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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1-3절, 계시의 성격
[1절]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요한계시록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계시(啓示)이다. 요한계시록 22:16,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하게 하였노라.” 계시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그의 진리를 드러내 보여주시는 것을 말한다. 사도 바울이 받은 복음도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이었다. 갈라디아서 1:12,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사도 요한이 받아 요한계시록에 기록한 종말 예언은 하나님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이다.
이 계시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께 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옛날부터 자신의 모든 뜻을 계시하셨다(히 1:1-2). 하나님의 진리들은 하나님 자신께서만 계시하실 수 있다. 창조에 대한 진리도, 구원에 대한 진리도, 종말에 대한 진리도 그렇다. 종말 예언인 요한계시록은 하나님께서 계시해주신 하나님의 말씀, 즉 신적 권위의 말씀이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구별되신다. 삼위일체(三位一體)의 신비가 여기에 있다. 성경은 삼위(三位)[세 인격]의 구별을 하나님, 주 예수 그리스도, 성령, 혹은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영 등으로 표현한다. 예수께서는 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이시다. 그는 신성(神性)[신적 본질]과 인성(人性)[인적 본질]을 가진 한 인격이시다. 신성(神性)에 있어서 그는 아버지와 구별되시나 한 하나님이시다. 물론, 인성(人性)에 있어서 그는 하나님과 구별되신다.
이처럼 세 인격의 구별이 성경에 분명히 나타나 있고 그들의 관계성이 이해하기 어려운 신비에 속함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하는 까닭은 성경이 그의 신성에 대해 부정할 수 없게, 분명하게, 충분하게 증거하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요 1:1), ‘참 하나님’(요일 5:20), ‘크신 하나님’(딛 2:13)으로 불리셨고,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많은 기적들을 행하셨고(예컨대, 포도주 기적, 떡 기적, 나병, 중풍병 치료, 죽은 자들 살리심 등), 또한 하나님과 나란히 영광과 찬송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신다(계 5:13).
본문은 요한계시록의 내용이 “반드시 속히 될 일들”에 관한 것이라고 말한다. 요한계시록은 장차 반드시 있을 일들, 즉 종말 사건들에 관한 것이다. 그것들 속에는 대환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마지막 심판, 죽은 자들의 부활, 새 하늘과 새 땅 등이 포함된다. ‘반드시’라는 말은 계시된 내용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뜻이다. 종말 예언의 내용들은 진실하고 확실하다. 또한 ‘속히’라는 말은 하나님의 마음을 나타낸다. 요한계시록 22:7,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22: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 22:20,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본서의 계시 내용들은 반드시 속히 될 일들이다. 이 말씀을 주신 지 2천년이 지났다. 교회는 이 말씀대로 때가 가까움을 의식하며 살아왔다. 우리는 항상 종말의식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깨어 있는 태도이다. 사람 편에서 볼 때 하나님의 일이 더딘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작정하신 모든 일을 다 이루실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벧후 3:8).
계시의 목적은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즉 보이시기 위함이다. ‘그 종들’은 주의 사도들과 제자들을 가리킨다. 우리는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들이다. 로마서 1: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로마서 6:22,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요한계시록은 바로 하나님의 종된 우리 모두를 위한 책이다.
본서의 계시는 천사를 통해 그리고 요한을 통해 주어졌다(계 22:8). 또 그 방법은 상징으로 나타내시는 것이었다. ‘지시하신’이라는 원어(세마이노)는 본래 ‘상징으로 나타내다’(signify)(KJV)는 뜻이다. 요한계시록은 종말 사건들에 대한 상징적 예언의 책이다.
[2절]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느니라.
