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화...이젠 우리 주변 이야기입니다.
지금 여러분 주위를 돌아보십시오. 뭐가 보입니까. 아마 텔레비전 오디오 등 전자제품, 현대적 디자인의 가구, 심미적 기능성이 강조된 생활용품 등일 것입니다.
그 생활환경 속에 있는 사람좀 볼까요? 돌아보지 마세요. 바로 여러분 이야기니까요. 입은 옷과 머리 스타일, 또는 매너에 이르기까지 철저히 현대화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나 제가 이 차림 이대로 홍콩이나 도쿄에 간다면 그 사람들과 다를 게 뭐가 있겠습니까. 그만큼 세계가 획일화 평준화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국수주의적 민족주의자들의 걱정이 대단합니다. 우리의 민족정기는 어디로 갔느냐. 민족주체성이 이렇게 침해되어서 되겠느냐 라는 것이지요. 민화 역시 그러한 우려의 대상에 속합니다. 전래 민화는 그나마 일본의 고단샤, 한국의 웅진출판 등에서 원본에 가까운 인쇄판으로 제작되어 있습니다마는 생활주변에서 민화의 흔적을 찾는 것은 매우 힘듭니다.
젖은 안주는 먹고 마른안주는 싸고...가 아니라 비싼 것은 빌리고 싼 것은 사고, 이도 저도 아닌 것은 사진을 찍으며 다닙니다. 세상이 온통 민화로 보입니다. 민화에서 파생되었거나 소재만 빌린 것, 동양화나 자수 등에서 공유하기도 합니다. 양초 술잔 골무 줄 타이 허리띠 장식 휴대거울 열쇠고리 세발까마귀 타이핀 우표 전철표 오디오 테입 CD 선전책자 표지 등입니다.
생각보다는 많고 예상보다는 적죠? 좀 큰 것을 봅시다.
그림1 군작군호도
群鵲群虎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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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호도
유리-벽사호랑이1.
작호도입니다. 떼거지로 몰려있습니다. 모양이 각각 다른 작호도를 여러 개 잇대어 그린 것입니다. “한국의 호랑이와 까치는 행복을 날라 드립니다 ”라고 쓰여 있습니다. 이게 어딘지 아시겠습니까? 세운상가 종로 쪽의 벽화입니다. 건물을 뜯어올 수가 없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삿짐을 나르는 회사로군요. 대개의 경우 이사는 보다 낳은 곳으로 옮겨감을 뜻합니다. 사실 그 반대의 경우가 되어서는 안 되겠지요. 그래서 이사를 갈 때는 마음속으로 빌게 됩니다. 이번에 이사 가는 곳은 보다 살기 좋은 곳이기를 바라는 것이지요.
이사 갈 때 어떤 것을 비십니까? 어떤 분은 공기가 맑은 곳으로 가고 싶어 합니다. 그린벨트라도 좋으니 뒷산과 앞개울이 있는 곳이 좋겠지요. 풍수지리에서는 명당이라 하지요. 또 어떤 분은 조용하게 살고 싶어 합니다. 짜증나는 장사치들 확성기 소리가 싫어 아파트로 가는 사람도 있겠지요.
이런 이사는 비교적 인간적입니다. 때로 운수 대통, 승진 등을 기원하여 이사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동북방으로 가면 귀인을 만날 것이니라 하고 점쟁이가 말하면 이사 가는 사람이 그러한 경우지요.
난 안 그렇다고요? 글쎄, 한국인이라면 아니라 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가 있었습니다. 그때 기적적으로 구조된 신세대가 화제가 되었습니다. 당시 많은 유가족이 구조된 사람들 부모가 앉았던 자리에 앉아보고자 줄을 섰습니다. 그 행운을 자신에게도 주십사 하는 기원이 담겨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경우에 그 자리에 앉지 않고 버티시겠습니까?
오늘날 우리의 피속에 혈통이나 전통의 이름으로 흐르고 있는 원형적인 것을 우리는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주변에 우리의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그림도 번잡한 종로통에 그려져 있어서 미처 그런 것이 있었는지도 몰랐다구요?
그럼 번잡하지 않은 곳에 있는 것을 하나 볼까요?
그림2 투각장생원
透刻長生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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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t1.daumcdn.net/cfile/cafe/99F8943359DD780125)
1문짝 2 울타리 3상품2.
어디인지 알겠습니까? 돈화문 입구입니다. 투각장생원으로 이름 붙였습니다. 투각이란 건너편이 보이도록 파 들어갔다는 뜻이고요. 원이란 울타리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장수 상징물이 새겨진 투각 울타리가 되는군요.
뭐가 새겨졌는지 볼까요? 사슴 소나무 영지버섯이군요. 이들은 십장생에 나오는 장수상징물들입니다. 십장생은 열 개의 장수상징물이 등장하는 우리나라 고유의 그림입니다. 한국적 원형을 담고 있습니다. 불로장수 신선사상 등입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오천년 이상 민족의 신화적 배경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중국이 한족의 천하가 되기 전에 우리의 선조인 동이족의 문화가 중국의 신화와 문화 사상 예술의 바탕을 만듭니다.
