셨습니까? 됐습니다. 다시 심 형께서는 그녀의
몸을 깨끗이 닦아 주십시오. 됐습니다. 그러면 다음에는 심 형께서는
장력으로 그녀의 소음혈(少陰穴)의 사방 사십육곳 혈도를 주물러
주십시오. 그렇지만 심 형께서 약간 멋적으시다면 먼저 이 아가씨에게
옷을 입히셔도 좋습니다.
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옷을 입히는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렸으며,
이어서 가볍게 손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심랑의 호흡이 점점 거칠어졌으며, 백비비도 가벼운 숨찬 소리와 사람의
혼을 뺏을 듯한 신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 소음혈 사방은 바로 여자의 몸에서 가장 민감한 곳으로서 만약, 남자의
손으로 그곳을 주무르거나 가볍게 두드렸을 때의 기분이라는 것은 충분히
상상할 만한 것이었다.
주칠칠은 표독스럽게 심랑의 손이 백비비의 몸을 이리저리 주무르고
두드리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갑자기 그날, 지하 석실에서 왕련화가
자기의 몸을 주무르던 그때의 기분을 생각해 냈다. 순식간에 그녀는
일진의 기이한 기분이 전신으로 퍼져 나감을 느꼈다. 그녀의 가슴은 마치
불이 타오르듯 갑자기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부끄러움인지
분노인지 원망스러움인지를 모를 묘한 기분에 빠져 들어갔다.
백비비의 눈은 더욱 꼭 감겨졌으며, 그녀의 몸은 더욱더 격렬하게 떨고
있었다.
왕련화는 천천히 몸을 돌려서 가위를 펄펄 끓는 식초에 소독을 했다. 그는
얼굴에 미소를 띠고 조용히 백비비와 심랑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심 형께서는 결코 손을 멈춰서는 아니 됩니다. 심 형께서 무엇을 보셨든
멈춰서는 아니 됩니다. 만약 심형께서 손을 멈추신다면 지금까지의 공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 겁니다. 그 책임을 저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심랑이 가볍게 웃으면서 말했다.
형씨께서는 안심하셔도 좋소. 저는 이 평생에 다른 사람을 실망시키는
일은 해본 적이 없소이다.
그의 말에는 마치 모든 돌발적인 사태에 대비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는 듯한 기색이 배어 있었다. 그가 어떻게 백비비가 그의 손에서
느끼는 미묘한 반응을 느끼지 못할 것인가? 그 자신도 어떻게 이러한
기이한 반응에 따라서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인가? 그러나
그의 얼굴은 결코 표정이 바뀌지 않았으며 마치 이미 모든 상황에 대비할
자세가 되어있다는 듯한 기색을 나타내고 있었다.
왕련화가 백비비의 면전으로 돌아가서 말했다.
지금 이순간, 이 아가씨의 얼굴에 발려 있는 역용 약물은 밖에서 쐬던
술과 식초의 증기와 그녀의 몸 속에서 나온 땀의 협공으로 상당히
부드러워져 있습니다.
그는 말을 하면서 두 손으로는 백비비의 얼굴을 가볍게 문질렀다.
백비비의 얼굴에 있는 그 진짜인 듯한 표피가 그의 손길을 따라서 이리
미끌, 저리 미끌 요동쳤다. 그 모양은 더욱 기이하고 공포감을 자아내는
것이었다.
왕련화가 한 알의 약을 꺼내고 백비비의 입 속에 집어 넣으면서 말했다.
지금 그녀의 체내의 기혈은 이미 정상적으로 통하고 있고, 말도 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는 갑자기 웃음소리를 내더니 이어서 말했다.
다만 지금 이순간, 그녀는 심 형의 그 손아래에서 이미 뼈마디가
흔들거려서 비록 말을 할 수 있지만 말을 하려 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만약 다른 사람이 이 말을 들었다면 즉각 손을 멈췄을 것이었으나, 심랑은
듣고도 못 들은 척 손을 멈추지 않았다.
왕련화가 웃으면서 말했다.
좋습니다.