계시의 증거자는 사도 요한 자신이다. 요한은 자기가 받은 계시를 책으로 기록했다. 계시의 내용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계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주께서 친히 증거하신 진리이며, 사도 요한이 본 바이었다. 본서에는 ‘본다’는 말(에이돈)이 57회나 사용되었고, 그 중에 ‘또 내가 보니’라는 말(카이 에이돈)이 32회나 나온다. 요한은 많은 상징적 내용들을 환상 중에 보았다. ‘다 증거하였다’는 말은 요한이 기록한 본서가 하나님의 계시를 충분하게 기록하였음을 증거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충족한 말씀이다. 성경말씀은 우리를 온전케 하고 선한 일을 위하여 온전히 준비되게 한다(딤후 3:16-17). 그러므로 우리는 이 책에 무엇을 가감(加減)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계 22:18-19).
[3절]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성도들은 하나님의 계시의 내용을 읽고 듣고 지켜야 한다. 옛날에는 책이 귀하므로 한 사람이 읽고 나머지 사람들은 들었다. 그래서 읽는 자(단수명사)와 듣는 자들(복수명사)이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감사하게도 모든 사람이 누구나 원하면 마음껏 읽을 수 있고 또 들을 수도 있다. 우리는 성경을 많이 읽고 듣고 지켜야 한다. 지킨다는 말은 성경말씀을 보수(保守)하고 실천하는 것을 가리킨다. 우리는 성경말씀을 하나도 버리지 말고 다 보수하고 실천해야 한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은 복이 있다. 특히 계시록을 통한 복은 환난을 대비함과 인내와 위로의 복이고(13:10; 14:12) 성도가 환난과 죄악을 이겨 마침내 천국과 영생에 이르는 복이다(22:5, 17). 하나님의 특별계시의 책인 성경은 그것을 읽고 듣고 지키는 자들에게 참으로 복되다.
계시된 내용은 긴급한 일들이다. “[마지막] 때가 가깝다.” 성도에게는 항상 종말의식이 필요하다. 오늘날은 더욱 그러하다. 지구의 종말이 가깝다. 본서와 성경 다른 곳들에 예언된 세상 종말의 징조들인 많은 거짓 목사들의 출현, 교회들의 배교(背敎), 전쟁, 기근, 전염병, 지진, 핍박, 세계복음화 등이 이루어지고 있다. 자연계에도 자원 고갈, 환경 오염, 생태계 파괴, 오존층 파괴, 지구 온난화 현상 등 이상 징조들이 많이 나타나 있다. 세상의 종말이 가깝다고 본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이 계시의 책에 주목해야 한다. 요한계시록은 해석하기 어려운 책이지만, 우리가 덮어두어서는 안 될 중요한 책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요한계시록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내용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권위로 인쳐진 말씀인 이 책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둘째로, 요한계시록은 반드시 속히 될 일들에 관한 말씀이다. 이것은 종말 예언서이다. 우리는 세상 종말에 관해 이 책을 읽어야 한다.
셋째로, 요한계시록을 읽고 듣고 지키는 자가 복되다. 성경을 사랑하며 주야로 묵상하는 자는 복되며 큰 평안을 얻는다(시 1:1-3; 119:165). 요한계시록은 특히 장차 올 대환난에서 마귀를 대적할 믿음과 인내를 준비시키며 영광스럽고 복된 천국을 소망하고 위로를 얻게 한다.
4-8절, 문안과 송영
[4-5a절]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와 그 보좌 앞에 일곱 영과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사도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였다. 종말 예언의 계시인 본서는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의 형식으로 되어 있다. 여기에 아시아는 소아시아, 즉 지금의 터어키 지역을 가리킨다. 사도 요한은 먼저 삼위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평안이 그들에게 있기를 기원하였다.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는 영원 자존(永遠自存)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자신을 ‘스스로 있는 자’라고 계시하셨다(출 3:14). 하나님께서는 영원 전부터 스스로 계신 분이시다. ‘그 보좌 앞에 일곱 영들’은 성령을 가리키는데, 그것은 성령께서 여러 신들이라는 뜻이 아니고 그의 완전한 지혜와 지식의 영을 의미한다. 요한계시록 5:6, “[어린양의 일곱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는, 그의 충성된 증인 되심, 그의 부활, 땅의 임금들의 머리 되심을 언급하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참으로 충성된 증인이셨다. ‘증인’이라는 원어(말투스)는 ‘순교자’라는 뜻도 가진다. 충성된 증인은 죽기까지 모든 진리를 증거하는 자이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모든 뜻을 죽기까지 증거하신 충성된 증인이셨다. 또 그는 부활하셨고 지금도 살아계셔서 땅의 왕들의 머리가 되셨다. 그는 모든 교회의 머리이시며 온 세계의 정치가들의 머리이시다. 그는 만주의 주이시고 만왕의 왕이시다(계 17:14). 우리는 만주의 주이시며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섬긴다.