오늘날 동양정신이라 부르는 문물이 동이족의 원형에서 비롯합니다. 그러한 자존심과 민족적 정기를 담고 있는 것이 십장생도입니다. 요지연도 해학반도도 군선과해도 일월곤륜도 등이 모두 동이문화와 이 십장생과 연관이 있습니다.
알미늄 합금으로 만든 문짝과 울타리입니다. 내구성과 내산성 내열성 등이 뛰어나 최근 고급 주택건재로 사용됩니다. 거기에도 자랑스런 한국의 십장생 무늬가 들어갑니다. 글쎄 한국인이 아니더라도 이런 무늬는 정겹지 않습니까?
더욱이 그 뜻을 설명하여 세계무대에 내놓으면 더욱 많은 사랑을 받지 않을까요? 오래 살라는 덕담을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최근의 디자인은 다분히 이국정서를 강조합니다.
세계화라는 이름아래 지나치게 외래문물에 노출되어 있다고 걱정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현대적인 감각이 생소한 분들에게는 전통적인 것을 그대로 도입하더라도 훌륭한 조형물 하나를 보여드립니다.
그림3 3.십장생굴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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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장생굴뚝1 2 3
전화카드
우표 컵 필통 3.
경복궁 자경전에 있는 십장생 굴뚝입니다. 자경전은 조선말기 고종의 양모인 신정왕후가 거처하던 내전입니다. 고종 4년 1867년에 준공했습니다. 두 번 불에 탄 후 고종 23년에 완성됩니다.
십장생 굴뚝은 자경전의 뒤쪽에 있습니다. 십장생이라 하지만 일월운수 산석송죽 학록구지만 하더라도 열 둘입니다. 더하여 국화 연꽃 포도가 그려집니다. 주변에는 복의 상징인 박쥐, 벽사의 상징인 나티와 해태 불가사리가 그려집니다.
그런데도 십장생이라 하는 이유는 십장생의 주역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우리의 소박한 상징체계와 원형을 간직하고 오천년을 이어왔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민화와 연관된 것을 찾으라 한다면 십장생과 연관된 것들이 가장 많을 것입니다. 십장생이 한국인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는 의미가 됩니다. 왜 그럴까요? 십장생은 한국인의 것입니다. 한국에만 있습니다. 일본 중국은 물론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십장생은 없습니다.
한국어의 십은 경음화현상에 따라 성교를 뜻합니다. 자손, 아들을 낳아 대를 잇고 제사를 모시게 하겠다는 기원이 십장생에 담겨 있습니다. 십장생에는 천하제일산인 곤륜산을 무대로 중국의 상고시대를 휘저었던 동이족의 기상이 어려 있습니다. 동양사상의 큰 줄기인 신선사상의 원류인 서왕모의 신화가 배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한국인의 하늘사상이 서려있습니다. 그래서 십장생은 오늘도 우리 주변에서 가장 사랑받은 소재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십장생이 한국의 원형적인 것이라 했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그림들은 원형적인 것이 아닐까요? 민화는 민족적 원형을 간직한 민족정신이고 민족정기입니다.
마무리
호렵도
백동자도
작호도
소재와 상징으로서의 민화를 살펴보면 매우 의미심장한 함정이 발견됩니다. 먼저 민화의 소재는 중국에서 옵니다. 상징은 한자의 상징체계를 따릅니다. 많은 민화수집가 현장조사자들이 이 함정에 빠졌습니다.
호렵도는 청나라 무인들이 사냥하는 장면이고, 백동자도는 변발을 한 청나라 아이들 그림입니다. 작호도는 중국말의 희보, 기쁜소식을 그린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민화책은 한자풀이와 중국의 고사, 한시 화제를 해설하는 것으로 일관합니다.
민화수집가와 현장조사자들의 한계일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민화는 더욱 더 깊은 불신의 구렁에 빠지고 맙니다. 그 불신의 벽을 걷어냅니다. 호렵도는 조선무인들이 겨울사냥에 편리한 호복을 입고 사냥하는 그림입니다. 그 전통은 고구려 수렵벽화와 상고시대 암각화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백동자도는 청나라 아이들처럼 그려진 하늘나라 아기 씨앗을 그린 것입니다. 구중궁궐에 사는 상제는 동이족의 천제입니다.
작호도는 중국에서 까치와 표범입니다. 까치는 동이족의 문화원형인 신 시베리아 문화권의 조류신앙을 나타냅니다. 표범은 한국에서 한국인의 정기인 호랑이로 바뀝니다. 호랑이는 신선사상과 도가사상의 원류인 동이족의 신모 서왕모입니다.
한국인은 결코 중국의 상징을 의식없이 채용한 일이 없습니다. 결국 우리의 이야기로 바꾸고 맙니다. 그것이 오천년 이상 이나라를 지탱했던 동이문화의 자존심이었습니다.
민화를 다시 봅시다. 일본인이 잡담 끝에 붙인 이름도 바꾸고 중국기원의 모든 소재 상징을 동이문화와 한국정신으로 재해석합시다. 그것이 한국적인 것의 세계화 첫걸음입니다.
예고
우리 작가들은 민화를 어떻게 해석할까요?
21세기를 준비하는 젊은 의식들을 만나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