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광불화엄경 제 十二권
불타발타라 한역
十八. 보살십무진장품(菩薩十無盡藏品)
그 때 공덕림 보살 마하살은 다시 여러 보살(菩薩)에게 말했다.
『불자들이여, 보살 마하살에게는 열 가지 창고가 있으니, 그것은 三세 부처님 네가 다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 열 가지 창고란 이른바 믿음의 창고, 계율의 창고, 남부끄러움의 창고, 제 부끄러움의 창고, 들음의 창고, 보시의 창고, 지혜의 창고, 바른 생각의 창고, 지님의 창고 변론의 창고이니 이것이 그 열 가지입니다. 어떤 것이 보살의 믿음의 창고인가. 그 보살은 모든 법은 공해 실체가 없음을 믿고 모든 법은 모양이 없음을 믿으며, 모든 법에는 원이 없음을 믿고 모든 법은 지은 자가 없음을 믿으며, 모든 법은 진실이 아님을 믿고 모든 법은 견고하지 않음을 믿으며, 모든 법은 한량이 없음을 믿고 모든 법은 최상을 믿으며, 모든 법을 헤아릴 수 없음을 믿고 모든 법은 나지 않음을 믿는 것입니다.
보살이 만일 이러한 깨끗한 믿음을 성취하면 불법의 불가사의하다는 말을 들어도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일체 부처님의 불가사의하다는 말을 들어도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으며, 중생의 불가사의하다는 말을 들어도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법계의 불가사의하다는 말을 들어도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으며, 허공계의 불가사의하다는 말을 들어도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열반계의 불가사의하다는 말을 들어도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으며, 三세의 불가사의하다는 말을 듣거나 일체 겁에 들어가는 것이 불가사의하다는 말을 들어도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보살은 부처님에 대해 한결같이 굳게 믿어 부술 수가 없고 부처님의 지혜는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시방 일체 세계의 낱낱 세계 가운데 계시는 三세의 무량 무수한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시어 불사를 행하시다가 열반에 드셨습니다. 그러나 그 부처님네 지혜는 늘지도 줄지도 않았고 나거나 멸하지도 않았으며, 다하거나 가지도 않았고 가깝거나 멀지도 않았으며, 지혜롭거나 산란하지도 않았습니다.
보살이 이런 무변 무진한 믿음 창고를 성취하면 그는 곧 여래승(如來乘)을 탈 것이요, 또 보살이 그런 무량 무변한 믿음과 물러나지 않는 믿음, 산란하지 않는 믿음,
무너지지 않는 믿음, 집착하지 않는 믿음, 근본이 있는 믿음, 성인을 따르는 믿음, 등을 성취하면 일체 불법을 호지하고 일체 보살의 선근을 기르며, 일체 여래의 선근을 따르고 일체 부처님의 좋은 방편을 좇아 날 수 있을 것이니, 이것이 보살 마하살의 무진한 믿음 창고입니다. 보살이 이 믿음 창고에 머물면 부처님 법을 들어 지니고 일체 중생을 위해 널리 연설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어떤 것이 보살 마하살의 계율 창고인가. 이른바 그 보살이
이롭게 하는 계율,
받지 않는 계율,
집착하지 않는 계율,
편히 머무는 계율,
다투지 않는 계율,
해치지 않는 계율,
난잡하지 않는 계율,
사뙨 생활을 떠나는 계율,
악을 버리는 계율,
청정한 계율 등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 이롭게 하는 계율인가.
그 보살은 먼저 중생들을 이롭게 하고 안락하게 하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 받지 않는 계율인가.
그 보살은 외도의 계율을 받지 않고
三세 부처님의 평등한 계율을 원만히 받들어 지니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 집착하지 않는 계율인가.
그 보살은 욕심 세계의 계율과 형상 세계의 계율과 무형세계의 계율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니, 그것은 회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것이 편히 머무는 계율인가.
그 보살은 청정하여 의심이나 뉘우침이 없는 계율을 성취하는 것이니 왜냐하면 그 보살은 다섯 가지 무간죄(無間罪)를 짓지 않고
영원히 일체 계율을 일부러 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것이 다투지 않는 계율인가.
그 보살은 먼저 제정한 것을 그르다 하지 않고
다시 만들지도 않으며,
마음은 항상 열반으로 향하는 계율을 따르되 완전히 지녀 헐거나 범하지 않고
그 계율로 말미암아 중생들을 괴롭히거나 서로 다투게 하지 않습니다.
보살이 계율을 지키는 것은 다만 중생들을 이롭고 기쁘게 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것이 해치지 않는 계율인가.
그 보살은 그 계율을 지킴으로써 주술이나 약초 쓰는 법을 배워 중생들을 해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보살은 중생들을 구호하기 위해 청정한 계율을 지니기 때문입니다.
