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민수기 14:28, 민수기13:25-33절, 민14:1-5
말하는 대로 된다!
우리는 인생에서 어떤 말을 하면서 살아야 할까요? 하나님 음성을 듣는 시간이 되기 바랍니다
민수기 14장 28절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하십니다. 우리가 말하는 대로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창조하십니다. 그리고, 구원도 말하는 대로 됩니다.
로마서 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말로써 구원에 이릅니다. 구원을 확증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조와 구원을 말로서 되게 하셨고, 그것보다 중요함이 적은 것들도 말하는 대로 되게 하셨습니다.
민수기 14장 28절에 너희 말대로 내가 되게 하리라...하심과 같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말하는 대로 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마가복음 11:2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믿고 말하고 의심하지 않으면 그대로 되리라...하십니다.
심지어 이름을 바꾸거나 별명을 바꾸어도 운명이 바뀝니다. 말이 바뀌니 운명이 바뀌기 때문입니다.
LA 다저스의 구단주였던 토미 라소다가 다저스 감독을 할 때 한 소심한 투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재능은 있었지만 너무 소심해서 정면승부를 잘 못 했습니다. 라소다 감독은 그의 재능을 어떻게 끌어올릴까 고민하다가 그에게 이런 별명을 붙여주었습니다. “불독!” 그 다음부터 계속 불독이라고 부르자 그 말대로 그는 소심함을 극복하고 대 투수가 되었습니다. 그 선수는 오렐 허사이져...1988년 월드시리즈 MVP 가 되었고, 나중에는 투수 박찬호의 정신적 스승이 되었습니다. 입술의 말은 사람의 운명을 바꿉니다.
내가 믿음의 말을 하고 긍정의 말을 하면 그 믿음과 긍정의 열매를 먹고 내가 부정적인 말을 하면...그 부정적인 열매를 먹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 믿음의 말씀 승리의 말씀, 섬김과 나눔과 봉사와 사랑과 각종 좋은 말들을 선포하고, 선하고 긍정적인 말들을 선포하고...우리 인생에서 좋은 열매로 배불리 먹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잠언 18:20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말미암아 배부르게 되나니 곧 그의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말미암아 만족하게 되느니라/
사람의 이름이나 별명을 바꾸면 그 사람의 운명이 바뀌는데, 그 사람의 생각과 말이 바뀌기 때문입니다.
이 방법은 하나님께서 자주 쓰시는 방법으로, 아브라함과 사라와...바울사도의 이름을 바꾸어 주셨습니다. 그 이름을 계속 부르고 듣게 하시고, 생각이 바뀌고/ 말이 바뀌고/ 운명이 말하는 대로 바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니이다” 라고 말하는 기드온 에게 너는 ‘큰 용사다’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의 인생을 크게 바꾸십니다.
드보라가 말합니다. 너는 가서 승리를 쟁취하라 바락에게 말합니다. 그런데, 바락이 불신의 말을 입 밖으로 내 뱉습니다. 그리고, 그 말한 대로 됩니다.
드보라가 사람을 보내어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에게 말합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령하지 않았느냐 너는 납달리 자손과 스불론 자손 만 명을 거느리고 다볼 산으로 가라/ 야빈의 군대 장관 시스라와 그의 병거들과 그의 무리를 기손 강으로 이끌어 그를 네 손에 넘겨 주리라...하나님께서 말씀하셨느니라...합니다.
그런데 바락이 의심이 듭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만일 당신이 나와 함께 가면 내가 가고... 만일 당신이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나도 가지 않겠다...합니다. 드보라...당신이 도와주면 내가 이기고, 아니면 내가 못 이긴다...말한 것입니다.
정말 말 한 대로 되었습니다. 여자인 드보라 당신이 도와주어야 내가 이긴다...말 한 대로 되는데, 드보라도, 바락의 믿음과 말하는 것과 꼭 같은 것을 말합니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가겠다...그러나 네가 이번에 가는 길에서는 영광을 얻지 못한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시스라를 여인의 손에 넘겨주실 것이다...합니다.
바락이 말 한 대로, 그리고 그 바락의 말을 받아서, 그대로 선포한 드보라의 말대로...시스라는 하벨의 아내, 야엘의 손에 죽임을 당합니다. 바락과 드보라의 말대로, 한 여인이 이스라엘의 원수, 적군의 사령관 시스라를 죽입니다.
우리가 믿는 대로 됩니다. 말하는 대로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선포하고, 승리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건강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성령충만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믿고 의심하지 않고 선포할 때 그대로 됩니다. 좋은 일이 일어납니다.
“당신이 생각하고 있는 말을 1만 번 이상 반복하면 당신은 그런 사람이 된다.” 아메리카 인디언 속담입니다. 말에는 ‘성취력’ 말하는 대로 되게 하는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에 우리 몸을 그렇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전문 뇌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뇌 세포 230억 개 중 98%가 말의 영향을 받는다고 합니다. 즉 뇌세포의 98%가 말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언어 중추신경이 모든 신경계를 다스리므로 ‘언어 치료법’도 개발되었습니다.
민수기 13장 2절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민수기13:2 사람을 보내어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하되...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자손에게...주신다...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정탐꾼 12명 중에서 10명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선포하는 대신, 그들의 눈에 보이는 현실을 선포합니다.
12명의 정탐꾼 중에서...10명이 부정적인 말을 합니다
첫째,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둘째,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셋째,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넷째,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다섯째,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았다...
눈에 보이는 어려운 상황들을 자꾸 이야기합니다.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다...맞습니다.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다...맞습니다.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다...정말 보았습니다.
그리고, 오래전 이야기도 아닌, 민수기 13장 2절에서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립니다.
하나님의 말씀, 승리의 말씀, 축복의 말씀, 부유하게 하고, 건강하게 하는 말씀,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말씀...그 말씀을 선포해야 되는데, 멸망한 그들은 반대의 말을 선포합니다.
첫째, 본문 31절에서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말합니다. 그리고 그대로 되었습니다.
32.절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라고 말합니다. 그대로 되었습니다. 이 말을 한 사람 모두가 40년 동안 땅에 쓰러져서 죽었습니다.
33.절에서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라고 말합니다. 이것도 그대로 됩니다. 실제로 그들이 가나안 산지로 올라갔다가 패배하고 호르마까지 도망했고 하찮은 메뚜기 같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부정적인 말, 불신앙의 말,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반대의 말을 하게 되면...슬픔도 덤으로 찾아옵니다.
민수기 14:1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더라/
민수기 14장 3절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이것도 말하는 대로 되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말하면서 살아야 하나요? 갈렙과 여호수아의 말을 해야 합니다.
민13:30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
민수기 13장 2절에서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에게 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먼 과거에 하신 말씀도 아닌데...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리면, 부정적인 말을 하게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갈렙과 여호수아와 같이...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선포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민수기 6장에서 말씀하십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우울증과 각종 정신병이 떠나게 하시고 평강을 주십니다...
