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12章 걸어다니는 악마(惡魔)의 꽃 ① 북방(北方)에는 봄이 늦다. 그러나 그 봄의 화려함이 희석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북방 지역의 봄은 더욱더 찬란하게 불타오르기 마련이다. 태행산(太行山)의 철쭉은 하늘까지 닿는 길을 만들고 있었다. 가파른 산로 좌우에는 미친 불길 같은 철쭉의 축제(祝祭)가 한창이었다. 태행산 철울림(鐵鬱林). 북방 무림인치고 이 곳을 모르는 자가 없다. 이 곳은 지난 십팔 년 간 봉림(封林)되었다. 철울림주는 바로 북방제일검이었다. 일검척천(一劍拓天) 뇌공벽력객(雷空壁靂客)이 그 이름이다. 하되 공야진(公冶眞)은 그러한 이름보다는 고검향수(孤劍香帥)라는 외호로 더욱 유명했다. 그는 열세 살 때 검을 쥐었으며, 스물두 살 나이에 하북무림을 정복했다. 그는 소림사의 속가제자이기도 하거니와 전진파(全眞派) 백학도장(白鶴道長)의 수제자이기도 하다. 그는 일생을 검에 헌신하리라 맹세하였으며, 전진파의 절정검초인 벽력천풍검보(霹靂天風劍譜)를 완성하고자 철울림을 봉쇄한 것이다. 고검향수 공야진! 그는 철울림에서 난(蘭)을 키우며 심오한 검학 연마에 정진하고 있었다. 이 날 새벽만 하더라도 그러하다. 그는 태행산을 불사르는 조양(朝陽)의 햇살 가운데 하나의 검식(劍式)을 문득 깨닫고 은근히 기뻐하던 중이었다. 그러던 참에 그는 밀지(密紙)를 받게 되었다. 밀지는 아무도 들어서지 못한다고 자부되었던 천란진(千蘭陣) 안에서 발견이 되었다. 고검향수 공야진은 강호의 옛 친구가 정체를 감추고 친서를 보냈으리라 기대하며 밀지를 개봉했다. 그리고 그는 그 눈을 보았다. 두 눈(眼), 그것은 그의 사십 년 무림 생활을 일거에 전환시켜 버린 운명의 두 눈이었다. ② "고검향수 공야진은 생각보다 하수(下手)였다." 차상(車上)을 가리고 있는 주렴 뒤쪽, 화사한 목소리가 들린다. 한 대의 마차(馬車)가 빠르게 달려가고 있다. 두두두- 두두두-! 마부석에는 이 세상 제일의 미남자가 앉아 있다. 이름하여 그는 한상이라 했다. 하여간 한상은 마차 속에서 들려 오는 여인의 간교하고 혹독스러운 속마음을 익히 알고 있다. 하되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뛰어오르는 것만은 견딜 수 없었다. 짜악- 짜악-! 그는 편립을 기웃 쓴 채 가끔 채찍을 휘둘러 네 마리 말이 빠른 속도로 나아가게 했다. 다시 목소리가 마차 안에서 들려 왔다. "호호… 그 자는 마안도(魔眼圖)를 보는 찰나, 심마에 빠져들었다. 그 자를 굴복시키기 위해서는 한상 네가 일 초 정도는 써야 할 것이라 기대하였고, 혹 그가 너의 일 검을 막는다면 내가 친히 그를 제압하리라 생각하였거늘… 그 자는 마안도를 보자마자 발작하고 말았다. 이유는, 그가 얻은 이름이 허명이기 때문이다." "……!" 한상은 늘 그러하듯 말이 없다. 마차 안에는 작은 동경을 통해 얼굴을 살피며 귀밑머리를 가다듬고 있는 한 명의 면사미녀(面絲美女)가 있다. 이름하여 그녀는 살화라 한다. 강호미인가에 이러한 이름이 있지 않던가? - 말하지 말라. 살화(殺花)에 대해서는! 그렇다면 지금 마차 안의 여인은 그녀란 말인가? 강호의 어떤 사내라도 다만 꿈 속에서라도 품기를 원한다는 지상 최고의 미녀. 앞쪽의 창을 통해 보이는 한상의 뒷머리를 보면서 살화는 입술을 잘강 씹었다. '한상, 아마도 강호에서 가장 아름다운 남자이리라. 어떠한 여인이라 하더라도 한상의 매력 앞에서는 자존심을 세우지 못한다. 하지만 넌 내 상대가 못 돼.' 살화는 호화일령(護花一令)으로 한상을 지목했다. 호화검사(護花劍士)는 백팔 인으로 내정이 되었다. 