어떤 것이 난잡하지 않는 계율인가.
그 보살은 단. 상(斷. 常)의 견해를 떠나 난잡한 계율을 지니지 않고
다만 열 두 가지 연기(緣起)를 관찰하여 청정한 계율을 지닙니다.
어떤 것이 사뙨 생활을 떠난 계율인가.
그 보살은 깨끗한 계율을 지니는 체하여
남에게 알리려 하지 않고
안에는 진실한 덕이 없으면서
진실한 덕이 있는 체 나타내지 않으며,
다만 깨끗한 계율을 지니고 한결같이 법을 구해 일체의 지혜를 이룹니다.
어떤 것이 악을 떠나지 않는 계율인가.
그 보살은 스스로 잘난 체하여 나는 계율을 지닌다고 말하지 않고
계율을 범한 사람을 보고도 그를 경멸하거나 나무라서 그를 괴롭히지 않으며,
다만 한결같은 마음으로 청정한 계율을 지닐 뿐입니다.
어떤 것이 청정한 계율인가.
그 보살은 살생과 도둑질. 사음. 거짓말. 나쁜 말. 추한 말. 두 가지 말. 잡된 말과 탐욕. 분노. 우치 등을 버리고 열 가지 선한 일을 완전히 지닙니다. 그 보살은 이런 청정한 계율은 지니면서 이렇게 생각합니다. 「중생들이 깨끗한 계율을 범하는 것을 다 뒤바뀐 번뇌 때문이다. 부처님 네는 중생들이 뒤바뀐 생각으로 깨끗한 계율을 한다는 것을 분별해 아신다. 그러므로 나는 오로지 불도를 구해 위없는 보리를 다 이루고 중생들을 위해 진실한 법을 설명해 그들로 하여금 뒤바뀐 생각을 버리고 깨끗한 계율은 지녀 모두 위없는 보리를 얻게 하리라」이것이 이른바 보살 마하살의 둘째의 무진한 계율 창고입니다.
불자들이여, 어떤 것이 보살 마하살의 남제부끄럼의 창고인가, 그 보살은 스스로 그 전생 일을 생각합니다. 즉「무수한 세상을 지내오면서 육친(六親)에 대해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짓을 행했으니, 혹시 멸시해 무례하였고 음난하여 절조가 없었으며, 참아 해처 친함이 없었고 군사를 일으켜 서로 치는 등 미혹하고 뒤바뀌어 갖은 악을 다 지었으니, 그것은 다 세 가지 독과 사뙨 의심과 번뇌의 결박과 거짓과 아첨 등 모든 나쁜 짓 때문이다.
또 중생들도 다 갖가지 부끄러워 할 줄 모르는 행을 익히고 쌓았으니 그것도 다 무지와 내지 아첨과 나쁜 짓 때문이니, 그러므로 높고 낮은 이는 질서를 잃어 서로 공경하거나 순종하지 않고 또 겸허해 어진 이를 따라 받들지 않으면서 항상 독한 생각을 품어 원수만 늘어나 서로 해치면서 부끄러워하거나 두려워하는 생각이 없었다. 또 생각하면서 나와 중생들은 과거 미래 현재에서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법을 행하여 三세 부처님 네가 그것을 알고 보시는데 내가 어찌 그대로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법을 행하겠는가. 그것은 아주 잘못이다.
그러므로 나는 부끄러워하는 법을 닦아 보리를 얻고는 중생들을 위해 진실한 법을 자세히 설명해 그들로 하여금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법을 아주 버리고 보리를 성취하게 하리라」하나니 이것이 보살 마하살의 셋째의 무진한 남제부끄럼의 창고입니다. 불자들이여, 어떤 것이 보살 마하살의 남부끄럼의 창고인가. 그 보살은 스스로 부끄러워하기를「나는 옛적부터 빛깔. 소리. 냄새. 맛. 촉감. 법과. 처자. 권속. 재물. 보물. 동복. 수레. 등을 만족하는 마음이 없었으니, 나는 이런 나쁜 짓은 하지 않아야 한다. 이런 것 때문에 탐욕. 분노. 우치와 내지 아첨과 굽음 등이 자라난 것이라」합니다.
그는 또 생각하기를 「중생들이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것은 다 무지와 첨곡 등 온갖 악법 때문이다. 그래서 서로 순종하지 않고 존경 공양하지 않으며, 항상 독한 마음을 품고 서로 해치는 것이다. 나와 중생들은 과거나 미래나 현재에서 이런 법을 좋아하고 탐하고 행하는데 이 법 때문에 태 속에 드나들며 나고 죽는 무량한 고통을 받는다.
