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나바위성당'은 역사와 유래가 깊은곳이다.
나바위 성당은 1845년 10월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신부가 중국 상해에서
사제품을 받고 페베올 주교, 다블뤼 신부와 첫발을 내딛은 곳으로 이를 기념하여 세워진 성당이다.
1897년 본당 설립 당시 '화산본당'이라 불렸지만 1989년부터 '나바위성당'이라 불렸다.
성당이 위치한 곳이 화산(華山)이다. 조선 후기 문신이었던 우암 송시열 선생이
산세가 아름답다 하여 ‘화산’이라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화산 산줄기 끝자락에 광장처럼 너른 바위가 있다.
지난 10월 15일 문화재청은 사적 제318호인 화산천주교회를
익산 나바위성당(益山 나바위 聖堂)으로 명칭 변경을 고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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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내부를 빠져나와 김대건 신부 성상 옆에 서면 화산의 산책로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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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로 오름길.. 김대건 신부상
나바위 성지 옆에는 조그만 잔디밭에 쉼터가 있어 여행에 지친 관광객들에게 휴식을 제공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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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모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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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뒤편에는 야외 제대와 '평화의 모후' 성모 동산이 있으며, 화산 정상까지 '십자가의 길'이 조성돼 있다.
이 십자가의 길을 따라 화산 정상에 오르면 '김대건 신부 순교 기념비'와 '망금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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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길 순교자의 삶
내 마음에 주를 향한 사랑이
나의 말엔 주가 주신 진리로
나의 눈에 주의 눈물 채워주소서
내 입술에 찬양의 향기가
두 손에는 주를 닮은 섬김이
나의 삶에 주의 흔적 남게 하소서
하나님의 사랑이 영원히 함께 하리
십자가의 길을 걷는 자에게
순교자의 삶을 사는 이에게
조롱하는 소리와 세상 유혹 속에도
주의 순결한 신부가 되리라
내 생명 주님께 드리리
내 마음에 주를 향한 사랑이
나의 말엔 주가 주신 진리로
나의 눈에 주의 눈물 채워주소서
내 입술에 찬양의 향기가
두 손에는 주를 닮은 섬김이
나의 삶에 주의 흔적 남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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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금정을 오르는 길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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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금정
순교 기념비 뒤쪽으로 금강 황산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망금정’이 있다.
이 곳은 김대건 신부의 순교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김대건 순교 기념비와
금강 황산포를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이다.
나바위 성지가 있는 언덕은 ‘화산(華山)’이라 불리는데, 이는 우암 송시열 선생이
산세가 너무 아름다워 화산이라 부른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나바위 성당의 ‘나바위’란 말은 화산 산줄기 끝자락에 광장처럼 너른 바위가 있는데
이 너른 바위에서 이름을 따와 ‘나바위’라고 불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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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교구장 드망즈(Demange)주교는 1912년부터 매년
6월에 화산 정상인 이곳에서 금강을 바라보며 피정을 하였다.
당시 전라도교회는 대구교구소속이었다.
1915년 베르모렐 신부는 주교의 피정을 돕기 위해 정자를 짓고,
드망주 주교가 이 정자를 망금정이라 이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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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금정 아래까지 금강 강물이 넘실거렸지만 1925년 일본인들이 이 일대를 간척하면서
금강 줄기가 바뀌어 지금은 비닐하우스로 뒤덮은 평야로 변했다고 한다.
이 곳에서 보면 강경읍 황산대교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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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김대건신부 순교 기념비
화강석 축대 위에 설치된 순교 기념비는 총 높이가 4m 50cm로, 이곳이 김대건 신부가 사제품을 받고
조선에 첫 발을 내디딘 곳임을 알리기 위해 김 신부가 타고 왔던 '라파엘호'를 연상하여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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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금정 아래절벽에 삼존불이 조각 되어 있다.
성당이 들어서기 전에 마애불이 새겨진 것으로 .
이 곳은 과거 암자로도 사용되던 곳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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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입구의 마리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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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바위성당은 우리 민족의 수난과 애환을 함께 해왔다.
초대 주임 베르모렐 신부는 지역 유지와 함께 1908년 성당 안에
소학교(초등학교)인 '계명학교'를 설립하여 운영했다. 1947년 폐교될 때까지
신사참배에 저항하는 한편 애국계몽운동을 통한 구국에 앞장섰다.
또한 1949년 간이진료소인 '시약소'를 설립하여 1987년 폐쇄할 때까지
40년 가까이 가난한 농민들의 건강을 돌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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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세신부의 묘
나바위 본당 2대 주임 소세신부의 무덤이다.
소세신부는 부임한지 2년만에 무릅종양이 악화되어 강경병원에서 수술을 했으나 숨졌다.
그의 주검은 나바위 성당을 바라보며 묻히기를 원하던 소세신부의 유언에 따라 이 곳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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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최대의 사찰 미륵사지
원불교의 산 역사를 느낄수 있는 원불교 익산성지
한국인 최초의 신부이 김대건 성인이 첫발을 내디딘 나바위성당.
한국 기독교 사적지 제 4호로 지정된 두동교회까지
유서깊은 4색종교 유적을 품고 있는 익산이다.
특히 익산에는 이 네가지 종교를 테마로 아름다운 순례길이 조성되어 있던데,
순례길을 따라 걸어본 적은 없지만
언제 기회가 닿으면 이 순례길을 따라 걸어보고 싶다...
익산 나바위성당
전북익산시 망성면 화산리 1158-52
063-861-8182
첫댓글 나바위성당의 자세한 안내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