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자기소개
2. 성적
3. 초수 : 2019년의 공부
4. 재수 : 2020년의 공부
5. 삼수 : 2021년의 공부★★★
6. 마무리하며
1. 자기소개
안녕하세요. 2022학년도 경기도 공립 중등교사 임용시험 역사 교과에 합격한 이건희입니다. 합격수기를 쓰는 순간을 항상 상상하며 공부를 했었는데, 실제로 이렇게 수기를 작성하고자 하니 제 수험생활의 여러 부분들이 생각나면서 선생님들께 어떤 말부터 드리는 것이 좋을까 굉장히 고민이 됩니다. 3번의 시험을 치르면서 겪어왔던 시간들을 기억하며 최대한 진실되고 솔직하게 수기를 써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저도 김구전공역사 카페에서 여러 선생님들의 수기를 참조하며 도움을 받았던 것처럼, 선생님들이 공부를 해 나가심에 있어 제 수기가 아주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우선 저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부터 해보겠습니다. (이 부분은 저에 대한 소개이기 때문에 궁금하지 않으신 분들은 넘어가셔도 될 것 같습니다.) 현재 제 나이는 30살입니다.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꿈을 17살 때 가졌고, 이후로 한 번도 변하지 않았으니 13년 만에 꿈을 이루게 되었네요. 여기까지 도달하는데 과정이 결코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노량진에서 지하철로 두 정거장 떨어져 있는 C대학교 사범대학 교육학과를 졸업하였으며, 역사학과를 복수전공 했습니다. 제가 처음부터 사범대학에 입학했던 것은 아닙니다. 원래는 인문대학 역사학과로 입학을 했었습니다.(제가 졸업한 대학에는 역사교육과가 없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그냥 사학과에 진학해도 선생님이 될 수 있는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대학에 진학한 후 학과 내에서 1년에 교직이수자를 3명만 뽑는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대학교 1학년 시절 공부하는 것을 유독 싫어했던 저는 놀기를 좋아하는 여느 대학생들처럼 공부와는 담을 쌓은 채로 시간이 흘렀고, 교직이수를 절대 할 수 없는 학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1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가게 됩니다. 2015년 말 전역을 했을 때 전 인생의 갈림길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대로 복학해서 대학을 다닌다면 교직이수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선생님이 되기 위해서는 교육대학원에 진학하는 것 말고는 별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마침 몇 년간 자리가 없었던 사범대학 교육학과의 전과 티오가 1자리가 생겼습니다. 결과적으로 저는 그 1자리를 차지하게 되었고, 이후 역사학과를 다시 복수전공하는 방법으로 역사 과목의 교원자격증을 취득하여 임용고시를 볼 수 있었습니다. 전과에 성공했을 당시 전 하늘이 저에게 선생님이 반드시 되라고 기회를 준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 뒤로 정말 열심히 노력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제 20대 이야기를 먼저 장황하게 한 이유는 제가 교사가 되고 싶다는 열망 하나만큼은 누구보다 컸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들께서도 저 못지않게 교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계신 것을 믿기에 ‘누가 뭐래도 나는 반드시 선생님이 된다!’ 라는 마인드를 가지고 공부하신다면 합격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 성적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저는 총 3번의 시험을 보았습니다. 교육학에서 Dweck이 제시했던 귀인변경 프로그램처럼 초수가 끝난 후에는 실패의 원인을 노력 부족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재수 때는 공부시간을 대폭 늘렸습니다. 재수가 끝난 후에는 실패의 원인을 제 학습방법에서 찾아 삼수 시기에는 학습전략을 수정하여 체계적으로 공부해 나가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만약 삼수였던 이번 시험까지 떨어졌다면 저는 정말로 임용고시를 그만두려고 생각했습니다.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었을 뿐 아니라 시험을 준비하면서 자존감도 많이 떨어졌고, 더 이상 공부할 힘이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특히 후술할 1월의 2차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은 그야말로 하루하루가 전쟁이었기 때문에 다시는 이렇게 공부하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좋은 결과를 받게 되어 너무 다행이라고 안도하고 있습니다. 제가 합격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저 개인의 힘만으로 이룬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수험생활을 하면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고, 그 속에서 힘을 얻으며 같이 공부해나가는 과정들이 지금의 성과를 이루었습니다. 선생님들께서도 힘든 수험 생활 속에서 의지가 되는 동료를 만나 외롭지 않게 공부해 나가시기를 기원합니다.
이후의 내용은 제가 공부한 년도 순서대로 작성하겠습니다. 초수·재수 때의 내용은 너무 길지 않은 범위에서 쓰고, 가장 체계적인 공부가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는 삼수 때의 내용은 월별로 자세하게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3. 초수 : 2019년의 공부 (1차 : 1~2월, 7~11월 / 2차 : 12월)
2019년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아무것도 모른 채로 맨땅에 헤딩하며 좌충우돌 하던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단 기본적으로 공부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습니다. 1~2월에 처음으로 박문각 임용고시 학원 직강을 다녔습니다. 교육학은 권지수 선생님 강의를 들었고, 전공은 김쌤과 구쌤의 강의를 듣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학원 강의를 제외한 순 공부 시간이 하루 3시간 정도밖에 안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사실 무엇을 해야 할지 감을 전혀 잡지 못했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습니다. 당시 제 주위에 공부 방법을 구체적으로 물어볼 합격생이 없었던 것도 한몫 했습니다. 당시 2월쯤 구쌤과 상담할 때 공부하기 싫다고(?) 엄살피던 제가 기억납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모두 치열하게 공부하는 학원에서 상담 때 그런 이야기를 했으니 얼마나 철없게 보였을까 부끄럽습니다. 아무튼 1~2월을 어영부영 공부를 하는 듯 안하는 듯 보낸 뒤 저는 3월에 개강을 하게 됩니다. 원래대로라면 2019년 2월에 졸업을 했어야 맞지만 제가 2018년 1학기에 회사에서 인턴을 하게 되며 학교를 다니지 않아 2019년 1학기를 막학기로 다니고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이때 5월 교생실습, 6월 논문 발표가 있었기 때문에 공부를 1도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핑계란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때는 학교를 다니면서 공부를 병행하는 것이 생각보다 정신없었기 때문에 제대로 해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3~6월을 거의 공부하지 못한 채로 하반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하반기(7~11월)에는 학원 직강을 다니면서 나름 시간을 투자하여 열심히 하려고 노력했지만 결과적으로 전공에서는 저 스스로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부족함이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이 때 9~11월에 실시한 학원 모의고사 점수는 전반적으로 40~50점 가량 나왔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 추가적으로 하반기에 학원을 다닐 당시 아는 사람이 전혀 없어 같이 밥 먹을 사람조차 없었기 때문에 너무나도 외롭게 공부해야 했던 점이 저를 더 힘들게 했던 것 같습니다.)