그는 갑자기 왼손을 들어올려 엄지와 식지로 백비비의 눈꺼풀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또 오른손으로는 가위를 들어 올리더니 왼손 두 손가락으로 꼭
끼어 올린 눈꺼풀을 찔러 들어갔다. 순간 '찰칵'하는 소리가 나면서
백비비의 눈꺼풀이 가위에 의해서 잘려 나갔다. 백비비는 약간 통증을
느끼지 않는 듯하였으나, 그 모습을 보는 심랑과 주칠칠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왕련화는 잘라낸 물건을 소금통 속으로 집어 던진 다음, 즉각 작은칼을
들어올려 방금 잘라낸 눈꺼풀 속의 구멍을 통하여 칼을 그녀의 얼굴로
찔러 넣었다.
심랑은 더욱 놀랐다.
그러나 백비비는 여전히 통증을 느끼지 않는 듯했다. 칼을 잡은 왕련화의
손은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였다. 백비비의 얼굴을 덮고 있던 그 피부는
칼끝을 따라서 조각조각 찢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녀의 얼굴은 즉각 마치 손톱으로 이리저리 갉아놓은 과일 껍질모양으로
찢어져 나가서 더욱 말할 수 없는 기괴함과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느끼게
했다.
심랑은 이 피부가 역용 약물이 뭉쳐서 이루어진 것임을 알고 있었으나, 그
모습을 보면서 여전히 놀라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갑자기 차가운 빛이 번쩍하면서 왕련화는 손에 잡고 있던 칼을 곧장
심랑의 얼굴을 향해 공격해 들어왔다. 그 빠르기는 전광석화 같았다.
이 모습을 바라본 주칠칠의 놀람은 말로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심랑은 이때 정신을 집중하여 백비비의 몸을 주무르고 있었기 때문에
왕련화의 이 공격을 피하기는 불가능할 듯해 보였다. 그러나 심랑이
가벼운 소리를 부르짖으며 가슴과 배를 뒤로 쑥 잡아 빼는 순간, 두
다리는 움직이지 않았는데 상반신이 평평하게 뒤쪽으로 삼 촌을 이동하며
칼끝이 그의 얼굴을 스쳐갔으나 조금도 그에게 상처를 입히지 못할줄이야.
주칠칠은 부지불식간에 전신에 식은땀이 흘러 내렸으나, 심랑의 두 손은
여전히 멈추지 않고 백비비를 두드리고 주무르고 있었다.
다만 그의 눈에서 노한 기색이 뻗쳐 나오고 있었다.
심랑이 날카롭게 물었다.
왕 형께서는 무얼 하는 거죠?
그러나 왕련화는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가볍게 웃으면서 말했다.
저는 다만 심 형께서 정신을 집중하여서 어떠한 상황하에서도 두 손을
멈추지 아니 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려고 시험했던 것뿐이오.
심랑도 가볍게 웃으면서 말했다.
아, 그렇소?
말을 마친 그도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방금의 일에 대해서 더이상
얘기하지 않았다.
왕련화는 심랑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에서는 감탄하는
기색과 질투하는 기색이 동시에 떠오르고 있었다. 심랑을 한참이나
바라보던 왕련화가 갑자기 길게 탄식을 하고 말했다.
형씨는 한평생 어떠한 일도 마음에 새겨둔 적이 없습니까?
심랑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지는 않지요. 당연히 새겨둔 것들이 있습니다. 다만,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할 뿐이지요.
심랑의 말소리는 여전히 부드럽고 평정했다. 그러나 심랑의 이러한 말을
듣는 왕련화는 어찌된 까닭인지 가슴 속에서 찬바람이 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심랑과 같은 인물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한 나 왕련화는 무슨 재미로
살아갈 것인가?)
이러한 생각을 하면서 왕련화의 손은 가볍게 움직였다. 일진의 가벼운
바람이 불어가자 백비비의 얼굴에서 너풀거리던 찢겨진 피부 근육들이
즉시 바람에 따라서 펄럭거렸다. 그리고 그 찢겨진 피부조각들은 마치
눈이라도 있는 듯 한조각 한조각 모두 소금물통 속으로 떨어져 들어갔다.
심랑이 웃으면서 말했다.
대단한 장력이시오. 아주 대단한.......
말을 마치기도 전에 그의 눈이 백비비의 얼굴을 살펴보는 순간 그는
말소리를 멈췄으며, 한참이나 그러한 상태로 멍청하니 백비비의 본래의
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녀의 장미처럼 아름다운 두 볼에서는 여전히 진주 크기만한 땀들이
송글송글 맺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긴 눈썹은 눈꺼풀을
덮고 있었으며, 오똑 솟은 콧날에 앵두 같은 입술에서는 여전히 가뿐 숨을
'헉헉' 몰아쉬고 있었다.
