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원군 이간 묘역(파주 향토유적 23호) written by 한국의 능원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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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원군 이간 묘역군 상단에서 내려다 본 모습. 청원군 묘역은 하단에 안내판이 세워져 있는 묘역입니다. |
청원군 이간 묘역은 조선시대 성종의 8째 아들인 익양군의 손자 청원군 이간의 묘역으로 청원군 묘를 중심으로 하여 청원군의 장남 광산수 이효윤(光山守 李孝胤)과 차남 금산군 이성윤(錦山君 李誠胤), 그리고 금산군의 자(子) 이정방(李庭芳), 그리고 이정방의 며느리 광산정씨(光山鄭氏) 묘역 등 모두 4대(代)에 걸친 5인의 묘역이 한 구역에 위치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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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재지 입구에 차를 세우고 건물 전방 좌측의 산길로 올라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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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천의 나무다리를 건너고 밭을 지나면 전방에 묘역군이 보입니다. |
청원군 이간(靑原君 李侃, 1539~1592)의 자(字)는 중직(仲直), 호는 송경(松)으로 처음에 청원부정(靑原副正)을 받고 도정(都正)이 되고 다시 명선대부(明善大夫)에 올랐다. 임진왜란 때 병환으로 종실의 신하로써 왕을 호종할 수 없게 되자 아들 금산군으로 하여금 왕을 호종케하고 그 해 7월에 사망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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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단에 위치한 묘역은 청원군의 증손자이며, 이정방의 아들인 이민정의 부인 광산김씨 묘역이며, 상단에 3기의 묘역이 일렬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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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원군의 손자이며, 금산군의 아들인 이정방 묘역 전경. 향로석은 대부분 6각인데 이 곳의 향로석은 8각으로 조금 특이합니다. |
청원군(靑原君)을 증직받고 승헌대부(承憲大夫)에 봉해졌다. 광산수 이효윤(光山守 李孝胤, 1554~1612)은 청원군의 장남으로 광산수(光山守)를 받고 관직은 창선대부(彰善大夫)에 이르렀으며, 문예에 뛰어났고 시문(詩文)에 조예가 깊었다. 금산군 이성윤(錦山君 李誠胤, 1570~1620)은 차남으로 임진왜란때 병환 중인 부친의 부탁으로 선조 임금을 호종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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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내판이 세워져 있는 묘역이 청원군 이간 묘역입니다. |
도정(都正)에 특진되고 명선대부(明善大夫)가 되었으며, 위성공신(衛聖功臣) 2등에 오르고 금산군(錦山君)에 봉해졌다. 승헌대부(承憲大夫)에 오르고 흥록대부(興祿大夫)에 증직되었으며, 시호(諡號)는 충정(忠貞)이다. 묘역은 비탈진 구릉상에 한 구역에 조성되어 있는데 가장 선대인 청원군 이간묘역을 중심으로 그 위에 청원군의 둘째 아들인 금산군 이성윤의 묘가 위치하며, 청원군 묘 아래로 금산군의 아들인 이정방 묘, 가장 하단에 이정방 아들 이민정의 부인 광산정씨 묘 4개가 상하 일렬로 배치되어 있으며, 모두 단봉분으로 조성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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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종의 서7자인 익양군의 손자인 청원군 이간 묘역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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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원군 이간 묘비의 이수 부분의 조각이 음각이 많이 되어있는 모습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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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원군 이간 묘역 전측면과 후면에서 바라 본 모습 |
그리고 청원군의 장남 광산수 이효윤의 묘는 금산군 묘의 좌측 하단에 별도로 조성하였으며, 부인 창녕성씨와 쌍분을 이루고 있다. 묘역 내 석물로는 각 묘역마다 혼유석, 상석, 망주석이 원래대로 보존되어 있으나 석인상은 지난 1998년 6월경 모두 도난당했다. 각 묘역 봉분 중앙에 묘비가 세워져 있는데 청원군 이간 묘비와 금산군 이성윤 묘비의 이수부에는 이무기의 모습을 매우 사실적이며 정교하게 조각하였다. - 파주시청 홈페이지 내용 발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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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원군 묘역 상단에 위치한 청원군의 차남 금산군 이성윤 묘역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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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산군 묘비 역시 이수 부분을 많이 음각하였습니다. |
▲ 묘역군 상단 좌측 하단에 위치한 청원군 장남 광산수 이효윤 묘 |
청원군 이간 묘역 위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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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압정 부분에 청원군 이간 묘역이 위치. 노란 부분을 따라서 올라가면 됩니다. 소재지 : 경기 파주시 교하동 산3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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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압정 부분에 청원군 이간 묘역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지도 우측의 파주시청을 기준으로 위치를 가늠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