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학과는 20여년이 지나면서 많은 변화를 겪어 왔습니다.
2005년 현재 입학정원은 100명이고 교수님들도 11분으로 이제 양적인 발전이 있었습니다.
아마 90년이전에 졸업하신 동문들은 새로 오신 교수님들을 뵌적이 없을 듯 싶네요..
그래서 법학과의 역사에 대해서 간략히 적어 보았습니다.
서울시립대학교 법학과 연혁
서울시립대학교 법학과는 1981년 계열별 모집으로 선발된 법정학부 156명 중 1982년 2학년 진급과정 속에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법학과로 진입한 81학번 선배님들로 자랑스런 첫 발을 내디뎠다. 당시 도시행정학과 등에 부임하고 계셨던 신홍 교수님을 비롯한 최양수 교수님, 박수혁 교수님, 구상진 교수님은 법학과의 창설에 뜻을 같이 하셨고, 이러한 노력이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1981년에는 우리 대학의 교명이 서울산업대학에서 서울시립대학으로 변경된 뜻깊은 해이기도 하다.
1982년에는 법학과로 개편하여 학과별 모집을 통하여 44명의 신입생을 맞이하였고, 그해 10월에는 사회과학관의 준공으로 법학과의 보금자리를 틀게 되었다. 1985년에는 오늘날 800여 동문의 기틀을 사회에 마련한 제1회 졸업생으로 16명의 선배님들이 배출되었다.
특히 우리의 81학번 선배님들은 1983년 학생회 부활을 계기로 본격화된 대학민주화 및 정치사회 민주화투쟁의 최선봉에서 서울시립대학을 이끌었으며, 이러한 선배님들의 정신은 그 이후에도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1985년에는 권기범 교수님께서 우리 학과에 부임하여 상사법 강의를 담당하였다.
1987년에는 우리 대학이 명실상부한 종합대학교로 승격되면서 새로운 도약의 전기를 마련한 해이며, 또한 5.16군사정권 이후 이어져 온 군부독재의 맥을 끊는 민주화대항쟁의 시기이기도 하였다. 우리 법학과는 호헌철폐와 민주헌법 쟁취라는 거대한 사회적 항쟁의 흐름 속에서 최선봉에 서 있었다. 1987년 11월 전농벌에서 개최된 서울지역 법학과 대표자협의회 대동문화제는 “정의는 책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것”이라는 작은 진리를 남겼다. 그리고 같은 해 9월 우리 법학과 최초의 학회인 형사법학회가 85학번 선배님들의 노력으로 창설되었으며, 11월에는 작은 노력들이 모여 제1회 형사모의재판이 개최되었다.
1988년에는 대학입학시험제도의 개편과 졸업정원제의 폐지 등에 따라 입학정원이 40명으로 조정되었다. 88올림픽을 계기로 국가경쟁력이 고양되는 가운데 우리 법학과에서는 법학과 신문인 “시대법학”을 창간하였고 이듬해인 1989년에는 실천하는 법학을 지향하는 법사회학회가 창설되었다. 그리고 동년 10월에는 제1회 전농골 법학인의 축제가 개최되어 동문과 재학생이 어우러지는 마당이 펼쳐졌다.
1990년에는 86학번 선배님들의 주도 하에 헌법학회가 창설되었으며, 막 걸음마를 뗀 법사회학회가 제1회 심포지움을 개최하기도 하였다.
1991년은 우리 법학과 총동문회가 탄생한 해이다. 동년 3월 1일 그동안 사회 각계각층에서 활동하시던 법학과 동문들이 모교와 법학과의 발전에 뜻을 같이 하고 한자리에 모여 제1대 총동문회장으로 81학번 이성복 동문을 선출하였다. 제1대 총동문회장 이성복 동문은 어려운 사회생활 속에서도 법학과총동문회의 기반을 세우시는데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이러한 선배님의 노력 속에서 법학과 총동문회가 그 싹을 틔울 수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같은 해 신홍 교수님께서 우리 대학교 총장으로 선출되었으며, 김재문 교수님께서 새로 오시는 등 법학과의 질적 발전이 있었으나, 형사법을 담당하시던 구상진 교수님께서 사임하시는 내홍을 겪기도 하였다.
1993년에는 민사법 전공의 박영규 교수님이 우리 학과에 부임하였다.