심랑이 방금 그녀의 벌거벗은 몸을 보고 이미 그녀의 부드럽고 따뜻하고
매끄러운 피부를 직접 손으로 만졌었으나, 아무런 감흥이 일지는
않았었다. 그러나 이순간, 그가 그녀의 이러한 수줍음을 머금은 듯한 예쁜
얼굴과 사람의 가슴을 울렁거리게 하는 아름다움을 보고 그의 가슴에서는
일종의 설레임이 솟아났던 것이다. 그는 더이상 그녀의 몸을 어루만지지도
못했다. 그는 신체 건장한 젊은 남자였던 것이다.
심랑이 느끼는 이러한 감정은 이 세상 모든 남자가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왕련화도 백비비의 모습을 보고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한참이
지나서 그는 길게 탄식을 하면서 말했다.
과연 경국지색이라 할 만하군요. 과연.......
주칠칠은 이 두 남자가 백비비를 쳐다보는 표정을 보고 이를 악물며
속으로 욕설을 퍼부었다.
(남자들이란, 남자들이란...... 이 세상의 모든 남자들은 전부 저
모양이야!)
그녀는 비록 마음이 넓은 여자였으나, 이 두 남자 중 하나는 그녀가 깊이
사랑하는 사람이고 또 하나는 그녀를 깊이 사랑하는 남자이다. 그녀가 이
두 남자가 다른 여자를 보고 그렇게 넋이 빠져 있는 것을 보고, 마음
속에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질투와 원망의 마음이 일어났던 것이다.
그녀는 어떻든 젊고 예쁜 여자였던 것이다. 이러한 그녀의 마음은 이
세상의 모든 여자들이 피할 수 없는 심리인 것이다.
주칠칠의 눈빛은 알게 모르게 왕련화에게 향해졌다. 왕련화는 그때 마침
심랑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에서는 살기가 빛나고 있었다.
주칠칠은 속으로 외쳤다.
(심랑, 큰일났어요!)
그녀가 당황하는 순간, 왕련화의 쌍장은 이미 심랑을 향해 장력을 격출해
내고 있었다. 그 장세의 신속함과 빠름은 주칠칠의 생각이 정리되는
것보다도 더 빨랐다. 그의 이번 공격은 갑작스레 일어났으며, 그 빠르기가
비할 데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심랑은 그를 보지도 않은 듯하고 있었으나
사실상 왕련화의 일거수 일투족은 심랑의 눈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왕련화의 장력이 격출되는 순간 심랑의 쌍장도 이미 그 장력을 맞받아쳐
나갔다. 그순간, 장력이 부딪히는 소리가 급격히 일어났다. 십여장을 서로
맞부딪힌 후에도 심랑은 여전히 그 자리에 꼼짝않고 서 있었다. 그러나
도리어 왕련화는 놀람에 가득찬 소리를 지르며 뒤로 서너 걸음이나
물러섰다.
심랑이 말했다.
형씨의 이번 공격은 뭐라고 말씀하실 거죠?
왕련화는 구석자리로 물러가서야 비로소 신형을 안정시킬 수 있었다.
신형을 안정시킨 그는 새로 맞춘 그 하얀 마포 장삼을 털고 나서 여전히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웃으면서 말했다.
저는 방금 심 형께서 이 아가씨를 치료하느라 기력이 전부 소모되지
않았는지 한 번 알아보고자 했을 뿐입니다.
심랑은 왕련화를 똑바로 쳐다보고나서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아, 정말이시오? 고맙소. 관심을 가져 주어서.......
말을 마친 그는 여전히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방금 일어났던 왕련화의
공격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더 하지 않았다.
주칠칠은 눈을 부릅뜨고 이를 깨물면서 속으로 외쳤다.
(심랑, 심랑! 이 멍텅구리 바보 같은 사람! 그 녀석이 당신을 조수로
쓰고자 했던 것은 바로 기회를 틈타서 당신을 없애려 했던 거란 말예요.
그것도 모르세요? 바보 같은 사람, 양심도 없는 사람! 진짜 어떤 때는
당신이 죽어버렸으면 싶어요.)