사도 요한은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평안이 그들에게 있기를 기원하였다. 은혜와 평안은 성도에게 참으로 복된 것이다. 은혜는 하나님의 구원의 호의와 사랑이다. 사람은 은혜를 받아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고 더 잘 믿을 수 있고 죄 안 짓고 바르게 살며 성화를 이룰 수 있다. 평안은 은혜의 결과이며 포괄적 의미를 가진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은 우선 마음의 평안을 가리키지만, 또한 몸의 건강과 일용할 양식과 가정적, 사회적 평안까지 포함한다. 그것은 현세의 평안뿐 아니라, 천국에서의 영원한 평안도 포함한다.
[5b-6절]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우리의 죄를 씻으시고]1)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며 대속의 피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얻었다. 이것은 죄인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랑의 기쁜 소식이었다. 죄는 인생의 근본 문제이다. 범죄한 사람은 누구나 죽으며 지옥에 던지움을 받아야 마땅하였다. 그러므로 사람은 죄씻음을 받아야 하고 죄와 지옥 형벌로부터 구원을 받아야 한다. 사람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의 대속 사역으로 죄씻음 받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구원이다.
성도는 또한 하나님의 나라와 제사장이 되었다. 베드로전서 2:9,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우리는 이 세상에 살지만 천국 백성이 되었다. 또 우리는 시시때때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담대히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간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씻어주시고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과 능력을 돌려야 한다.
[7절]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종말 예언의 중요한 내용이다. 예수님의 승천 시 구름이 그를 가리웠듯이 그의 재림 시에도 그는 구름과 함께 오실 것이다. 사도행전 1:9-11, “이 말씀을 마치시고 저희 보는 데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옷 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그의 재림은 눈으로 볼 수 있는 사건이다. 또 그의 재림 때에 기쁨과 감격의 눈물을 흘릴 자들도 있으나, 후회와 공포 속에 부르짖을 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하리라, 아멘”이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확실히 있을 것을 증거한다.
성도들은 이 땅의 것들을 소망하지 않는다. 이 땅의 것들은 잠시 있다가 없어질 것들이며 하나님의 심판의 날에 다 불탈 것이다. 그것들은 다 불 심판을 받을 것들이다. 우리의 소망과 기대는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것이다. 그가 다시 오시면 그는 이 세상을 새롭게 하실 것이다.
[8절]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주 하나님’이라는 말은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의 신약적 표현이다. 구약성경의 ‘여호와’는 신약성경에서 ‘주’라고 번역되어 있다. ‘알파와 오메가’는 헬라어 알파벳의 첫 글자와 끝 글자이다. 하나님께서는 역사의 시작과 끝이시다. 시작은 창조요 끝은 심판이다. 하나님께서는 창조의 하나님이시요 심판의 하나님이시다. 그는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자, 곧 영원자존자이시다. 그는 또한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모든 피조물은 제한적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렇지 않으시다. 그에게는 불가능한 일이 없으시다. 여기에 하나님과 모든 피조물들이 본질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하나님께서 영원자존하시며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에 하나님 안에 우주와 인생의 모든 질문의 답이 있다. 사람은 하나님 안에서만 참 평안과 안식을 얻을 수 있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평안을 받아야 한다.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로 구원을 받고 믿음을 지키고 성화를 이루며,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으로 이 죄와 시험이 많고 슬픔과 수고로움과 고난이 많은 세상을 잘 살 수 있다. 영원하신 하나님께서는 만복의 근원이시다.