살화는 이미 열두 명의 호화검사를 규합했다. 그들은 항차 살화가 강호를 통치하고자 할 때, 선봉이 되어 목숨을 기꺼이 바칠 것이다. "한상, 무슨 생각을 하지?" "생각하지 않고자 노력하고 있소." 한상의 얼굴은 늘 우수(憂愁)에 뒤덮여 있다. 그는 색심(色心)에서 해방되고자 극기의 팔 년을 보낸 자이다. 그리고 그의 쾌검은 둔검으로 화했고, 누구도 그의 둔검일식을 막지 못할 정도로 그의 무공은 완벽에 가깝게 다가섰다. 그러한 가운데 심마가 닥친 것이다. 살화! 적어도 그녀를 보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한상은 자신의 심검(心劍)이 완성되었다고 여겼었다. 그리고 그는 그녀를 보는 찰나, 자신의 심검이 채 일(一) 성(成)도 되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지금 한상에게 스스로를 너무도 잘 깨닫게 해 준 그 음성이 그의 귓전을 파고들었다. "한상, 넌 마음 속으로 날 범하고 있지 않느냐?" 살화의 목소리는 여전히 요요(妖妖)하다. 그녀의 몸뚱이며, 입가의 미소, 그리고 간드러지는 목소리 하나하나는 남아의 마음을 죽여 버리는 병기와 마찬가지이다. "그렇소. 난 늘 살화를 마음 속으로 강간(强姦)하고 있소." "호호호… 하지만 넌 나를 영원히 안지 못해." "……!" "너뿐 아니다. 강호의 어떤 남자도 날 범하지 못한다." 살화는 자신만만해 하다가 문득 아미를 찌푸렸다. 갑자기 그가 생각나기 때문이다. 오직 하나, 그녀의 앞에서 오만히 고개를 쳐들었던 자가 있었지 않은가? '그 자는 한상의 정신적인 기둥이다. 그 자는 일 초 무공도 없는 처지이지만, 한상은 그를 존경하고 있다.' 살화는 그러저러한 생각을 하다가 입술을 다시 떼었다. "한상, 내가 너에게 그를 죽이라고 한다면 죽이겠느냐?" "그라면……?" "목야성!" "후후……!" 한상은 갑자기 실소를 터뜨렸다. 살화는 태연자약해 하면서도 그의 대답에 귀를 기울였다. 한상은 잠시 머물다가 나직이 대답했다. "그를 죽이는 것은 나의 소원이오." "소원?" 살화가 멍해 할 때였다. 채찍이 말잔등을 때렸고, 네 마리 준마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빠르게 달려 나갔다. 두두두두- 두두두-! 그 후 십칠 일 간 마차는 천이백 리를 주유했다. 살화는 한 장의 그림과 한 자루 녹슨 검을 이용해 스물다섯 명의 강호고수를 은밀히 제압했다. 살화의 목적은 천외화맹(天外花盟)을 세우고 초대맹주가 되어 천하를 지배하는 것이다. 그 일을 위해서 최소한 백 명의 절정고수가 필요하다. 하기에 그녀는 일 년 예정으로 강호를 주유하며 천하의 고수들을 휘하에 규합코자 하는 것이다. ③ 무량관주(無量觀主) 천학도장(天鶴道長)! 지금 그는 두 개의 눈을 보며 혼신내공을 끌어올렸다. 우우웅……! 그의 전신이 금빛으로 달아오른다. 그는 금단선공(金丹禪功)을 구 성 이상으로 단련하고 있는 바, 금단선공을 시전하게 되면 전신 털구멍에서 금빛 안개가 피어 오른다. 그런 가운데, 청정평상심(淸靜平常心)이 일어나 심마를 몰아내게 된다. '내 어찌 악마의 눈에 심마를 느낄 수 있으랴?' 천학도장은 두 눈을 금빛으로 물들이며 심마를 몰아내고자 노력했다. 그는 백도맹인 청천영웅문의 비밀 장로 가운데 하나이다. 그가 어찌 두 개의 눈 따위에 굴복할 수 있겠는가? 그는 한 시진에 걸쳐 내공을 운공했으며, 겨우 마안도의 마력에서 마음의 자유로움을 회복할 수 있었다. '성공이다.' 천학도장은 기갈을 느꼈다. 하여간 그가 식은 찻물이나마 마시기 위해 공탁 있는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는 공탁 바로 곁에 서 있는 사람이 둘 있다는 것을 그제야 발견했다. 