백비비도 살며시 눈을 가늘게 뜨고 심랑의 모습을 쳐다보았다. 그녀의
붉게 달아올랐던 얼굴은 아직 붉은 기운이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었으나,
그의 꿈을 꾸고 있는 듯한 눈알은 부끄러움인지 아니면 사랑인지 모를
묘한 기색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녀는 심랑을 쳐다보는 외에는 다른
사람의 얼굴은 본 척도 하지 않았다.
왕련화는 다시 식초와 술에 의해서 만들어진 수증기를 주칠칠의 얼굴로
향하게 했다.
주칠칠은 눈물과 콧물이 동시에 흘러나왔다. 이러한 고난은 그녀는 더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가 자기 자신이 즉시 지금까지 당했던
고난에서 벗어난다는 점에 생각이 미치자 그녀의 가슴은 펑펑 뛰기
시작했다. 자기의 신체에 더이상의 고통이 가해진다해도 그녀는 모두 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왕련화는 다시 새로운 대야에 술과 식초와 약물과 맑은 물을 섞어 놓았다.
이번에는 그는 아까보다는 더 많은 약의 분량을 섞어 놓았다. 그런 후에
그는 고개를 돌려 심랑을 바라보고 웃으며 말했다.
이 아가씨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아까보다 훨씬 더 곤란한 점이 많을
겁니다. 심 형께서는 아까보다 조금 더 힘을 쓰셔야 할 거요.
말을 마치기도 전에 그는 다시 구석자리로 가서 벽을 맞대고 조용히 섰다.
심랑이 씁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아까와 꼭 마찬가지 방법으로 해야 되는 거요?
그는 마치 다른 사람의 요구 사항에 대해서 거절할줄을 모른다는 듯,
어떠한 일에 대해서도 모두 순순히 받아들인다는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왕련화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소이다. 아까와 꼭 마찬가지 방법이오. 심 형께서는 이 아가씨를 그
두 개의 대야의 물에 담가서 깨끗이 씻어주셔야 하.......
주칠칠은 심랑의 손이 자기의 옷고름에 닿는 것을 느끼자 그녀의 가슴이
마치 작은 사슴의 심장처럼 펑펑 뛰기 시작했다. 그녀의 심장은 밖으로
튀어 나올 듯했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두 눈을 내리 감았다.
그녀는 다만 자신의 몸이 선뜻한 기분을 느꼈으며, 이어서 그녀 자신의
몸이 따뜻한 물 속에 들어가는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그녀는 일진의
동정이 섞인 숨소리와 신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방금 속으로 백비비를 저주했으나, 이순간 이 거친 숨소리와
신음은 모두 그녀 자신의 입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었다.
그녀는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정신이 몽롱하여 마치 꿈을 꾸고 있는 듯,
구름 속을 날아다니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는지는 몰랐으나, 아주 많은 시간이 흐른 듯도 하였고 순식간의 일인
듯도 하였다. 마침내 그녀의 몸은 다시 부드러운 천에 휩싸여 몸에 뭍은
물기가 깨끗이 닦여졌으며 옷이 입혀졌다.
이순간 지금까지의 그녀의 뻣뻣하게 굳어있던 마비된 상태의 몸이 점점
풀려 그녀는 감각이 생김을 알 수 있었다. 이어서 그녀는 한쌍의 데일 듯
뜨거운 손바닥이 그녀의 몸을 주무르기 시작함을 느꼈다. 그녀의 몸에
감각이 돌아오고 신음소리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은 아주 기뻐해야 할
일이었다. 그녀는 이미 그녀 자신이 말을 할 수만 있다면 그자리에서 즉각
왕련화의 정체를 밝혀 내겠다고 맹세했었다. 동시에 그녀는 심랑에게
단단히 본떼를 보여 주겠다고도 맹세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순간 그녀의 마음은 취한 듯 홀린 듯, 자기 자신이 말을 할 수
있다는 사실마저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백비비는 침대의 구석자리에 웅크리고 앉아서 여전히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수시로 심랑의 얼굴을 훔쳐보고 있었다. 왕련화는
여전히 벽을 맞대고 조용히 서 있었다.
그의 모습은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듯했다. 이러한 네 사람이 만들어
내는 모습은 얼마나 기이한 광경인가? 왕련화는 한참 동안 깊은 생각에
잠겨있다가 마침내 천천히 몸을 돌려 심랑과 주칠칠의 곁으로 다가왔다.
이어서 그는 새로운 가위를 집어들고 주칠칠의 얼굴을 문지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