그리고 三세 부처님은 다 그것을 알고 보시는데 만일 내가 그래도 이 부끄러워 할 줄 모르는 법을 행한다면 三세 부처님 네는 모두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부끄러워하는 법을 닦아 보리를 이루고 중생들을 위해 이 법을 자세히 설명하여, 그들로 하여금 부끄러워할 줄 알고 불도를 이루게 하리라」하나니 이것이 보살 마하살의 넷째의 무진한 남부끄럼의 창고입니다.
불자들이여, 어떤 것이 보살 마하살의 많이 들음 창고인가.
그 보살의 많이 들음이란 이른바 이 일이 있으므로 이 일이 있고 이 일이 없으므로 이 일이 없으며, 이 일이 일어나므로 이 일이 일어나고 이 일이 멸하므로 이 일이 멸하며, 이것은 세간법이요, 이것은 출세간 법이며, 이것은 유위법이요, 이것은 무위법이며, 이것은 유기법이요, 이것은 무기법이라는 것 등을 다 압니다.
이 일이 있으므로 이 일이 있다라는 것은 이른바 무명이 있으므로 행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일이 없으므로 이 일이 없다라는 것은 의식이 없으므로 명색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일이 일어나므로 이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란 이른바 욕망이 일어나므로 고통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이 일이 멸하므로 이 일이 멸한다는 것이란 이른바 존재가 멸하므로 생사가 멸한다는 것입니다.
세간 법이란 이른바 빛깔. 감각. 상상. 의지. 의식 등이요, 출세간 법이란 이른바. 계행. 선정. 지혜. 해탈. 해탈지견 등입니다. 유위법이란 이른바 욕심 세계. 형상 세계. 무형 세계. 중생 세계 등이며, 무위 법이란 이른바 허공. 열반. 수연멸(數緣滅). 비수연멸(非數緣滅)과 열 두 가지 연기와 빛 법계 등입니다.
유기 법이란 이른바 네 가지 진리, 네 가지 사문과(沙門果), 네 가지 변재, 네 가지 두려움 없음, 네 가지 생각하는 곳, 네 가지 정근(正勤), 네 가지 여의족(如意足)다섯 가지 뿌리, 다섯 가지 힘, 일곱 가지 깨달음 갈래, 여덟 가지 바른 길 등입니다.
무기 법이란 이른바「세간은 끝이 없다. 세간은 끝이 있기도 끝이 없기도 하다. 세간은 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끝이 없는 것도 아니다. 세간은 항상 되다. 세간은 항상 되지 않는다. 세간은 항상 되기도 하고 항상 되지 않기도 하다. 세간은 항상된 것도 아니고 항상 되지 않은 것도 아니다. 부처님은 열반한 뒤에 떠난 것같아 느끼지 않는다. 부처님은 열반한 뒤에도 떠난 것 같지도 않고 또 느끼지도 않는다. 부처님은 열반한 뒤에도 떠난 것 같기도 하고 떠난 것 같지 않기도 하며, 또 느끼지도 않는다. 부처님은 열반한 뒤에 떠난 것 같은 것 같은 것도 아니고 안 떠난 것 같기도 하며 또 느끼지도 않는다.
나도 있고 중생도 있다. 나도 없고 중생도 없다. 나는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중생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나는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 과거에는 몇 부처님이 열반에 들었고 몇 성문과 연각이 열반에 들었다. 미래에는 몇 부처님과 몇 성문 연각과 몇 중생이 날 것이다. 현재에는 몇 부처님과 몇 성문 연각이 있다.
어떤 부처님이 최초로 세상에 나왔고 어떤 성문 연각이 최초로 세상에 나왔으며, 어떤 중생이 최초로 세상에 나왔다. 어떤 부처님이 최후로 세상에 나오고 어떤 성문 연각이 최후로 세상에 나오며, 어떤 중생이 최후로 세상에 나오는가. 어떤 법이 최초에 있었고 어떤 법이 최후에 있는가. 세간은 어디서 오고 어디로 간다. 몇 세계가 이루어졌고 몇 세계가 무너졌다. 세계는 어디서 오고 어디로 간다 어떤 것이 생사의 최초요 어떤 것이 생사의 다 하는 것 등이니 이것을 무기법이라합니다.
보살 마하살은 생각하기를 「중생들은 오랫동안 생사에 흘러 다니고 우치한 범부들은 도를 닦을 줄 모른다. 나는 밤낮 부지런히 공부하되 모든 부처님의 법장을 받들어 지니고 끝내는 위없는 보리를 성취하여 중생들에게 진실한 법을 널리 설명하여 그들로 하여금 위없는 도를 이루게 하리라」하나니, 이것이 보살 마하살의 다섯째의 무진한 많이 들음 창고입니다.
불자들이여, 어떤 것이 보살 마하살의 보시 창고인가.
