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慶州(星山)裴氏星山伯公派大宗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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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裴(裵)氏 族譜(歷史)이야기 서암공(書巖公?) 배덕문(裵德文)의 실체
星山 추천 5 조회 553 14.12.26 23:27 댓글 18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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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15.01.05 20:13

    첫댓글 * 상기 자료상 주요 인물의 생몰연대
    1. 배덕문(1525~1603)
    2. 배설(1551~1599)
    3. 배상룡(등암;1574~1655)
    4. 배상호(괴재;1594~1632)
    5. 배정휘(고촌;1645~1709)
    6. 배석휘(겸옹;1653~1729)
    7. 배석일(부지암;1813~1888)

  • 15.01.01 10:37

    * 이상한 점(당시 왕가.사대부가에서 15세 전에 대부분 혼사를 치루었다는 전제)
    1.배덕문이 배설의 진짜 아버지라면, {만26세에 장남인 배설을 낳았다}가 됩니다.
    2.배상룡이 배설의 진짜 아들이라면, {만23세에 장남인 배상룡을 낳았다}가 됩니다.
    3.추정 결론: 1세를 25년 전.후로 하여, 계대를 인위적으로 짜맞추었다는 증거입니다.

  • 작성자 15.01.05 21:36

    1. 정구(한강;1543~1620)
    2. 장현광(여헌;1554~1637) :정구의 조카사위이자 고제자
    3. 문위(모계;1554~1631) :거창출신, 정구의 수제자
    4. 허목(미수;1595~1682)
    5. 장응일(청천당;1599~1676) :장현광의 조카이자 양자

  • 15.01.01 15:56

    만력말에~거창의 객관에서~등암 배상룡을~미수 허목이~처음 만나다~~
    ~만력말이면 1620년~

    그후~한강 정구가 죽자~함께 조문하다~~
    ~정구가 죽은 해는~만력말인 1620년~

    허목은~정구의 제자라는데~제자가~스승의 몰년을 몰랐단 말인가~~
    고로~등암 묘표문은~허목이 작성하지 않았다는 말씀~
    조작수법과 수준이~효숙공신도비문과~친형제인 것 같슴미다~~

  • 작성자 14.12.31 19:30

    * 위조족보가 만들어진 근거자료들의 주요 연대
    1. 등암(배尙龍)묘표 : 1690년에 세움
    2. 가범 : 1723년 7월 16일, 배석휘(碩徽)가 간행(비고:역대 조상들에 대한 기록)
    3. 등암(배尙龍)집 : 1799년(정조23) 배석일(錫一) 등에 의하여 편집.간행
    4. 서암선생실기 : 배석일(錫一)이 1860년에 간행
    5. 고촌(배正徽)집 : 1940년에 고촌의 8세손=정환(貞煥)에 의하여 편집.간행

  • 15.01.01 10:42

    * 이상한 점
    1.등암집과 서암선생실기를 편집.간행한 배석일(錫一)이란 사람이 동명이인?
    2.등암집이 1799년에 편집.간행된 것인데, 배석일의 출생년도는 1813년?

  • 작성자 14.12.31 19:37

    * 상기 실록자료의 연대순서별 인물 기록
    1. 배덕문 : 1574년(49세) - 사판 삭제 요청
    2. 배덕문 : 1593년(68세) - 군공의 잘못(정3품)
    3. 배설 : 1599년(48세) - 배설 처형
    4. 배상룡 : 1631년(56세) - 권대진 모역사건 연루

  • 15.01.01 11:52

    *이상한 점
    선조실록에 의하면,
    배덕문이 정3품직(사재감정?)을 부정하게 제수받은 것은, 1593년 4월 12일 이전입니다.

    그런데,
    배덕문신도비문엔,
    "정유년(선조 30. 1597)에 적의 재침에 加藤淸正이 그 무리들에게 경계하기를,
    「현풍의 곽망우당(郭再祐)과 성주의 배제독은 그 예봉을 가히 감당할 수 없으니 조심해서 피(避)하라.」
    고 했다. 그 후 사재감정(司宰監正)으로 옮긴것은 군공(軍功) 때문이다." 라 하고 있고,

    배덕문실기엔,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워,
    난이 끝난 후 사재감정에 올랐다." 라 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어리석은 조작의 명수들이지요.

  • 15.01.01 11:47

    참고1 : 임진왜란(壬辰倭亂)
    1592(선조 25)년부터 1598(선조 31)년까지 7년 동안 두 차례에 걸쳐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여 일어난 전쟁.

    참고2 : 사재감정(司宰監正)
    조선시대 사재감(司宰監)에 두었던 정삼품(正三品) 관직으로 정원은 1원이다.

  • 작성자 14.12.31 19:41

    * 공거문(公車文) => 조선 후기에 각종 상소문을 모아놓은 책
    정조(1776년~1800년 재위) 때부터 각종 상소를 분류.편집하여, 공거문이란 명칭을 붙이기 시작하였다.

  • 15.01.01 12:04

    등암(배상룡)묘표문에 공거(公車)란 용어가 있다는 것은,
    등암묘표가 허목이 찬한 것이 아니며, 1690년에 세워진 것이 아니란 반증입니다.

  • 작성자 15.01.01 21:20

    배상룡묘표가
    성주에서 발굴되어
    일본 경도대학에 가있는 사유가 무엇일까요?

  • 작성자 15.01.01 21:20

    실록엔 배설이 "<경상>우수사"인데
    묘표와 등암집엔 "<영남>수군절도사" 인 것은 왜일까요?

  • 작성자 15.01.01 21:20

    배설개(楔皆)에 대하여!
    묘표 원문을 보면
    해석의 오류로 빚어진 사단입니다.
    諱楔(二世)皆贈戶曹參判<휘설(이세)개증호조참판>
    이세(배설+배덕문)가 모두 호조참판에 추증되었다인데
    해석자가 二世 부분을 못보았는지 안보았는지
    楔자와 皆자를 붙여서 두 자의 이름을 만든 결과일 뿐입니다.

    해석문이
    원문보다 더 조잡하다 할 것입니다...

  • 작성자 15.01.01 21:21

    묘표문 원문을 보면
    정구(鄭逑)의 호가
    한강(寒岡)이 아니라
    송강(松岡)이라 되어 있습니다...

  • 작성자 15.01.01 22:33

    실록에
    배상룡(尙龍)은
    침착해서 큰일을 도모할만 하다(沈重可謀大事)
    라고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1631(인조9)년
    권대진 등의 모역사건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금부도사에 붙잡혀 추국을 당하기도 하였다?

    실록의 관련내용은
    포리(捕吏)가 사방으로 나가고
    연루자가 서로 잇달아 처음부터 끝까지
    3개월 동안에 베어 죽인 자는 헤아릴 수 없었다.

  • 작성자 15.01.01 22:33

    인조 9년(1631)2월 : 성산현으로 읍격을 강등
    權大進의 모역사건에 성주인 朴炘(박흔)이 연루된 것으로 인함.
    (출처 : 성주군 연혁.역사)

  • 작성자 15.01.01 23:39

    五先生禮說(分類) : 한강(寒岡) 정구(鄭逑)가 엮은 예설서.
    수량 : 20권 7책
    창작/발표시기 : 1629년
    간행/발행처 : 이윤우, 권태일

    題五先生禮說後(미수 허목 識)에는
    계장 배상호(尙虎)로부터 전해받은 것으로 되어 있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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