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전의 김국호 글입니다
광업진흥공사 태백 소장으로 근무하는 한 창희 덕분에 공대 출신 모임인 인암회 친구들과 함께 2001년 10월 27일 난생 처음으로 태백시를 방문할 기회를 가졌다.
토요일 오후 두시 서초 구청 주변은 혼잡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우리가 타고 갈 전세 버스를 찾지 못해 몇 명이 두리번 거리다가 길에서 마주쳤다.
시내 버스 정거장이 있어 앞 뒤로 전세 버스를 주차할 수 없는데도 억지로 주차하고 있다가 단속에 걸려서 밀려났다. 영식이가 인원을 체크하더니 거의 다 왔단다.
김 영식, 허 성강, 김 태호, 정 우택, 채 재우, 고 홍석, 김 인식, 이 창성 8명은 부부 동반 하고 김 상기, 김 성배, 김 국호, 김 웅기, 조 규석, 홍 영표는 혈혈 단신으로 참석하고, 민 동식은 동해에서 출발하고, 한 창희는 태백에서 손님 맞이할 준비를 하고 기다린단다.
경부고속도로와 영동고속도로를 거쳐 원주에서 중앙고속도로를 좀 타다가 제천에서부터 지방 고속도로를 타고 태백까지 달렸다.
부부동반 팀은 모두 앞좌석에 쌍쌍이 앉아 그동안 못해준 데이트에 열중이고, 홀애비들은 맥주와 소주 그리고 위스키까지 모두 세가지 술로 조둥이를 적시며 뭔가 무지 떠들며 왔는데 하나도 생각이 안난다.
좌우당간에 떠드는데는 규석이를 당할 자가 아무도 없다.
태백에 도착하니 한 창희가 기다리고 있다가 우리를 맞이한다. 도착하자마자 여장만 풀고는 바로 식당행. 계속해서 소주 파티가 계속 된다. 빈 병이 몇십개 되니 모두들 거나하게 취기가 돈다.
홍 영표는 술을 좀 마시니 영~ 표가 난다.
광업진흥공사 태백 기숙사는 나름대로 시설이 잘되어 있어 우리 모두 편안히 쉴 수 있었다. 기숙사에서는 마작패와 카-드패로 나뉘어 새벽까지 실력을 발휘했는데 술이 취해서 누가 일었는지 누가 땄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좀 땄다 !몇시간 눈을 부치고 아침에 해장술로 다시 목을 좀 추기니 취기가 슬슬 오르는 게 등산하는데는 안성맞춤인 듯.
태백산 입구에서 기념사진을 찍고는 계속 산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때아닌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려 모두들 일회용 우의를 걸쳤다.
나는 동네 뒷산쯤으로 생각하고는 남방셔츠 하나 달랑 입고 따라나섰는데 이것은 정말로 태백산에 대한 모독이었음을 뒤늦게 알고 엄청 후회를 하게된다
유일사 입구에서 출발한 초입부는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어 비교적 용이하게 따라갔다.
태백산(1567m)은 강원도 태백시에 있는 산이다. 태백산맥은 태백산에 유래한다. "동국여지승람"에 태백산은 신라의 오악 중 하나인 북악으로 하늘에 제사를 올리던 산이라고 기록되어 일찍부터 명산으로 여겨져 왔음을 알 수 있다. 한반도의 척추를 이루고 있는 태백산맥의 상징인 태백산은 금강산에서부터 내려온 태백산맥이 한번 웅장하게 용트림한 산이다. 태백산은 그 이름이 연상시키듯 크고 거대한 능선과 봉우리로 이루어진 육산일 뿐 아기자기한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산이다. 태백산은 현재 강원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고 태백시가 형성되면서 마치 남산이 서울의 산이듯이 태백산은 태백시의 산이 되다시피 되어있다.
일요일이 되면 가장 일반적인 산행코스인 당골-문수봉-천제단, 당골-천제단 코스는 태백시민들로 붐빈단다.
완만한 오름세를 보이는 울창한 숲속의 넓은 길을 따라 올라가면서 가을의 정취를 듬뿍 느낄 수 있었다.
초반에는 완만한 오름세 덕분에 피곤함도 잊고 소풍 온 기분으로 규석이 웅기와 함께 맨 앞장을 서서 걸었다. 하기사 나는 짐 하나 안지고 달랑 맨몸으로 왔으니 물이며 도시락 잔뜩 짊어진 우택이 그리고 영식이에 비하랴.
아니 그런데 제법 걸었는데도 계속해서 갈 길이 있으니 이거야 원 -_-;;.
목표가 천제단이라고 들었는데 눈앞에 산봉우리 위에 무슨 비석 같은 것이 보인다. 내심 아 이게 천제단인가보다 하고 안심하며 “태백산도 별것 아니군”하는 시건방진 생각과 함께 일단 안도를 하며 선발대로 올라오는 팀들을 기분좋게 기념촬영으로 맞이한다. 덕분에 산행에 앞장선 미인들과 사진을 찍는 영광을 누린다
그런데 이게 천제단이 아니란다. 천제단은 아직도 멀었다는 것이다.
