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정식>
가격에 비해 상이 너무 화려하다. 비싼 식재료 찬에 향토조리 찬이 골고루라 어안이 벙벙하기까지 하다. 대부분 전형적인 경남 찬과 요리법이라 황홀한 음식 기행이 된다. 향토음식을 이처럼 저렴하게 먹을 수 있다니. 지역에 따른 음식 편차를 제대로 보여주니 한국 향토음식지도를 그려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1.식당대강
상호 ; 장미정식
주소 : 경남 의령군 의령읍 의병로20길 61
전화 ; 055) 573-3232
주요음식 : 한정식
2.먹은날 ; 2023.10.17.저녁
먹은음식 : 한정식 1인분 15,000원
3.맛보기 : 밥상위의 음식 지도
경남은 제피의 지역이다. 민물고기에는 물론이고, 무침 나물에도 제피를 많이 쓰고, 어떤 집은 육류에도 제피를 쓴다. 제피를 넣지 않으면 음식이 심심하다는 사람도 있다.
경북은 제피를 쓰지 않는다. 경상남북도가 여기서 갈라진다. 경남북 공통으로 먹는 것은 콩잎장아찌다. 식재료가 풍부했던 전라도에서는 먹지 않았다. 식재료가 귀하고 곡물이 귀한 영남권은 콩잎장아찌를 먹는다. 오늘 이 집 상에도 콩잎장아찌가 올라왔다.
콩잎장아찌를 전라도에서 대부분 먹지 않은 것은 아마도 뻗뻗하고 질겼기 때문일 것이다. 부드러운 야채도 충분히 구할 수 있는데, 뻗뻗한 식재료를 굳이 먹을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질긴 소나무 껍질을 먹어 '똥구멍이 찢어지'는 것은 흉년에나 하는 일이었다. 평소에는 보드라운 채소로도 충분히 양을 채울 수 있었던 덧이다.
콩잎은 찬 만들기가 힘들다. 일단 간을 절여 발효를 시킨 후 다시 된장 간을 하여 익혀야 한다. 이 식당은 1차 발효가 된 콩잎을 사서 된장으로 2차 간을 들이고 발효를 시킨다. 그래서 부드러운 콩잎장아찌를 만든다. 이쯤되면 사람 손이 많이 가서 고급음식이 된다. 이 정도 수고를 해서라도 콩잎을 먹어야 할 만큼 다른 찬이 부족하였기 때문이다.
홍어삼합. 아니 경상도에서 홍어라니, 그것도 삭은 홍어라니 의아했다. 주인 아주머님 왈, 여기서도 좋아하는 사람 많단다. 찾는 이가 많으니 낸단다. 전라도 사람을 폄하하는 대명사로 쓰는 홍어 음식이라니, 음식의 전국화 현장을 목도한다. 이제 전라도 비하에 홍어를 더 이상 쓸 수 없을 듯하다. 누리고 싶은 문화라면 받아들여야지. 문화가 흘러가는 방향도 보여준다.
더구나 삭은 홍어다. 많이 삭지 않은 것이 내게는 서운했으나 경상도에서 삭은 홍어를 먹는 것이 어디냐. 연목구어가 가능해진 세상이 되었음을 실감한다. 삭은 홍어를 수용하는 경상남도의 유연성을 본다. 경상북도에서는 아직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좋은 음식, 좋은 식재료의 문화 이동은 언제 어디서도 필요하고 환영할 일, 그렇게 우리의 삶의 질이 고양되는 거 아니겠는가.
소라숙회. 내륙에서도 소라를 먹는다. 해물정식도 아닌데 말이다. 식생활 전반의 수위가 높아졌음이다.
문어숙회. 경상도답다. 문어 없으면 제사를 못 지내는 동네인데 문어가 빠지면 안 되겠지. 문어보다 기름소금장에 주목한다. 참기름에 천일염이다. 초고추장이 아니고 말이다. 경상도 초고추장에서 장이 변화했다. 변화의 흐름은 어느 찬에서나 조금씩 진행된다.
