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61편 1-8절
찬송가 370장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땅 끝에서 부르짖음(1-4절)
오늘 본문의 표제어에는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현악에 맞춘 노래>라고 되어 있습니다. 시편 전체에서 ‘현악에 맞춘 노래’라고 표제어가 붙은 시편은 일곱 편(4, 6, 54, 55, 61, 67, 76편)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요청하는 내용이 대부분인데, 오늘 본문의 내용도 그러합니다. 그래서 현악기에 맞춘 노래는 진중하면서 무거운 느낌을 주는 연주를 따라서 불렀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마치 바흐의 관현악 중에, 바이올린 독주곡, ‘G선상의 아리아’가 있습니다. 바이올린에는 4개의 줄이 있는데, 가장 두꺼운 줄인 4번 줄이 ‘G선’으로 가장 낮은 소리를 냅니다. 그래서 ‘G선상의 아리아’는 선율이 아주 아름답지만, 가장 낮은 음을 내는 G선으로만 연주하기에 분위가가 아주 장중합니다. ‘현악(기)에 맞춘 노래’라고 표제를 부은 시편의 분위기가 그러합니다.
그리고 표제어에는 이 시편의 배경이 되는 내용이 나와 있지 않지만, 6절의 왕권이 계속되게 해 주시기를 요청하는 것으로 보아 다윗이 왕위에 오른 후에 있었던 처절했던 상황과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래서 다윗이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왕권을 잃고서 황급히, 그리고 황망히 예루살렘을 떠나, 예루살렘 동편 마하나임에서 피해 있을 때에 이 시편을 지은 것으로 여겨집니다.
(1) 하나님이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며 내 기도에 유의하소서
다윗은 ‘하나님이여’라는 말로 입을 엽니다. 다윗에게 하나님은 언제나 하나님이셨습니다. 우리도 언제나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의식하며, 하나님을 존중하는 삶을 살 때에,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반면에 다윗도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과 하나님을 존중하지 못했을 때, 결코 저지르지 말아야할 죄를 저질렀고, 그로 인해서 지금 아들에게 쿠데타를 당해 피난민이 되는 처참한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쫓겨 다니는 마음을 절박하게 표현합니다. 그래서 ‘부르짖음’을 들어주시기를 요청합니다. ‘부르짖음’은 ‘기뻐할 때 내는 소리’이기도 하고, ‘노래할 때 내는 소리’이기도 하고, ‘우는 소리’를 뜻하기도 합니다. 어떤 소리이든지간에 이 부르짖음은 ‘있는 힘을 다해서 내는 소리’입니다. 기도를 드릴 때 ‘있는 힘을 다해서 소리를 낸다’는 것은 단지 소리의 크기가 아니라 상황의 절박함을 뜻합니다. 평소에는 작은 소리로 말한다 하더라도 집에 불(화재)이나서사람들을 깨울 때는 있는 힘을 다해서 소리를 지르며 사람들을 깨우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다윗이 자신의 인생에 불이 났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기도를 유의하여 들어주시기를 요청합니다. 이것은 상황의 간절함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몇 해 전에 “목사님, 제 마음을 읽어주세요.”라는 제목의 상담편지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지금 다윗이 하나님께, “하나님, 제 마음을, 제 상황을 읽어주십시오.”라고 호소하는 것입니다.