♠ 그나마 잘했다고 생각하는 점
① 교육학
권지수 선생님의 강의를 따라가며 시키는 대로 청킹을 따서 외운 것. 전공은 너무 방대하고 어려웠지만 교육학은 뼈대를 잡은 이후부터는 암기만 하면 되었기 때문에 나름 재미있고 할만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때 교육학 점수가 잘 나왔던 이유는 물채였던 것도 있었지만 모든 논점이 권지수 선생님이 강조했던 것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특히 2020학년도 교육학에서 출제되었던 스타인호프와 오웬스의 학교문화 유형은 ‘가기공공’ 이런식의 청킹으로 몇 번이고 반복했던 것이었고, 당시에는 모든 강사들 중 권지수 선생님만 수업에서 이 부분을 언급했던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교육학 공부는 특별한 방법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강의+복습+인출스터디 이렇게만 반복해도 일정 점수 이상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한 번에 몰아서 하는 것보다는 꾸준하게 시간을 확보하여 망각하지 않도록 유지해주는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② 전공
1, 2월에 동아시아사, 세계사 ebs 수능 강의로 기초를 다진 것 : 아직도 기억에 남는 권용기 선생님의 동아시아사 수능 강의로 일본사의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함 + 박세훈 선생님의 강의를 통해 세계사의 전반적 내용을 파악 (고등학교 때 세계사 과목이 없었기 때문에 임용 공부를 시작하면서 처음 서양사를 접하여 기본조차 하지 못하는 상태였음)
하반기 공부를 하며 기본 개론서들을 한 번 이상씩은 읽었다는 점 : 한국사통론, 09개정 한국사 교과서 1~2종, 09개정 세계사 교과서(교학사), 서양사개론, 서양사강좌, 한국인을 위한 중국사, 동양사개론, 파란책, 녹색책, 남색책 등
③ 스터디
교육학과 전공 둘 다 스터디를 진행했었습니다. 교육학은 타 과목 선생님과 전화로 구두 인출하는 스터디를 진행하였고, 전공은 하반기 수업을 복습 인출하는 형태로 진행하였습니다. 물론 당시 전공은 한참 모자라서 스터디를 하는 선생님께 폐를 끼친 것 같지만, 이때의 스터디가 이후 재수·삼수 때 제가 스터디 방향성을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 감을 잡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④ 12월의 2차 준비
이 당시의 2차 시험 준비는 내용적인 측면에서 잘하지는 못하였습니다. 총 5명의 서울 지역에 응시한 선생님들이 모여 스터디를 진행하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전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 포함 3명이 초수였기 때문에 2차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고, 나머지 2명의 선생님도 1차 시험의 결과를 어느 정도 안 될 것으로 예상하셨는지 스터디에 열정적이시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스터디가 총 10번도 진행되지 않은 채로 끝났습니다. 하지만 12월 2차 준비를 ‘그나마 잘한 점’에 포함시킨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김쌤 앞에서 수업해보는 경험을 가졌다는 점입니다. 이때는 특정한 사람이 아닌 모두가 김쌤, 구쌤 앞에서 한 번씩 수업을 하고 피드백을 받아야 했기 때문에 그 수업만큼은 몇 번이나 준비를 했었고, 굉장히 떨리는 상황을 경험해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두 번째는 이 스터디를 통해 아직까지도 연락하고 지내는 소중한 인연을 두 명이나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두 분 다 저보다 한 해 먼저인 2021학년도 시험에 합격하셨는데, 한 분은 서울 합격자이신 오승관 선생님이시고, 다른 한 분은 경기 합격자이신 김서현 선생님입니다. 두 분 모두 제가 이번 시험에 합격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특히 김서현 선생님은 저와 2020년 상반기에 스터디를 같이 해 나갔을 뿐만 아니라, 이번에 제가 2차 시험의 수업실연과 수업나눔 전체 토대를 만드는 데 가장 큰 도움을 주셨기 때문에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 보완해야 했던 점
① 단권화를 하지 않은 것
선생님을 위한 시리즈에 단권화하지 못한 것이 초수 때의 가장 후회되는 점입니다. 사실 단권화라는 것을 어떻게 하는지 몰랐기 때문에 학원 프린트 위주의 공부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여러 선생님들의 합격 수기를 참고하셔서 단권화에 대한 개념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초수 때부터 제대로 해 나가시기를 추천드립니다. 그래야 초수 때 합격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재수를 시작하는 초반부에 이전에 해놨던 것을 토대로 출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② 기출분석을 똑바로 하지 않은 것
기출을 보긴 보았지만 말 그대로 문제와 정답만을 본 것일 뿐 문제를 하나하나 분석하고 뜯어보지 못했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이 부분은 3~6월 강의를 제대로 수강하지 못해 발생했던 것으로써 재수 때부터는 조금씩 보완해 나갔습니다.
