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예술문화 월간지 11월호
코스모스를 노래함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인데 ‘지구온난화’가 진행되면서 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이 더해지고 봄과 가을이 짧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가을의 대표적인 꽃이라 하면 코스모스, 국화꽃, 구절초가 생각난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습은 파란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코스모스가 바람 방향에 따라 이리저리 하늘하늘 흔들리는 모양이다.
한 해살이라 한번 본 꽃을 다음해에는 못 볼까하는 생각도 들지만, 떨어져 땅 속 어딘가에 숨어 있던 꽃씨는 다음해에도 꽃을 피어내 정답게 다시 만나게 된다.
중학교 시절 친구가 코스모스를 책갈피에 끼워 말린 예쁜 꽃을 준 아름다운 기억이 있다.
코스모스를 노래함
이기순 작시/ 이흥렬 작곡
달 밝은 하늘 밑 어여쁜 네 얼굴
달나라 처녀가 너의 입 맞추고
이슬에 목욕해 깨끗한 너의 몸
부드런 바람이 너를 껴안도다
코스모스 너는 가을의 새아씨
외로운 이 밤에 나의 친구로다
밤은 깊어가고 마음은 고요타
내 마음 더욱더 적막하여지니
네 모양도 더욱더 처량하구나
고요한 이 밤을 너 같이 새려니
코스모스 너는 가을의 새아씨
외로운 이 밤에 나의 친구로다
작곡가 이흥렬은 일본 동양음악학교에서 피아노를 전공하다 졸업한 뒤 1931년 귀국하여 원산에 있는 모교인 광명보통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1933년 경성보육학교에서 홍난파(洪蘭坡)와 함께 교편을 잡으면서 동요 작곡에 힘쓰셨는데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으로 시작하는 유명한 ‘섬집 아기’가 있다.
낳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어렸을 적 이 노래를 불러봤을 기억이 있을 것이다. ’‘어머니의 마음‘ 작곡자이기도 하신 이흥렬 선생은 어머니와의 유명한 일화가 전해지기도 한다.
한국의 슈베르트라고 불리는 이흥렬 선생은 피아니스트로서의 길을 접고 작곡에 매진하시면서 나온 곡으로, ‘코스모스를 노래함’은 초기 작품이다.
고향인 원산에서 교사로 계실 때 이기순의 시를 읽고 멜로디를 입힌 것이다(1932년 발표).
밝게 흘러가는 운율을 타고 달빛이 있는 한밤의 코스모스를 조명하여 가을의 새아씨로 청초함을 호소력 있게 노래한다.
‘적막한’, ‘밤’, ‘외로운’, ‘처량’, ‘외로운’....왠지 슬픈 노래 같으나 ‘달나라 처녀’, ‘이슬‘, ’부드런 바람‘, ’친구‘로 반전을 이룬다.
아마도 이기순 시인은 외로운 마음이었나 보다. 그런데 달빛과 어여쁜 코스모스를 만나 친구가 되는 상상속의 이야기는 가슴 설레는 가을의 노래가 되었다.
우리 한국 가곡은 슬픈 곡들이 많은데 전주부도 화려하게 시작하여 경쾌하게 흘러가는 곡으로 누구나 따라 부르기가 좋다.
1934년 ‘이흥렬 작곡집’을 출간하신 뒤에도 많은 작품들을 발표하시면서 활발하게 활동하셨는데, 일제 강점기를 지나며 친일 작곡가로 비난 받으시기도 하셨다.
역사적으로 분석하고 비판하는 일도 필요하다. 그러나 작품은 작품의 예술적 가치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어떨까 하는 필자의 생각이다.
얼마 전 지역의 구청 행사에 초청되어 연주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날 연주한 곡이 ‘코스모스를 노래함’, ‘꽃구름 속에’이다.
부르고 보니 공교롭게 모두 이흥렬 선생의 곡이었다.
“꽃구름 속에”의 내용은 추위와 주림의 힘들었던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힘찬 리듬과 화려한 음정, 꽃바람을 느끼는 감각과 봄날의 꽃향내를 맡는 후각의 느낌을 발동시켜 행복한 시간을 상상하게 한다.
광복 4년 전인 1941년에 발표된 시로 일제 강점기의 한창 혹독한 시기의 노래이기에 그 당시 작곡가의 마음이 가장 잘 녹아있지 않았을까!
이흥렬 선생은 꽃과 꽃바람, 꽃향기 등 자연의 아름다움을 통해 작품으로 표현하여 민족의 슬픔을 위로하고 계셨으리라 생각된다.
“노래는 자연스럽고 인간적이어야 한다”라는 말씀을 남기셨다는데, 그래서인지 친숙하고 언제 불러도 마음에 와 닿는 곡들이 많은 듯하다.
성 문 원 (성악가, 시인)
https://www.youtube.com/watch?v=gR8kaNvvp7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