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딱지
필봉 최해량
오늘은 아시안 게임 축구 4강전이 펼쳐지는 날이다. 나는 축구를 크게 좋아하지 않지만, 이날만큼은 애국심이 발동된다. 이 경기에 이겨야 맞수 일본과 아시아의 자웅을 겨룰 수 있다. 최고의 기량을 지닌 우리 팀은 8강전에서 개최지의 프리미엄과 몸싸움으로 유명한 소림축구 중국을 2:0으로 따돌리고 우즈베크와 만났다. 이 팀은 과격한 태클과 신체를 가격하는 거친 플레이를 서슴지 않는다. 피파 랭킹은 우리보다 한 수 아래지만 파워풀 하고 와일드한 경기를 일삼아 아시아 폭력 3강에 드는 팀이다.
경기가 시작되자 우리는 뛰어난 개인기와 유연한 팀플레이를 펼치며 2:0으로 앞서 나갔다. 상대 팀도 질세라 한 골을 만회하며 더욱 저돌적으로 나왔다. 밀고 밀리며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경기가 펼쳐지던 중 우즈베크 특유의 거친 플레이가 시작되었다. 후반전, 부리예프 선수의 강한 가격에 이강인 선수가 쓰러졌고 주심은 이내 노란 딱지를 꺼내 들었다. 그는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잠시 뒤 조영욱 선수를 강하게 태클했다. 자신의 심한 반칙을 의식한 그는 엄살을 부리며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주심은 가차 없이 ‘옐로카드’와 ‘레드카드’를 거의 동시에 꺼내며 퇴장시켜 버렸다. 우리는 한 명이 빠진 우즈베크를 여유롭게 따돌리며 결승에 진출할 수 있었다.
경기에서 경고 카드를 노란색으로 선택한 것은 의외이다. 노란색은 희망의 상징이다. 봄의 전령사 복수초는 북풍한설 언 땅을 뚫고 노란색 얼굴을 내민다. 길거리를 샛노랗게 치장하는 개나리며 왠지 쓰다듬어 주고 싶은 병아리도 노랑 옷을 입고 있다. 노랑이 유치원 버스가 지나가면 어떤 귀염둥이가 타고 있는지 들여다보고 싶어진다. 이렇게 좋은 색을 경고의 색으로 쓰다니!
반면 노랑의 부정적 이미지도 만만치 않다. 좀처럼 지갑을 열지 않는 인색한 사람을 노랭이라 부른다. 서양에서는 사악한 사람이나 배신자를 ‘옐로우 독’이라고 하는데 노란색 개가 있다는 말은 도무지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노란 딱지가 많은 긍정적 이미지를 버리고 부정적 의미를 채택한 것은 노랑에서 빨강으로 변하는 교통 신호등을 보고 만들었다니 조금은 맥이 빠진다. 이렇게 만들어진 노란색과 빨간색 카드는 1970년 멕시코 월드컵 개막전에서 처음으로 사용하였고 1993년 ‘피파’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여 오늘까지 이르고 있다.
노란색은 경고장 외에도 특정 서식에도 사용된다. 황열병 예방접종 카드의 색상이다. 이 병의 중증 증상인 황달과 깔맞춤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노란 종이에 인쇄한다. 아프리카 중・동부 일부 국가에서는 외국인 입국 시 예방접종을 하지 않은 사람은 엄격하게 통제한다.
우리 일행 6명은 8월 28일, 15일 일정으로 아프리카 탄자니아와 마다가스카르에 선교여행을 떠났다. 출발하기 전, 영문 코로나 예방접종 증명서를 발급받고 말라리아 예방약을 처방받았다. 이 약은 먹기가 조금 부담스럽다. 출발 이틀 전부터 먹기 시작해서 고국에 도착한 뒤에도 1주일간 먹어야 한다. 매일 시간을 정하고 약을 먹는 부담도 크지만 다소 매스껍다. 그래도 내 건강은 스스로 챙겨야 하니 어쩔 수 없다. 황열병 예방접종도 받아야 한다. 다행히 이 접종은 평생 한 번만 맞으면 되기 때문에 2016년 받은 카드를 잘 보관해 두었다. 이번에 아프리카 여행이 처음인 일행 몇 명은 대구공항 보건소에서 예방접종과 함께 노랑색 접종 카드를 발급받았다.