4. 재수 : 2020년의 공부 (1차 : 1월~11월 / 2차 : 12월)
2020년은 초수 때의 여러 문제들을 보완해 나갔으며, 공부 시간도 훨씬 많이 투자했던 시기였습니다. 그리고 이 시기에 같은 대학 출신 동기 및 후배들이 학원에 들어오게 되면서 초수 때보다는 덜 외롭게 공부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 1~2월
2020년에는 1월부터 곧장 학원을 등록하고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2019년 12월 30일경 합격발표가 난 것으로 기억되는데 떨어질 것을 예상했기 때문에 재수 때는 제대로 공부하자는 마음을 가지고 1월 첫째 주부터 학원에 나갔습니다. 곧장 공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제 계획과는 달리 생각보다 1~2월 기본이론반 때는 별로 공부를 하지 못했습니다. 큰 점수 차로 떨어졌는데도 불구하고 실수했던 것들이 자꾸 눈에 밟혔으며, ‘이건 맞을 수 있었는데’, ‘이건 이 개론서를 봤으면 좋았을 텐데’, ‘합격할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이런 쓸데없는 생각들이 자꾸 머릿속을 떠다녔습니다. 또한 1~2월에는 교육학 강의를 수강하지 않았기 때문에 월요일과 화요일에 자꾸만 게을러지는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나태함을 방지하기 위해 저는 후배와 스터디를 시작했습니다. 이 때 스터디를 같이 한 후배는 초수에 제주도에 합격을 하게 되는, 이미 학원에 들어오기 전부터 역사 전반에 대한 지식이 박학다식한 매우 뛰어난 친구였습니다(2021학년도 제주 합격자 강우인). 그렇기 때문에 제가 재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친구와의 스터디를 결정했고, 이는 2020년 한 해 동안 쭉 이어졌던 것 같습니다. 이 친구와 진행한 1~2월 스터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교육학 스터디
인원 : 2인 (이건희, 강우인)
내용 : 암기 및 인출
요일 및 시간 : 수요일 오후 7시 / 토요일 오후 2시 (8, 11, 15, 18은 밤 10시 통화로)
수요일은 월요일 진도 인출 / 토요일은 월요일 + 화요일 진도 인출
② 전공(역사) 스터디 – 개론서 읽어 나가면서 점검
인원 : 2인 (이건희, 강우인)
내용 : 역교론(파란책, 녹색책, 남색책), 한국사(다시 찾는 우리역사), 동양사(한국인을 위한 중국사), 서양사(서양사강좌)
페이지를 지정한 후 문장 혹은 단어 빈칸 뚫기 10문제 만들어오기
요일 및 시간 : 수(오전 7시), 목(오전7시), 금(오전7시), 토(오전10시)
이 스터디의 목적은 기본적인 개론서들을 1~2월 동안 한 번 읽으면서 점검하는 것이었습니다. 스터디를 통해 강제성이 부여되었기 때문에 기본적인 내용들을 익혀가면서 교재에 단권화 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1~2월에는 제가 생각했던 것만큼 공부 시간을 많이 투자하지는 않았지만 페이스를 서서히 끌어올리면서 전공 역사 전체범위를 한 번 쭉 훑어보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 3~6월
이 시기에는 여러 가지 스터디를 병행했던 시기였습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스터디에 치여 개인 공부 시간이 조금은 부족했던 때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게다가 코로나19로 인한 학원 등원 및 휴원의 반복이 지속됨에 따라 공부의 패턴도 혼란스럽게 된 점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때는 학원 진도에 맞추어 스터디를 통해 복습을 하고, 개론서를 읽어 나가며 단권화를 하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3~6월에 진행했던 스터디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 밴드 스터디
3~4월에는 3명이서 진행하였고, 5~6월에는 4명이서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방식은 수목금토에 진행된 학원 수업[역교론, 한국사, 서양사, 동양사]을 복습하기 위한 간단한 문제(빈칸, 한두 문장으로 답 쓰기 등)를 밴드에 그날그날 업로드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스터디는 학원 수업에서 강조했던 것들 및 본인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당일에 복습하는 데 목적이 있었습니다.
② 문제풀이 스터디
기출문제 및 실제 시험 형식에 맞추어 해당 주의 문제를 출제하고(영역별 매주 2문제) 그 다음주에 모여서 푸는 스터디를 진행하였습니다. 인원은 4명으로 구성되었습니다. 19년 12월에 같이 2차 스터디를 진행했던 김서현 선생님 이외에 김종민, 천유정 선생님과 함께하였습니다. 수목금토 학원 수업 이후 점심식사를 한 뒤 모여서 2~3시간 정도 소요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 스터디는 제가 삼수 시절에도 3~6월에 메인으로 삼았으며, 이때보다 좀 더 보완해서 진행하였으니 자세한 방법과 예시는 후술하도록 하겠습니다.
③ 인출
앞서 언급한 학교 후배와 구두로 교육학 및 전공 인출을 진행하였습니다.
♠ 7~11월
이 시기에는 학교 후배와 함께 지속적인 교육학+전공 암기와 인출을 계속해서 병행하는 것 외에 다른 스터디를 진행하지는 않았습니다.