1995년에는 우리 헌법학회가 제1회 모의헌법재판을 개최하였으며, 1996년에는 학과동아리 “소리나래”가 창설되어 우리에게 아름다운 노래로 기쁨을 주었다. 같은 해 강동범 교수님께서 부임하여 공백이었던 형사법 분야의 강의를 담당하였으며 이듬해에는 상사법의 신창섭교수님께서 경영학과에서 우리 과로 자리를 옮기셨다.
1996년은 우리 과 총동문회가 제2의 전기를 마련한 해이다. 같은 해 5월 11일 개최된 총동문회 정기총회에서 우리 과 최초로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법조계의 문을 활짝 열어 준 81학번 김종일 동문이 제2대 법학과 총동문회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제2대 총동문회장 김종일 동문은 많은 동문들의 무관심 속에서도 학번별 스승의 날 행사 개최, 사법시험 수험생들의 격려 등 총동문회 발전에 많은 노력들을 기울였다.
1997년에는 법학과의 오랜 숙원이었던 정원 증원이 이루어졌다. 기존의 입학정원 40명이 주간 50명, 야간 25명으로 총정원 75명의 대식구를 우리 과에 맞이하게 되었다.
1990년대 후반에 들어서는 사법시험 합격자수가 매년 5-6명으로 늘어나게 되어 현재 30여명의 동문들이 법조계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행정고시를 비롯하여 각종 전문직 진출이 획기적으로 늘어났다.
교수진의 구성에도 양적이고 질적인 변화가 있었다. 민사법의 정병호 교수님, 행정법의 경건 교수님, 헌법의 장영철 교수님을 새로 모시게 되었으나 형사법의 강동범 교수님이 이직하시는 등의 변화가 있었다.
2005년 1월에는 각계각층에서 활약해 온 동문들의 개별적인 노력을 한 곳에 모으고 모교와 법학과의 발전에 기여하기 위하여 총동문회 이사회가 개최되었고 제3대 총문회장으로 83학번 주광열 선배를 추대하였다.
특히 2005년부터는 자체정원조정을 통하여 야간학과가 폐지되고 총정원 100명의 신입생을 맞이하게 되었으며, 국제법의 김대원 교수님을 새로 모시게 되어 질적, 양적인 발전의 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정미씨 좋은 생각이넹...역사방 메뉴를 이렇게 구성해 봄 어떨까 ①개관, ②80년-84년, ③85년-89년, ③90년-94년, ④95년-99년, ⑤00년-04년으로 구성하고 개관은 운영진이 쓰고, 나머지 연도별로는 각 연도에 학교에 다녔던 동문들이 특기할 만한 사건이나 활동을 자율적으로 기록하게 하는것이 어떨까? 오마이뉴스처럼
첫댓글 너무 길어서 못읽음..역쉬..아직도 글자 읽는게..싫은거 같아. ㅋㅋ
에궁...나눠서 시기별로 게재할 거 그랬다..
음 파워포인트로 다시 작성해서 올려라....누가 텍스트 읽고 있냐...촌스럽게....
지송...파워포인트 작성 잘 못하는대여...누가 잘하는 사람이 수고 좀 해주시져..
최환용 법학과 역사방을 좌측에 하나 만들어라......
유현선배님 말씀에 동감. 역사방 만들고, 한번에 글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기간을 정해 두고 일정 기간 동안은 그 해에 일어났던 일들만 회상해서 글을 올리고 이런 식으로요. 그럼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를 할 수도 있겠네요. ^^
정미씨 좋은 생각이넹...역사방 메뉴를 이렇게 구성해 봄 어떨까 ①개관, ②80년-84년, ③85년-89년, ③90년-94년, ④95년-99년, ⑤00년-04년으로 구성하고 개관은 운영진이 쓰고, 나머지 연도별로는 각 연도에 학교에 다녔던 동문들이 특기할 만한 사건이나 활동을 자율적으로 기록하게 하는것이 어떨까? 오마이뉴스처럼
유현성...근데 호칭에 문제가 좀 있네..정미는 정미씨이고..난 그냥 최환용인 건 무슨 차이지..? 성차별 아닌가?
음 그럼 앞으로 정답게 환용씨라고 불러주지.....환 용 씨~
징그럽다....닭살이 돋네요...그냥 환용아 하고 불러줘요...
왕조사관(명망가 중심)뿐만 아니라 민중사관으로도 작성되었으면..ㅎㅎㅎ
이번 임시총회를 위해 수고한 환용후배님에게 감사^^
최환용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