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부자가 되기를 원한다. 부자는 '자유'를 누릴수가 있기 때문이다.
어디에 속박되지 않고, 하고싶지 않은 일은 하지 않아도 되며, 원하는 일은 마음껏 할 수가 있기때문이다.
나의 경우는, 큰 부자는 아니지만 자유를 누릴 정도의 여유는 있다.
이단계 까지 올수 있다는건 누구나가 가능한 일은 아닐것이다.
하루 일하고 싶은 만큼만 컴퓨터 앞에 앉아 몇시간 쭈욱 둘러보고, 나머지는 늘 충분한 휴식을 취한다.
부자가 되기 위해서 사색하는 시간은 매우 중요하다.
사색을 통해서, 고갈된 정신적 애너지를 충전하고 새로운 아이디로 새로운 상품을 내보거나, 나의
고객들에게 신선한 이벤트를 열어서 그들에게 감동을 주곤 했던것 같다.
하여 여행은 나의 가장 중요한 일중의 하나인 셈이다.
부자가 되려면, 남들과 같은 상품을 취급 하거나 인기종목을 따라가서는 이미 때는 늦는다.
남들과는 분명 뭔가 차별화되는 자기만의 써비스가 가미되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여 돈으로 만드는
일은 참 신나고도 재미있는 일이다.
쇼핑몰에 남들과 비숫한 상품만 줄줄이 나열해서는, 고객들은 흔한 그런 제품을 사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스토리가 담긴, 상품은 고객들의 반응은 천지 차이이다.
올겨울 나는 김장이란걸 해보았다.. 싱글이 김치를 먹으면 얼마나 먹겠다고 절임총각무우 40키로, 물만 붓는
동치미 20키로, 그리고 땅속에 저장 하였다가 곰삭은후 4월쯤에 보내준다는 5종 김치셋트 10키로를 주문 해놨고,
얼마전 알배기배추와 너풀이(봄동) 13키로 한박스 까지, 한 판매자가 판매하는 상품을 줄줄이 구매를 했다.
(시골갔다가 변동택이가 판매하는 배추김치10키로와 담양장에서 갓김치 까지 사다놨으니, 어쩔수 없이 김치냉장고
를 사야할 판이다.)
김치가계 에서 소량으로 사먹어 오던 내가, 이런 사고를 치게 만드는데는 판매자의 독특한 매력에 매료 되어서 이다.
올한해 그녀는 1만평의 배추 무우 농사를 지어 모두 인기리에 판매가 완료 되었다.
남들보다 판매가격을 큰폭으로 올렸음에도, 1등으로 매진이 되어 버렸다.
올가을 남들은 가격이 폭락하여 다 갈아 엎었다는데..
회원수 14만명이 넘어가는 다음까페 최대규모 귀농사이트 ' 귀농사모'에서 판매자 '간짓대'는 일명 배추스타 이다.
남편과 자식은 일산에 놔두고, 자연이 좋아 혼자서 전라도 영광까지 내려와 배추농사를 6년째 지으며 감칠맛 나는
글솜씨로 배추농사 이야기와 시골마을 (영광)의 할머니들과 께알같은 일상 애기를 토속 사투리를 섞어가며 정감
있게 써내려가는 글솜씨 때문에 나와 같은 왕팬들이 전국에 꽤나 많은 모양이다.
그녀는 요리도 잘해 구하기 쉬운 재료로, 만들기 쉬운 음식 레시피도 세련된 사진과 함께 곧잘 올려주곤 한다.
과거에 사회에서 스타일 리스트 일을 오랫동안 했었다고 한다.
6개월간 성장시킨 토종 총각무우 40키로와 물만 붓는 동치는 언니네와 나눠 먹으려, 어설푼 양념을 만들어서 버무렸고,
동치미는 정수기 물만 부어 1주일간 실온에 놔두었다가 맛을 보니 지금껏 맛본 김치맛과 차원이 다르다.
김치맛이 '감동' 그자체이다. 20일 이상 매일같이 먹어도 물리지 않는 매우 특별한 맛이 있는 마약같은 동치미와
총각김치. 이제부터는 평생 '간짓대' 김치만 먹게 될것 같다.