재수 때의 패인 분석
정말 솔직하게 말하자면 저는 재수 때의 공부를 잘못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단권화도 나름 탄탄하게 잘 되었고, 각 영역별 개론서의 회독 수를 늘려가는 것을 병행하면서 실력이 정말 많이 향상되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9~10월 학원 모의고사 시즌에 점수가 초수 시절보다 훨씬 더 잘나왔습니다. 시험을 볼 때마다 편차가 좀 있기는 했지만 50점 밑으로 내려간 적은 전혀 없었고, 포텐이 터진 채점모의고사에서는 68점으로 전체 1등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이것이 저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당시의 저는 저 자신에 대한 믿음이 정말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끊임없이 저의 실력에 대해 의심했고, 불안에 시달렸습니다. 점수가 잘 나왔던 것도 아는 것이 나왔기 때문이라거나 운으로 치부해 버리면서 오히려 자신을 갉아먹는 생각을 하고는 했습니다. 이것이 재수 때 불합격을 불러온 가장 큰 부분이었습니다.
멘탈이 흔들렸던 것이 불합격으로 이어지다.
앞서 공개한 제 성적을 보면 아시겠지만 저는 재수 때 충북으로 시험을 응시하였습니다. 이것이 제가 정말 두고두고 후회하는 부분입니다. 당시 원서를 접수할 시기에 저는 끝을 모르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멘탈이 아주 약해져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원서 접수 기간 내내 어디가 컷이 낮을 것인지 혼자서 예상해보면서 지원을 해버리는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습니다. 당시 충북이 예년보다 많은 숫자인 18명을 선발했기 때문에 수도권보다는 당연히 컷이 낮을 것이라고 지레 짐작하며 마지막 날 접수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후 뚜껑을 열어보니 경기보다 충북이 오히려 컷이 0.33 높았고, 경기 컷 점수를 받고 불합격한 저는 삼수 시절 내내 그 때 경기를 지원하지 않았던 것을 자책하며 보내게 되었습니다.
또한 당시 지방으로 내려가서 시험을 치는 것 자체에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1차 시험 전날 청주의 한 호텔에서 잠을 자게 되었습니다. 지방에 가서 시험을 치르는 자식이 걱정되셨는지 부모님께서 같이 가자고 말씀하셔서 저는 별 생각 없이 부모님과 함께 청주로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가뜩이나 긴장되고 예민했던 시험 전날 바뀐 잠자리로 인해 잠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한 번 잠이 들지 못하니 별에 별 방법을 동원해도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단 10분도 잠을 자지 못하고 밤이 지나가버렸고, 최악의 컨디션으로 시험장에 갔습니다. 어느 정도로 최악의 컨디션 이였냐면 시험장에 도착해서 다른 사람들이 교육학 책을 펴고 공부할 때 저는 쏟아지는 잠 때문에 책상에 쓰러져서 쪽잠을 잤습니다. 이후 화장실을 몇 번이나 오가며 세수를 하였고, 눈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그렇게 시험을 보았습니다. 당연히 결과는 좋을 수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모두 결과론적인 이야기이고, 저의 핑계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쉬움이 두고두고 남는 것은 사실입니다. 1차 시험 끝난 뒤 학원에서의 해설을 들으며 채점한 결과 전공에서의 실수가 무더기로 쏟아졌습니다. 쉬운 문제들에서의 실수가 정말 큰 타격으로 다가왔고, 돌이켜 보았을 때 적어도 10점은 더 맞을 수 있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사실 1차 합격은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당시 저는 교육학 17점 정도에 전공 52~55 정도를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1차 시험 결과가 나온 날의 충격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전공 점수에서 예상치의 가장 아래 점수가 나왔고, 교육학은 14.67이라는 매우 낮은 점수를 획득했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재수 때의 교육학 점수는 지금도 조금은 납득하기 힘든 측면이 있고, 왜 그렇게 나왔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조금 원인을 분석해 보자면 2020학년도 시험과 다르게 외운 것을 그대로 쓰는 것이 아닌 오픈형의 문제였기 때문에 문제에서 요구하는 답과 방향성을 제대로 도출해내지 못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저의 2021학년도 시험은 하반기 멘탈 관리의 실패와 지역 선택의 실수 및 숙면을 취하지 못하여 컨디션 조절 실패로 인해 다시 한 번 쓰라린 불합격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이 부분에서 선생님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자신에 대한 믿음을 잃지 마시라는 점입니다. 임용고시를 준비하다 보면 수험기간이 더해질수록 자존감이 하락하고, 주위의 먼저 잘 된 사람들과 비교하게 되면서 점차 자신에 대한 믿음을 잃어가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물론 당시 2번째였기 때문에 시험 응시횟수로는 많지 않았지만, 제가 스스로 생각할 때는 많은 나이라고 판단하여 늘 조급함이 있었습니다. 또한 같은 대학을 졸업한 친한 친구들이 모두 대기업에 취직했고, 좋은 로스쿨에 진학하는 등의 성과를 내고 있었기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제가 작아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이번에 합격하지 못하면 인생 패배자다.’ ‘결과로서 증명하지 못하면 노력의 과정은 쓸모없는 쓰레기일 뿐이다.’ 등의 생각을 가지고 저를 몰아붙였습니다. 이것이 오히려 저에 대한 믿음을 잃게 만들었고, 계속해서 불안한 마음을 떨치지 못한 채로 공부하는 악순환을 형성했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들께서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본인을 사랑하고 믿어주려는 노력을 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도 삼수 시절에는 저 자신에 대한 믿음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그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시험에 가까워질수록 멘탈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입니다.
