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봉답사후기.hwp
전지모 경천동지 2015 네 번째 답사
도봉답사 - 비가 내렸다.
▪ 답사준비 및 안내 : 신화진, 최향임, 김선영 /사진: 박래광,최향임 / 글: 김선영
▪ 답사코스 : 창포원- 도봉구 음식물쓰레기 중간처리장 - 도봉산 입구 산악박물관 - 도봉서원터 및 도봉계곡 각석군- 버스 이동- 연산군묘- 정의공주묘역- 김수영 문학관
비가 왔다. 답사 내내 비가 왔다. 실로 오랜만에 만나는, 누구에게는 목숨같이 소중한 ‘꼭 내려야할 비’였다. 도봉 답사는 그렇게 반가운 비소식과 함께 시작되었다.
9시 정각, 14명 전원집합. 도봉산 역 바로 옆에 붙은 창포원에서 답사는 시작되었다. 창포원은 중랑천변의 습지였던 곳에 도봉구에서 온갖 종류의 창포(아이리스)를 심어놓은 곳이다. 한낮에는 워낙 땡볕이라 관람이 어렵지만 해뜨기 직전의 이른 아침이나, 저녁시간에는 동네 주민들이 선선한 바람 속에서 예쁜 수생식물들을 관찰하며 한 바퀴 산책을 하는, 그야말로 숨통을 트여주는 시원스런 공간이다. 이곳은 또한 서울 둘레길의 시작점이어서 둘레길을 찾는 순례자들이 첫발을 내딛는 곳이기도 하다. 둘레길 스탬프를 찾아 카드에 꾹 눌러 찍으며 언젠가 나도 둘레길 걸을 때가 있겠지 하며 다음 답사장소인 ‘도봉구 음식물 중간처리장’으로 발걸음을 서두른다.
도봉산역 근처에 위치한 도봉구 음식물 중간처리장은 도봉구에서 수집한 음식물 쓰레기를 여러 단계를 거쳐 처리하여 퇴비로 만드는 시설이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가동 되는데, 답사 준비 팀인 향임 샘과 화진 샘이 도봉구에 여러 번 견학 신청을 했으나 토요일은 관련 공무원이 출근하지 않기에 결국 견학 허가를 받지 못한 곳이다. 그냥 지나치기에는 아쉬움이 남아 정문까지 들어가 출입구에서 건물 사진을 찍고 입구에 설치된, 음식물 쓰레기를 실은 화물차의 무게를 측정하는 강철판에 답사원 모두가 올라가 무게를 확인하며 즐거워했다.
여기까지 와서 내부를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아쉬워하며 발걸음을 돌리려는 순간 쓰레기차가 들어가는 지하 통로가 눈앞에 보인다. 무작정 지하통로로 들어가 본다. 조금 들어가니 묘한 냄새가 짙게 깔리며 바로 음식물쓰레기 가공처리 시설과 여기서 근무하는 몇몇 분들이 보이고, 공장의 기계가 바쁘게 가동 중인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허락받지 못한 곳에 들어 왔기에 급히 사진 몇 장을 찍으며 설비 시설들을 재빠르게 눈으로 훑어보았다. 도봉구의 음식물 쓰레기는 아침에 이곳으로 실려와 수분을 제거하고 가루 형태의 퇴비로 가공된다. 이 처리 과정에서 가장 힘든 작업은 음식물 쓰레기에 들어있는 여러 가지 이물질을 제거하는 과정인데, 사람들이 역한 냄새를 견디며 일일이 손으로 뒤져서 제거해야하기에 상당히 어려운 작업이라고 한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릴 때 제대로 분류하여 버리는 것이 중요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1174034558F6B7208)
산림박물관으로 향해 도봉산 등산로 입구를 걸어 올라가는데 후드득 비가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빗방울이 갑자가 굵어진다. 실로 오랜 만에 보는 굵은 빗방울이다. 오늘 답사 진행이 만만치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스쳐지나간다. 급히 빗속을 뛰어 산림박물관 안으로 들어가 등반의 역사와 전시된 다양한 등반 장비를 구경하며 비가 잦아들길 기다려본다. 꽤 시간이 흘렀지만 비는 더 굵어지고 시간에 쫓기는 우리는 다음 답사지인 도봉산 ‘각석군(刻石群)’을 보기 위해 비를 뚫고 나선다.