부자 이야기에서 판매 이야기로 이어지다 보니, 나혼자 알고 있는 '간짓대' 이야기 까지 줄줄이 나온다.
또다른 리치까페에서 읽어본 이야기중, 자신의 성공사례 글중에 클릭수가 가장 많아 다음 메인화면에 떳길래
들어가본 성공담 이다.
부자가 되기위해 20대 대학생 시절부터 아르바이트를 가리지 않고 해왔던 주인공은 젊은 나이에 처음으로
네일아트숍 ( 남자들은 잘 모르니 알기쉽게 설명 부연 하자면, 손톱에 메뉴큐어를 발라주는 소규모 가계) 을 차린후
기다리는 손님을 위해, 발맛사지 기계를 서비스로 설치 하였더니, 지나 가다가도 발이 아프면 맛사지 받으로 들렀다가
네일아트를 하고 가더라는 것이야,.. 엄마 따라온 꼬마들을 위해 손톱에 어린이용 스티커를 써비스로 붙여 줬더니,
아이들이 그곳에 또 가자고 엄마를 졸라대니 고객이 또 늘어 날수 밖에.. 고등학생들을 위해 스타킹을 추가 상품으로
구비했더니, 어떤날은 스타킹 매출이 네이아트 매출보다 더 많더라는 것이야..
이래 저래, 몇달만에 네일아트샵이 북적거리니, 어떤 사람이 엄청난 권리금을 제시하고 가계를 넘겨 달라길래,
넘겨 줘서 제법 큰돈을 벌었다는 것이야.
그이후 옷가계를 다시 차렸는데 옷을 세벌이상 구매하는 고객에게는 은귀고리 악세사리를 사은품으로
주기 시작 했데.. 그렇다고 허접한 악세사리는 아니며 눈쌀미는 있어 가격도 저렴하고 럭셔리한 귀고리를 저렴한
가격으로 대량으로 구입해와 사은품으로 내놓으니 매출이 늘더라는 것이야..
이번에는 매주 금요일은 와인 데이로 정하고 금요일에 옷을 구입하는 고객들에게 와인을 한잔씩 제공을 했더니,
금요일은 옷가계가 미어 터지더라 것이야.
이래저래 또 옷가계가 북적거리니, 어떤 사람이 입이 떡벌어지는 권리금을 제시하고 가계를 인수 해가더라는 것이야..
그다음에 입시 학원을 차렸는데, 학교와 가정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수험생들에게 학원은 스트레스를 푸는 장소로
만들어야 학생들이 북적일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학생들이 걸어 올라오는 계단에 CCTV 를 설치하고서 그날
어께가 무겁게 쳐져서 들어오는 학생들을 불러서 무슨 고민이 있는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물어봐 주고, 들어주
고, 시험이 끝나는 날에는 친구들을 한사람 이상씩 데려오게 해서, 실컨 먹고 놀수 있는 이벤트를 열어 줬더니,
자연스럽게 학생들이 북적여서 대성공을 거두었다는 성공담..
지금은 3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외제차와 60평대 아파트와 상가건물 2채를 소유하고 간간히 시험기간에만 학원에
강사로 활동하고 있노라고 성공담 이야기가 올라와 있어.
이런 글들을 접하면서 나의 애기도 이곳에 올려 보며, 친구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우리 나이면, 지긋하게 시댁이나 시골 친정집에서 유산으로 받은 큼직한 부동산 이나 토지가 있는 친구들도 있을 터이고,
재테크를 잘하여 지금쯤 안정권에 접어든 친구들이 꽤 많을 것이다.. 좀 있으면 자식들이 어찌 어찌 중국유학중
에 무역업을 잘하여 큰돈을 벌고 있으며, 손주 봐주는 일을 소일거리로 하는 친구도 생길것이다.
내가 지금의 애견식품 사업을 시작할때는, 국내에서 기업체 통역사로 활발하게 활동 하던시기 2003년 이다.