두 번째는 지역별 커트라인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저는 2021학년도 시험에서 충북이 경기보다 높을 줄은 정말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2022학년도 시험에서는 경기가 서울보다 높았으며, 경상도 지역의 점수가 다른 지역에 비해 대폭 하락하였습니다. 이처럼 매년 커트라인은 바뀌고, 쉽사리 판단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원서 접수를 하실 때는 구영모 선생님이 매번 말씀하시는 것처럼 자신이 살고 싶은 지역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것이 가장 나은 방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론 분석을 통해 낮은 지역을 잘 선별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저처럼 이 곳 저 곳 흔들리다가 공부할 수 있는 시간마저 낭비하는 우를 범하시지 않기를 바랍니다.
5. 삼수 : 2021년의 공부 (1차 : 2월~11월 / 2차 : 12월, 1월)
2021학년도 1차 시험의 불합격을 확인한 뒤 10분 정도는 그냥 멍했던 것 같습니다. 그 뒤에는 하염없이 눈물이 났습니다. 재수를 했는데 1차 합격도 못할 줄은 정말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멘탈이 완전히 가루가 되었습니다. 너무 창피하고, 앞으로가 깜깜했습니다. 당시에는 인생이 다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공부를 시작하는 마음을 먹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다른 일을 해볼까도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대학 졸업 후 1년 반의 시간이 흘렀을 뿐 아니라 나이도 29살이 되어 있었으며 경력이라고는 HRD 회사의 반년짜리 인턴이 전부였습니다. 남자로서 제대로 취직을 할 수 있는 나이의 마지노선이 보통 29~30살 정도였기 때문에 인생 자체가 절벽 끝에 서 있는 것처럼 위태롭게 느껴졌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제가 결국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공부해왔던 역사를 버리지 않고 정말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도전하는 것이었습니다.
공부를 하기로 결정을 내렸을 때 가장 감사했던 사람은 역시 부모님이셨습니다. 당시 저는 더 이상 집에 손 벌리는 것이 죄송해서 시간 강사나 기간제 교사를 하며 학원비나 책 값 등을 스스로 마련하고자 계획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부모님께서는 마지막 1년만 더 지원해 줄테니 올인하여 공부할 것을 권유하셨습니다. 저를 믿어주시는 부모님에 너무나도 감사했고, 펑펑 울면서 한 해 동안 내 부족한 것을 모두 바꾸어 반드시 압도적으로 합격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또 정말 고마운 사람이 수험 기간 내내 제게 힘을 주었던 여자친구였습니다. 이미 2020학년도 시험에 합격하여 고등학교에서 물리 교사를 하고 있었던 여자친구는 저의 상황을 다른 사람들보다는 훨씬 더 잘 이해해 주었고 위로해 주었으며, 때로는 현실적인 말들로 채찍질을 해주었습니다. 다시 공부를 시작하기 전 여자친구가 저에게 해주었던 말 중 기억에 남는 말이 있습니다. ‘오빠는 원래 빠르지 않은 사람이야. 그래도 지금까지 한 번도 목표로 했던 것을 달성하지 못한 적은 없었잖아? 느리게 가더라도 결국에는 다 이루어 냈으니까 이번에도 차근차근 해 나간다면 무조건 합격할 수 있을거야.’ 이 말은 공부를 다시 시작하는 저에게 큰 용기를 얻게 해 주었습니다. 돌이켜 보았을 때 저는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철저하게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실천해 나가는 과정 속에서 희열을 느끼는 사람이었으며,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시험에 실패했다고 하여 내가 쌓아온 노력들을 한 순간에 버릴 수는 없었고, 그렇게 생각하는 과정 속에서 앞으로 나아갈 것을 스스로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수 때처럼 곧바로 공부를 시작하기에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1월 한 달 동안은 푹 쉬고 시작하자고 결정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보고 싶었던 친구들도 만나고, 제주도로 내려가 며칠 간 쉬면서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별로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는 데는 큰 효과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재수 이상이고 컷 점수에서 별로 차이나지 않게 떨어진 선생님들이 계시다면 곧바로 공부를 시작하는 것보다는 자신을 되돌아보며 휴식하는 시간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삼수 시기 공부의 전반적 방향 : 단권화 및 개론서를 계속해서 읽어나가는 것 병행 + 세세한 기출분석 + 암기와 구두 인출의 반복
선생님을 위한 시리즈에 개론서의 내용을 압축적으로 단권화 하고 교재만 외워나가는 방식에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했습니다. 결국 공부의 시간이 늘어갈수록 단권화된 내용뿐만 아니라 기본 개론서들의 회독을 늘려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진부할 수도 있지만 양쪽이 병행되는 균형 잡힌 공부를 해 나가는 것이 시험의 유형, 난이도와 상관없이 모든 것을 대비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인 것 같습니다.
단권화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저의 경우에는 4영역 모두 단권화를 하긴 했습니다. 다만 한국사와 동양사를 다른 두 영역에 비해서는 좀 더 자세히 했습니다. 단권화할 때 중점을 두었던 부분은 기출 년도와 답의 표시, 교재 맥락에 이해가지 않는 부분에 대한 추가적 설명, 해당 부분 관련 추가 개론서 내용을 포스트잇을 사용해 붙이는 것, 학원 모의고사 표시 등이었습니다. (자세한 사진은 월별 공부에 첨부하겠습니다.)