그 보살은 열 가지 보시를 수행합니다.
이른바 닦아 익히는 보시하는 법,
최후의 어려운 보시하는 법,
안으로 보시하는 법,
밖으로 보시하는 법,
안팎으로 보시하는 법,
일체를 보시하는 법,
과거를 보시하는 법,
미래를 보시하는 법,
현재를 보시하는 법,
끝까지 보시하는 법 등입니다.
어떤 것이 닦아 익히는 보시하는 법인가.
그 보살은 과거로부터 평등한 보시를 닦아 익힙니다. 그리하여 맛난 음식이 있을 때, 자기만이 탐착하지 않고 일체 중생에게 보시하며, 그 밖의 다른 물건도 그와 같이 합니다. 음식은 남에게 보시한 뒤에 자기가 먹으면서 생각하기를 「나는 이 음식이 내 몸에 있는 八만 호충(戶충)을 위해 먹는다. 내 몸이 안락하면 저들도 안락(安樂)할 것이요, 내 목이 굶주려 괴로우면 저들도 굶주려 괴로울 것이다」합니다.
그러므로 보살은 음식을 먹을 때에도 그것은 그 벌레들을 안락하게 하려 하고 그 맛에 탐착하지 않습니다. 그는 또 생각하기를 「나는 오랫동안 몸이 음식을 탐했으니 이제는 부지런히 정진해 빨리 이 몸을 버리리라」하나니, 이것이 보살(菩薩) 마하살의 닦아 익히는 보시하는 법입니다.
어떤 것이 보살 마하살의 최후의 어려운 보시하는 법인가.
그 보살이 갖가지 맛난 음식과 향. 꽃. 의복등 생활거리를 얻었을 때 그것을 자기가 수용하면 안락하고 오래 살 수 있을 것이요, 그것을 남에게 다 보시하면 곤궁하고 일찍 죽을 것인데, 마침 걸인이 와서 모든 것을 요구하면 보살은 생각하기를 「나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무수히 내 몸을 죽였지마는,
아직 한 번도 내가 손해 봄으로써 한 중생이나마 이롭게 하여 그로 하여금 큰 이익과 희유한 경사를 얻게 한 적이 없었다. 그러므로 내 신명을 죽이더라도 일체를 보시하여 중생을 이롭게 하고 큰 보시를 성취하리라」하나니 이것이 보살의 최후의 어려운 보시하는 법입니다.』
어떤 것이 안으로 보시하는 법인가.
그 보살이 젊었을 때 몸이 단정하고 얼굴이 아름다우며, 깨끗이 목욕하고 아름다운 옷과 장엄거리로 장식하고 관정식을 행하고 전륜왕의 자리에 앉아 七보를 갖추고 四천하의 왕이 되었을 때 마침 어떤 걸인이 그에게 가서 말했습니다. 『대왕님, 나는 지금 노쇠하고 또 중병이 들어 고독하고 고통하지마는 돌보아 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살아갈 길이 막혀 반드시 죽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대왕님의 그 수족이나 피. 머리. 눈. 골수. 머리골 등 필요한 것은 왕의 몸이 필요합니다. 만일 대왕님이 이 늙고 곤궁한 몸을 가엾이 여기시고 그 사랑하는 몸을 버려 나를 구해 주시면 나는 대왕님의 은혜로 이 목숨을 이어갈 수 있겠습니다. 그 때 보살은 곧 생각하기를 「내 이 몸도 저이와 같이 필경에는 죽고 말 것이니 그 때는 아무 소용없을 것이다. 지금 적당한 이 때에 이 몸을 버려 저이를 구제하리라」하고는 기뻐하면서 그 몸을 그 중생에게 보시하나니, 이것이 그 보살의 안으로 보시하는 법입니다.
어떤 것이 보살의 밖으로 보시하는 법인가.
그 보살이 젊었을 때 몸이 단정하고 얼굴은 아름다우며, 깨끗이 목욕하고 아름다운 옷과 장식하는 도구로 장엄하고 관정식을 행한 뒤 전륜왕의 자리에 나아가 七보를 모두 갖추고 四천하를 통치할 때 마침 어떤 걸인이 그에게 가서 말했습니다.
『대왕님, 나는 지금 노쇠하고 또 병에 걸려 남은 목숨이 얼마 안 되는데 이런 곤궁으로 마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대왕님은 일체 쾌락을 모두 누리고 있습니다.
원컨대 대왕님은 나를 가엾이 여겨 그 왕위를 내게 주시면 나는 이 천하를 통치하면서 왕의 복락을 누리겠습니다.』그 때 보살은 곧 생각하기를 「부귀는 무상하여 반드시 빈천으로 돌아가는 것이요, 만일 빈천에 살면 아무 이익이 없어 중생들의 소원을 만족시키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적당한 때에 이 왕위를 버려 그 마음을 기쁘게 하리라」하고는 기뻐하면서 그 왕위를 버려 그에게 주는데 이것이 보살의 밖으로 보시하는 법입니다.