기업체 통역사란, 잠시 남의 사업의 보조 역할을 해주는 정도이다. 차분하게 분위기 리더도 잘하고, 일을 즐기면서
잘한다는 평을 듣기도 했는데 이것도 오래 하다보니 갈수록 흥미가 떨어지더라는것..
남의 떡만 커보인다고 나도 영어권 통역사를 필요로 하는 사업가가 된다면, 참 좋겠다는 바램을 가지곤 하였다.
2개월을 못넘기는 성인반을 가르키는 학원 강사일도 나가기 싫어지고 통역사 일도 최종적으로 추구하는 일은
아니고, (통역사는 폭넓게 사람을 알아가는 일이 즐겁기는 했어. ) 무엇을 해야할지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사색을
하던중, 인터넷에서 멋진 글귀를 발견하게 되었다.
작년에 작고한 변화경영전문가 구본형 선생이 저술한 ' 너 자신을 고용하라' 라는 책의 한귀절을 접하게 되면서
구본형 선생이 펴낸 책들에 매료되어 그양반이 펴낸 모든책을 구하여 독파를 하게 되었다.
- 무슨일을 해야할지 가닥이 잡히지 않을때는, 모든것을 놓고 할일없이 2개월만 펑펑 놀아 봐라!
그러면 자신의 내면에서, 그 무엇 인가가 트림을 하고 올라올 것이다. - 구본형 원본에 내말투 섞음것.
그양반의 코드와 내가 찾고져 했던 코드가 잘 맞았던것 같다. 2달동안 하던일을 멈추고 펑펑 놀았다.
할일없는 나도 친구들을 따라 한여름 휴가여행을 5박6일을 놀다 오니, 머리속에서 얼추 가닥이 잡히더라는것..
함께 동반했던 강아지 세마리 퍼그까페의 까페지기활동을 취미삼아 하던 나는 어렴 풋이 강아지를 대상으로 하는
일을 해봐야겠다는 가닥을 잡고, 집에 돌아와서 제일먼저 컴퓨터를 켠뒤 일본 애견용품관련 웹쇼핑을 조사해봤다.
그때 우리나라는 한창 애견용품쇼핑몰이 활발하여 자고나면 쇼핑몰이 한개씩 새로 생겨나는 상황이였다.
그동안 자주 이용해 왔던 꽤 유명한 애견용품 쇼핑몰 홈페이지 분위기를 보면, 방대한 물류창고에다 360여 종류의
물품을 구비해놓고, 주문당일 상품을 발송을 하는 시스템 인지라, 왠만큼 큰 자본 없이는 개인이 하기에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또한 한 나무에서 (건국대 동기생들 ) 에서 뛰쳐나온 쇼핑몰 CEO들은 오픈된 공간에서 치열한 싸움들을 하고 있었다..
최소가격, 신상품 입점우선, 사은품 한개라도 더퍼주기. 자존심대결등등..
일본 쇼핑몰 분위기는 어떤가 궁금하여 검색하던중 일본 옥션 사이트에서 눈에 확들어오는 그림이 있었다.
오븐기 속에 닭가슴살 건조하는 사진이였다. 클릭하여 좀더 자세히 알아보니 바로 개인이 직접 애견식품을 제조판매
하는 곳이였다. 세련미는 없으나 작고 수수한것이 신뢰가 갈만한 나와 잘맞을것 같은 애견식품 사이트였다.
그때는 우리나라에서 만드는 애견육포간식이 거의 없었고, 일본 마트에서는 닭가슴살 육포1키로가 980엔에 판매되고 있는데,
우리나라 동물병원에서는 70그램에 7-8천원에 판매되고 있으니, 거의 10배의 가격 차이가 있는 셈이였다.
우리나라에 육포가 열배 비싼걸 알고나서, 일본만 가면 마트에서 거의 육포간식을 많이 사들고 들어와 자주 만나던
애견인들에게 나눠주면 모두가 신기해 하곤 했었다.
일본의 작은 애견식품 사이트를 발견하고, 나는 애견식품 제조를 어떻게든 꼭 해내고야 말겠다는 강한 의지를 갖게 되었다.
이 일이야 말로 내가 평생의 직업으로 걸어도 좋을것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어, 가슴두근거림에 1주일간 잠을 설쳤다.
