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병이 나면
일본은 자본주의이고, 중국과 프랑스는 사회주의 나라이다. 중국은 혁명에 의해, 프랑스는 의회민주주의를 통해 사회주의 체제를 만들었다. 사회주의에 의한 복지에서 프랑스가 중국보다 앞선다. 프랑스 대학생은 무료로 공부하고, 중국 대학생은 돈을 낸다. 파리 사람들은 나라에서 제공하는 집에 살고, 소득이 낮거나 가족이 많으면 집세를 아주 적게 낸다. 북경 사람들은 세계 최고 가격의 집을 사야 살 수 있다.
1) 일본
일본에 있을 때에는 외국인 등록을 하고 건강보험에 가입했다. 건강보험료나 보험에 의한 병원 진료비가 한국의 3배 정도 되었다. 전기 요금도 3배 정도 되고, 교통비는 몇 배 되니, 의료비만 비싼 것은 아니다. 내가 받은 동경대학 교수의 월급이 한국 서울대학교 교수의 월급보다 조금 많아 일본인이 살기 어려운 것을 알 수 있었다. 선진국은 물가가 비싼 나라이다. 한국도 물가가 오르면서 선진국이 되어간다.
일본에는 병원 안내서가 있다. 병의 종류마다 가장 잘 치료하는 병원이 어딘지 순위를 밝히고 소개한 책이 여럿 있어 서로 경쟁이다. 그 가운데 제일 좋아 보이는 책을 사서, 순위와 위치를 고려해 일본여자대학 부속병원을 가장 적절한 병원을 정하고 아내가 류머티즘을 알아 매월 한 번씩 갔다. 예약한 시간에 가면 늦지 않게 진료를 하고, 조교수 井上(이노우에)라고 기억되는 담당의사가 친절하고 정중했다. 영어가 잘 통해 불편을 겪지 않았다.
한국의 강남성모병원에서 가지고 간 진료기록을 보이자 약을 하나하나 살피더니, 그 가운데 어떤 약은 눈에 해로워 일본에서는 쓰지 않는다고 했다. 벽에 류머티즘 약 붙여놓은 것들을 짚어가면서 설명했다. 약 그림도, 약을 짚어가면서 하는 설명도 한국에는 없는 것이다. 다음 순서의 예약까지 시간이 넉넉해 자세한 문답이 오고 갔다. 갈 때마다 증세를 자세하게 묻고, 좋아졌다면 의사의 얼굴이 환하게 밝았다. 비싼 의료비는 그만큼 가치가 있었다.
2) 중국
중국에서는 병원을 이용하지 않아 북경에 있을 때 중국인 교수가 해준 말을 적는다. 아이가 아파 병원에 가려면 의료보험을 담당하는 직장의 직원에게 말해 허락을 얻는 것이 첫째 절차이다. 진료비가 직장에서 지출되기 때문이다. 담당 직원은 증세에 관한 설명을 듣고 병원에 가야 하는지 판단해 허락을 하면서 병원을 지정해준다. 병원에서는 9시부터 진료를 하고, 7시부터 접수를 받고, 5시부터 접수 번호표를 받는다. 5시부터 나가 줄을 서 있어야 번호표를 받을 수 있다. 당일 진료 예정 인원을 초과하면 번호표를 받지 못하고 접수를 할 수 없다.
진료비를 환자가 부담하지 않고 소속 직장에서 내는 것이 자랑으로 삼는 사회주의 제도이다. 공인된 직장이 없으면 혜택에서 제외된다. 직장의 의료 예산이 한정되어 있어, 담당 직원이 상당한 재량권을 가진다. 환자는 늘어나도 병원이나 의사 수는 그대로이다. 의사는 진료 인원이 많으면 수입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므로 소정의 근무시간에 일정한 수의 환자만 본다. 공급이 수요를 따르지 못하는 심한 불균형을 시정하는 데 중국의 사회주의는 무력하다.
3) 프랑스
프랑스에서는 의사가 환자를 찾아다닌다. 파리에 있는 동안에, 여행을 하겠다고 뒤따라 온 딸이 한밤중에 아팠다. 숙소 근처 공중전화에 가서, 의사를 부르는 번호에다 그 곳 공중전화 번호를 누르고 기다리고 있으니 조금 있다가 의사가 왔다. 자기 차를 몰고 순찰을 하고 있는 의사 가운데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 호출 신호를 받고 오게 되어 있다. 국적을 불문하고, 프랑스에 간 이유를 묻지 않고 누구나 같은 혜택을 본다. 이것이 프랑스의 사회주의 의료 제도이다.
숙소로 들어가자고 하더니, 의사가 딸을 진찰하고 구급차를 불러주었다. 응급 진료 의사는 돈을 받지 않고 봉사한다고 했다. 구급차가 의사가 지시한 병원으로 딸을 데리고 가는 데 동행했다. 구급차 기사는 우리 돈 3만 원 정도의 차량 이용료는 내야 한다고 했다. 거의 비어 있는 응급실에서 의시와 간호사들이 딸을 열심히 치료해 이튿날 아침에 퇴원했다. 진료비가 얼마냐 하니, 진료비는 직접 받지 않고, 누구에게든지 우편으로 청구하게 되어 있으니 주소를 적어달라고 했다. 우리가 떠날 때까지 청구서가 오지 않아 진료비는 아직 미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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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물신생(物物新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