어떤 것이 보살의 안팎으로 보시하는 법인가.
그 보살이 젊었을 때, 몸은 단정하고 얼굴은 뛰어나며 목욕해 깨끗하고 아름다운 옷과 몸을 꾸미는 도구로 장엄하고 관정하여 전륜왕의 자리를 받고는 七보를 모두 갖추고 四천하를 다스릴 때에 어떤 걸인이 그에게 가서 말합니다. 『대왕님, 나는 노쇠하고 또 병에 걸려 아름다운 이름을 바랄 수 없습니다. 원컨대 대왕님은 왕의 몸과 七보가 가득한 천하와 그 전륜왕의 자리를 내게 주소서.
그리하여 나로 하여금 왕의 즐거움을 모두 누리게 하소서.』 그 때 보살은 생각하기를 「내 몸도 저보다 견고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무상하고 연약해 망그라지는 법이다. 나는 지금 젊었고 천하의 부를 가졌다. 지금 걸인이 앞에 나타나 세 가지 일이 다 갖추어졌다. 그러므로 나는 이 견고하지 못한 것으로 견고한 것을 구하리라」하고 더욱 기뻐하여 곧 안팎을 모두 버려 그에게 주는데 이것이 보살의 안팎으로 보시하는 법입니다.
어떤 것이 보살의 일체를 보시하는 법인가.
그 보살이 젊었을 때, 몸은 단정하고 얼굴은 뛰어난데 향탕(香湯)에 목욕한 뒤에 아름다운 옷과 장식거리로 그 몸을 장엄하고 관정에 전륜왕의 자리를 받아 七보를 모두 갖추고 四천하를 다스릴 때 어떤 걸인들이 그에게 가서 말합니다. 『대왕님, 대왕님의 큰 이름은 시방에 두루 퍼졌사온데 우리가 저 나라에서 대왕님의 명성을 듣고 여기 까지 멀리 온 것은 청이 있어서입니다. 원컨대 대왕님은 우리 청을 따라 우리 마음을 만족시켜 주십시오.』
그 때 그 걸인들은 혹은 나라를 요구하고 혹은 처자. 권속을 요구하며, 혹은 사지. 피. 살. 머리. 눈. 골수. 머릿골 등을 요구합니다. 그 때 보살은 생각하기를「모든 은애(恩愛)는 모이면 반드시 떠나는 것이요, 아무 이익이 없어 중생들의 갖가지 소원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나는 지금 탐애 등 일체를 빨리 버려 중생들을 이롭게 하리라」하고 더욱 기뻐하여 일체를 버려 중생에게 보시하는데 이것이 보살의 일체를 보시하는 법입니다.
어떤 것이 보살의 과거를 보시하는 법을 닦아 익히는 것인가.
그 보살은 과거의 부처님과 보살네의 행한 원만한 공덕을 듣고도 그것은 없는 것임을 깨달아 알고는, 거기에 집착하지 않고 망상을 일으키지 않으며 탐하거나 맛들이지 않고, 모든 법을 관찰하나 거기에 의지하지 않습니다. 모든 법은 꿈과 같아 견고하지 않음을 알고 온갖 선근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거기에 집착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다만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그 몸을 나타내어 불도를 자세히 설명할 뿐이니, 그것은 중생들로 하여금 불법을 성취하게 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또 과거의 모든 법은 시방에 두루 찾아보아도 전연 얻을 수 없음을 관찰합니다. 그는 이렇게 관찰하고는 다시 생각하기를 「지나간 모든 법은 다 버려버리자」하나니 이것이 보살이 과거를 보시하는 법을 닦아 익히는 것입니다.
어떤 것을 보살이 미래를 보시하는 법을 닦아 익히는 것이라 하는가.
그 보살은 미래의 부처님과 보살네가 행할 선근과 그 원만한 공덕을 듣고도 그 모양에 집착하지 않아 마음에 두지 않고 그 부처 세계에 가서 나기를 바라지 않으며, 구하는 생각이 없고 또 발원하지도 않습니다. 마음을 걷잡아 산란하지 않고 좋아하거나 싫어하지도 않으며, 선근으로써 거기에 회향하지도 않고 거기 나기 위해 오로지 선근을 닦지도 않으며, 그렇다고 그것을 버리지도 않습니다.