일본 사이트에 메일을 띄웠어.. 좀 도와 달라고.. 친절한 회신이 빠르게 왔다.
한국 닭고기 가슴살 가격은 알아 봤느냐고 .. 어찌 어찌 검색하여 닭가슴살 20키로 한박스를 구입 하였는데,
육포는 가슴살이 아니고, 가슴에 붙어 있는 얇은 안심살만 사용하는데.. 잘못구입한 것이다.
그걸 건조기에 건조 한다는것만 알고, 몇도에 몇시간을 하는지.. 물어보니 60도에 8시간을 하라는데,
집안에 식기 건조기에 하루종일 건조해도, 두꺼운 닭가슴살은 이쁘게 건조가 안되고 한여름 냄새만 심해질
뿐이였다. 한꺼번에 삶아서 햇빛에 건조를 해보려니.. 두꺼운 부위가 건조 될리가 없었다.
그다음에 방산시장에 나가, 구경도 못해본 건조기를 찾으러 나갔다가, 통닭 전기구이 기계로 주문을 할뻔 하다가,
안되겠다 싶어, 일본으로 직접 찾아 가기로 결심 했어. 방문을 할터이니 허락해 주시겟냐고 했더니 대답이 없다.
그래도 체류 스케줄만 메일로 보내고, 일본 고베역앞 비지네스 호텔에 방을 잡고, 아침 9시 부터 데릴러 와달라고 전화를
거는데, 오전 11시가 다되어도 전화를 안받는거야.. 누가 생전 처음 메일로 접한 사람에게 제조 노하우를 쉽게 가르켜 줄리가 있겠나 싶어 반은 포기하고 반은 혹시나 싶어 마지막으로 11시에 전화를 걸어보니, 반갑게 받아 주었다.
실은 그곳 업무시작이 11시 부터 였던 것이었어. 타케우치씨가 흰색 장화를 신고 작업하다 말고 나를 데릴러 와주었다.
처음 데려간곳이 고베 중앙수산시장, 그곳에서 참치 부산물등이 한켠에 재활용 하라고 깔끔하게 놓여져 있는 것을
골라서 담아 오고, 닭집에 들러 닭부산물을 담아서 가져오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각설하고.. 그곳에서 1주일 정도 견습을 받았다. 온가족이 가내수공업으로 작업을 하고 있는 곳이다.
부모님, 여동생, 부인, 여직원 한사람 이렇게 몇명의 사람들이 전통 수공업 형태로 수제사료 간식을 만들어 인터넷
과 옥션을 통해 판매 시작한지 6개월째 접어든 상태여서, 한국에서 손님이 온다는 연락을 받고 집안이 발칵 뒤집혔단다.
그래도 지루한 일상보다는 활기가 생기지 싶어, 나를 받아 주기로 했다고 나중에 애기를 하더라고..
어찌됐던 갑장 타케우찌씨의 도움으로, 한국으로 돌아오자 마자 일사천리로 아파트 전세 보증금을 빼서 집을 줄이고,
10평가계를 얻고,기계설비를 중고로 모두 갖추고 홈페이지는 고3이엿던 조카 소희가 간단하게 만들어서 해피팡팡을
시작 하게 되었다.. 육포 간식이야 건조기에 손질해서 넣고 돌리기만 하면 간단한데 비해 , 일명 배합사료인 수제사료는 만들기도 복잡하고, 재료또한 복잡하며, 만들어진 후에도 설사하는 경우가 많아서, 완성된 사료는 꼭 집에 가지고 가서, 우리 강아지들 한테 먼저 테스트를 해보고 변상태가 문제가 없으면, 판매를 하곤 했다.
처음 해피팡팡을 소꼽장난처럼 10평 에서 시작한 이후로 2년까지 거의 편히 잠을 자본 날이 없었다.
방이 딸려 있는 작업장에 나와서, 건조상태 체크해가며 건조를 해야 하기에 수면부족에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사료가루 날리는 탁한 공간에서 생활은 늘 항상 노숙자 꼴을 하고 있었던것 같았다.