이런 약속의 말씀을 믿고, 마음에 받아들이고, 선포하고 승리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말을 하면서 살라고 하셨나요?
요엘서 3장 10절입니다. 약한 자도 이르기를 나는 강하다 할지어다...
약한 사람은 나는 강하다...병든 사람은 나는 건강하다...가난한 사람은 나는 부유하다...말하라 하십니다. 믿음을 가지고, 원하는 좋은 것들을 선포하라...하십니다. 그러면 그대로 됩니다.
또,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레미야 1장 6절에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부르심, 선지자로의 부르심을 받고 이렇게 말합니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예레미야 1장 7절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말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너는 아이라고 말하지 마라...약한소리 하지 마라...부정적인 이야기 하지 마라...합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세례요한이 태어날 것을 그의 아버지 사가랴에게 예언합니다. 그 때 사가랴가 나는 나이들어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겠습니다. 나는 나이많다...안 된다. 못한다...부정적인 말을 하자...가브리엘 천사가 세례요한이 태어날 때 까지 말을 못 하게 벙어리가 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믿음의 말을 못 할 거면 부정적인 말이라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말을 하면 그대로 되기 때문입니다.
잠언 4:24 구부러진 말을 네 입에서 버리며 비뚤어진 말을 네 입술에서 멀리 하라
욕이나, 비방이나, 저주나, 모든 부정적인 말...구부러지고 비뚤어진 말을 네 입술에서 멀리하라...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대신 선한 말로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는 말을 매일 먹고 마시기를 바랍니다.
잠언 16:24 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
부정적이고 불신앙적이고 구부러지고 삐뚤어진 말을 하면 독약을 매일 먹는 것과 같습니다.
독약말고...몸에 좋고, 마음에 달고...뼈에 좋은 양약을 먹읍시다...할렐루야!
선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노암’은 문자적으로 ‘즐거움, 유쾌함’, ‘아름다움, 사랑스러움’, ‘친절’, ‘호의, 은혜’ 등을 의 미 합니다. 이런 말들을 하고...양약을 먹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좋은 약을 먹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잠언 18:21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혀 잘못 쓰면 죽는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반대로, 혀를 잘 쓰면 산다고 하십니다. 건강하게 된다고 하십니다. 좋은 일이 일어납니다.
우리 인생은 혀가 움직이는 대로 움직입니다. 혀는 우리 인생을 움직이는 방향타입니다.
야고보서 3장 4-5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써 사공의 뜻대로 운행하나니/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배를 방향타가 움직이듯이 혀가 우리의 인생을 움직입니다. 선한 말을 하고, 믿음의 말을 하고, 건강으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승리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축복으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천국으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창조의 원리입니다. 말씀은 구원의 원리입니다. 말은 인생의 방향타입니다. 말하는 대로 됩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좋으신 말씀, 믿음의 말씀을 선포하고, 좋은 열매를 많이 먹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먼저, 무너진 꿈을 회복하라!
창 37:1-12
시작하는 말씀
할렐루야!
오늘 아침에 여러분 어떻습니까?
저는 오늘 "비젼송"과 "영광송"을 하는 데, 하나님 나 같 은 인생을 이와 같이 영광스런 예배 의 자리에 불러 주시다니요, 나 같 은 미천한 인생을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이렇게 예배드릴 수 있게 하시 다니요, 정말 복받치는 감격이 제게 있었습니다.
여러분, 조금 힘들어도, 예배가 살아 있으면, 주님이 기뻐하 시는 귀한 이 제단위에서 여러분들, 예배로 여러분들의 삶을 제물로 드 릴 수만 있으면, 웬만한 땅의 어려 움과 저주가 물러갈 줄 믿습니다.
그런 마음의 소원을 가지시기 바랍 니다.
조금 힘들고 어려워도, 예수님 때문에, 예배의 은혜 때문에, 기뻐하 고 감사하기로 결심해 버리면,
반드시 우리의 인생의 한계를 뛰어넘는 축복을 주님이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은 독특한 "Mechanism(조직)"이 있습니다. 그 것이 뭐냐 하면, 여러분 가정이 잘 되고, 자식이 잘 되고, 내 인생이 편 하기만 하다고 해서, 절대로 우리는 만족하지 못 합니다. 우리의 인생은 영적인 존재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시는 "분복(타고난 복)"이 있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예배의 영광을 체험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이 하나님의 은혜로 Touch를 받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오늘 정말 살아계신 예배를 드리고 가시기를 바라고, 말 씀 하나도 그냥 흘러 버리지 마시 고, 이 말씀이 여러분들의 삶 속에 어떻게 역사하실 것을 기대하면서, 말씀 하나가 우리의 삶을 치유하실 것을 기대하면서, 오늘 이 예배의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섬길수록 더 귀한 주님:주 내 맘에 오신 후에 주 날 인도하시네, 주께 내 맘 드린 후에 더욱 섬길수록 더 귀한 주님, 더욱 섬길수록 더 귀한 주님, 더욱 사랑할수록 주 날 사랑 해, 매일 내 맘에 기쁨이 넘치네, 더 욱 섬길수록 더 귀한 주님)' 이란 찬송을 이 시간 함께 하시면서, 하 나님, 내 인생을 나의 예수 믿는 이 은혜가, 가면 갈수록 더 은혜가 있 게 하여 주시옵소서! 한 때 자라는 것 말고, 끝까지 은혜 있게 하시고, 가정 생활도 주님 보시기에 끝까지 더 은혜롭게 감당하게 하시고, 그 야말로 우리의 신앙 생활, 예배 생 활, 주님을 섬기는 것이 가면 갈수 록 더 은혜 있게 하셔서, 우리의 진 정한 고백으로 "섬길수록 더 귀한 주님"이라고 주님 앞에 우리의 삶을 의탁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사 랑하는 여러분, 우리들 모두는 태평 양을 건너 올 때에 꿈을 가지고 왔 습니다. 우리가 살던 곳에서, 거기가 한국이든지, 혹은 과거에 우리가 유럽, 중동, 남미, 호주 등 어떤 곳 에 살았든지에 상관 없이, 일단 태 평양을 건너서, 대서양을 건너서, 미 국에 왔을 때는, 꿈을 가지고 왔습 니다. 과거에 살았던 것보다는 조금 더 낫게 살아야 되겠다는 기대를 가 지고,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입니 다.