그는 너무 심각히 내공을 운용하느라 누군가가 처소에 들어온 것도 알지 못한 것이다. "……!" "……!" 두 사람 다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여인인데, 그녀는 묘한 얼굴의 찡그림 가운데 물끄러미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너무나도 슬픈 눈이다. 가히 마력에 가까운 흡인력(吸引力)을 지니고 있는! '오오, 저 눈은……!' 천학도장은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듯한 아득함에 사로잡혔다. 천학도장은 조금 전까지 보고 있던 한 장의 마안도를 기억했다. 지금 바로 앞에서 반짝거리고 있는 두 눈은 마안도에 그려진 그 눈이었다. "네… 네가 살화?" 천학도장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불진(佛塵)을 쳐들었다. "요녀, 널 죽이겠다!" 그는 무량십팔불혈식(無量十八佛穴式)의 초식 가운데 하나로써 살화의 얼굴을 뭉갤 작정을 했다. 그런데 어떤 방법을 써도 이상하게도 힘이 모아지지 않는다. '으으, 내공이 흐트러지다니.' 그가 사색이 되며 비지땀으로 몸을 축축이 적실 때였다. 살화의 눈과는 대조적으로 암울히 가라앉은 두 눈이 그를 향해 다가섰다. 그 자는 지극히 둔중해 보이는 자세를 취하며 다가섰다. 이상한 것은 그의 허점 투성이의 검세를 파괴할 방법이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자의 검은… 완벽한 허검(虛劍)!' 천학도장은 또다시 좌절감에 사로잡혔다. 상대가 그의 목숨을 바라고자 한다면 그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상대에게 수급을 바쳐야만 한다. '졌다. 눈에 지고… 검에 졌다.' 철저한 패배감이 뇌리를 휘어 감았다. 그것은 그의 내공을 역류시켰다. 일순 그는 옥침관(玉枕關) 부위가 뼈근해짐을 느끼며 자신이 누구라는 것조차 문득 망각해 버리고 말았다. 그 때 살화는 공탁 위의 문주란(文珠蘭)에 손가락을 대며 배시시 웃었다. "제법이군. 그래도 약간은 버텼으니 말야." "방심하지 않았더라면 제압하는 데 애를 먹었을 것이외다." 한상은 준비하고 있던 단약 한 알을 천학도장에게 먹였다. "호호… 청천영웅문은 강호 정세를 모르는 풋내기들과 노폐물들의 집합체이지. 그 자들은 어처구니없이 항마무사를 외치고 있으되, 솔직히 말해 철붕비가 바라기만 한다면 한 달 안에 초토화 된다. 아니, 사흘도 걸리지 않을지도 모르고! 철붕비의 저력은 나도 완전히 모를 지경이지. 대막의 패자인 좌옥도가 물러나 옥문관을 넘어갔다고 하지만, 건곤일척부의 힘에는 변화가 없어." "젠장!" 한상은 갑자기 욕설을 터뜨렸다. 살화가 놀라 그를 볼 때였다. 그는 천학도장의 품에서 꺼낸 첩지를 쥔 채 손을 부르르 떨었다. 첩지는 청천영웅문의 본거지에서 발송된 것이다. "무슨 내용이지? 동요를 하다니… 네 죽은 마음을 불붙일 것은 나의 두 눈이거나, 너보다 강한 자의 검뿐인데……." 살화는 나직이 중얼거리며 한상 곁으로 다가갔다. 한상의 볼이 가늘게 경련을 일으킨다. 그는 조용히 밀지를 살화에게 건넸다. 살화는 밀지를 건네 받아 재빨리 살펴봤다. <십만대산에 잠입한 열다섯 명의 은잠자 가운데 하나가 보고한 바에 의하면, 감히 의를 거역한 천하 역도 목야성이 내분에 휘말려 처단되었다고……! 살해자는 옥쌍화로 알려짐. 옥쌍화는 총순찰을 내놓고 금혼부(禁魂府)로 폐관 연무에 들어갔음. 세밀한 사정은 추후에 보고하겠음.> 밀지는 청천영웅각의 장로들에게만 전달되는 비밀 서신이다. 