그래도 그일이 싫거나 지겹지가 않았다. 하루 수면시간 6시간을 넘겨 본적이 없었지만 몸은 견딜만 했고 마음은 늘 즐거웠다.
내가 만들어낸 제품을 누군가 돈을 내고 사준다는 자체가 참 신기하고 즐겁기만 했다.
한달에 얼마가 남았느냐는 한번도 계산을 해본적이 없었다. 돌이켜 보건데 3년간은 수익이 거의 안났다.
어떤날 홈페이지 업그레이드 한번씩 하게되면, 통장 잔고는 처음보다 마이너스 였다가, 어떤때는 스타트 싯점의 금액과
일치 했다가를 반복 했던것 같다.. 그래도 즐거울수 있었던건, 적당한 노동과 상품과 컴뮤니트를 통해 대중들과 교류를 하고 있다는 것에 즐거움을 찾았다.
4-5년이 지나면서 잡지사 같은 곳에서 신기 하다고 취재는 많이 해가던데 매출은 조금씩 늘지만 수익은 크게 나지 않았다.
그때까지 바로 윗언니와 나와 단둘이서, 일을 해오다가 알바생 아가씨를 한사람 고용했다.
직원을 한사람 채용했더니, 3개월만에 매출이 늘어나 직원을 한사람 더 고용했다.
그때부터 매출이 늘기시작 하더니 직원이 4명 정도로 늘어 났을때, 10평 가계가 비좁아서 넓은 가계를 알아 보던중,
매일 같이 일하고 밥을 먹던 분식집 코앞에 1,2층 70평 규모의 고기집이 페업한지 4개월째, 월세도 못내고,
문이 닫혀 있었다. 너무 넓은지라 후보지로 생각지도 못했는데 어느날 문득 나의 가계가 될것 같은 느낌이 왔다.
크기도 7배, 임대료도 7배 갑작스런 변화가 온것이다.
가계 이사를 하고 터가 쎄서인지 자꾸 일이 꼬이기 시작 했다. 건조기가 값비싼 육포를 태워먹고 고장이 나거나,
옆근처 가계 하는 사람들이 드세게 이런 저런 이유를 달고 태클을 걸거나,
이틀후 단미사료제조 허가를 신청하러 가려던 참인데, 경쟁업체인 후발업체가 먼저 허가를 취득한뒤 우리를
시청에다 고발을 한것이다.. 지금까지 허가없이 오래도록 육포간식을 만들어 판매 했다고,..
지금 생각해도 분이 안풀리지만, 이후 오래도록 그쪽과 팽팽한 대립과 경쟁으로 줄곧 이어져 오다가,
2년전 처음으로 얼굴을 보고 화해하고 지금은 선의의 경쟁자로 함께 성장하며 경쟁하며 발전해 가고 있다.
매출이가 급격히 올라가기 시작한때는 바로 후발업체들이 속속히 생겨나면서 부터 였다.
후발업체들이 많이 등장하면서 시장 커지고 있었다. 시장이 커지면 수요자가 그만큼 늘어나는 것이다.
그 수요자들은 가장 많이 우리 해피팡팡에 흡수 되었다. 다른 업체들도 장족의 발전을 했으리라 믿는다.
경쟁업체나 후발업체는 나의 적이 아니라 함께 가는 동반자들인 셈이다.
어째튼 나는 그들이 싫은 존재가 아니라 혜택을 많이 봤으니 고마운 존재들이다.
사이트들은 저마다 특색이 있다. 펫영양사 자격증 걸어놓고 운영하는곳이 있는가 하면, 뛰어난 손재주로 애견들의
음식을 맛깔스럽게 요리하여, 우리나라 상위 몇퍼센트만을 상대로 고품격 고가격의 이미지로 구매고객들이 스스로
노블리스트라는 프라이드를 갖게 만드는 판매전략으로 나름 성공한 업체도 있다.
반면, 나는 서민출신 여서인지 다수인 서민의 눈높이에 맞춰 제품이 지루해 질만 하면, 나름 재미난 아이디어로
신제품을 출시하며, 서민의 눈높이에 맞춘 가격으로 정하고, 빠른 배송을 목표로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다.