'아멘' 입니까? 그 마음의 소 원을 가지고, 오늘 이 'Message'를 들어 주십시오! 그리고, 과거에 살 았던 인생보다도, 더 귀하게 살기를 원하신다면, 우리에게는 좋은 방법 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뭐냐 하 면, 우리 앞에 귀한 신앙의 'Model' 을 하나 정하는 것입니다. 신앙의 'Role Model'을 하나 정하고, 그 분 이 살았던 발자취를 걸어가는 것입 니다. 여러분, '부흥'이란 것이 무엇 입니까? '부흥'은 'Revival'입니다. 'Revival'이란 것은 과거에 있었던 은혜를 재현하는 것입니다. 사전 전 의 역사를 부흥하기 원한다면, 사전 전에 나타났던, 그 부흥의 원리와 능력과 발자취를 다시 한번, 우리가 재현하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앞에 는 귀한 신앙의 선배들이 구름 떼와 같이 증거 되고 있고, 달려 갔습니 다. 특별히 여러분, 과거에 하나님의 사람으로, 가장 멋있게 살았던 사람 들은 대부분, '이민자'였습니다. 할 렐루야!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처 럼, 이민자가 어디에 있었습니까? ' 야곱'도 이민자였습니다. 여러분들이 존경하고 사랑하는, 성 경에서 가장 Perfect한, 흠 없이 살 았던 '다니엘'은 참으로 '이민자'의 삶을 어릴 때부터 살았습니다. 신앙 의 위대한 선배였던 '바울'도 '이민 자'였습니다. 무엇 보다도, 오늘 우 리가 10여주에 걸쳐서 말씀을 전하 려고 하는 이 '요셉'은 이민자의 표 상(대표적인 상징)입니다. 그래서, 이 '요셉'이 살았던 삶의 자취를 우 리가 뚜벅뚜벅 걸어 가고, 적용하기 만 하면, '요셉'이 가졌던, 그 분복 과 은혜와 영감과 능력을 우리 모두 가 다 누릴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 다. 성경을 크게 요약하면, '구원의 역사'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그러 나, 조금 더 다른 차원에서 보면, ' 하나님께서 사람을 어떻게 다루시느 냐?에 대한 Story'라고 말 할 수가 있습니다. 저는 이 '요셉 시리즈'를 준비하면서, 제 마음속에 "하나님, 나를 다루어 주십시오! 담임 목사 가 말씀을 오랫동안 준비하고, 계획 을 했습니다만, 주여, 이 말씀을 통 하여, 제가 먼저 영향 받게 하시고, 이 말씀을 통하여 제 삶 속에 부흥 이 일어나게 하시고, 이 말씀을 통 하여 제 삶이 먼저 바뀌게 하여 주 시옵소서. 새 천년의 시간의 공간 속에 우리의 성도들이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이 말씀에 영향을 받고, 하나님이 요셉을 다루는 그 흔적을 가지고, 그 흔적의 손길을 우리의 삶에 재현하므로 말미암아 오늘 우 리 교회의 성도들이 한 분도 예외 없이, 심령과, 가정과, 자녀들과, 남 은 여생 속에 진실된 부흥이 일어나 게 하여 주시옵소서!"라는 마음의 간절한 소원이 있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다루신 흔적이었 습니다만, 조금 더 깊이 들어 가면, 성경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 속에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약속의 말 씀을 어떻게 이루셨는지에 대한 행 적'이라고도 말 할 수 있는 것입니 다.
1. 자수성가(自手成家)가 아니라 (신수성가: 神手成家 )이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요셉은 하나 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은 사람이었 습니다. 주님의 손길이 끊임없이 그 의 삶을 인도하고 살았습니다. '자 수성가'가 아니라, '신수성가'의 사 람이었습니다. 여러분, '신수성가'라 는 말은 제가 '조어'로 지어낸 것입 니다. 자기 자신은 노예, 죄수, 팔린 몸이었으며, 아무것도 없던 인생이 었지만, 하나님의 손으로 최고의 위 치까지 올라간 '신수성가'의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신수성가'는 하나 님의 손으로 일가를 이루었다는 뜻 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나 여러 분은 오늘 이 자리에 '자수성가'가 아닌, '신수성가'를 하려고 이 자리 에 왔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 아니고서는 하루도 살 수 없다고 믿고, 이 자리에 온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의 건축과 부 흥도 '자수성가'가 아니라, '신수성 가'로 이루어 주셨다고 믿습니다.
창 50:20
"당신들은 나를 해하 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 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 게 하시려 하셨나니"
음모, 고통, 질시, 질투, 공격, 상처 등 이 모든 해로움을 하나님은 선으 로 바꾸셨습니다. 요셉의 삶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그가 당대 최대의 제국인 애굽의 총리가 된 후에 그를 판 형제들 앞에서 '창 50:20'을 통 해 하나님이 자기의 생애를 주관하 신 것을 고백했습니다. 이것을 기독 교적 전문용어로, '하나님의 주권'이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이 강력하게 펼쳐진 인생, 하나 님의 주권을 믿고 의지하는 생애, 하나님께서 악한 일들조차도 사용하 셔서, 선으로 바꾸신 것을 고백한 인생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나 여러분이나, 우리 교회의 남은 여생 을 과연 주관하심을 믿을 수 있겠는 가?'하는 이 것이 일관된 우리의 태 도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롬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 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 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 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모두는 이 우주 공간 속에 버려진 우연한 존재 가 아닙니다. 우리는 비인격적이고 도 눈 먼 어떤 우연한 힘에 의해서, 밀려다니도록 내팽개쳐진 외로운 존 재가 아닙니다. 예수 믿고 구원 받 은 하나님의 백성은 그리스도의 피 값만큼 귀한 존재임을 믿으시기 바 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적 보 호하심의 대상인 것입니다. 오늘 성 령님을 통해서 이 귀한 사상으로, 말씀으로 정말로 무장될 수 있도록, 그렇게 은혜만 주신다면, 우리 가운 데 있는 어떤 비참함, 좌절, 상처, 위장된 분노와 무너진 꿈도 주님이 회복해 주실 것입니다. 요셉은 무너 질 수 밖에 없는 억울한 상황에서도 너무나도 놀랍게 하나님의 신실한 인도를 받았습니다. 심지어, 하나님 을 모르는 애굽의 바로왕에게조차도 당당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창 41:38
"바로가 그 신하들에 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신에 감동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얻을 수 있으리요 하고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면, 이와 같이 예수 안 믿는 사람들도 '나도 예수 믿으면, 당신처럼 영적으로 성공하 고, 은혜 받고, 변화된 삶을 살 수 있겠는가?'라고 물어볼 수 있을 정 도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은혜 받는 존재로 바꾸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 래서 오늘 우리는 무너질 수 밖에 없던 인생인 요셉을 하나님이 어떻 게 다루셨는지를 구체적으로 보면 서, 영적인 진리와 유익을 발견하기 를 바랍니다. I. 요셉의 배경 창세기 37장 본문에는 요셉이 17세 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요셉 이 형들의 질시를 당하면서, 형들에 게 배신을 당하고, 조금 후에 팔리 게 되는 비참하고도, 비극적인 상황 이 펼쳐집니다. 그래서 요셉은 나이 가 어릴 때부터, 슬픔과 비극을 어 떤 식으로 Handling하는 지를 하나 님께로부터 배웠습니다. 먼저 그의 가족적인 배경을 보면, 우리의 생각처럼 화려하거나, 대단 히 축복된 것만으로 이어진 것은 아 닙니다. 쉽게 무너질 수도 있는 그 런 가족의 배경을 가지고 있었습니 다. 1) ( 부 모 ) 창 27:36