산림 박물관 옆 개울가를 좀 내려가 계곡으로 진입하니 바위에 새겨진 글씨들이 보인다. ‘제일동천(第一洞天)’, ‘용주담(舂珠潭)’. 모두 도봉계곡의 빼어난 풍광을 표현한 글씨로 ‘용주담’은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이 마치 구슬이 방아를 찧는 것처럼 아름답다는 뜻이다. 좀 더 올라가니 쏟아지는 빗속으로 ‘필동암(必東岩)’의 ‘必’자가 선명히 보인다. 식물이 거의 없는 겨울에는 각석군의 글씨들을 좀 더 선명하게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오늘은 빗줄기가 거세게 내리고 바위도 미끄러워 더 이상 계곡을 올라 각석들을 찾아다니기는 어려울듯하다.
이곳에서 등산로를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조선 중기 때 세워진 도봉서원터가 있는데, 폭우 속을 뚫고 15분간 올라갔다 오기에는 다음 일정이 빡빡하여 발걸음을 돌린다. 도봉서원은 정암 조광조와 우암 송시열을 모신 서원으로 한양의 동쪽에서는 성균관 다음으로 큰 교육기관이었다는데 이렇게 경치 좋은 곳에서 동기들과 시와 서와 논어를 논하며 몸과 마음을 단련하며 수련할 기회를 갖는다는 것은 현대인인 우리 눈에는 참으로 부럽게 느껴진다. 꼭 와야 할 반가운 비이지만 오늘 답사의 일정은 조금씩 어그러진다. 우리 도봉답사 팀의 야심작은 도봉산 숲길을 40분 정도 걸으며 산림욕도 하고 더위도 피하며 숲의 서늘한 기운을 듬뿍 받는 것이었는데, 해설사와 시간 약속을 한 ‘연산군묘’와 ‘정의공주 묘역’ 일정을 맞추기 위해선 도봉 숲길 걷기도 포기할 수밖에 없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56DA038558F6CED16)
도봉계곡을 떠나 마을버스를 타고 방학동의 연산군묘로 향한다. 연산군묘의 문화유적 해설사님은 비가 많이 와서 아마도 우리가 오지 않았을 거라 생각하였다고 하며 반가운 눈빛으로 우리를 맞는다. 연산군은 여러 가지 기행과 폭정으로 신하들에 의해 쫓겨나 ‘연산군’으로 강등되어 임금의 묘인 ‘능’이 아니라 ‘대군’에 해당하는 ‘묘’에 묻힌 조선의 제10대 임금이다.
연산군 묘는 태종의 후궁이었던 의정궁주 조씨를 모신 좁은 터에 연산군 부부묘와 딸과 사위의 묘가 함께 조성되어있다. 왕의 능에서 볼 수 있는 홍살문이나 정자각, 무인석 등이 없이 문인석 2쌍과 상석, 장명등, 망주석 등이 무덤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지금은 어느 정도 정비를 해서 찾은 사람이 늘었다지만 얼마 전까지도 지나가는 사람들이 이곳이 무엇인지 모를 만큼 방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묘지의 전면이 답답하게 막혀있어 풍수적으로 좋은 터는 아니라고 하지만 묵묵히 600여년을 지켜온 방학동 은행나무를 저 앞쪽으로 마주하고 있어, 그리 쓸쓸하기만 한건 아니었을거라 생각해본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109A937558F6DD12F)
연산군묘에서 길하나만 건너면 ‘정의공주와 남편인 양효공 안맹담(安孟聃)의 묘역’이 자리하고 있다. 정의공주는 세종의 둘째딸로 문종의 누이동생이자 세조의 누나이며, 세종대왕이 한글(훈민정음)을 창제할 때 여러 가지 역할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묘역 안에는 남편 안맹담의 신도비가 입구에 놓여있는데 거북이 모양의 커다란 귀부에 세워진 신도비의 이수(비석의 윗부분)에는 두 마리 용이 여의주를 받들고 있는 모양이 새겨져 있다. 해설사님은 임금의 묘가 아니므로 아마도 용이 아니라 이무기를 표현했을 거라고 하신다.
어느덧 12시를 훌쩍 넘기며 이제는 빗방울이 훨씬 가늘어졌다. 마지막 답사 장소인 김수영 문학관은 연산군묘와 가까운 거리에 있다. 원래 방학동 동사무소 건물이었던 곳을 도봉구가 돈을 들여 외관을 바꾸고 내부를 개조하여 문학관으로 재탄생하게 된것이다. 안내원의 설명이 없었다면 처음부터 문학관으로 지어진 건물로 생각했을 정도로 내부구조와 전시실 배치에 짜임새가 있다.