산행시작한지 1시간을 넘으면서부터는 다리에 힘도 빠지고 숨도 가빠지기 시작했는데 숨을 가다듬으며 주변을 둘러 보니 간혹 전나무와 주목이 활엽수 숲 사이에 드문드문 서있는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 능선 숲들의 식생에서도 소나무보다는 떡깔나무며 단풍나무 등 일반적인 활엽수들이 대종을 이루는 양상을 보인다.
저만치 침엽수중에서도 귀족격인 주목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가슴은 조금씩 감동의 맥동을 시작한다. 태백산의 주목은 그 모양이 어느 산보다도 다양하고 기품 있게 생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만큼 환경이 혹독하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시각에 따라 죽은 줄로 알았던 주목이 다른 방향으로는 싱싱한 가지를 펼치고 있다. 둥치가 죽어 버리고 난 뒤 오래 진행된 풍화로 하여 붉은 색이 바위처럼 회백색으로 변하고 중동이 부러지고 찢어진 부분은 세월에 마멸되어 뭉툭해진 터에 자세히 보면 죽은 줄기사이로 미로같은 수맥을 찾아, 가지 하나가 허공으로 뻗어나와 있다. 태백산에 간다면 주목에 주목해야 한다. 그럴듯한 주목 앞에서 주먹을 불끈 쥐고 주목을 주목하는 장면을 기념으로 한 장 찍었다.
주목은 태백산의 고산으로서 풍모를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요소이다. 태백산엔 아름다운 주목이 어느 산보다도 많은 산이다. 살아서 천년 죽어서도 천년을 간다는 주목 덕분에 숨을 좀 고르며 쉴 수 있었는데 천제단은 아직도 멀었단다. 이제부터는 정말로 큰 일이다. 몸 안의 기운은 다 떨어져서 다리가 후들후들 떨린다.
초입부터 우리 옆을 바짝 따라오는 여자 분이 한 분 있다. 고 홍석이 부인이다. 등산을 자주 하시는지 등산화가 닳고 닳아 고풍스럽기까지 하다. (홍석아 다음달에 월급 받으면 부인께 꼭 새 등산화 한 켤래 사드려라). 이제 나는 지치고 지쳐서 규석이와 웅기를 따라갈 수가 없다. 드디어 홍석이 부인이 눈치를 채고 나를 휙 지나친다. -_-;;
바람이 점점 세게 불며 기온도 점차 내려간다. 일회용 비옷이라도 걸쳤으니 망정이지 달랑 남방 바람에 태백산을 오를 생각을 하다니 정말 나는 당해도 싸다는 생각을 한다.
이제 와서 뒤로 돌아 내려갈 수도 없고 이빨을 앙당 깨물고 걸음을 재촉한다. 이제 규석이 일행과 홍석이 부인도 안보인다.
능선을 따라 죽어라 발길을 재촉하니 다시 일행을 만난다. 아마도 규석이와 웅기가 나를 기다린 듯. 얼마나 남았냐고 물으니 다 왔단다. 다 왔다는 것이 아무리 걸어도 또 새로운 능선으로 연결된다.
얼마나 걸었을까 정말로 한발자국도 더 떼기 싫을 정도로 지쳤는데 작은 봉우리 정상 주변에 너덜지대가 나타난다. 너덜지대를 지나 저 앞에의 약간 높은 곳이 정상이란다.
정상에 위치한 천제단의 뒷부분이 시야에 들어온다.
갑자기 힘이 솟는다. 이제는 정말로 다 왔구나 하는 안도의 기쁨이 나에게 힘을 보태준 모양이다. “라스트 스퍼-트”라고 소리를 지르며 달리기 시작했다. 너덜지대이지만 사람들이 많이 다녀 안전한 길이 만들어져 있다.
거센 바람이 분다. 바람으로 인해 나무들의 모양은 자연스럽게 반대 방향으로 일그러져 있다.
이런 바람을 평생 맞으며 살아야 하는 나무들의 강인함에 존경을 표하며 계속 달려서 천제단이 있는 영봉에 드디어 일착으로 도착했다. 천제단에서 잠시 산신령께 문안을 올리고 뒤에 도착하는 친구들을 맞이했다.
도착하는 순서대로 태백산 비석 앞에서 천제단을 뒷 배경으로 기념 사진을 한 장씩 찍었다.
부지런한 사람들은 복이 있나니, 뒤에 오는 사람들은 찍어 줄 수가 없었음을 양지하시라.
남방 하나로는 거센 바람이 몰아치는 천제단 주변에서는 도무지 오래 머물 수가 없어 다시 규석이 웅기와 함께 당골 쪽으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이쪽은 올라 오던 곳과는 사뭇 지형이 다르다. 엄청 가파르고 계곡이 잘 형성되어 있어 물소리가 요란하다. 이 물이 태백시민의 식수원인지는 산을 다 내려와서 알았다.