"에서가 가로되 그의 이름 을 야곱이라 함이 합당치 아니하니 이까 그가 나를 속임이 이것이 두 번째니이다 전에는 나의 장자의 명 분을 빼앗고 이제는 내 복을 빼앗았 나이다 또 가로되 아버지께서 나를 위하여 빌 복을 남기지 아니하셨나 이까"
요셉의 아버지는 '사기꾼'이었습니 다. 어릴 때부터 요셉은 '목표를 위 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기꾼 같은 아버지'의 모습을 보아 왔습니다. 요셉은 어릴 때 어머니를 여의었습니다. 동생 베냐민을 낳다 가 어머니 라헬이 죽었습니다. 10대 초반에 어머니를 여의었습니다. 야 곱은 이 속이는 것 때문에 밧단 아 람이라는 하란 땅의 외삼촌의 집에 도망가서 아주 연극이나 소설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아내가 둘, 첩이 둘, 그리고, 아들 11명에 딸 1명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외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사이가 썩 좋지 않았습니 다. 갈등 구조 가운데 어릴 때, 아버 지가 어떤 삶을 사는 지를 보게 되 었습니다. 2) ( 상 처 ) 받을 수 있는 환경 창 31:17-20
"야곱이 일어나 자식 들과 아내들을 약대들에게 태우고 그 얻은 바 모든 짐승과 모든 소유 물 곧 그가 밧단 아람에서 얻은 짐 승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있는 그 아비 이삭에게로 가려할 새 때에 라 반이 양털을 깍으러 갔으므로 라헬 은 그 아비의 드라빔을 도적질하고 야곱은 그 거취를 아람 사람 라반에 게 고하지 않고 가만히 떠났더라"
요셉의 첫 상처는, 그 아버지가 최 소한 15년 이상을 함께 살았던 장인 어른과 마지막 결별의 장면이 야반 도주였다는 겁니다. 사랑했던 외할 아버지에게 인사도 하지 못하고 야 반도주를 할 때, 아마 보통 사람이 라면 큰 상처를 받았을 것입니다. 창 32:7-8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 답하여 자기와 함께 한 종자와 양과 소와 약대를 두 떼로 나누고 가로되 에서가 와서 한 떼를 치면 남은 한 떼는 피하리라 하고"
형 에서에 대한 공포스러움을 기억 한 채 대화하는 그 아버지와 어머니 의 힘들어하는 얘기들을 어릴 때 들 었습니다. 꼭 화려하고 거창한 삶의 기억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창 34:25
"제 삼일에 미쳐 그들이 고통할 때에 야곱의 두 아들 디나의 오라비 시므온과 레위가 각기 칼을 가지고 가서 부지 중에 성을 엄습하 여 그 모든 남자를 죽이고"
요셉의 이복 누나인 디나가 세겜에 서 그 족장의 아들에게 성폭행을 당 했고, 디나의 친 오라비인 시므온과 레위가 견딜 수가 없어서, 음모를 꾸며서, 그 사람들이 할례를 행하고 고통스러워할 때 찾아가서 남자들을 다 죽여버렸습니다. 칼날을 번뜩이면서, 눈알을 휘번뜩 거리며, 사람을 죽이겠다고, 모진 입 을 아물고, 칼날에 피를 묻히고, 쫓 아 다니는 그 형들을 보면서, 요셉 은 어쩌면 보통 사람이었다면, 말로 다 할 수 없는 상처를 받았을 지 모 릅니다. 더구나 요셉은 사랑하는 어 머니를 일찍 여의게 되었습니다. 창 35:29
"이삭이 나이 많고 늙어 기운이 진하매 죽어 자기 열조에게 로 돌아가니 그 아들 에서와 야곱이 그를 장사하였더라"
그리고, 가장 가슴 아팠던 일은 어 머니 라헬보다도 더 오래 살았던, 할아버지 이삭이었습니다. 요셉이 용서의 사람이 된 것이 결코 우연히 된 것이 아닙니다. 요셉과 형들, 그리고 동생 베냐민과도 나이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요셉이 이삭의 품에 안겨서 늘 많은 영적인 교훈을 받았을 지 모릅니다. 온유하고, 사람을 품으며, 용서하는 이삭의 삶을 통하여, 요셉이 따뜻한 온기로 이삭의 가슴이 아마 요셉에 게로 옮겨져 왔는지 모릅니다.
창 37:4
"그 형들이 아비가 형제 들보다 그를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 워하여 그에게 언사가 불평하였더라"
야곱의 잘못된 가족의 어떤 유전적 인자는 '자식편애'였습니다. 야곱의 어머니 리브가가 에서보다도 야곱을 편애했는데, 그 편애의 자취가 야곱 에게 남아서, 아마 야곱이 요셉만 사랑한 것 같습니다. 물론, 가장 사 랑했던, 그리고 먼저 죽은 아내가 낳았던 아들이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 요셉을 야곱이 너 무나도 아꼈고, 편애를 했습니다. 이 편애 때문에 형들이 요셉을 시기하 고 질투하며 '왕따'를 한 것입니다. 17세의 나이에 가족들의 이 거친 환 경을 자기가 삶으로 체득해 왔고, 경험했고, 형들에게 '왕따'를 당했으 면서도, 낙심하거나 인생을 한탄하 면서 살지않고, 요셉은 놀라운 교훈 을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II. ( 무너진 ) 꿈을 어떻게 ( 회복 ) 할까? 오늘도 이 말씀을 그대로 믿기만 하 면, 이 부흥의 역사가 우리에게 재 현될 수 있습니다. 요셉은 어떤 면 에서 진흙탕 속에서 아름다운 꽃을 피운 것과 같고, 쓰레기통의 장미가 될 수가 있었는데, 그 비결이 무엇 인가? 1) 문제를 통해서 ( 교훈 )을 받아 야! 모든 문제를 문제로 삼고 끝내지 말 고, 거기서 교훈을 받아야 하는 것 입니다. 창 31:55
"라반이 아침에 일찍이 일 어나 손자들과 딸들에게 입맞추며 그들에게 축복하고 떠나 고향으로 돌아갔더라"
라반이 야곱을 좇아 와서 책망을 했 고, 사위는 못마땅했지만, 딸들과 손 자들에게 축복했습니다. 여기에서 요셉이 나름대로, 감동을 받았을 것 입니다. 야반도주를 해도 축복해야 할 사람은 축복해야 하겠구나! 또, 큰 아버지 에서를 두려운 마음 으로 만나는 아버지 야곱을 본 요셉 은, 정직하게 살아야 되겠구나!하고 정직의 중요성을 배웠을 것입니다. 정직하게 살면, 결과를 두려워할 필 요가 없는데, 아버지가 정직하게 살 지 못했기 때문에, 저렇게 결과를 두려워하는 구나!라고 생각했을 것 입니다. 또 34장에서 디나의 사건을 통하여 자기 형들의 잔인한 복수를 보면서, 잔인한 복수는 한 때의 잠 시 육신의 쾌감이 있을 지는 모르지 만, 가문의 위신이 실추되는 것과 생명의 존재까지도 위태로운 경험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훗날 이것이 그로 하여금, '용서의 사람'으로 일조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을 것입니다. 세겜의 복수사건 이후에 야곱이 정신차리고, 벧엘에 서 이방신상을 제거하는 사건들을 보면서, 아버지가 젊었을 때 벧엘에 서 하나님과 약속한 것을 지키지 않 다가, 나중에야 정신차리고 기억하 는 것을 보고, '인생은 우선 순위를 바로 하고 살아야 하겠구나'라는 것 을 깨달았습니다. 어떤 값을 치루더 라도, 하나님과의 관계는 올바르게 되어야겠다고 믿었습니다. 그것이 요셉에게는 큰 교훈이 되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저와 여러분들 이 우리가 예상하지 않던, 어려움과 문제와 실패가 있더라도, 꼭 그것을 직접 경험을 하지않더라도, 요셉도 다 자기가 경험한 것 아니지요. 형 들이 잘못한 것이 있고, 아버지가 잘못했지만, 남들의 간접경험을 통 하여 놀라운 교훈을 받아들이는 것 입니다. 이러한 교훈을 평생 받을 수 있도록 영안을 열어 주시기를 바 랍니다. 2) 압박과 ( 미움 )을 껴 안아야!