(2) 내 마음이 약해 질 때에 땅 끝에서부터 주께 부르짖으오리니 나보다 높은 바위에 나를 인도하소서
다윗은 계속해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는데, ‘마음이 약해질 때에’ 그리고 ‘땅 끝에서부터’ 부르짖는다고 합니다. ‘약해지다’는 ‘기력이 쇠하다’, ‘실신하다’의 뜻입니다. 다윗은 주변의 상황에 온 삶이 짓눌려서 기력이 다 빠진 것 같고, 기절한 것과 같은 상태이지만 마지막 남은 힘, 젖 먹던 힘까지 다 해서 하나님께 부르짖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땅 끝에서 부르짖는다’는 것은 물리적인 거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인 거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아들 압살롬에게 쿠데타를 당해서 피난을 갔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이스라엘의 지구 반대편까지 갔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또 애굽까지 도망을 갔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거리적으로는 마하나임에 있는데, 기껏해야 요단강을 건넜을 뿐입니다. 하지만 다윗이 느끼는 심리적인 거리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지 못하고 있는 자신의 상황과 그로 인해 고통과 소외됨의 심정을 호소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자기보다 높은 바위로 올려주시기를 요청합니다. ‘높은 바위’는 대적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곳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다윗은 하나님을 자주 ‘반석’과 ‘피할 바위, 높은 바위’ 등으로 고백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영원히 안전한 곳인 하나님께 올려주시기를 간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3)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원수를 피하는 견고한 망대이심이니이다
하나님께서 ‘피난처’와 ‘견고한 망대’가 되신다고 고백합니다.
지금은 장마철이라 비가 많이 옵니다. 폭우가 쏟아질 때에 우산도 없이 밖에 있으면 비를 많이 맞습니다. 우산을 쓰면 덜 맞기는 하지만 한 방울도 맞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산에 빗물이 스며들기도 하고, 땅에 떨어진 비가 튀어서 다리를 많이 적십니다. 장마철에 비를 맞지 않는 방법은 집 안에 있는 것입니다. 집이 튼튼하게 지어졌다면 아무리 비가 많이 내려도 한 방울도 맞지 않습니다. 또 뙤약볕이 작열하는 한 여름이라 할지라도 에어컨이 켜 있는 집 안에 있으면 시원합니다. 또한 한파가 몰아치는 한 겨울이라 할지라도 난방이 켜 있는 집 안에 있으면 따뜻합니다. 집 밖에 아무리 비가 많이 와도, 아무리 무더워도, 또 살을 에는 듯한 추위가 있어도 밖의 상황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집 안의 상황입니다. 다윗은 영원한 안전한 곳이 되고, 영원한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안에 머무르고 싶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 머무르고 싶은 소망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4) 내가 영원히 주의 장막에 머물며 내가 주의 날개 아래로 피하리이다 (셀라)
‘주의 장막’은 본래 ‘하나님의 성소’를 가리키는 말인데, 성소의 핵심인 언약궤가 예루살렘에 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과 주의 장막이 하나님이 계신 곳이니 하나님과 함께 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의 날개 아래’도 어린 새들이 어미새의 날개 아래 있을 때에 평안함을 느끼듯이 다윗 자신도 그러고 싶은 소망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미새의 날개는 맹수 앞이나 더 강한 새 앞에서는 아무런 힘을 발휘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날개 아래는 영원히 안전한 곳이기에 주님의 보호 속에 있고 싶은 소망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아들 압살롬에게 반란을 당하여 도망을 다니고 있습니다. 그 일의 출발은 밧세바 사건입니다. 다윗은 그 때에 하나님의 장막에 머물러 사는 것과 하나님의 날개 아래 피하는 삶이 얼마나 소중하고, 가치 있고, 은총인지를 잘 몰랐습니다. 이렇게 도망을 다녀 보니, 하나님 안에 머무는 것이 얼마나 복인지를 다시 한 번 각인하는 것입니다.
미리 응답 감사(5-8절)
1-4절에서 다윗은 하나님께 도망을 다녀야 하는 처참한 처지를 아뢰고, 도우심을 간절히 구했다면, 5절부터는 시선을 자신에게서 하나님께로 돌리고 있습니다.