김수영은 종로구에서 태어나 성장하였으며 결혼 후에는 마포로 분가하여 살았는데, 이곳 도봉구 창동 일대는 김수영 시인의 어머님과 본가 형제들이 살던 곳이다. 시인은 어머님이 거주하던 이곳을 자주 찾으며 작품 활동을 했으나, 도봉구에 김수영 생가가 있던 것도 아니고 결혼 후 직접 거주하며 생활하던 곳도 아닌 이곳에 김수영 문학관이 자리 잡게 된 것은 민선 도봉구청장의 김수영에 대한 팬심이 크게 작용하였다고 볼 수 있다.
오래된 다세대 주택과 붉은 벽돌에 세월의 때가 묻은 연립주택들이 옹기종기 들어선 골목 안쪽에 김수영 문학관은 자리 잡고 있다. 도봉구는 ‘도봉산’으로 유명하지만 한편으론 서울의 대표적인 서민층 밀집지역으로 알려졌기에 이곳에 김수영 문학관을 두었다는 것은 도봉구로선 참으로 잘한 일이리라. 김수영 문학관은 이곳 사람들에게 예술과 삶터는 멀지 않으며 일상의 노동 속에서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하는 귀한 공간일 것이다. 1층 전시실에는 김수영의 시집에 나온 문구들을 집자해서 만든 자석 판들이 빼곡히 벽에 붙어있다. 누구나 여기 있는 표현들을 이용하여 어구들을 이리저리 배열해보면 한편의 시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시인이 쓰던 식탁과 그가 읽던 책들, 육필 원고들이 전시되어있는데, 그 중 시인이 자신의 아들에게 쓴 글은 자식을 키우기 위해 애쓰는 부모의 솔직한 마음이 드러나 있어 시인과 우리가 다르지 않음을 느끼게 한다. 시인은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살아온 삶의 흔적들을 담은 강렬한 시를 우리에게 남기고 48세 한참의 나이에 예기치 못한 교통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마치 살아있는 듯 꿰뚫는 눈빛을 쏘아대는 시인의 사진이 전시실 벽에서 우리를 내려 본다. 현실에 단단히 발 딛고 살아야한다고 말하는 듯이….
![](https://t1.daumcdn.net/cfile/cafe/214D0A33558F700C26)
2시가 넘었다. 허기가 진다. 서둘러 이 동네 맛집인 ‘최고집 칼국수’에 들러 파전, 칼국수, 만두를 흡입한다. 비가 많이 와서인지 춥고 으슬으슬했는데 바지락을 듬뿍 넣은 칼국수 국물이 들어가니 몸이 편안해진다. 도봉에 와서 도봉산 옛길의 청신한 숲길을 걷지 못했으니 오늘 답사는 ‘상’이라고 평할 순 없지만, 고대하던 비를 우리가 몰고 온 것이니 결과적으로 좋은 날씨였던 것이리라. 사람들을 떠나보내고 이 동네에서 20여년을 살아오며 오늘 답사를 안내해준 향임 샘과 도봉산 등산로 입구에서 커피를 한잔하며 답사 후기를 나누었다. 도봉산 자락의 공기를 맛본 사람들은 이곳이 남들에겐 ‘있어 보이는’ 동네가 아닐지라도 여기를 떠나지 못할 것이라고, 그리고 도봉답사는 반일답사가 아니라 숲길을 3-4시간 걷는 코스가 꼭 포함되는 온종일 답사여야 이 지역의 참맛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그동안 살아온 서로의 삶의 이야기를 조끔씩 나누어가며 우리들의 점점 목소리는 점점 더 높아갔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22FFB35558F707003)
![](https://t1.daumcdn.net/cfile/cafe/2225DB36558F70F832)
첫댓글 잘 봤습니다. 언젠가는 동행할 날이 있을거라는 희망을 가지게 됩니다.^^
제 사진이 선영샘 글에 쓰이니 영광이네요.^^ 고생하셨습니다.
폭우 속에서도 좋은 사진 만들어 주신 박래광샘 덕분에 답사기를 채울수 있었어요^^
생생한 후기 감사합니다!! 덕분에 그날을 다시 되짚어 볼 수 있어습니다^^ 그나저나.. 마지막 차 한잔은... 저도 함께 할 것을 그랬어요 ㅜㅜ 아쉬워요~~~~ ㅠㅠ
그쵸 답사의 마무리는 뒷풀이인데 .. 담에 차한잔 같이해요!!!
예 그날 내린비도 추억이 되네요
정작 도봉구에 근무하면서도 잘 몰랐던 곳들을 알게되어 기쁨 두배
매번 새로운 답사에 감사
다음답사를 기대하며 또 한달을 기다립니다
선영샘 수고많으셨어요~~ 멋진후기 덕분에 답사경로가 한번에 복습이 되네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