창 37:4
"그 형들이 아비가 형제들 보다 그를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 하여 그에게 언사가 불평하였더라"
요셉은 압박과 미움, 질투, 편애를 껴안았습니다. 아버지의 편애와 형 들의 질투와 거부 때문에 생기는 압 박을 올바르게 껴안으므로 그의 인 격을 세워나갔습니다. 그도 Teenager로서, 형들로부터 미움을 받았을 때 왜 좌절의 감정이 없었겠 습니까? 그 예민한 사춘기시절의 당 하는 고통이 컸을 것입니다. 요즘 아이들 같으면 '왕따' 당하는 괴로 움 때문에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괴로워했을 것입니다. 여러분, 질투 와 미움은 인생의 큰 괴물입니다. 우리 모두를 산 채로 삼킬 수 있는 독약이 되는 것입니다. 고대 그리스 의 어떤 역사학자는 어떤 도시의 중 요한 자리에 세워져 있는 한 운동 선수의 조각상에 대해서 이렇게 말 했습니다. 그 조각상으로 세워진 운 동선수에게는 경쟁자가 있습니다. 비슷한 실력가였는데, 그 경쟁자의 조각상은 없고, 이 사람만 조각상을 세워주었습니다. 그래서, 경쟁자였던 운동선수가, 질투 때문에 그것을 없 애려고, 조각상의 기초를 망치로 까 부수기 시작했고, 끝내는 그 조각상 을 무너뜨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무너지는 조각상이 그를 덮쳤고, 쳐 죽이고 말았습니다. 형들에게 배반 당하고, 팔리게 된 요셉의 심정이야 말로 우리가 이해할 수 없을 정도 로, 극도의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감정의 고통 뿐만 아 니라, 육신의 고통까지도 동시에 받 았습니다. 구덩이에 던져지고, 감옥 에 팔리우고, 감옥에서 빠져 나올 수 없는 그런 고통까지도 겪었습니 다. 성경의 많은 인물들에게 고통이 나 압박을 면제시키지 않고, 하나님 께서 그대로 두신 이유는 그것을 통 해서 하나님께서 진짜 중요한 것을 부어주실 때, 그것을 감당할 만한 인격의 그릇으로 성숙시키시기 위해 서 하시는 하나님의 변함없는 진리 인 것을 믿으십시오! 여러분, 고통 이나 배신을 당할 때, 복수심이나 질투심의 쓴 뿌리가 없어야, 인격이 세워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민생 활을 하면서, 어떤 경우이든 사람들 이 오해와 질투의 망치를 들고, 남 들이 세워 놓은 삶의 동상을 깨 부 수려고 할 때, 우리가 어떻게 하면 껴안을 수 있는가?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목회자들에게도 이런 성 향이 있습니다. 목회자는 사역에 대 한 고통이 있습니다. 요셉이 만약 껴안지 못했다면, 평생을 고통과 좌 절의 신음으로 나날을 보냈을 것입 니다. 질투, 고통, 미움의 감정을 껴 앉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 니다. 고통과 질투를 잘 승화시켜 서, 더욱 성결케 되고 견고해짐으로 말미암아, 주님을 닮아가게 되었으 면 좋겠고, 고통과 배신감이 우리의 인생을 좌절시키거나, 녹이지 않도 록 해야 합니다. 말년에 이삭이 엄 마가 죽은 요셉을 보람 삼아, 영적 인 가르침을 베풀었을 것입니다. 그 때 요셉은 마르다가 아닌, 마리아와 같은 심정을 가지고, 간절한 마음으 로 새겨들었을 것입니다.
3) 하나님의 ( 주권 )과 섭리를 ( 인정 )해야! 그러나, 오늘 잃어버린 꿈을 회복하 기 위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세 번 째로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인정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요셉의 전체의 삶에 대해서 멋있게 설교했 던, 신약의 스데반 집사님이 계십니 다. 참 아름답게 요셉의 삶을 해석 했습니다. 행 7:9
"여러 조상이 요셉을 시기 하여 애굽에 팔았더니 하나님이 저 와 함께 계셔"
이것이 키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좌절될 수 밖에 없는 상황과 고통 과 음모와 죽음가운데서, 요셉의 모 든 어려움을 면제시켜 주시겠다'가 아니고, 그 어려운 고통과 음모와 죽음의 상황가운데서도 하나님이 저 와 함께 계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문제나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마는,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셔서, 우리 의 인격을 빚으시고, 우리를 강건하 게 하심으로, 예수님의 제자가 됨으 로, 그 어려운 고통을 능히 감당해 나갈 수 있을 만큼 하나님의 사람으 로 키우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여 러분, 이렇게 안되면요, 좋은 것을 주어도 좋은 줄 모릅니다. 어릴 때 다 가져 보세요. 부잣집 집안에서 태어나 가지고, 모든 것을 어릴 때 부터 필요한 것 다 누려 보세요. ' 인생의 목표부재 인생'이 됩니다. 마약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결혼 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습니까? 이 혼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릴 때 모 든 것을 다 갖춘 부잣집 도련님들 보십시오. 인생의 목표가 없습니다. 제대로 살아가는 인생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요셉처럼 다듬 으시면, 한 순간 한 순간, 한 땀 한 땀, 한 시기 한 시기가 진정한 삶에 대한 목표와 감격과 꿈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다 갖춰 보십시오. 모든 것을 다 줘 보십시 오. 인생은 결코 만족할 수가 없고, 허무가운데, 허사가나 부르고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요셉은 좌절과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심 을 확신했습니다. 비록 주위의 환경 이나 사건이 악하고, 그를 해할지라 도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것, 합력하 여 선을 이루실 것을 확신했습니다.