갈치구이. 도톰한 갈치가 먹음직스럽게 구워져 나왔다. 금방 구워내와 간이 맞는 육질의 맛이 최대화된다. 손상되지 않은 은분이 일단 시각적으로 입맛을 돋구는데, 맛이 보는 거 그대로다. 좋은 식재료도 정성으로 맛이 보존된다. 그 정성이 담겨 있다.
참나물무침. 고소한 맛이 진짜 참기름 향이 난다. 적당히 데쳐낸 솜씨에 맛이 도망가지 않았다.
장어구이. 참 골고루도 나온다. 이 값에 장어까지 맛보다니, 정도 이상의 호사라 식당 걱정이 될 정도다. 더구나 간도 구이 간도 잘 맞추어 맛이 잘 살아나니 고마울 따름이다.
가재미회무침. 사과에다 무에다 부추에다 다양한 채소 과일에 회를 초고추장에 무쳤다. 약간 단 듯한데, 신선한 맛이 아주 좋다. 일본에는 없는 우리식 회조리법이다. 생선이 주요 식재료인 일본보다 더 다양한 조리법으로 생선을 먹는다. 내륙에서도 해안인 거처럼 말이다.
부추고추전. 부추를 잔뜩 넣고 간간히 고추가 씹혀 맛을 상승시키도록 매운 고추를 잘게 썰어 넣었다. 부추전을 부칠 때, 주의 사항은 계란을 넣지 않는 것이다. 밀가루의 끈기를 방해하여 졸깃거리는 맛이 사라지기 때문. 계란 넣지 않은 부추전, 밀가루 반죽 밀도가 적절하여 식감을 높인 부추전이다. 식었어도 맛있다.
욕심 내자면 양파를 한 두 쪽 넣어도 좋을 듯하다. 양파의 단맛이 부추를 감싸며 혀에 감기기 때문이다.
무청무침. 제주도에서 많이 먹는다. 전남에서도 간혹 먹는다. 전북에서는 거의 먹지 않는다. 음식의 풍요로움과 나름 정통요리법을 지키는 전북의 조리 전통 때문이다.
그러나 어디서도 제피를 넣지는 않는다. 여기서는 제피를 호복히 넣었다. 전형적인 경남 조리방식이다. 산초는 넣지 않는단다. 제피가 더 잘 어울린단다. 여기서는 육류에는 제피를 잘 안 넣고 민물고기에는 넣는단다.
향신료의 편차가 크다. 이쪽에서 즐기는 고수도 전라도에서는 먹지 않는다. 향신료가 강한 것은 재료의 보관과 관련이 크다. 육류를 주로 먹는 유럽이 이를 보관하는데 도움을 주는 후추, 정향, 육두구 등을 확보하기 위해 전쟁을 하고 식민지 통치를 마다하지 않았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제일 큰 피해자가 네덜란드 식민지가 된 인도네시아다.
제피나 고수의 사용은 식재료의 보관과도 관련이 있었을 듯하다. 채소는 건조시키거나 염장하면 되는데, 가용기를 넘나드는 생선이나 육류의 경우 비린내나 노린내를 제거하는 데 유용하기 때문이다. 특히 더운 지방의 내륙에서 더 필요했으리라 추측된다. 실제로 제피는 살균효과가 있으므로 이 가설은 매우 설득력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어쨌거나 놀랍게도 무청에 제피를 잔뜩 넣은 조리법은 처음 만났다. 낯선 음식을 맛보는 것은 음식의 절대맛과 내 입맛의 기호를 구분해야 한다. 나름 냉정한 접근방식으로는 분명 상당히 맛있는 음식이다. 익숙하지 않다는 것으로 폄하될 수 없는 맛임은 확실히 알겠다. 맛의 편차를 넓히는 것은 향신료로도 가능하다. 국내에서도 가능하다는 것이 신기하다.
콩잎 장아찌. 지난한 조리방식으로 인해 우려되는 것은 식재료 고유의 맛을 함유하는지 여부이다. 잘 남아 있다. 고소하기까지 한다. 질기지도 뻐시지도 않고 고소하다. 성공한 음식이다.