둘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을 감사하며 그에게 합당한 영광을 돌려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못박혀 피흘려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속량하셨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죄들로 인해 죽어야 하고 지옥 형벌을 받아야 마땅한 자들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 대신 하나님의 독생자를 희생하셨다. 주께서는 마지막 유월절 식사 자리에서 포도즙 잔을 나누시며 “이것은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고 말씀하셨다(마 26:28). 우리는 그를 믿음으로 죄사함을 얻었고 천국 백성이 되었고 제사장들이 되었고(벧전 2:9) 담대히 하나님을 섬기게 되었다. 우리는 이 구원의 은혜를 늘 감사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소망하자.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주께서 친히 약속하셨고 성경이 밝히 증거한 복된 소망이다. 마태복음 24:30, “그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요한계시록 22:20,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약속을 굳게 붙들고 간절히 소망하자.
9-20절, 계시를 받은 경위
[9-11절]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그리스도]2)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3)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가로되 너 보는 것을 책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사도 요한은 자신을 성도들의 형제라고 말했다. 이것은 노사도의 겸손한 인품을 나타낸다. 교회의 직분자들은 겸손히 처신해야 한다. 그러나 성도들은 직분자들을 그의 직분 때문에 존중해야 한다. 사도 요한은 또 자신을 그리스도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고 말했다. 성도들에게는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받는 환난이 있다(마 16:24; 행 14:22; 딤후 3:12). 우리는 다 그 환난에 동참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또한 그의 나라와 참음에도 동참하는 자들이다. 환난이 있지만, 그의 나라도 있고 또 참으면 영광도 있다(딤후 2:12). 그것은 그의 십자가의 죽음 뒤에 부활과 승천이 있음과 같다.
사도 요한은 또 그가 하나님의 계시를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받았는지, 그가 계시를 받은 경위를 말한다. 그는 주의 날에 계시를 받았다. 그는 주의 날에 성령에 감동하여 뒤에서 나는 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었다. 부활하신 주께서 제자들에게 다시 나타나신 날도 주일이었고(요 20:19, 26), 성령께서 강림하신 날도 주일이었고(행 2:1; 레 23:15-16), 사도 요한이 계시를 받은 날도 주일이었다. 사도시대에 벌써 하나님께서 주일을 복된 날로 구별하시는 표들이 있었다.
사도 요한은 밧모섬에서 주의 계시를 받았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섬에 있었다. 전해진 말에 의하면, 그는 밧모섬에 유배를 당했고 거기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았다. 하나님께서는 이 계시를 받게 하기 위해 그를 밧모섬에 있게 하셨다.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어려운 일도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생기며 모든 일이 합하여 선을 이룬다(롬 8:28).
사도 요한은 그가 보는 내용을 책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일곱 교회에 보내라는 음성을 들었다. 그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이었다. 주 예수께서 요한이 본 내용을 책에 기록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진리를 더 잘 보관하고 전파하고 성도들로 하여금 믿음에 더 굳게 서고 더 큰 위로를 얻게 하기 위함이었다. 여기에 성경의 필요성과 목적이 있다. 기독교는 책의 종교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구원과 온전함을 위해 성경책을 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책을 사랑하고 가까이 하고 주야로 읽고 묵상해야 하며 그 교훈에 귀를 기울이고 실천해야 한다.
[12-16절] 몸을 돌이켜 나더러 말한 음성을 알아보려고 하여 돌이킬 때에 일곱 금촛대를 보았는데 촛대 사이에 인자(人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같고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그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 것 같더라.
사도 요한은 일곱 금촛대와 촛대 사이에 서신 영광스럽고 엄위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았다. 그가 본 첫 번째 내용은 일곱 금촛대이었다. 그것은 일곱 교회를 가리켰다. 교회는 금촛대와 같다. 하나님 앞에서 성도들은 존귀하고 교회는 영광스럽다(엡 5:26-27). 교회를 촛대로 묘사한 것은 그것의 사명을 보인다. 교회는 이 어두운 세상에 빛이 되어야 한다. 빛은 지식과 의와 선과 기쁨을 상징한다.
