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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 / 김성원 |
순찰중이던 경찰관이 뒤늦게 병원 응급실로 옮겼지만, 귀한 생명은 구원을 받지 못했다. 다음날 신문에 2단짜리 기사거리를 제공해 주었을 뿐 십원짜리 한 장 보상받지 못하는 개죽음을 당하였고, 한 가정을 파멸로 몰아넣었다.
죽은 친구가 불의를 보고도 모른 체 지나쳤다면 한 소녀는 영원히 상처를 안고 살았겠지만, 친구는 죽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서 김 선생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김 선생의 이러한 성격을 잘 알고 있는 아내는 애원하다시피 빌었다.
“봐요. 죽는 사람만 억울하지요. 만일 당신이 봉변을 당하였다면 우리 식구는 어찌되겠어요.”
“그렇지, 죽는 사람만 억울하지…….”
김 선생은 친구의 영정 앞에서 많이 울고, 술도 많이 마셨다. 슬피 우는 친구의 부인과 어린 자식을 뒤로 한 채 장례식장을 나왔다. 몸이 비틀거렸다. 골목길에 들어서자, 김 선생의 독백은 길어졌다.
“가정교육이 문제야. 청소년 교육은 가정에서 먼저 이루어져야 해.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자식은 자식대로, 대화 한마디 없이 각자 자기 방에서 생활하니 이것이 하숙집이지 가정이라고 하겠어? 이래서야 도대체 자식이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알겠어? 그래도 우리 집 자식은 착하게 잘 자라주어서 다행이야. 뼈대 있는 집안은 달라. 암, 다르고 말고.”
밤이 늦었다. 김 선생은 걸음을 재촉하였다. 한패거리의 중학생이 좁은 골목을 점거하고, 왁자지껄 떠들며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것이 보였다. 김 선생은 그 앞을 지나갈 수도 없고, 서 있을 수도 없고, 자존심 때문에 되돌아 나올 수도 없었다.
“모른 체해야지. 죽는 놈만 억울하다.”
술에 취하여 비틀거리면 이 녀석들이 퍽치기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술이 확 달아나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다리에 힘을 주었다. 물러설 수는 없다. 김 선생은 앞만 보고 계속 뚜벅뚜벅 걸어갔다. 김 선생이 가까이 가자, 갑자기 녀석들이 후다닥 달아나기 시작했다. 내가 비행청소년을 잡는 ‘헌병’이라는 것을 저 녀석들이 알기라도 했단 말인가? 그래도 이 녀석들은 예의가 있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달리기를 볼 때 습관적으로 뒤에서 뛰는 사람보다 앞에서 달리는 사람을 보게 된다. 2011년 대구에서 열린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때도 그랬다. 맨 앞에서 달리는 녀석은 100m 달리기에서 실격한 자메이카 선수 볼트보다 더 잘 달렸다. 그 녀석은 볼트가 좋아하는 파란색 모자, 파란색 티셔츠, 파란색 운동화를 신고 달렸다. 손자가 사 달라고 졸라서 사준 바로 그 옷과 모자, 운동화였다.
“아니, 저 놈이!”
김 선생 눈알이 갑자기 만원경이 되었다. 분명히 김 선생의 손자였다.
허탈한 김 선생은 그만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지난 겨울은 유난히도 추웠다.
아무리 춥다 춥다 해도 봄은 오게 되어 있다. 찬바람은 물러가고, 훈훈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이름 모를 꽃도 저마다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개나리꽃도, 진달래꽃도, 벚꽃도, 유채꽃도 그 화려함과 아름다운 모습을 자랑했다.
누가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했던가? 너무 짧다. 아쉽다. 그 아름다운 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시든 꽃보다 더 보기 싫은 것은 없다. 너무나 순수하고, 티 없이 맑고 깨끗하며, 꿈 많은 청소년 시절도 잠깐이다. 꽃 같은 아름다움도 잠깐이다. 그 좋은 시절에 왜 상처를 주고받아야 하는가?
인생도 잠깐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흰머리, 벗겨진 이마, 주름진 얼굴이 된다. 바로 김 선생의 자화상이다. 김 선생은 조기퇴직을 눈앞에 두고, 교육자로서 제대로 한 일도 없이 세월만 보냈다는 생각이 든다. 따지고 보면 인생은 참으로 허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