벧전 4:13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 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 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함께 계신다는 것이 삶 속에 적용이 되 면, 우리의 고난이 우리만의 고난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으로 바꿔 주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의 인격이 성숙되면, 그렇게 고 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 때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스려 주신다는 것을 확신 하게 되고, 로마서 8:28의 사실이 가 감없이 믿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 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모 든 것 (좌절, 음모, 질투, 배반, 상 처, 가족적인 어려운 배경 등)이 합 력하여 선을 이룬다. 즉 하나님이 저와 함께 계시는 더 영광스러운 것 을 체험할 수 있는 선을 이룬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 예배에 주님이 함께 계십니다. 여러 분들의 기도제목에 주님이 함께 계 십니다. 답답하고 슬프고, 괴로운 인 생가운데서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 께 계시는 것이 가장 큰 상급이 될 수가 있습니다. 이제 요셉은 하나님 이 함께 계시는 섭리를 통한 보호하 심의 대상으로, 평생을 살아가게 되 었습니다. 요셉의 모든 인격의 역학, 그의 삶의 역동성과, 행동의 탄력성 은 자신이 하나님의 섭리와 목적의 확고성 가운데서, 하나님이 함께 계 시는 가운데 있다는 것을 깨닫고, 확인하는 가운데 이루어졌습니다. 여러분, 제가 마지막으로 섭리에 대 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리 기 독교에는 몇 가지 신경이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교리문답이라는 신경 이 있고, 도르트 신경, 하이델베르그 신경이 있습니다. 거기에 섭리에 대 해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섭 리란, 하나님께서 사용하셔서, 하늘 과 땅과 모든 피조물을 붙들어 다스 리고 계시는 하나님의 전능하고, 한 정적인 능력이다. 그리하여, 나뭇잎 과 풀잎, 비와 가뭄, 열매와 흉작, 음식과 마실 물, 건강과 질병, 번영 과 가난 등 이 모든 것이 우연히 우 리에게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서 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 도 여러분, 우리의 삶에 우연은 없 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하나님의 섭리아래 있다고 생각하 고, 평안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이 하나님의 섭리아래서 안식할 수 있 기를 바랍니다. 가장 놀라운 하나님 의 섭리는 하나님이 저와 함께 계신 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예배에도 하나님이 함께 계셔서,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오늘도 우리의 삶 을 붙잡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도와 주시기 바랍니다. 살려주시고, 새롭 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 에 주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목적의 확고성의 결과로 이루어지는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십자가로 승리하시다
본문 : 골로새서 2:8-15
아프리카 우간다 어느 교회에 있었던 실화입니다. 당시의 우간다는 독재자 이디아민이라고 하는 악명이 높은 그러한 대통령이 통치하고 있는 때였습니다. 케파쎔팡기라고 하는 목사님이 목회하시는 교회는 7000명이 넘는 큰 교회로 영적 지도자로서 귀한 역사를 담당하고 계셨습니다. 그는 부득불 정부를 비판하는 설교를 종종 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이 독재자에게 억압을 당하고 있는 백성들을 위로하는 그런 설교를 하고 계셨습니다. 이것이 정부에 알려졌습니다.
부활절 아침입니다. 다섯명의 비밀경찰이 찾아왔습니다. 모두는 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알고 있었습니다.
예배 후에 그들은 사무실에 총을 가지고 겨누며 들어와서 "반국가 사범을 처단하라는 명령을 받고 처단하기 위해 왔소"라고 말했습니다. 목사님은 이미 각오했던 것처럼 태연스럽게, 온유하게 대답했습니다.
"오늘은 부활절 아침입니다. 나는 죽는 것은 조금도 두렵지 않습니다. 내게 2분간의 시간만 주시면 기도하고 나의 생을, 내 목회를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그랬습니다. 그러라고 허락을 했습니다.
그는 무릎을 꿇고 하늘을 향하여 또박또박 큰소리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간다 통치자 이디아민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그 명령을 원치 않으면서도 받아들여야 하는 불행한 이 다섯 사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그리고 우간다 국민에게 자유를 주시옵소서. 내 사랑하는 조국이 사랑의 땅, 의의 땅이 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나의 죽음으로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게 하여주시옵소서. 아멘."
기도하는 목사님의 눈에서는 한없이 눈물이 솟았습니다. 비밀경찰도 울었습니다.
마침내 그 대장되는 사람이 그렇게 말합니다.
"엄청난 실수를 범했습니다. 못본 것, 못들은 것으로 하겠습니다"하고 조용히 사무실을 빠져나갔습니다.
여러분, '가장 강한 것이 무엇이냐?'하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가장 강한 것은?'하는 제목의 글입니다.
"가장 강한 것은 돌이다. 그러나 돌을 깨뜨리는 것은 쇠다. 쇠를 녹이는 것은 불이다. 불을 끄는 것은 물이다. 물은 구름에 흡수되어 버린다. 구름은 바람에 날려간다. 바람은 사람을 어찌하지 못한다. 사람은 죽음을 향해서 아무 대책이 없다. 그런고로 죽음이 가장 강하다. 죽음보다 강한 것은 바로 십자가이다. 십자가는 죽음을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깊이 생각해 보셔야 하겠습니다.
크리스챤이 누구입니까? 도대체 기독교인이라는 것이 뭡니까? 크리스챤이라는 것은 바로 십자가 이해에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어떤 측면에서 어떻게 이해하느냐 하는 것이올시다. 거기서 그리스도인의 속성이 결정됩니다.
여러분, 분명히 알 것은 십자가는 죽음입니다. 십자가는 아주 처참한 죄인에 대한 처형법입니다.
아주 부끄러운 죽음입니다. 저주스러운 죽음입니다.
인류역사상의 가장 비참한, 가장 부끄럽고, 가장 저주스러운 죽음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생각합니다. 십자가 안에 무궁무진한 비밀이 숨겨있습니다.
그 속에 미스테리가 있습니다. 엄청난 생명력이 거기에 있습니다. 그것을 믿는 것이 바로 예수를 믿는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6장에 바로 몇 시간 후에 십자가를 지실 것인데 제자들 앞에서 말씀합니다.
"너희가 다 나를 버릴 것이다. 그러나 나는 혼자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 이렇게 선포하십니다.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 말씀하시고 십자가를 집니다.
십자가를 지고 승리하신 게 아니라 승리하시고 십자가를 졌습니다.
승리로 십자가를 졌습니다. 십자가로 승리하셨습니다. 그것이 십자가 안에 나타난 신비입니다.
여러분 다 아시는 바와 같이 예수님은 또 말씀하십니다.
십자가 위에서 죽어가는 시간에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여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시옵소서. 저들이 하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엄청난 선언이요 여유요 엄청난 위세입니다.