문제는 인천공항에서 발생했다. 일행 중 한 명이 노랑 딱지가 없다는 것이다. 분명 여권 뒤쪽에 넣어두었다는데 아무리 뒤져도 없다. 머리를 맞대고 궁리한 끝에 부인이 대구공항 보건소에 가서 증명서를 재발급받아 카톡과 e-메일로 보내주기로 했다. 밤 1시가 조금 지나 출발한 비행기는 12시간을 날아 아침 7시 20분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에 도착했다. 그는 내리자마자 증명서부터 살폈다. 다행히 카톡과 e-메일에도 증명서가 확인되었다. 우리는 두 시간여의 환승 대기 시간에 콩글리시를 구사하며 몸짓 발짓까지 해가며 공항 라운지에서 겨우 증명서를 인쇄했다. 그제야 안심이 되었다.
10시 45분에 환승한 우리는 오후 1시 35분경 탄자니아 제1의 도시 ‘다르에스살람’ 공항에 도착했다. 이제 입국 수속을 마치면 된다. 우리는 노란색 딱지를 보여주며 통과했다. 그런데 이 장로님이 e-메일로 받은 증명서와 카톡의 사진을 제시하자 공안은 노! 라고 했다. 접종은 증명이 되지만 정식으로 재발급을 받으라며 발급비 50달러를 내라고 한다. 우리나라 같으면 충분히 용인되겠지만 규격 딱지가 아니라고 우기는데 어쩔 도리가 없다. 일행은 증명서가 재발급되기까지 한 시간여를 기다리다가 노랑 딱지 한 장을 손에 받아 쥐고서야 공항을 나왔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누구 하나 불평하는 기색이 없었으니 선한 목적의 선교여행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나 한다.
노란색 딱지는 양면의 동전이다. 하나는 반드시 받아야 하고 다른 하나는 절대 받지 말아야 한다. 받아야 할 것을 받지 않음으로 우리는 소중한 교훈을 얻었다. 인천에서 ‘다르에스살람’에 도착하기까지 일행 전체가 마음고생했다. 낯선 공항에서 한 시간씩이나 대기해야 했고 다음 비행기 탑승 시간에 쫓겨야 했다. 자기 가족까지 힘들게 만들었다. 비록 많은 돈은 아니었지만, 외화까지 낭비했다.
우즈베크의 퇴장 당한 선수는 동료들에게나 고국에 면목이 없을 것이다. 그는 자기감정을 제어하지 못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함으로 경기장 밖으로 쫓겨났다. 10명이 11명의 몫으로 뛰어야 하는 어려움을 동료들에게 안겨주었다.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은 성을 빼앗는 것보다 낫다고 했다. 절제는 최고의 덕목이다. 참을 인, 세 번이면 내일을 웃을 수 있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
필봉 최해량
우리 일행은 15일간의 선교여행 중 마지막 행사를 위하여 오후 2시 30분경 ‘마다가스카르’의 수도 ‘안타나나리보’ 공항에 도착했다. 이 나라는 동아프리카 국가로 세계에서 네 번째 큰 섬이며 남한 면적의 다섯 배가 넘는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큰 짐은 교민 집에 맡겨두었다. 세계 희귀 나무 ‘바오바브’를 보기 위해서 ‘모른다바’로 떠나려니 마음은 더욱 바빠졌다. 이제 15시간의 긴 여정과 싸워야 한다. 화요일에 도착한 우리는 항공편이 맞지 않아 육로를 이용하느라 이렇게 서두르고 있다.