기출분석은 몇 번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단순히 기출의 답을 파악하는 것을 넘어서서 어떻게 변형될 수 있는지, 다른 주제로 출제된다면 무엇이 가능한지 등을 개인 공부나 스터디 등을 통해 꼼꼼하게 점검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시험 때까지 기출은 처음부터 끝까지 최소 4회독 이상 하여 문제만 보고도 몇 년도 기출이고, 개론서의 어느 부분에서 답을 찾을 수 있는지, 자신이 그 문제를 통해 분석했던 내용들이 어떤 것들인지가 떠오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반기로 넘어갈수록 암기와 인출은 매일매일 병행되어야 합니다. 7월부터는 짝스터디를 필수적으로 하는 것을 권장합니다. 후술하겠지만 저는 7~8월과 9~11월에 각각 다른 선생님과의 1:1 짝스터디를 통해 일주일에 4일(하루2~3시간)을 전공 인출에 썼습니다. 저희의 전공 시험은 서술형이기 때문에 대충 아는 것으로는 답을 쓸 수가 없습니다. 반복적인 암기와 인출을 통해 개론서의 문장이 체득되어야 시험장에서 올바른 답을 작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 2월
2월부터 공부를 시작하기는 했지만, 완전히 집중할 수 없는 마음 상태였기 때문에 스터디를 통해 그동안 읽어왔던 기본적인 개론서들을 한 번씩 쭉 복습하도록 하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 스터디는 학교 후배 한 명과 두 명이서 진행하였습니다. 자세한 계획은 다음과 같습니다.
날짜별로 개론서의 읽을 범위를 정하고, 각 범위에 맞게 인출을 하는 스터디였습니다. 스터디는 전화로 진행하였고, 시간은 밤 10시에 하였습니다. 계획표에도 적혀 있듯이 역사교육론(녹색/남색), 한국사(미래를 여는 한국의 역사 1~5권), 서양사(서양사개론), 동양사(한국인을 위한 중국사)를 보았습니다. 한국사 영역에서 ‘미래를 여는 한국의 역사’를 읽은 이유는 책이 크게 어렵지 않아 흥미롭게 읽어나갈 수 있었고, 특히 고대사 부분인 1권에 그동안의 기출 내용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어 한 번쯤 읽어볼만 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 외의 영역은 가장 기본적인 개론서를 읽었습니다.
계획만 보면 거창해 보일 수 있지만 이때의 스터디는 말 그대로 기본 개론서를 1번 훑는다는 느낌으로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하루에 읽은 부분 중 서로 중요하다 싶은 부분을 물어보고 대답하는 것이었는데, 당연하게도 정확하게 대답하지는 못했습니다. 대답하지 못했다면 개론서의 해당 부분을 찾아 읽어보며 복습하는 형식으로 진행하였습니다. 그래도 스터디를 함으로써 공부의 끈을 놓지 않고 하루하루 해당 범위라도 눈으로 확인하며 지난 공부한 기억들을 되살리는 작업을 해 나갔습니다.
스터디 시간 이외에는 전년도 교재에 단권화해 놓았던 내용들을 올해 교재에 옮겨 적으면서 교재 내용들을 한 번씩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이때는 새벽에 일어나서 밤까지 공부하는 것은 전혀 아니었습니다. 합격수기를 쓰면서 열품타를 켜서 2월 달의 공부 시간을 확인해보니 하루 평균 4시간 정도 학습을 했던 것 같습니다. 즉, 앞서 말한 것처럼 3월 달의 본격적인 공부를 위한 예열 작업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 3월~6월
본격적인 공부가 시작된 3월부터는 학원 직강에 다시 나가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페이스를 끌어올리기 시작하였습니다. 학원 직강을 나가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혼자서는 공부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혼자 있으면 우울해지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은 학원에서 공부를 해 나가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다행히도 학원을 같이 다닐 수 있는 같은 학교 친구들이 몇 있었고, 학원에서 알게 된 좋은 선생님들도 많았습니다. 또한 학원을 다니게 됨에 따라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 있고, 자습 공간을 따로 확보할 수고를 덜 수 있었으며, 스터디를 하기에도 훨씬 수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상반기부터 직강을 나갔습니다.
3~6월의 대략적인 공부 계획은 다음과 같습니다.
저는 학원을 나가기 전에 무엇을 어떻게 진행할지에 대해서 계획을 세웠습니다. 무작정 즉흥적으로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계획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월별 계획이 짜져 있을 때 혼란스럽지 않게 공부를 해 나갈 수 있고, 약점을 보완해 나가는 공부를 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에 따라 스터디도 제가 주도하여 원하는 방식대로 계획을 하고, 그에 맞추어 사람을 구했습니다. 두 번의 불합격을 경험 삼아 어떤 방향성이 나에게 맞는 것인지를 생각하고, 어떤 성향의 선생님들과 스터디를 해 나가는 것이 좋겠다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이처럼 재수 이상이신 선생님들께서는 스터디를 할 계획이 있으시다면 본인과 학습 스타일이 잘 맞는다고 생각하는 스터디원을 직접 구하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학원에서 성실하게 공부하시거나 하는 선생님들이 눈에 띄신다면 직접 말을 건네며 같이 스터디를 하자고 요청하는 것입니다. 학원에서 매칭해주는 스터디에서 좋은 분들을 만나 이어나가는 경우도 많지만, 중간에 깨지는 경우도 많이 보았기 때문에 저는 제가 직접 섭외를 했습니다. 그리하여 김종민, 김유선, 나동희 선생님과 전공 스터디를 같이 하게 되었고, 이 선생님들과 스터디를 함께 한 3~6월은 제 삼수 생활에 있어 가장 즐겁게 공부를 할 수 있었던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3~6월의 전공 스터디 계획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가 이 계획서를 직접 작성해 함께 스터디를 하고 싶은 선생님들께 방향성을 설명 드리며 제안하였습니다.
보시다시피 저는 문제를 만들어서 푸는 스터디를 4개월간 진행하였습니다. 역교론은 제외하고 한국사, 동양사, 서양사로만 진행하였습니다. 심화반 수업이 수목금토에 있었기 때문에 그 다음주 월화 오후에 스터디를 통해 그 내용을 점검하고자 하였습니다. 이때 문제를 출제해 와서 같이 풀고 해설하며 더 나아가 서로의 관점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자세한 설명은 스터디 계획서를 참고하시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스터디에서 출제했던 문제의 예시를 동양사, 한국사, 서양사 각 1개씩 보여드리겠습니다.