목야성은 소문 없이 건곤일척부로 갔으되, 청천영웅각의 방대한 이목은 그의 변절을 입부(入府) 나흘 만에 알게 되었다. 동시에 그는 강호 공적 가운데 하나로 규정지어졌고, 백도열사 열다섯에게 목야성을 암살하라는 지시가 내려진 상태이다. 철붕비, 목야성, 그리고 좌옥도! 이들 삼 인은 삼대난적(三大亂賊)으로 규정지어졌으며, 그들 가운데 하나를 죽이는 자는 대영웅으로 불리우게 되리라. 한데 그가 제거된 것이다. 문득 한상의 뺨에 땀방울이 맺힌다. '그가 죽다니……!' 그가 가늘게 사지를 후들거릴 때였다. 또 한 사람, 사지를 후들거리며 이를 악무는 사람이 있다. 살화였다. 그녀의 두 꽃잎 입술은 피가 나도록 꽉 깨물어진 상태였다. '그 자가 제거되었다 한들 무슨 상관이 있으랴? 어차피 그 자는 강호계에 있어 무명소졸에 불과한 자이다. 그 자는 대세에 영향을 끼칠 만한 자가 못 된다.' 살화는 애써 감정의 동요에서 자유로워지고자 노력했다. 그 때였다. 한동안 가늘게 떨던 한상이 서서히 평정을 되찾아가기 시작했다. 이어 희미하게 그의 입가에 떠오르는 미소. 그는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는… 죽지 않았다." "죽지 않았다고? 어이해 단정지어 말하지?" "후후… 그가 죽었다면 나의 검이 살기를 잃었을 것인데… 보시오! 나의 검은 여전히 살기를 느끼게 하오." 한상은 검을 쳐들었다. 칙칙한 빛의 녹슨 철검이다. 그러나 강호에서 그 검을 받아 낼 사람은 열 사람도 아니 된다. "검의 살기라니……?" 살화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 되었을 때, 한상은 더욱 짙은 웃음을 흘렸다. "난 누구보다도 강한 마음의 소유자라 자부하였지만, 목야성 앞에서만은 소인이 되고 말았소. 하기에 난 그를 죽이고자 결정을 했고, 다시 검을 쥔 것이오. 나의 검은 목야성의 가슴에 박히는 순간까지 살명(殺鳴)을 흘릴 것이오. 왜냐하면 나의 검은 목야성의 피에 적시어져야만 차갑게 식는… 운명검(運命劍)이 되었기에!" "그… 그런데 어쨌단 말이냐?" "보시오. 나의 검은 여전히 살기를 흘리지 않소이까? 이것은 여전히 그가 살아 있다는 증거인 것이오." 아무리 봐도 검은 검이다. 살화는 무공을 익혔으되, 검을 아는 무사가 아니다. 하기에 검에서 일어나는 지극히 미세한 살기를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다만 그녀는 목야성이 건재하다는 말에 문득 마음의 안도감을 느낄 뿐이다. 그런 가운데 그녀는 다시 입술을 깨물었다. '그 천한 잡종은 한상의 검이 아니라, 내 손 아래 죽어야 한다. 그 잔 나의 마지막 자존심을 건드렸다. 그 잘 꺾지 못하는 한, 나는 완벽해지지 못한다.' ④ 그 날, 그는 종일 술만 마셨다. 점소이는 그의 누추한 옷차림을 보고 그를 다분히 조롱했다. 그러다가 그가 좌석에 앉으며 내려놓은 짐보따리 속에 금갑(金匣)과 옥갑(玉匣)이 들어 있음을 힐끗 보고는 조롱하는 마음을 깡그리 녹일 수밖에 없었다. '빌어먹을! 저 궁색한 차림에 엄청난 보물이라니……!' 점소이는 그에게 주담자와 안주를 갖다 주며 그의 표정을 힐끗 살폈다. '잘생기기는 했는데… 눈빛이 흐리멍텅하군.' 그는 반쯤 찬 술잔을 빙글빙글 돌리고 있다. 그는 아까부터 한 가지 생각에 골똘하고 있었다. 그것은 자신이 누구냐 하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생각나는 게 하나도 없다.' 술잔에 흐릿한 눈빛이 투영된다. 그는 천천히 잔을 들어 고독한 얼굴이 담긴 술을 말끔히 마셨다. 그가 잔을 내려놓는 찰나이다. 팟-! 동쪽에서 한 자루의 검이 떨어져 내렸다. 그는 검이 자신의 풍부혈(風府穴)을 노린다고 여겼고, 반사적으로 손을 쳐들어 허공에 일획(一劃)을 그었다. 