승합차 두 대에 분승하여 출발하니 벌써 오후 5시가 되었다. ‘모른다바’까지의 2차선 간선 도로는 교통체증이 심했다. 구불구불하고 위험한 길이라 시속 40~50km 더는 낼 수가 없었다. 그래도 처음 보는 낯선 풍광에 마음을 빼앗기며 희귀 나무를 볼 기대에 부풀어 이 정도의 고통은 감내할 수 있었다.
문제는 다른 곳에서 불거졌다. 일행 중 한 명이 허리가 아파 지팡이를 짚고 왔는데 울퉁불퉁한 길에 통증이 더 심해지고 있었다. 두 시간여를 달려 어둠이 내려앉는 시각에 저녁을 먹기로 했다. 식당 안으로 들어서니 한쪽에서 한국 사람 대여섯 명이 식사하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하니 자기들은 의료진이라고 했다. 그 말에 허리가 아픈 장로님이 반색했다. 허리를 좀 봐 줄 수 있느냐는 말에 식사를 마친 그 분이 몇 가지 기구를 챙기며 방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우리가 식사를 마치기까지 어떻게 치료했는지 장로님은 환하게 펴진 얼굴로 들어왔다. 허리통증이 크게 완화되었다고 만족해하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안내하는 선교사님은 치료한 분이 세브란스 병원의 척추 과장을 역임한 분이라고 했다. 이분은 1년에 한두 번 휴가를 내어 의료 선교를 온다고 했다. 장로님은 뜻밖에 이국땅에서 우리나라 최고의 척추 전문의에게 치료받았다. 식사를 마치고 숙소 ‘안치라베’로 이동하는 중에 선교사님은 의료 선교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마다는 너무 가난하여 병원도 의사도 부족하지만, 의약품과 의술이 우리와 비교할 바가 아니라고 했다. 오지에는 진료를 받아본 적이 한 번도 없는 주민들이 많다고 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기는 우리나라의 의사, 간호사들이 시간을 내고 물질을 모아 의료 봉사를 하러 이곳까지 온다고 했다. 부시맨 닥터, 낭만 닥터로 알려진 의료 선교사 이재훈 선생님이 대표적이며 그 외에도 많은 의료진이 동참한다니 가슴이 뭉클해졌다. 가난한 나라에 와서 사랑을 전하며 생명의 인술을 펼치는 선한 사마리아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니, 존경과 감사의 마음이 절로 나왔다.
우리는 2박 3일의 바오바브 거리의 감동을 꾹꾹 눌러 담은 체 다시 타나로 돌아왔다. 15시간의 고통스러운 여정 대신 1시간 남짓 걸리는 항공편을 이용하니 문명의 이기가 생각났다. 오늘은 감동의 날이다. 이 나라의 수도 변두리 지역에 건축한 ‘노엘 아가페’ 초등학교를 개교하는 감사의 예배를 드리기 때문이다. 비행기를 일곱 번이나 갈아타고 이름도 낯선 섬나라에 온 것은 바로 이 일 때문이다.
나는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세칭 보리 이삭 교실에서 공부했다. 흙바닥에서, 나무판자로 만든 장의자에서,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은 책상에서 공부했다. 건물은 초가지붕이었다. 학교는 벼・보리 추수기에 논밭에 떨어진 이삭을 주워 오라고 했다. 학부모도 이를 당연하게 여겼다. 점심시간이면 학교에서 배급하는 옥수수 떡이 어찌나 맛이 있었는지 모두 더 먹으려고 껄떡대었다. 어릴 때 살아가던 내 모습과 너무나도 닮은 이 나라에 지팡이를 짚고 온 장로님과 힘을 합하여 조그만 학교를 세웠다. 우리가 지은 건물은 교실 세 칸이 전부다. 아이들이 상급생이 되고 입학생이 더 생기는 2년쯤 뒤에 교실 3칸을 더 짓기로 했다. 그런데 약속되지 않은 건물이 하나 들어서고 있었다. 호주에서 개업하여 승승장구하던 의사, 간호사 부부가 이 나라에 의료 선교를 왔다고 한다. 부부는 학교 건축 소식에 교의와 보건교사가 되기로 자청했는데 보건실이 없는 것을 보고는 사재를 털어 건축하고 있다는 것이다. 소중한 분들의 헌신으로 교무실, 교장실, 보건실이 지어지는 모습에 또 한 번의 감동이 몰려왔다.
