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순이 - 거위의 꿈,(2005)
(김유경 作詞 / 오준성 作編曲 오승은 編曲)
아득히 머나먼 길을 걸어
생의 한가운데를 지나서
숨 쉬는 것조차 힘든
그 어디쯤 오니
그렇게 그대가 서 있네요
세월의 가시에 찢겨버린
내 영혼을 비춰주는
어느 봄날의 햇살처럼
수많은 인연에
그리 대단치도 않은
그런 나의 손을 잡아준
그댄 운명이 되고
꽃피고 또 지는
수많은 나날들 속에
내가 살아갈 그 이유가
된 한 사람
한 줄기 바람이 아련하게
봄을 잊은 나의 가슴속에
설렘 하나 놓아두니
끝내 사랑은 피었네요
(육지담)
외로운 들국화 한 송이
따스한 그대 바람결에 나부끼니
그늘진 어느 서러운 그 인생에
봄을 데려온 나비가 입을 맞춘 듯
아름답네 향기로 겹겹이 물들어
눈물 나도록 아름답게 흔들리네
숨이 차도록 아픈 그때는
한때로 흘러가길 기도를 해
(인순이)
수많은 인연에
그리 대단치도 않은
그런 나의 손을 잡아준
그댄 운명이 되고
꽃피고 또 지는
수많은 나날들 속에
내가 살아갈 그 이유가
된 한 사람
인생의 길모퉁이를 돌아
이 세상 끝과 마주했을 때
눈물로 기억하겠죠
이토록 아름다웠음을
(육지담)
그대가 있어 한 송이 꽃이 되고
그림자 내린 영혼은 내 빛이 되고
그대가 있어 영롱한 삶이 되고
보잘 것 없는 인생은 시가 되네
어쩌면 덧없이 사라질 인생일지라도
나 몰래 말없이 돌아설 사랑이라도
오늘도 어느 봄날처럼
그렇게 꽃이 피었네 또.
'이토록 아름다웠음을'은 자식들을 위해 평생 자신을 희생해온 엄마와
그런 부모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는 자식간의 해프닝을 현실적 유쾌하게,
때로는 가슴 찡한 공감을 주며 시청자들을 사로잡은 MBC 주말드라마
'엄마' 테마곡이다. 꾸준한 음악활동으로 도전과 열정 멈추지 않고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인순이는 대한민국의 열정의 아이콘이라고 해도
모자람이 없다. 특히 팝, 소울등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여가수이기도하다. 인순이가 부른 '이토록 아름다웠음을'은 낙엽이 떨어지는
스산한 가을과 잘 어울릴만한 노래이다.한때 가슴 따뜻했던 아련한 사랑의
아름다움을 시적인 가사로 표현한 '이토록 아름다웠음을'은 지나온 추억을
독백하는 노래이다. 서정적인 멜로디와 시적인 가사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며 감동을 선사하기에 충분하다. 또한,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되는 랩퍼 육지담이 피쳐링으로 참여해 인순이와의 케미에
또 다른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본명 ; 김인순 (金仁順, Kim Insoon)
출생 ; 1957년 4월 5일
경기도 포천군 청산면 백의리(現 경기도 연천군 청산면 백의리)
신체 ; 163cm, 50kg, B형
가족 ; 배우자 박경배, 딸 박세인
학력 ; 연천청산중학교 (졸업)[7]
종교 ; 천주교(세례명: 세실리아)
소속사 ; 휴맵컨텐츠
데뷔 ; 1978년 희자매 1집 앨범 <희자매>
경력 ; 해밀학교 이사장 (2013년 ~ 현재
1978년 3인조 걸그룹 희자매로 데뷔하고
1981년부터 솔로 가수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히트곡 없는 국민가수'라는 평이 있고, 인지도나 위상, 가창력치고는 본인만의
오리지널 히트곡이 적은 것은 사실이다.<친구여>는 조PD의 곡에 피처링한 거고,
<거위의 꿈>은 카니발의 노래를 리메이크한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세대를 뛰어넘어
모두에게 기억될 정도의 곡이 적은 것일 뿐,세자매 시절에도 김소월의 시에 곡을 붙인
<실버들>, 윤종신이 리메이크해 더욱 알려진 김형석의 데뷔작인 발라드<이별연습>,
90년대에 박진영과 협업한 <또> 등은 상당한 인기를 얻은 히트곡이다.
나는 가수다 출연 이후로 <아버지> 역시 뒤늦게 상당한 히트곡이 되었다.
어쨌든 스탠더드에 가까워진 <밤이면 밤마다>가 있기 때문에 범국민적인 히트곡은
아니라고 해도, 본인만의 히트곡이 없다고 볼 순 없다.
인순이는 흑인 주한미군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아프리카계 혼혈
한국인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한국에서 인순이가 태어나고 나 몰라라 식으로 대처하고
떠났기 때문에 인순이는 아버지를 본 적도 없다고 한다 12살 때 미국에 있는 아버지로
부터 미국행을 제안받았지만 혼자 남을 어머니를 생각해서 거절했다고 한다.
그리고 아버지와 몇번 편지를 주고 받은 적이 있지만 이후 연락이 끊어졌다고 한다.
기사 당시 홀어머니 혼자 키우는 대부분의 가정이 그렇듯 경제적으로 매우 빈곤했으며
인순이는 힘겹게 중학교를 졸업했다고 한다.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나아졌지만 아직도 혼혈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강한데,
1960년대의 대한민국에서 혼혈, 그것도 흑인 혼혈이고, 아버지가 없는 미혼모의 딸
(인순이)에 대한 주변의 시선은 매우 좋지 않았다. 어릴 적 뿐만 아니라 가수로 성공한
후에도 이러한 차별은 은연중 따라다녔다. 결국 이는 인순이의 인생에 큰 상처로 남게
되었다. 익히 알려진 사실 중 하나지만 인순이가 과거 1970년대 희자매로 활동하던
시절 흑인 혼혈 특유의 곱슬머리를 가리기 위해 방송에 나올 때에 머리에 천을
둘러야 했다.
인순이는 자신이 어느 사회에도 100% 속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갖고 평생을 살았으며
한국인의 정체성을 확립하기까지 매우 오랫동안 정체성 혼란에 시달렸다고 하였다.
기사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 에서 자신의 고향은 한국도 아니고 미국도 아닌 그 사이에
있는 바다 즉 태평양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현재에는 자신은 당연히 한국인
이며 애국심이 강한 사람이라고 말하였다. 혼혈로 자라면서 굉장히 힘든 학창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다음 혼혈 세대들은 자신과 같은 어려움을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강원도 홍천군에 다문화 대안학교인 해밀학교를 세웠다. 대한민국 교육부에게
정식 인가받은 중학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