마구 뛰어 내려오다가 문득 시계를 보니 12시다. 도시락 까먹자고 하자 만장일치 즉석 합의.
웅기의 배낭에 있던 임자 있는 도시락을 우선 차용해서 먹는다.
우연하게도 공중 변소 앞에 자리를 잡았는데도 밥맛은 꿀맛이다. 시장이 반찬인기라 마 !!!
내려오는 길은 급경사도 있었으나 당골에 가까워질수록 계곡미가 빼어난 계류가 산을 더욱 산답게 만든다. 계곡 왼쪽은 장군바위를 비롯한 암봉과 암벽이 계류를 따라 한동안 계속되어 육산으로 자리매김된 태백산의 전혀 다른 일면을 보여준다. 암봉이나 높다란 암벽위와 중간에는 소나무가 자리잡고 서서 골짜기를 내려다 보며 가지를 흔들고 있어서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하다.
태백산의 유일사 입구-천제단 영봉-당골 코스는 석탄 박물관을 끝으로 마감을 하고 석탄박물관 앞에 부속 건물로 자리한 휴게소에서 지친 다리를 쉬게 할 수 있었다.
장난기 짙은 규석이가 휴게소에서 파는 특이한 차를 두 잔 주문했다. 하나는 “황기차”이고 다른 하나는 “당귀차”인데 섞어 먹으면 무슨 맛이 날지 매우 궁금해한다. 섞으면 당연히 “황당기차”가 되니 물으나 마나 황당할 거라고 낄낄거리고 웃으며 피곤을 다소 누그러뜨린다. 쑥차와 뽕나무잎차도 맛이 특이하다.
태백산국립공원 입장권에 포함되어 있다는 석탄박물관을 관람했다. 석탄의 형성 과정을 지질학적으로 잘 설명하고 이제는 기억에서 사라진 한국의 석탄 산업의 족적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채탄 과장을 상세히 보여주는 등 나름대로 의미있는 박물관을 만들어 놓았다. 박물관 주변 경관도 대단하다. 70-80도가 넘는 경사도를 가진 우뚝 솟은 산으로 빙 둘러 쌓인 분지인데 단풍든 산의 아름다운 색깔이 한 폭의 그림이다. 여기에서 마지막 남은 한 장의 필림을 사용한다. 물론 선발대 3명이 함께 했다.
규석이는 역시 당차다. 무려 네 시간을 산행을 하고도 이제 몸이 좀 풀리는 것 같다고 하며 천제단에 한 번 더 가지 않겠냐고 제법 무리한 제의를 한다.
공원 입구에서 기다리는 버스에서 일행이 모두 모였다. 한 창희는 태백으로 돌아간다고 해서 버스 안에서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초반은 약속이나 한 듯이 잠에 빠져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눈을 떠 보니 아직도 강원도를 벗어나지는 못한 듯 높은 산길을 달리고 있다. 버스에서 차창 밖으로 내려다보는 정경도 모두가 그림이다.
여기저기 터널 공사가 한창이다. 아마도 몇 년 뒤에는 이런 산길로 다니지 않고 새로 만든 신작로를 달려 여러 개의 터널을 지나 태백에 쉽고도 안전하게 도착 할 수 있으리라.
다소 기운을 차린 규석이의 입방아가 시작되었고, 동네 남자는 몽땅 주변에 모여 중학교 시절과 고등학교 시절의 추억담으로 꽃을 피웠다.
영표는 어제 오늘 무리를 했는지 영~ 표가 나게 꿈쩍도 안하고 눈만 끔벅거린다.
코-스를 홍천으로 올라갔다가 다시 양평으로 내려오는 길을 택했다. 그 길이 빠르단다.
홍천 못 미쳐서 저녁을 먹었다. 1,000원짜리 소머리국밥을 5,000원 주고 먹었다. 물론 돈은 성배가 냈지만 돌아오는 길 내내 억울하다. 그나마 영표는 숟가락을 들었다가 그냥 내려놨다. 못 먹겠단다. 단단히 뭐가 잘 못된 모양이다.
맥주를 몇 깡 샀는데 먹는 사람이 별로 없어 거의 내가 다 먹었다.
규석이의 입담은 다시 시작되고, 천성이 조용한 나는 그저 듣기만 했다.
이렇게 빨리 우리는 서울에 도착했다.
동네 뒷산 가듯이 남방 바람에 천제단을 오를 수 있었고, 영식이가 용의주도하게 준비한 일회용 우의 덕에 몸을 보호할 수 있었고, 그래서 태백산의 정기를 온 몸 가득히 담아 올 수 있었던 아름다운 추억거리를 만들어 준 창희와 영식의 배려에 다시 한번 감사하며, 2001년 가을 멋진 주말을 보낼 수 있었음을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동참해 주신 사모님들께도 감사와 안부를 ^^
국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