이러한 형태의 문제들을 만들고 함께 정확히 시간을 맞추어 풀어나갔으며, 이후에는 설명을 통해 여러 스터디원의 관점을 공유했으며,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까지 체크해나갈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문제를 만드는 것이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점을 최소화하기 위해 문제를 만드는 과정 속에서 여러 개론서를 참고하면서 생각의 폭을 확장해 나가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3~6월은 아직 상반기였기 때문에 공부 범위의 폭을 조금은 넓게 가져가도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범위를 좁히고 핵심적인 것을 외워 나가는 것은 하반기에 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여러 개론서들을 참고하면서 문제도 출제하고, 그 내용들을 단권화 하는 과정을 계속해서 반복해 나갔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3~6월의 전공 스터디는 정말 즐겁게 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스터디원들을 만나는 시간이 재미있었기 때문입니다. 4명의 성격이 잘 맞았을 뿐 아니라 스터디에도 모두 성실하게 임하였기 때문에 한 번의 빠짐도 없이 계획했던 스터디를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스터디 끝나고 다 함께 저녁 먹는 시간도 좋았고, 4월 총괄평가와 6월 총괄평가가 끝난 뒤 노량진에서 놀았던 기억도 수험생활의 고단함을 달랬던 행복한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제가 스터디를 처음 시작하면서 우리 4명 모두 반드시 합격으로 이끌고 가겠다고 다짐했었는데 그 약속을 두 분께 지키지 못한 부분이 마음 한 구석 미안함으로 남아 있습니다. 올해 제가 미약하게나마 도울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꼭 힘을 보탤테니 두 분께서 이 글을 보신다면 조금만 더 힘내서 해 주시길 바라고 응원하겠습니다.)
다음은 3~6월에 진행한 선생님을 위한 시리즈 단권화 예시입니다. 기출분석을 하면서 단권화를 병행할 때 교재 해당 부분에 출제년도와 번호를 기입하였습니다. 2014년 이후 임용시험에 해당하는 문제들은 초록색 펜으로 표시(ex- 사진 ‘초계문신제’ 옆에 19-A5)하였고, 2014년 이전 시험에 해당하는 문제들은 보라색 펜으로 표시(ex- 사진 ‘완론 탕평’, ‘준론 탕평’ 옆에 03-8)하였습니다. 그리고 각종 개론서 및 교과서 내용을 읽어 나가면서 교재에 빠졌거나 혹은 내용을 보충하여 알아보기 쉽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부분들은 검정색 펜으로 쓰거나 포스트잇을 활용하였습니다. 재수 시절의 내용을 옮긴 것은 출처가 정확하게 표기되어있지 않았지만, 삼수 때 새로 추가해 넣은 내용들에는 모두 출처를 달았습니다. (ex- 한길上 p393 / 뿌샘5 p211 등) 더불어, 2019년부터 2021년까지의 학원 모의고사 출제 내용도 표시하였습니다. 2019년 모의고사는 초록색 동그라미 스티커, 2020년 모의고사는 노란색 동그라미 스티커, 2021년 모의고사는 1~5회는 파란색, 6~10회는 빨간색 동그라미 스티커를 붙이고 몇 회에 출제 되었는지도 표기하였습니다.
위와 같이 저는 4영역 모두 교재에 단권화를 진행하였습니다. 하지만 단권화를 했다고 해서 교재만 본 것은 아닙니다. 결국에는 개론서도 함께 읽어 나가셔야 합니다. 그렇다면 단권화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한 부분을 볼 때 여러 가지 개론서를 한꺼번에 읽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상반기에 여러 책들을 보면서 단권화를 잘 해 놓는다면 한꺼번에 여러 개론서를 보지 않아도 흩어져 있는 내용들을 교재만 보고도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상태에서 개론서와 교재를 같이 병행하여 공부한다면 맥락을 이해하는 동시에 집약적인 내용들을 한 눈에 파악하며 암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선생님들의 공부 스타일에 따라서 다 다르겠지만 저의 경우에는 이것을 통해 효과적으로 시험에 대비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은 기출 분석 예시입니다. 저는 기출 분석을 할 때 여러 기출 해설을 참조하였습니다. 김쌤과 구쌤이 나눠주는 프린트뿐만 아니라 북XX에 올라와 있는 기출 해설을 참조하여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이렇게 다방면으로 찾아보지 않으면 풀리지 않거나 이해되지 않는 기출문제들이 굉장히 많이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예시로 제시한 것처럼 저는 기출문제집에 있는 모든 문제를 저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꼼꼼히 체크했습니다. 처음에는 올바른 답을 다는 것부터 시작했고, 이후에는 지문과 선지를 뜯어보기 시작했습니다. 객관식 같은 경우 답으로 체크된 것 이외의 문장들은 왜 맞거나 왜 틀렸는지를 하나하나 표시했고, 해당 선지 자체를 외우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지문에 나와 있는 문장들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읽으며 외웠습니다. 그렇게 했던 이유는 기출문제가 변형되어 출제되었을 때는 절대로 틀리지 않기 위함이었습니다. 지난 2년간의 시험에서 기출문제가 변형된 것들을 계속해서 틀려왔기 때문에 올해는 적어도 기출에서 출제되는 것은 1점도 틀리지 않겠다는 마음이었습니다. 특히 한국사와 동양사 같은 경우 한문으로 출제된 것은 한문사료노트를 통해 한글로 번역된 내용을 통째로 읽으며 암기했고, 반대로 한글로 된 것이 한문으로 변형될 경우도 대비하였습니다. 이렇듯 반복해서 기출문제를 회독하다 보니 거의 모든 기출이 머릿속에 들어왔고, 문제를 보았을 때 몇 년도 기출인지, 이 문제의 핵심이 무엇이며 어떤 것이 바뀔 수 있는지 한 번에 생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기출은 시험 직전까지 가지고 가야 하는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선생님들께서도 나름의 방식으로 분석하는 작업을 거치셔서 ‘기출이 그대로 출제되거나 변형되는 것은 반드시 맞추겠다.’라는 생각으로 시험장에 가시길 바랍니다.