비록 죽으면서도 그렇게 죽이는 자들을 여유 있게 용서하고 위하여 기도하고 계십니다. 거기에 승리가 있습니다.
여러분, 만일에 짓궂은 생각입니다만은 한마디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면 어떨까 라는 쓸데없는 생각을 좀 할 때가 있어요. 십자가 위에서 내려다보시면서 "이놈들, 두고보자" 만일에 그렇게 말씀했다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이 한마디가 역사를 바꿉니다. 십자가의 의미를 완전히 다른 의미로 만든 것이올시다.
여러분, 십자가는 절대로 불가피한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 속에 자발성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돼요. 그것이 승리올시다.
억지로 도망가다가 능력도 없고 지혜도 없고 일이 꼬여들어서 할 수 없이 죽었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절대로 실패가 아닙니다.
성경이, 복음서가 계속 증거하는 그 주제의 초점이 어디 있느냐 하면 십자가는 우연한 일이 아니라고요.
십자가는 예정된 것이요 십자가는 계획된 것이요 십자가는 하나님의 큰 경륜 속에 미리 약속된 것이요
그리고 십자가를 진 거라고. 이것을 설명하는 것이 성경책 전부입니다.
총 주제올시다. 이걸 모른다면 성경을 못 본 사람이지요.
예수님의 많은 이적이 무엇을 말합니까? 병든 자를 고치고 귀머거리를 열게 하고 아, 그리고 죽은 자를 살리고…….
죽은지 나흘이나 된 나사로를 무덤에 가서 "나사로야 나와라"고 소리를 칩니다. 죽은 사람이 걸어 나옵니다.
이건 뭘 말하는 겁니까? 이러한 능력을 가지신 분이 십자가에 죽었다 이 말이에요. 그걸 설명하자는 것이지요.
십자가를 설명하는 내용이에요 이게. 그 능력을 가지신 분이 말없이 십자가를 집니다.
그래 빌라도는 그것이 알 수가 없어서 "Behold this man, 이 사람을 보라. 도대체 알 수가 없는 사람이다.
그 능력을 가지신 분이 왜 말없이 죽어가느냐" 하는 거지. 그걸 알 수가 없다는 거예요. 거기에 십자가의 비밀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예언해 왔습니다.
예표로 확증을 해왔습니다. 수많은 양, 소를 잡아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것은 십자가에 대한 예표입니다.
Prototype 입니다. 계속해서 보여주고 예언해주고 그 예언이 오늘 와서 십자가에서 성취되는 것입니다.
클라이막스에 와서 이루어진 것이에요. 십자가는 그렇게 이루어지는 것이에요.
자발적으로 자원적으로 하나님의 오묘한 우주적 섭리 속에서 이루어진 계획적인 일이라는 것이죠.
거기에 진정한 승리가 있습니다. 이것은 완성이요 이것은 예언의 성취요
이것은 본래부터 계획되었던 것이요 그것이 이 시간에 와서 결정적인 시간에 이루어진 것이올시다.
그런가 하면 십자가는 뭐니뭐니 해도 사랑의 계시요 사랑의 실천입니다. 사랑의 승리올시다.
여러분, 사랑이 뭡니까?
사랑 자체도 설명하기 어렵지만 사랑의 소위 말하는 커뮤니케이션, 사랑을 전달한다는 게 이렇게 어려울 수가 없어요.
여러분, 쉽게 사랑한다는 말했다가는 뺨맞아요. 안 그렇습니까?
이 사랑이 전달이 돼야겠는데 이 사랑의 뜨거운 마음을 전달하는 길이 어디에 있습니까?
사랑의 진실한 언어는 희생밖에 없는 거예요. 그래서 죄송하지만 부잣집 아들딸들이 이게 문제라고요.
부모님이 아무리 사랑한다, 사랑한다 해도 그리고 뭐, 이거 해주고 저거 해주고. 그저 못마땅합디다만은 저로서 볼 때는
그거 지금 철따구니 없는 아이들 장가가고 시집가는 데다가 뭐 큰집을 사주고……. 난 마음에 안들어요.
그렇게 하는 게 아니거든요. 저들도 저들대로 고생을 하고 살아야지.
그런데 부모가 옛날에 고생했다고 해서 "너는 고생하지 마라"해서 집 사주고 차 사주고 다 사주는데, 틀림없는 것은 이렇게 사랑 받은 자녀는 불효자가 됩니다.
오히려 가난하고 어려워서 밥 한끼를 제대로 못 주고 미안하다, 미안하다 하면서 키운 그 자녀는 커서 철저하게 효자가 됩니다.
그걸 아셔야 되요. 오직 희생만이 사랑의 효과적 언어입니다.
제가 인천에서 경험했습니다.
너무 가난하고 어려워서 겨울에 추운 때에 어머니가 메리야스 장사를 해요. 메리야스 몇 가지를 들고 다니면서 그저 이집 저집 다니면서 팔아요. 아들은 남의 사무실에 가서 청소하면서 일을 하고 밤에 야간 고등학교를 다닙니다.
밤중에 돌아온 아들을 놓고 "미안하다. 오늘은 밥을 못했다" 구워놓았던 고구마 하나를 까주면서 "이거를 먹고 오늘은 때우자." "어머니 시장하실텐데 어찌하여 이걸 제게 줍니까?" 그 고구마 하나를 받아먹으면서 눈물을 뚝뚝뚝뚝 흘렸어요.
이 아들이 고려대학교 상과 수석으로 들어갔어요. 그 어려운 가운데 고학을 해서 졸업을 했어요. 졸업식 날 제가 같이 참여했어요. 그 아들이 졸업장을 갖다가 어머니에게 주면서 "이것은 제게 아닙니다. 어머니의 졸업장입니다." 어머니가 "내가 너를 위해서 해준 게 뭐냐. 밥도 제대로 못 주고 학비도 못 줬는데……." 둘이 끌어안고 우는 장면은 참 감격스러웠습니다. 저도 함께 울었습니다.
고구마 얻어먹고 자란 아이는 효도하더라구요. 자동차 준 아이는 효도하지 않습니다. 그걸 알아야 되요.
이래서 많은 고난 속에 희생, 사랑은 분명합니다.
저 분이 얼마나 희생하나? 나를 위해서 얼마나 희생하나? 그걸 보고야 사랑을 느낍니다. 사랑을 수용합니다. 사랑을 믿게 됩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십니다. 십자가에 죽으십니다. 살리기 위하여 그는 죽으십니다.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십자가 안에 엄청난 사랑이 계시되어있고 그 사랑 안에 나의 삶의 의미가 계시되어있기 때문입니다.또 하나는 여러분, 이것은 의의 개시입니다. 의의 승리를 말하는 것이에요. 죄란 그저 흐지부지 용서할 수가 없는 거예요. 죄 값은 사망입니다. 누가 당하든지 당해야 되는 것이에요. 우리나라 정치처럼 흐지부지 없어지는 것이 아니에요. 분명하게 밝혀서 잘못한 것은 잘못한 것으로 벌을 받아야지요. 누가 당하든지 당해야지요. 그냥 슬쩍슬쩍 넘어가는 게 아니거든요. 하나님의 심판은 엄연합니다. 죄 값은 사망입니다. 그런고로 주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죽어야 했던 것이에요. 죽지 않고는 절대로 살리지 못하니까요. 그걸 아셔야 됩니다.