김치. 근데 여기서는 짠지라고 한단다. 짠지는 전라도에서는 조림을 말한다. 콩짠지, 멸치짠지 등이다. 김치는 서울에서 온 외지말이란다. 여기서는 짠지, 이름이 그래선지 실제로 짜다. 맞단다. 김치는 짠 것이어서 확실히 밥반찬이 되어주었단다. 식재료 부족 지역의 조리방식으로 보인다. 젓갈간은 약하고 소금간이 진한 담백한 음식에 간을 세게 하여 짠지를 만들어 밥을 먹을 수 있게 했다.
지난 세월 선조들의 영양 상태가 걱정될 정도다. 이 김치는 전형적인 짠 김치. 경상도 배추의 생산량을 확인해야 이 이론?의 타당성 여부가 검증될 듯하다.
누룽지. 근데 별로 성공적이어 보이지 않는다. 숭늉도 누룽지도 제대로 못먹게 어정쩡하다. 죽같은 맛, 이것은 어디나 갖는 한계. 누룽지의 상품화 이후의 맛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전기밥솥 출현 이후 잃어버린 누룽지 덕분에 생겨난 유사 누룽지 맛이다.
시레기국. 들깻가루가 너무 고소하다. 국물 맛도 연하면서 품위 있다. 짜지 않아 부담도 없다.
밥은 그야말로 최고다. 금방 지은 밥, 솥에서 바로 푼 밥, 이런 밥은 집에서도 먹기 힘들다. 촉촉하고 윤기흐르고, 졸깃하고. 밥이 갖추어야 할 것을 다 갗추었다.
식당 이름이 장미정식, 장미식당 두 가지로 혼용되고 있다. 명함에 장미정식이니 이것을 믿어야 할 듯하다.
4. 먹은 후
1) 경남음식 보편화의 사회적 배경
정통 경남 음식을 맛보는 행운에 감사하고, 이런 음식 먹을 기회를 제공하는 식당에도 감사한다. 그러나 오늘 이 맛있고 저렴한 음식을 찾은 손님은 우리팀뿐. 경상도 음식이 자라지 못하는 원인을 실감한다. 이런 음식은 자연스레 키워줘야 하는데, 외식이 일상화되지 않은 경상도는 음식을 키우지 못한다. 음식의 사회적인 측면에서의 이유는 이런 거다.
전라도 음식에 밀리는 이유는 한두가지가 아니지만, 사회적인 이유는 의식의 전환 없이는 안 된다. 역설적으로 증명하는 것은 경남 제피는 전라도에 진출하지 못했다. 식재료 상황이나 조리환경이 문제가 아닌 사회적인 이유도 한몫한다는 것은 오늘 손님이 없는 것에서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2) 제피
초피나무에서 얻어지는 향신료의 일종. ‘제피’라는 이름은 제주도에서 부르는 것으로, 지역에 따라 ‘초피’, ‘촉초’, ‘지피’ 등으로도 불린다. 생김새는 산초와 비슷하나, 줄기의 가지가 어긋나 있는 산초와 다르게 가시가 마주나 있다. 예로부터 중국에서 요리에 매운 맛과 향을 배가하기 위해 써왔으며, 한국에서도 후추가 전래되기 전까지 다양한 용도로 쓰였다.
입이 아릴 정도로 얼얼한 맛과 신맛이 있으며, 향은 상큼한 편이다. 효능으로는 불면증 완화와 허약체질 개선, 각종 질병에 대한 예방 등이 있으며, 세균을 죽이는 성분을 갖고 있어 항암에도 탁월한 효과를 나타낸다.
고르는 법은 껍질이 매끄럽고 열매가 굵은 것을 고른다.
제피는 중국 요리 중에서도 마파두부나 마라탕 등 매운 요리에 주로 쓰인다. 한국에서는 추어탕이나 매운탕을 끓일 때 넣어 먹는데, 특유의 알싸한 맛과 상큼한 향이 생선의 비린내를 잡아주어 좋다 (다음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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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잎장아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