다만 그 경계로써 중생을 교화하여 그들로 하여금 불법을 구족하게 하려 할 뿐입니다. 진실한 법을 관찰하지마는 그 진실한 법이란 처소가 있는 것도 아니요 처소가 없는 것도 아니며, 안도 아니요 바깥도 아니며, 먼 것도 아니요 가까운 것도 아님을 압니다. 그리하여 다시 생각하기를 「만일 법이란 있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버려야 하는 것이다」하나니, 이것이 보살이 미래를 보시하는 법을 닦아 익히는 것입니다.
어떤 것을 보살이 현재를 보시하는 법을 닦아 익히는 것이라 하는가.
그 보살은 사천왕천(四天王天)과 三十三천. 야마천. 도솔타천. 화락천(化樂天).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 범천(梵天). 범신천(梵身天). 범보천(梵輔天). 범권속천(梵眷屬天). 대범천(大梵天). 광천(光天). 소광천(少光天). 무량광천(無量光天). 광음천(光音天). 정천(淨天). 소정천(少淨天). 무량정천(無量淨天). 변정천(遍淨天). 밀신천(密身天). 소밀신천(少密身天). 무량밀신천(無量密身天). 밀과천(密果天). 불번천(不煩天). 불열천(不熱天). 선현천(善現天). 선견천(善見天). 색구경천(色究竟天)에 대한 일을 듣거나 또 성문연각의 원만한 공덕에 대한 일을 듣고도 그 마음이 어지럽지 않고, 바른 생각으로 그것을 잊거나 거기에 게으르거나 가라앉거나 또 근심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은 고요하여 아무 집착이 없습니다.
그는 생각하기를「모든 행이 다 꿈과 같고 모두 진실이 아니다. 중생들은 그런 줄을 모르기 때문에 나쁜 길을 돌아다닌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보살은 그들을 위해 널리 설법하여 그들로 하여금 모든 악을 멀리 떠나 불법을 성취하게 하면서도 보살도를 닦아 그 마음에는 어지러움이 없나니, 이것이 보살이 현재를 보시하는 법을 닦아 익히는 것입니다. 어떤 것을 보살의 끝까지 보시하는 법이라 하는가. 그 형상들이 같지 않은 한량없는 중생들이 그 보살에게 가서 말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모두 주십시오. 우리 마음이 만족하면 당신 서원도 다 이루어질 것입니다.』보살은 이 말을 듣고 기뻐 뛰면서 그들의 요구를 따라 보시하여 모두 만족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는 그 몸을 관찰합니다. 즉「이 몸은 처음 태에 들 때부터 부정하고 보잘 것 없는 것으로서 모든 감관을 형성하여 나고 늙지 않고 죽는 것이다」하고, 또 자세히 관찰하기를 「이 몸은 진실하지 않고 가진 모양이 없으며, 부끄러워할 줄도 모르고 성현들이 버리는 것이며, 오로(惡露)의 냄새는 썩는 송장 같다. 뼈마디가 서로 얽혀 피와 살이 싸고 있으며, 아홉 구멍에서는 더러운 것이 항상 흘러나오고 있다」고 합니다.
보살은 이렇게 이 몸이 한량없는 우환 덩어리임을 관찰하고는 잠깐도 몸을 탐하거나 아끼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그래서 또 생각하기를 「이 몸은 연약하고 위태로운 것이다. 나는 이미 이 몸은 한량없는 우환 덩어리임을 보았는데 왜 거기에 연연하랴. 나는 이것을 버려 중생들에게 주어 그들의 소원을 충족시켜 주리라. 나는 이 견고하지 않은 법 가운데서 견고한 법을 구해 그들의 소원을 모두 만족시켜 주고, 또 그들을 깨우쳐 인도해 모두 청정한 법신을 얻어 머무름이 없는 데 머무르고 몸과 마음에 대한 애착을 떠나게 하리라」하나니, 이것이 보살의 끝까지 보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보살 마하살의 여섯째의 무진한 보시 창고입니다.
『불자들이여, 어떤 것이 보살 마하살의 무진한 지혜 창고인가. 그 보살은 몸의 고통을 여실히 알고 몸의 모임을 여실히 알며, 몸의 멸함을 여실히 알고 몸이 멸하는 길을 여실히 압니다. 그리고 느낌. 상상. 의지. 의식 등의 고통을 여실히 알고 그것들의 모임을 여실히 알며, 그것들의 멸함을 여실히 알고 그것이 멸하는 길을 여실히 압니다. 또 무명의 고통을 알고 무명의 모임을 알며, 무명의 멸함을 알고 무명이 멸하는 길을 압니다. 또 욕망의 고통을 알고 욕망의 모임을 알며, 욕망의 멸함을 알고 욕망이 멸하는 길을 압니다.
