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소심 이 여사 (이연희)
나는 소심한 O 형이다.큰 덩어리는 아예 걱정을 안 하는데 소소한 걱정은 차고 넘친다.
남 보기엔 낙천적이고 긍정의 여왕인데 속은 헝클어진 실타래 같아 넘어야 할 야산이 많다.
몇 년 전에 16층에 살 땐 바람이 부는 다음 날 내 얼굴은 거의 수채화 수준이다. 다크 서클, 충혈된 눈 ,핏기 없는 얼굴,그러다 보니 신경이 곤두서 짜증은 나고,어휴 마귀 할멈이 따로 없다.왜 일까?
바람 소리가 시끄럽고 겁이 나서 들랑날랑 하느라고 잠을 못 자고 아예 안 잔다.
태풍이 심하게 불던 어느 해 여름 날은 베란다 큰 창이 부서질까 겁이 나서 자려고 뜸 들이다가 X자로 테이프 부치고
물 축인 신문지 생 난리를 쳤다.나중에 테이프 떼고 테이프 자국 지우느라 몸살이 났다. 4층으로 이사오고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 싶었더니 걱정은 엉뚱한데서 불거졌다.빌라 외벽을 장식한 돌이 태풍에 떨어져 주차한 차에 흠집이
생겼다고 보험회사에서 전화가 왔다.하필이면 왜 또 외제차인지, 흠집 수리비만 견적이 240만 원 나왔다고 물어
내린다 . 중치가 콱 막힌다. 법돌이 아들한테 전화해서 물어봤더니 차 세워둔 곳이 빌라 소유 사유지가
아니니 배상을 해줘야 되는데 좀 버티고 있으면 그쪽에서 먼저 합의 하자고 할거라고, 그럼 배상액이 조금 내려 갈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아니 그곳에 누가 차 세우라 했나.별게 다 속을 썩이고 난리야 화가 머리 끝까지 난다.
살다가 별 일이 다 생겼다.바람 때문에 구렁이 알 같은 돈 160만 원을 8세대가 나누어 물어 주고 "주차금지" 표시를 해놔서 안심이다 싶었는데 시간이 좀 지나니 또 슬 슬 주차를 하기 시작한다.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은 위험하니 다른데 주차하라고 ,벽돌이 떨어져도 절대 책임 안 진다고 사진이랑 문자를 증거로 남겨 넣는다..자다가도 바람 소리가 심상치 않다 싶으면 내려가서 확인 작업 들어 가니 정말 바람이 싫다. 이만하면 왕소심 이 여사 확실하다.
물론 좋아하는 바람도 있다.눈 부신 5월에 노랑연두초록잎을 흔드는 상큼한 바람은 나를 행복의 나라로 데려가 주기도 하고,어설픈 시인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바람이 불면 또 다른 걱정도 있다.
내일 모레 칠십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친정 걱정에 잠을 설친다.친정이 바람이 유명한 제주도도 울릉도도 아니다.
대구 시내 땅값 비싼 *성구 *촌 네거리 부근인데 내가 대학 입학 할 때 산 집에 지금껏 살고 계신다 . 화장실,부엌만 입식으로 고치고 백평 넘는 마당에 다른 건 손 안보고 그냥 살고 있다 .자식들이 이사하자고 애원을 해도 내 죽거든 해라 하시는데 그게 벌써 십년이 지났다.무섭고 완고한 아버지한테 칠십이 다 되어가는 자식들이 아직도 스을슬 긴다.
이 세상에서 우리 아버지보다 더 무서운 아버지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중학교 친구를 아주 오랜만에 만났는데 "연희야~ 아직도 너거 아부지 여전히 그렇게 무서우시나?”하고 안부를 물을 정도 이다. 한 사 년전부터 비만 오면 부엌과 안방 옆 간이 부엌엔 비가 새서 물이 흥건하게 고인다. 비바람에 나무가 부러져 많이 다칠뻔 하셨는데도 꿈쩍도 안 하신다. 지붕을 손 볼려고 알아 보니 수리비는 천문학적으로 들고 일에 비해 눈에 보일 결과가 별로 이니 선뜻 맡아서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어서 아버지가 또 그냥 살자고, 비오면 맞으면 된다지만, 나는 걱정이 앞선다 계속 그렇게 사시니 두 분은 불편함을 하나도 못느끼신다. 소심의 극치인 나는 바람이 불어도
비가 와도 친정 걱정을 한다.서울사는 동생들은 비가 새고 바람에 마당이 엉망인 것을 본 적이 없어 걱정 안하지만
매주 드나드는 나는 봤기에, 경험 했기에 비바람 불면 머리가 지끈거친다.통장에 돈도 있고 동생들도 능력이 있는데 왜 쓸데없는 아집을 부리시는지시내 한 복판에도 수십억짜리 비 새는 집이 있다니 신문에 날 일 있다. 마당에 오죽(烏竹)이 빽빽한데 바람 불면 귀신우는 소리가 난다. 난 그 소리가 무섭고 음산해서 싫다.나뭇가지 부러져 다치실까 ,비 샐까 온갖 걱정에 잠을 잘 수가 없다. 바람만 불면 제가 마음이 진정이 안된다. 왕소심 이 여사는 언제나 쪼매 더 대범한
사람이 될까.
첫댓글 소심이라기 보다는 잔정이 많으신 분 같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