사도 요한이 본 두 번째 내용은 일곱 금촛대 사이에 계신 인자(人子) 같은 이이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은 상징적으로 묘사되었다. 그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계신 것은 그의 왕으로서의 영광과 위엄을 나타내시는 것 같다.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은 것은 그의 지극히 거룩하심을 나타내신다. 또 그의 눈이 불꽃같은 것은 그의 깊고 철저한 통찰력을 나타내시며, 그의 발이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은 것은 그의 심판의 권세를 나타내신다. 그의 음성이 많은 물소리와 같은 것은 그의 말씀의 큰 권위를 나타내신다.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는 것은 그가 교회들의 목사들을 붙드시고 사용하심을 나타낸다.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는 것은 사람의 영혼을 쪼개는 그의 예리한 말씀을 나타내신다. 그의 얼굴이 해가 힘있게 비취는 것 같은 것은 그의 크신 영광을 나타내신다. 십자가에 죽으셨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부활하셨고 40일 후에 승천하셨고 장차 재림하실 예수께서는 참으로 영화로우시고 엄위하시다. 그 영광의 주께서는 교회의 머리이시고 인류 역사를 주장하시는 분이시며 그의 재림 직전의 종말 사건들을 주관하시는 분이시다.
[17-20절] 내가 볼 때에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있도다. 아멘. 또]4)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그러므로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네 본 것은 내 오른손에 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금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사도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고 그 앞에 엎드러졌다. 주께서 자신을 처음이요 나중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그가 본질에 있어서 아버지와 하나이심을 증거한다. 하나님의 삼위일체 되심의 신비는 성경이 증거하는 기본적 진리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죽으셨으나 삼일 만에 부활하셨고 이제 영원히 살아계신 주님이시다. 뿐만 아니라, 그는 사망과 음부[지옥]의 열쇠를 가지고 계신다. 그는 죄인들을 사망과 지옥에서 건져내실 수 있는 구주이시다.
사도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들과 일곱 금촛대들과 ‘이제 있는 일’ 즉 당시의 교회들의 일들과 ‘장차 될 일’ 즉 교회 역사상 되어질 일들과 주님 재림 직전의 일들을 기록해야 했다. 일곱 교회는 세상에 있는 모든 시대의 교회들을 대표할 것이다. ‘일곱 별의 비밀’이라고 한 것은 목사들의 영적 상태와 충성의 정도를 교인들이 잘 모르고 주님만 아시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의 오른손에 있다. 그러므로 성도는 너무 염려하거나 너무 낙심해서는 안 된다. 그들을 주장하시는 이는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아야 한다. 우리는 그의 위엄과 거룩, 통찰력과 능력, 영원하심, 살아계심, 사망과 지옥의 열쇠를 가지심을 알아야 하고, 특히 그가 세상에 있는 모든 존귀한 교회들과, 별들과 같은 목사들을 주관하심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과 교회들을 주께 맡기며 기도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교회의 존귀함을 깨달아야 한다. 아시아의 일곱 교회들은 비록 부족이 없지 않지만 일곱 금촛대들로 간주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받은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는 구약시대 대제사장의 옷의 흉패와 견대에 있는 보석들처럼 하나님 앞에서 존귀하다. 우리는 그 사실을 깨닫고 교회를 귀히 여기고 또 잘 세워나가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특히 교회의 사명을 깨달아야 한다. 교회들은 촛대들로 표현되었다. 촛대는 빛을 비추는 기구이다. 주께서는 우리를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다(마 5:14). 그것은 우리의 선행을 교훈하신 것이다(마 5:16). 사도 바울은 우리의 구원의 목적이 선행이라고 말하였다(딛 2:14). 우리는 전도와 선행으로 지식과 의와 선의 빛을 비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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