또 성문을 알고 성문의 법을 알며, 성문의 모임을 알고 성문의 열반을 알며, 연각을 알고 연각의 법을 알며 연각의 모임을 알고 연각의 열반을 알며, 보살을 알고 보살의 법을 알며 보살의 모임을 알고 보살의 열반(涅槃)을 압니다. 어떻게 그것들을 아는가. 그것은 업보의 인연으로 지어진 것으로서, 모든 행은 〈나〉가 아니요, 견고한 것이 아니며 진실한 것이 아니요, 아무 것도 없는 공인 것을 압니다. 그리하여 모든 법을 견고한 것이라 집착하지도 않고 모든 법을 있는 것이라 집착하지도 않아서 일체 법이란 아무것도 없음을 압니다.
그리하여 모든 중생을 위해 진실한 법을 말합니다. 어떻게 말하는가. 모든 법의 파괴할 수 없음을 말합니다. 어떤 것이 파괴할 수 없는가.「몸을 파괴할 수 없고 느낌. 상상. 의지. 의식 등을 파괴할 수 없으며, 무명을 파괴할 수 없고 성문법. 연각법. 보살법을 파괴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모든 법은 스스로 된 것도 아니요 남이 지은 것도 아니며, 말할 수도 없고 처소(處所)도 없으며,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으며 줄 것도 아니요 받을 것도 아니며, 어떤 마음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보살은 이런 무진한 지혜 창고를 성취한 뒤에는 조그만 방편으로 모든 법에 대한 묘한 방편을 다 얻어 온갖 이치를 알지마는 그것은 스스로 밝게 아는 것이요, 남을 의지해 깨달은 것이 아닙니다. 그 지혜 창고에는 그 끝이 없는 열 가지가 있습니다.
열 가지란 이른바 끝없이 많이들은 그 방편이 좋고 끝없이 선지식을 친근하며, 끝없이 한 글귀의 법을 연설하고 끝없이 깊은 법계에 들어가며, 끝없이 무한한 지혜의 장엄에 들어가고 끝없이 온갖 공덕을 길러 근심하는 마음이 없으며, 끝없이 모든 다라니 문에 들어가고 끝없이 일체 중생들의 말과 음성을 분별해 알며, 끝없이 중생들로 하여금 온갖 의혹에서 떠나게 하고 끝없이 모두 부처님의 신통을 나타내어 중생들을 교화해 그 행을 성취하게 하는 것이니, 이것이 그 끝없는 열 가지 법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보살 마하살의 일곱째의 무진한 지혜 창고로서, 보살은 이 무진한 지혜 창고에 머물러 위없는 등정각을 빨리 이루는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어떤 것이 보살 마하살의 무진한 생각 창고인가. 그 보살은 우치의 어두움을 떠나 과거의 一생. 十생. 백생. 천생. 만생 내지 한없는 불가사의한 아승지의 생과 말할 수 없는 나유타의 생을 기억하고 또 이뤄지는 겁과 무너지는 겁과 이뤄지고 무너지는 겁을 기억하되, 한 이뤄지는 겁이나 한 무너지는 겁이나 한 이뤄지고 무너지는 겁만이 아니라 백 겁. 천 겁. 백천억 나유타 겁. 내지 한없고 불가사의한 아승지겁과 말할 수 없는 억 나유타겁을 모두 기억합니다.
또 한 부처님의 명호와 내지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부처님네 명호를 기억하고, 한 부처님의 수기와 내지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부처님네의 수기를 다 기억하며, 또 한 부처님의 세상에 나오심과 내지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부처님의 세상에 나오심을 다 기억합니다. 또 한 부처님에게서 배운 한 수다라와 내지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부처님에게서 배운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수다라를 다 기억하고 기야. 수기. 가타. 니다나. 우다나. 본사(本事). 본생(本生). 방광(方廣). 미증유(未曾有). 비유. 논의(論議)등도 다 기억합니다.
또한 법회와 한번의 설법과 내지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법회와 설법을 다 기억하고 한 중생의 근기와 내지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중생들 근기를 다 기억하며, 한 가지 번뇌와 내지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온갖 번뇌를 기억하고 한 삼매와 내지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모든 삼매를 기억합니다. 또 보살은 이런 기억을 가지고 있으니 이른바 묘한 기억, 흐리지 않은 기억, 두루 깨끗한 기억, 번뇌를 떠난 기억, 갖가지 번뇌를 떠난 기억, 더러움을 떠난 기억, 빛나는 기억, 즐거운 기억, 장애 없는 기억 등입니다.
그 보살이 이런 기억에 머무를 때에는 어떤 세간도 그를 어지럽히지 못하고 깨끗한 감관은 다시 물들지 않으며, 모든 세간의 온갖 악마와 외도들도 파괴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그는 모든 불법을 잘 기억하고 그것은 분명히 알라 조금도 착란하지 않나니, 이것이 보살 마하살의 여덟째의 무진한 기억 창고입니다.
