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및 특징 1632년(인조10) 7월 8일에 仁祖가 魏廷喆에게 折衝將軍行忠武衛司果兼五衛將으로 임명하면서 발급한 문서이다. 절충장군은 정3품 西班 무관에게 주던 품계이고, 충무위사과는 조선시대 五衛에 속한 충무위의 정6품 무관직이다. 오위장은 조선시대 오위의 최고 지휘관으로 종2품 무관직이다. 품계가 관직보다 높으므로 行守法에 따라 관직 앞에 '行'자를 붙였다. 위정철의 字는 子吉, 號는 晩悔齋이고, 본관은 長興이다. 1583년에 태어나 1657년에 사망했다. 21세인 1603년 무과에 급제하여 僉使, 縣監, 府使, 防禦使 등을 역임하였다. 1627년 정묘호란 때 병조참판에 제수되고 왕명으로 심양에 다녀왔다. 1636년 병자호란 때 진군하였으나 講和 소식에 통곡하며 낙향하였다. 부인은 昌寧曺氏, 珍原朴氏, 穩城孟氏이다. 장흥위씨 판서공파조 위덕화의 아들이다. 1806년(순조6)에 향리 유생들의 발의로 竹川祠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