(5) 주 하나님이여 주께서 나의 서원을 들으시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가 얻을 기업을 내게 주셨나이다
한글개역개정판성경에는 생략되어 있는데, 5절은 ‘왜냐하면(키)’이라는 접속사로 시작됩니다. 다윗이 자신의 시선을 자신에게서 하나님께로 바꾸게 된 것이, 하나님께서 자신의 서원을 들어주셨기 때문이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신에게 물려주실 유산을 주셨기 때문이라고 고백합니다. 즉 다윗은 약속의 땅이자 기업으로 주신 땅인 이스라엘을 통치할 권한을 자신에게 주셨었고, 앞으로 다시 주실 것을 확신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다윗은 지금 여전히 도망을 다니는 과정에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자신의 서원(내용은 알 수 없습니다)을 들어주셨기 때문에 이미 자신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것과 마찬가지라고 확신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들으심은 곧 행하심이기 알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윗의 확신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6) 주께서 왕에게 장수하게 하사 그의 나이가 여러 대에 미치게 하시리이다
다윗은 왕인 자신에게 ‘장수(날들. days)’를 더하여 주시고, ‘나이(해들. years)’를 더하여 주셔서 오래 살게 해 주시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자신을 죽지 않게 해 주셔서 몇 백 년, 몇 천 년 살게 해 달라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약속하여 주신 바인,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삼하7:16)”고 말씀해 주셨듯이, 자기 집안에서 왕위가 계속 이어지기를 소망하는 것입니다.
(7) 그가 영원히 하나님 앞에서 거주하리니 인자와 진리를 예비하사 그를 보호하소서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살겠다는 의지를 표현하며 자신을 1인칭인 ‘나는’ 또는 ‘내가’라고 표현하지 않고, 3인칭인 ‘그가’로 말합니다. 그런 자신을 ‘인자(한결같은 사랑, 변함없는 은혜)’와 ‘진리(진실하심, 신실하심)’로 지켜주시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결단합니다.
(8)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이름을 영원히 찬양하며 매일 나의 서원을 이행하리이다
탄식과 간절한 부르짖음으로 시작된 다윗의 기도는 찬양과 결단으로 마침표를 찍습니다.
다윗에게 밧세바 사건은 없었으면 좋았을, 결코 행하지 않았어야 할 죄였습니다. 그 일로 인해서 자식에게 쫓겨 다니기까지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서 다윗은 하나님을 향해 온 의지를 다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특히 오늘 본문 7절 상반절에서도 3인칭으로 “그가 영원히 하나님 앞에서 거주할 것입니다”라고 결단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그가 영원히 하나님의 얼굴 앞에서 살 것입니다”입니다. 즉 다윗은 이제는 하나님의 얼굴을 외면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과 얼굴을 맞대는 것과 같은 삶을 살겠노라 결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를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우리의 가정과 일터와 학교, 삶의 자리에 심으심은 우리가 하나님을 외면하여 하나님께 등을 보이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해 얼굴을 마주대하고 신실하게 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오늘도 스스로를 우리의 삶을 온전히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여, 온 마음과 온 의지를 다하여 살아감으로,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아름답고도 신비하게 펼쳐지는 하루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기 도
하나님 아버지!
다윗이 아들 압살롬에게 반란을 당하고, 믿었던 신하들로부터 배신을 당했을 때는, 그의 마음이 무너질 대로 무너지고, 자신은 죽은 자와 같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을 전혀 받을 수 없을 것 같은 곳인 땅 끝에 있는 느낌이 들 때에는 한없는 절망감이 밀려왔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높은 바위와 같은 분이신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시기를 바라며, 하나님만이 영원한 피난처가 되시며, 요새가 되심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서원을 들으심을 확신했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대로 자신의 집안에서 계속 왕위가 이어질 것도 믿어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아버지...혹 우리도 인생길을 걸어가면서 마음이 약해지거나 무너지고,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이 미치지 못할 것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될 때에, 이 시편 61편을 기억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신 것을 잊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심으신 삶에 자리에서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하나님께 등을 돌리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우리의 온 의지를 대해서 하나님을 섬기며,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신실하게 살아내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은총의 통로로 사는 복을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