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그림이 없다면 인생은 얼마나 삭막할까. 숨을 쉬고 사는 한, 내 곁에 머무는 이 그림.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도 아니요. 알프레드 시슬레의 「루브시엔의 눈 내린 풍경」도 아니다. 내 삶의 연료이자 엔진은 바로 이 그림이다. 이것에서 난 행복감을 얻는다. 이런 종류의 그림을 보기만 해도, 힐링이 된다. 그것은 마술사가 눈 깜짝할 사이에 팔뚝에 만들어 낸 비둘기를 날려 보내듯 삶의 스트레스를 공중으로 사라지게 한다. 이것을 바라보면 인생의 의미를 깊숙이 느끼게 한다. 또 상상력을 일으키고 영감을 주어 글쓰기의 재료로 삼는다.
땅굴을 파고 사는 개미집을 그렸든 코끼리의 대이동을 그렸든 우주의 섭리를 껴안은 그림이 이거다. 또 인생의 축소판이기도 하다. 바위로 가득 찬 악산(岳山)의 가파른 절벽에 서커스 하듯 매달려 있는 소나무에서 절망이 아닌 희망을 보게 하는 이 그림. 섭씨 50도 넘는 뜨거운 사막 모래 속에서 한참을 기다리다가, 그 위를 스키 타듯 미끄러져 가며 먹잇감을 사냥하는 사막뿔살무사에게서, 현란한 덫으로 꼼짝 않고 있다가 곤충을 잡아먹는 파리지옥에게서 인내심의 처세술을 배우게 한다. 영하 사,오십도 되는 남극 펭귄 부부의 모습과, 수천 킬로미터를 헤엄쳐 태어난 곳으로 거슬러 올라가 산란하는 연어 떼의 광경을 보여주는 이 한 폭의 그림. ‘당신은 어떻게 살고 있고 죽음의 순간을 어떻게 준비하는가'를 그 한 폭의 그림이 내게 묻는다.
하늘과 바다와 밀림의 생물들이 보여주는 위대함, 고난과 슬픔과 때로는 처절함이 살아 숨 쉬는 그 광경을 왜 신(神)은 인간에게 매시간 매일 보여주고 있는 걸까. 이 그림이 없다면 우리 삶은 아무것도 아니다.
여행 중에 만나는 그 그림에서, 그동안 힘들었던 시간과 사건을 지우고 그 자리에 새로운 인생 에너지를 충전시킨다. 처음 가보는 곳의 풍경 앞에선 ’생각하는 로댕'이 된다. 자연의 법칙을 마음에 다시 새기게 되고 신(神)을 느끼게 된다. 가끔 여행 가이드를 따라 미술관에 가면 인물화보다는 이것 앞에서 더 오랜 시간을 보낸다. 때때로 이 그림 앞에서 사색에 몰입하는 걸 좋아한다. 풍경이 있는 숙소가 정해지면 더없이 기쁘고 감사한 마음이 생긴다. 그때 그것은 수면제가 된다. 그래서 잠도 잘 오고 아침에 일어나면 몸은 나비나 새가 되어 그 경치 속으로 스며들게 된다.
어릴 적 이 그림으로 둘러싸인 산골에서 자랐기 때문에 산을 낀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게 좋다. 산이나 강이 보이지 않는 뷰(view)를 가진 집은 너무 답답하고 숨이 막힐 듯하다. 낙타등처럼 불룩 튀어 나온 책가방을 등에 메고 아파트 옆 산길을 따라 등교하는 초등학생들과 푸른 소나무, 노란색 산수유나무와 인공 연못이 어우러진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매일 아침의 기쁨이다.
하얀 이를 여러 개 드러내며 바닷가 수영장을 병풍으로 동서 부부와 새긴 사진, 손녀 손자들과 함께 산골 펜션에 가서 찍은 사진은 유명화가의 작품보다 더 멋진 ‘풍경화’이다. 거기서 '삶의 비타민'을 살며시 뽑아낸다.
자연 속에서 보고 느끼는 풍경화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시각 장애인이 가슴으로 풍경화를 느끼는 것에 비하면 난 얼마나 행운아인가. 어딜 가나 앞에 나타났다가 비록 사라지는 그림이지만, 거기에 담긴 섭리, 깨달음과 지혜는 변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내 인생에서 얼마나 많은 이 풍경화를 만났을까. 앞으로 얼마나 더 새로운 풍경화를 만나게 될까.
(2024년 3월 24일 6.7매)
첫댓글 알퐁소님의 글을 읽으며 처음부터 계속 궁금했어요. 선생님 마음을 그토록 사로잡은 그림이 뭘까 하고ᆢ그 그림은 바로 자연의 풍경이었군요. 하나의 주제로 깊이 생각해서 쓰신 글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하네요. 자연은 정말 위대한 작품이지요.
잘 감상했어요.
예~^^ 지송 작가님& 화가님의 말씀대로 자연은 위대한 작품- 풍경화 중의 하나 인거 같아요...
제 졸필 읽으시고 격려의 댓글 주셔서 고맙습니다~^^
살아가는 주변 일상도 풍경화라고 말씀하고 있는 게 맞나요? 이전글과 글을 펼치는 방법이 비슷 하군요.
일상이 풍경화라면 작가의 그에 따른 추가적인 해석이 반드시 따라야 합니다. 왜 일상이 풍경화라고 해야 하는지가 추가되어야 합니다. 안그렇다면, 자연 즉 바다와 산이 보이고 사람이 같이 나오는 풍경화를 묘사하면 되지요. 저는 그렇게 해서 썻습니다.
감사합니다
@알퐁소 수필의 의미가 늘 새로운 시야와 빌상으로 읽는 저도 즐겁습니다.
알퐁소 선생님!
어떤 글제가 올라와도 부지런하게 소화하는 선생님의 성실함을 배웁니다.
선생님의 글,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엄희자 안젤라 선생님의 깊이와 넓이가 있는 글,
안젤라 선생님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수필에서, 저는 많은 아이디어와 영감을 얻고 갑니다.
제 미완성의 글을 읽고 칭찬과 격려의 메세지를 주심에 고마움을 드립니다. 더욱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