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가. 천국은 애씀, 기도, 금식, 각종 종교 행위를 통해 볼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나. 마음 밭을 옥토 밭으로 개간하여 하나님의 몸 된 성전을 세워야 한다.
다. 공간 세상이 아니라 마음(코스모스) 세상에 하나님의 말씀을 둘 곳이 없다는 것이다.
라. 하나님의 말씀을 옛 시대나 지금이나 깨달아 소유하는 자가 없다고 하신다.
2. 본론
가. 천국은 애씀, 기도, 금식, 각종 종교 행위를 통해 볼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천국은 사람들의 애씀, 기도, 금식, 각종 종교 행위를 통해 볼 수 있는 나라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겉 사람의 마음 작용으로 알 수 있는 세계가 아니다. 마음 작용을 내려놓아야 비로소 열리기 시작한다. 그런데 종교인들이 종교 행위를 통해 볼 수 있는 세계로 오해하여 열심히 기도하라 한다.
종교인들의 행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것과 거꾸로 간다. 몸과 마음의 모든 속성을 내려놓아야 그때부터 보이기 시작한다. 이편의 세계와 저편의 세계는 하나가 아니라 전혀 다른 세계다. 세례요한의 목이 잘려야 저편의 세계가 나타나며, 가롯유다의 목이 나무에 달리고 배에서 창자(스프랑크나)가 튀어나와야 비로소 저편의 세계로 넘어간다.
겉 사람의 개념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저편의 세계가 온전히 나타나지 않는다. 그런데 성경을 연구하는 종교인들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대상으로 만들어 놓고 종교의 행위를 통해서 다가가는 것으로 오역하였다.
그 이후 사람이 신(우상)의 노예가 되었고 종교의 노예가 되었다. 그러나 이젠 깨어나야 할 때가 되었다. 깨달음을 통해서 생명의 빛으로 하나 되는 것이 성경의 핵심이다. 대 자유인이 되라고 하신다. 이것이 우리가 드려야 아들로서 할 십일조와 헌물이다.
나. 마음 밭을 옥토 밭으로 개간하여 하나님의 몸 된 성전을 세워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톤 코스몬)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요 21:25).”
‘행하신 일’로 번역된 ‘에포이에센’은 과거 능동태로 원형은 ‘포이에오’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은 하나님 자녀들 안에서 행해지는 일로서 마음 밭을 옥토 밭으로 개간하여 하나님이 거하시는 몸 된 성전을, 자녀들 안에 세우는 일(포이에오)이다. 몸과 마음 밖의 일이 아니다. 이 일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는 아버지의 뜻으로 온전한 아들로서 십일조와 헌물이 되기 위함이다.
다. 공간 세상이 아니라 마음(코스모스) 세상에 하나님의 말씀을 둘 곳이 없다는 것이다.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코레사이, 수용하다) 부족할 줄(결코 아니다) 아노라(오이마이, 생각한다)”
‘이 세상’으로 번역한 ‘톤 코스톤’은 목적격으로 ‘이 세상을’이다. 공간 세상이 아니라 몸과 마음(코스모스)의 세계에 하나님의 말씀을 둘 곳이 없다고 말씀하신다. 몸과 마음(코스모스)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말씀을 받아들이는 자가 없다 하신다. 이래서 마음 밭을 옥토로 개간하여야 한다. 마음 밭에 전쟁이 일어나고 벼락이 치고 홍수가 나고 지진이 일어나야 개벽이 일어난다.
세상(코스모스, 몸과 마음)의 과정을 통해 길들어진 에고의 마음 밭은 이처럼 쉽게 개간되지 않는다. “현재 기록된 말씀들을 받아 지니기에 이 세상(우주)을 생각하면 결코 아니다.”로 해석하는 것이 원문에 가깝다.
라. 하나님의 말씀을 옛 시대나 지금이나 깨달아 소유하는 자가 없다고 하신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현재 깨달아 소유하는 자가 거의 없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자는 그때나 지금이나 거의 없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말이다. 모두 왜곡해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왜곡된 것은 하나님 말씀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적 그리스도)하는 것이다.
지금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것을 보면 끔찍할 정도다. 모두 내면이 아닌 몸 밖을 향해 있다. 모두 대상을 향하여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안에 하나님 말씀이 새겨지기를 원하신다.
내 안에 원래부터 있었던 보석(생명의 빛)이 발견되길 원하신다. 내면의 일이다. 모두 하나님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벗어나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쉬실 몸 된 처소가 없다 하신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에게서 오신 하나님이시다.
“하물며 벌레인 사람, 구더기인 인생이랴(욥 25:6)”
하나님이 세상(코스모스)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단독자)를 주셨으니, 하나님께 드려질 ‘코스모스’와 버림을 당할 ‘코스모스’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단독자)께서는 내면의 그리스도 예수를 영접할 ‘코스모스’를 위해 오셨다. 그 코스모스 안에 몸 된 성전을 세우시고 그 안에서 안식하기 위함이다.
생명의 빛과 그 안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