불자들이여, 어떤 것이 보살 마하살의 무진한 들어 지니는 창고인가. 그 보살은 부처님으로부터 한 품(品)의 수다라를 들어 지니고 내지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수다라를 들어 지니되 한 글자 한 글귀도 잊지 않고, 한 생애만 잊지 않을 뿐 아니라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생까지 그 한 글자 한 글귀도 잊지 않습니다. 한 부처님 명호만 들어 지닐 뿐 아니라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부처님까지도 들어 지닙니다.
또 한 세계의 이름만 들어 지닐 뿐 아니라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겁의 이름까지도 들어 지니며, 한 부처님의 수기만 들어 지닐 뿐 아니라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부처님의 수기까지도 들어 지니고, 한 수다라만 들어 지닐 뿐 아니라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수다라까지도 들어 지니며, 한 법회의 이름만 들어 지닐 뿐 아니라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법회 이름까지도 들어 지닙니다.
또 한 때의 설법만을 들어 지닐 뿐 아니라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때의 설법까지도 들어 지니고, 한 중생의 근기만을 들어 지닐 뿐 아니라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중생의 근기까지도 들어 지니며, 한 번뇌만을 들어 지닐 뿐 아니라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번뇌까지도 들어 지니고, 한 삼매만을 들어 지닐 뿐 아니라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삼매까지도 들어 지닙니다. 이것이 보살 마하살의 아홉째의 매우 깊어 무진한 들어 지니는 창고로서, 이 들어 지니는 창고는 부처님 만의 경계요, 다른 이는 아무도 미칠 수 없는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어떤 것이 보살 마하살의 무진한 변재 창고인가. 그 보살은 매우 깊은 지혜를 성취하고 중생들을 위해 온갖 법을 연설하되 모든 부처님 경전에 어긋나지 않습니다. 한 품(品)의 법을 말하고 내지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품의 법을 말하고 내지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품의 법을 말하며, 한 부처님 명호를 말하고 내지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부처님 명호를 말하며, 한 세계의 이름만 말하고 내지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세계의 이름을 말하며, 한 부처님의 수기와 한 수다라, 한 모임 한 때, 한 근기, 한 번뇌, 한 삼매 등을 말하고 내지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삼매(三昧)를 말합니다.
그리하여 하루 동안에 한 글귀 한 뜻의 법을 말하여 끝이 없고 내지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겁 동안 한 글귀 한 뜻의 법을 말하되 그 끝이 없나니, 일체의 겁은 그 끝이 있어도 한 글귀 한 뜻의 법은 그 끝이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보살은 열 가지 무진한 창고를 모두 성취하기 위해 이 변재 창고를 성취(成就)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모든 법의 다라니문을 거두어 그것이 앞에 있는데 백만 아승지 다라니로 그 권속을 삼았습니다.
그는 백만 아승지 다라니로 그 권속을 삼고는 법의 광명인 변재로 중생들을 위해 깊은 법을 연설할 때, 넓고 긴 혀로 묘한 음성을 내어 시방 세계에 가득하고 중생들의 근기를 따라 번뇌를 없애어 모두 기쁘게 하며, 일체의 음성에 잘 들어가고 일체의 문자에서 변재가 끊어지지 않으며, 두루 비추는 법문에 들어가 일체 중생에게 연설하나니, 그것은 부처 종자를 끊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또 그는 보살의 모든 행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고달파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보살은 허공계와 법계에 가득한 청정한 법신을 성취했기 때문이니 이것이 보살 마하살의 열째의 무진한 변재 창고입니다. 이 창고는 한량이 없고 한계가 없으며 간단히 없어 부술 수 없고 끊어지지 않아 끊을 수 없으며, 물러나지 않고 매우 깊어 밑이 없으며 일체의 법문으로써 일체 불법에 잘 들어가는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보살 마하살의 열 가지 무진장 창고로서,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위없는 보리를 끝까지 성취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창고에는 열 가지 무진한 깊은 법이 있습니다. 그 열 가지란 이른바 중생들을 이롭게 하고 잘 회향하며, 본래의 서원을 끊지 않고 모든 겁에서 행하고 무량무변한 마음으로 허공처럼 평등하게 관찰하며, 유위로 회향하되 무위에 집착하지 않고 무진한 모든 법의 경계를 찰나찰나로 알며 큰 서원을 부술 수 없고 다라니 행의 모든 힘을 다 이루며, 모든 부처님이 보살피고 일체 법에 들어가되 환화(幻化)와 같음을 아는 것입니다.』이것이 열 가지 무진한 법으로서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무진한 창고를 얻게 하는 것입니다.
대방광불화엄경 제 十二권
불타발타라 한역
十八. 보살십무진장품 끝.
첫댓글 대방광불화엄경 귀의합니다. 경봉님 수고 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