어느 마을이 아주 Puritan 마을인데 깨끗하게 정결하게 술집도 창녀도 없는 것을 자랑삼고 사는 좀 엄격한 마을이 있는데, 어느 처녀가 어쩌자고 결혼하기 전에 얘를 가졌습니다. 그런데 이 마을에는 한 수도사가 있었는데 그는 많은 사람에게 존경을 받는 사람이요 또 그런가 하면 마을 사람들의 궂은 일은 온 마을의 궂은 일은 그 수도사가 하는 거예요. 이런 수도사 한사람이 그 마을에 있었는데 이 처녀가 임신을 했는데 그 얘 아버지가 누구라는 것을 대지 못하면 이것은 간음죄로 추방을 당하게 되고 잘못하면 맞아죽게 됩니다. 그런데 얘 아버지가 누구라는 것을 말을 안해요. 그래서 지금 추방당하게 되었는데 직전에 하는 말이 "저 수도사"라고 했어요. 수도사는 그대로 끌려가서 많은 몰매를 맞고 고역을 당하고 감옥에 처넣어졌어요. 시름시름 앓다가 감옥에서 죽었어요. 죽은 다음에 시신을 염하면서 보니까 이게 남자가 아니고 여자예요. 남장 여인이었다고요. 모든 사람은 숙연해졌습니다.
이 여자는, 이 수도사는 왜 '그것이 내 아이가 아니라'는 말을 왜 안했을까?
저 처녀를 살리기 위해서는 내가 죽어야 했어요. 내가 죽어야만 그 누군가를 살릴 수 있기 때문이에요.
여러분, 십자가는 의의 승리입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대신해서 먼저 죽으셨습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거기서 완전히 충족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충족원리라고 합니다. 충족돼요. 그리고 죄인이 의인처럼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긍휼의 승리입니다.
불쌍히 여기시는 거예요. 율법과 은혜? 은혜의 승리를 말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십자가상에서 "하나님이여, 저들의 죄를 사하소서"라고 부르짖게 됩니다.
여러분, 이것만이 이 십자가만이 이 긍휼이 모든 것을 이길 수 있음을 확증해 주시는 것이올시다.
또한 이 십자가는 죽음의 승리입니다. 죽음을 넘어섭니다. 죽음을 초월합니다. 십자가는 생의 끝이 아닙니다.
영원한 세계의 시작입니다.
그것을 믿고 죽음의 세계를 훌쩍 넘어서는 것이 십자가의 말씀이요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의 생명의 길입니다.
칼 바르트 라고 하는 유명한 신학자는 그의 교회 교의학 속에서 "사람의 생의 단 한번의 기회"라고 하는 논문을 씁니다.
사람에게 많은 기회가 있는 것 같으나 가장 중요한 기회는 딱 하나 있어요.
단 한번의 기회. 그것은 바로 곧, 죽음이다. 그 기회를 어떻게 맞이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이것이 영원한 생명의 세계로 향하는 길로 맞이하느냐? 아니면 영원한 저주로 끝내는 시간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죽음을 향해서 삽니다. 죽음이라고 하는 그 한순간을 작품처럼, 클라이막스로 그렇게 맞이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두가지를 생각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는 모멘토리(Mementori)라고 말합니다. 당신은 곧 죽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고 사십시오.
모멘토리라고 말합니다.
두 번째는 모멘토 도미니(Memento Domini), 모멘토 도미니, 주님을 생각하십시오.
사람은 죽는다. 그리고 주님을 생각하라.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생각하라.
바로 이것이 나의 일생에 딱 한 번 있는 기회를 가장 귀한 기회로 의미를 바꾸어 놓을 수 있고 방향을 돌려놓을 수 있는 것이란 말입니다.
여러분 아시는 대로 저는 이래저래 북한을 자주 내왕을 합니다.
북한에 있는 고관들과 자주 만나서 얘기도 해봅니다.
언젠가는 여러분 아시는 대로 평양과학기술대학을 세우려는 큰 계획을 세우고, 재단 이사장의 임명장을 받고,
큰 행사를 치루고 저녁에 이렇게 파티를 하는데, "목사님, 목사님은 왜 우리를 돕는 겁니까?
무엇 때문에 도우려고 하는 겁니까?
목사님의 아버지가 우리 공산당원에 의해 총살당한 것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북한을 10여년 동안 돕는데, 그 돕는 이유가 뭡니까? 무슨 대가를 요구하는 겁니까?" "대가 없습니다. 내가 평양시내에다가 굉장한 교회를 세우겠다는 것도 아닙니다.
지금 그런 얘기는 안하겠습니다.
내가 목사니까, 뭘 요구한다는 걸 다 알고 있으면서 뭘 물어보느냐?"
그러니까 "그래도 한 말씀 해주세요." "딱 한마디만 할께요.
예수믿는 사람들 죽이지 마세요. 이것만 약속해주면, 제가 얼마든지 도와드리겠습니다.
" 작년에도 400명 죽였다며 인정을 하더라고요. 그런고로 기독교인들 죽이지 말아달라고. 그는 말합니다. "안 죽일 수가 없어요." "왜요?" "반동이거든요." "어째서?" "공산당보다 기독교인은 훨씬 셉니다." 왜 세냐고 물었더니 "공산당원들은 죽음을 무서워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전혀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찌할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죽는 겁니다. 어쩌면 그렇게 죽기를 기독교인들은 바라고 있습니다.
" 거기서 죽을 뻔하고 산 사람들 만나보니까 그 때 죽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더라고요.
기독교인은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예수의 이름으로 죽을 수 있다면 그건 지상의 영광입니다.
단 한번밖에 없는 기회입니다. 그러니 사양할 리가 없죠. 두려워할 리도 없죠. 승리를 위하여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 승리를 위하여만 사는 것이 아닙니다. 승리를 보장받고 사는 것입니다.
승리를 믿고만 사는 것이 아닙니다. 승리를 누리면서 사는 것입니다.
나의 승리의 계시가 바로 십자가에 확증되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귀를 타고 입성하신 것은 이 길을 통하여 승리하시겠다는 것이 아니고 승리의 호산나를 먼저 부르고 당당하게 갈보리 언덕으로 가신 것입니다.
여기에 그리스도인의 승리의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늘 십자가를 쳐다보며 십자가를 통하여 말씀하시는 주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아직도 우리 마음은 어둡고 비겁하고 나약할 때가 많음을 용서하옵소서.
십자가 안에 있는 감추어진 승리의 의미를 날마다 확인하면서 영원한 승리의 생을 오늘 살 수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