땅-! 검은 쇳소리를 내고 찰나지간에 끊어졌다. 이어 그의 손은 살집 좋은 하나의 가슴 속으로 빠르게 파고들었다. 퍼억-! 손은 희멀건 갈비뼈를 끊어 버리면서 심장이라고 불리우는 내장 속으로 파고들었다. "켁!" 검을 내리친 자의 입에서 터진 짧은 단말마이다. 그 자는 아까부터 그의 짐보따리에 흑심을 품고 있던 독목낭중(獨目郎仲)이라는 흑도인이었는 바, 제대로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절명하고 만 것이다. 그는 독목낭중의 심장 속으로 박혀 든 손을 뽑아 내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젠장!" 피 냄새가 지독히도 역겹다. 오장육부가 뒤틀리며 구토가 일어난다. 그는 문득 술을 마셔야 한다고 느꼈다. 그로부터 한 시진 후. 점소이는 독목낭중의 시체 곁에 서서 호기심에 가득 찬 사람들에게 이렇게 떠벌렸다. "그는 새벽에 떠나갔습니다. 제가 보기에 흑도에서 가장 강한 자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는 가히 입신경지에 이른 자입니다." ⑤ 사유성(死遊星)! 사람들은 그를 일컬어 그렇게 불렀다. 그는 남도무림(南道武林)을 고독히 방랑하기 시작하였는 바, 그를 만나는 모든 무사는 그에게 뼈저린 패배감을 감수해야만 했다. 그는 단 일(一) 수(手)만 썼다. 오른손도 아니고 오직 왼손만을……! - 내가 왜 너하고 싸워야 하는지 모르겠군. - 하여간 난 막강해져야 한다. 이유는 나도 모른다. 그러니 묻지 마라! 그는 그가 지닌 바 절세기보를 훔치기 위해 다가선 무사들에게 그렇게 지껄이며 시시해 보이는 일 수를 썼다. 일 수는 누구도 예측 못할 위력으로 상대의 두개골을 으스러뜨리고 심장을 파괴시켰다. 강호는 넓고, 무사들은 수없이 많다. 결국 사유성은 칠 일에 걸쳐 스물일곱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 더불어 남도무림의 한 귀퉁이에는 사유성이란 살성(殺星)에 대한 소문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하되 그건 천하를 떠들썩하게 만들 소문은 되지 못한다. 당금 천하를 시끄럽게 하는 소문은 세 가지였다. 첫째, 건곤일척부가 준동하기 시작한다는 것! 둘째, 청천영웅문이 현판을 매달았다는 소문! 마지막 소문은 한 송이 꽃에 대한 소문이었다. - 말하지 말라. 살화에 대해서는! 누가 강호미인가를 모르랴? 살화! 걸어다니는 악마(惡魔)의 꽃송이를 지칭한다. 그녀는 조용히 악마의 향기(香氣)를 흘리기 시작했고, 북도무림은 그녀로 인해 소리 없이 괴멸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많은 무사들이 그녀를 죽이기 위해 검을 메었다. 그러나 정작 무사들의 가슴에 머물러 있는 생각은 하나이다. 그녀를 죽인다는 생각이 아니라, 그녀를 제압하여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거나 첩으로 두어야겠다는 생각이 그것이었다. 격동천하! 대륙은 폭풍 속으로 접어들기 시작했고, 무사들의 움직임이 전과 달리 신속해졌다. 수많은 방파들의 이합집산이 너무나도 빠르게, 또한 비밀리에 진행되었다. 하기에 개방( )에서조차 천하 정세를 예측하기 힘들 지경이다. 그리고 모든 무사들이 비웃는 가운데 봄(春)은 고양이 걸음처럼 소리내지 않고 다가서서 대륙을 완전히 정복해 버렸다. |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잼 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