개교 예배는 엄중하게 진행되었다. 먼저 감사의 예배를 드리고 우리나라의 총회장 격이 되는 분이 축사하고 인도네시아 대사관 관료와 지역 구청장, 교육청 관계자가 축사했다. 나와 장로님은 축하와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덕담을 했다. 현지 방송국과 인터뷰도 나누었다. 이어서 교가를 부르고 국기 게양대에 마다 국기를 게양할 때는 눈물이 고였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줄 선물을 푸짐하게 준비했다. 생면부지의 체육복 사장님은 아이들의 체육복을 선뜻 내주었다. 에코 가방에 공책과 지우개, 연필과 연필깎이, 스케치북과 크레파스, 색연필 세트 등을 가득 담아 주었다. 아이들이 즐겁게 놀이할 축구공과 배구공까지 가방이 허락하는 한 많이 가져갔다. 자그마한 체격에 선물 가방을 메고 가는 아이들의 얼굴이 마냥 행복해 보였다. 이 모든 선물은 우리 교우들이 마련한 것이다. 모두가 감사하고 고마운 분들이다. 진정 이 시대의 선한 사마라아 사람이다.
사마리아 사람은 북이스라엘의 옛 수도에 살던 사람들을 말한다. 이들은 전쟁에 패해 이스라엘 혈통의 순수성을 잃어버렸다는 이유로 늘 냉대받고 무시당하며 살아왔다. 이들의 이야기가 성경에 전해지고 있다. 길을 가던 한 사람이 강도를 만나 돈을 빼앗기고 상처를 입고 쓰러져 있었다. 이때 고귀한 신분을 가진 사람이 다가왔지만 거들떠보지도 않고 지나가 버렸다. 조금 뒤에는 돈 많고 권력 있는 사람이 지나갔지만 마찬가지였다. 잠시 뒤, 장사꾼 사마리아 사람이 지나갔다. 그는 앞선 사람과 달리 환자의 상태를 살핀 뒤 나귀에 태우고 길을 재촉했다. 숙소에 이르러 환자를 정성껏 간호하며 치료해 주었다. 이튿날, 그는 여관 주인에게 자신이 가진 돈을 다 내놓으며 치료를 부탁했다. 치료비가 모자라면 돌아오는 길에 더 주겠다고 했다. 이 사람을 우리는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부른다. 나는 이번 선교 여정에서 이런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낭만 닥터와 의료 선교팀, 학교에 보건실을 건축하고 보건의와 보건교사가 되겠다고 자청한 부부를 보았다. 체육복을 기꺼이 내어 준 분, 필요한 학용품을 사주라는 아름다운 손길들, 노인 일자리에서 받은 돈으로 노트북을 사주라는 분 모두 평생 잊을 수 없다. 이분들의 정성을 모아서 학교 담장 공사를 추가로 하게 되었다.
밤하늘의 별을 헤아리듯 나는 이분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려 본다. 모두가 선한 사마리아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희망찬 사회를 만든다.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희생하고 봉사하는 사람들! 이들이 받을 상은 다 하늘에 쌓였으니, 도둑이 훔쳐 갈 수도 없다!
* 나라 이름 ‘마다가스카르’는 ‘마다’로 수도 ‘안타나나리보’는 약칭 ‘타나’로 표기함
첫댓글 훌륭한 일 하셨습니다. 하늘의 상급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더욱 좋은 일 많이 하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