장사만 하는게 아니라, 고객들의 호응도나 반응도 등을 사이트 방문자가 확인토록 재미난 댓글달기 이벤트도 종종 하곤
한다. 지금은 유기견들을 위해 연탄1장 500원에 상품을 진열해 놓고 연탄장사도 하고 있다.
기타, 상품판매만 할게 아니라 흔히 접하지 못하는 애견영양에 관련 지식등을 차츰 올려볼 예정이다.
현재 사이트 이외에 블러그를 만들어서 옥션에서 갈고닦은 실력으로 조카인 소희가 열심히 꾸미고 쓸고 닦고 하고 있는 중이다.
어째튼 현재 직원수는 16명에 작년 매출은 전년보다 조금더 오른 17억 정도이며, 매달 필요경비를 지불하고도 몇천씩은 세이브
되고 있으니, 법인이 아닌 개인 구멍가계 치곤 매우 보기 문 경우일 것이다.
나에게 특별한 장사비법이 있냐고 묻는다면, 그냥 편안한 마음으로 사색하고 생각하여, 내생각을 제품화로
만들었을 뿐이라고 말하고 싶다. 즉 나와 같은 코드로 생각해주는 사람들이 내 고객이 되는 것이다.
같은 생각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건, 매우 운이 좋은 것이다.
현재 두곳으로 나눠져 있는, 안양의 배합사료공장과 신림동 육포 작업장을 한곳으로 합드려야 하는데,
공장을 짓는데는 내고향 시골 여도 꽤나큰 돈이 6억이상이 소요된다..
늘 변화를 즐겨하는 내가 한곳에서 언제까지 잘살수 있을지 확신이 없는 탓에, 지방의 한장소에 6억을
투자한다는것에 몹시 고뇌하고 있다....
첫댓글 어느 누구나 부자가 되는게 희망일 수 있고,
좀더 나은 생활을 영위하기 위함인데,
처음부터 넉넉하게 출발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그리 녹록치 않은게 현실이고 보면, 첫단추 꿰는것이 중요하다는데
이견을 달 사람은 없겠지???
자기가 하고싶은 분야에서 열심히 노력하면 작게나마 성취감은 찾아올까???
'아직 늦지 않았다'
'늦었다고 생각할때가 가장 빠른때이다',,,
그 말을 믿어보는 수밖에,,,,
언제나 한결같이 즐겁고 감사 하는 마음으로
멋진 농부의 길을 가고 있는 친구!
늘 균형감 있는 열정과 애너지가 있으니,
반드시 꼭 성취감에 쾌재를 부를날이 올꺼라 믿네~
나는 올해들어 매널리즘에 빠져 공허감에 허우적 대다가
오랫만에 구본형 선생이 저술한 ' 익숙한 것들과의 이별' 이라는
10년전 나에게 강한 의지를 줬던 그책을 다시금 읽으며,
봉평에서 마지막 설 연휴를 보낼까 하네~!
자서전적 성공담이네~!!
뛰어난 판단력으로....
기회가 왔을 때 그것을 놓치지 않는
강단있는 너의 성격이 보이는구나.
나도 늘 뭔가를 꿈꾸지만,
추진력과 자신감이 밑바닥이야... ㅎ
암튼 본받고 싶은
상황판단력과 추진력이다.
꽃님아~ 분명 어디에서든 틈새시장은 있기 마련이지.,
자신이 잘할수 있는것 위주로 잘 생각해봐,..
취미를 사업으로 접목시킬수 있는것은 매우 많을꺼야.
홈페이지 제작하는 기법도 틈틈히 배워 놨다가 때가 되면 마음껏 웹디자인도 해보고,
꽃님이는 글도 잘쓰니 톡톡튀는 멘트로 고객들을 즐겁게 해주는 센스도 있고..
뭔가 시작하면 나보다 한참 잘할수 있는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요즘 떡장사도 인터넷 사업으로 크게들 하더만..
센스쟁이 꽃님이는 흔한 떡장사를 해도 분명 성공시킬수 있을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