<교육학>
교육학 같은 경우 3~6월에 힘을 많이 쏟지는 않았습니다. 특별한 방법을 사용한 것도 아닙니다. 다만 전년도에 교육학에서 낮은 점수를 맞았기 때문에 3~4월에는 권지수 선생님의 심화 이론 강의를 인강으로 빠르게 들으면서 교육학의 전반적인 내용을 한 번 복습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이외에 3~6월 동안은 학교 동기와 함께 일주일에 2회 1시간 정도씩 범위를 정해서 인출하는 방식의 스터디를 진행하였습니다. 이때는 권지수 선생님께서 나누어준 형성평가 문제를 활용하여 묻고 답하는 방법을 사용하였습니다.
♠ 7월~8월
상반기 공부가 단권화, 기출분석, 개론서 넓게 읽어가기에 중심을 두었다면, 7~8월은 하반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공부의 초점이 암기와 인출에 맞추어져 있었습니다. 이해하시기 쉽도록 위의 제 계획을 첨부하였습니다.
우선 교육학부터 설명하면 권지수 선생님의 7,8월 인강을 구매하였습니다. 7,8월부터는 영역별 모의고사로 진행이 되었기 때문에 교육학 직강을 가지 않는 저로서는 스터디를 통해 같이 문제를 풀고 인출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본래 친분이 있었던 천유정 선생님과 짝스터디를 진행하였습니다. 상반기에 진행하던 동기와의 교육학 스터디를 바꾼 이유는 한 선생님과 지속적으로 진행하다보면 저 스스로 편해져서 게을러지고, 스터디가 루틴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스터디룸을 빌려 월요일과 화요일 오전 시간에는 시간을 정해서 모의고사를 풀고, 이후 정한 진도 범위 내의 형성평가 문제를 질문하며 인출하는 과정을 진행하였습니다. 사실 매일 조금씩이라도 교육학을 보고자 계획은 하였지만 실제로는 스터디 전후로만 교육학을 공부하였기 때문에 월요일과 화요일만 했다고 보셔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전공은 문제풀이를 들어가게 되면서 1년 전과 크게 달라진 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문제를 수업시작 전에 어느 정도 풀고 수업을 수강할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구영모 선생님도 항상 문제풀이를 하실 때 풀지 않고 들으면 효과가 없다고 말씀하셨듯이 문제풀이 때는 반드시 문제를 풀고 수업을 들어야 합니다. 1년 전에는 답을 떠올리는 속도가 느렸거나 교재를 참조하여 문제를 풀었다면, 2021년에는 그래도 전반적으로 실력이 단단해졌는지 이때부터 수업 전 주어진 시간에 절반 이상의 문제를 스스로 풀어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풀지 못한 문제들은 쉬는 시간을 이용해 풀 수 있도록 노력하였습니다. 그리고 수업을 수강한 이후에는 문제풀이 했던 내용들을 빠르게 복습하고, 오후 시간에 그 범위와 관련한 교재와 개론서를 함께 읽어나가는 노력을 병행하였습니다.
스터디는 학교 후배와 20시부터 22시까지 2시간 동안 인출 짝스터디를 진행하였습니다. 이때 같이 스터디를 했던 최혜인 선생님은 초수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똑똑하고, 결코 초수라고는 볼 수 없는 좋은 실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결과적으로 서울 지역에 최종 합격하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먼저 두 달간 인출 스터디를 같이 해보는 것이 어떤지 제안하여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수목금토에 나간 전공 문제풀이를 복습한 뒤 문제들에서 인출할 만한 내용을 추렸고, 개론서의 범위를 정해서 물어볼 만한 내용들을 요약했습니다. 이때 저는 개인적으로 질문 파일을 만들어서 이후 저 스스로의 복습을 할 때에도 사용했습니다. 7~8월 인출 스터디 때 만들었던 질문 파일들은 9~11월 인출 스터디에서도 변형하여 일부 사용하는 등 시험 전까지 끊임없이 복습해 나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 9월~11월
9월이 넘어가면서 모의고사 시즌이 돌아왔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저는 2021년 학원에서 본 모의고사들에서는 거의 대부분 좋은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보통은 60점대의 성적이 나왔고, 가장 잘 보았을 때는 70점의 성적을 맞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예년에 비해서 모의고사 성적에 스스로 큰 의미를 두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재수 때는 모의고사에 일희일비 하며 스트레스를 받았었을 뿐만 아니라 모의고사 성적이 시험으로 직결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김쌤과 구쌤의 수업을 오래 들으면서 모의고사에 무엇이 나올 것 같은지 일부 예상도 할 수 있게 되었고, 답안에서 무엇을 요구하는 지 등 김쌤과 구쌤의 취향과 스타일에 적응하였기 때문에 점수가 잘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모의고사는 문제를 실제 시험과 같이 풀어보고, 복습을 하며 부족한 부분들을 메꾸는 용도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마인드의 변화가 모의고사를 스트레스 받으면서 보지 않게 해 주었고, 꾸준하게 자기 공부를 해 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만 9월에 저에게 공부 외적으로 정말 큰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이 부분은 수기에 쓸지 말지 고민했지만 제 2021년 수험생활의 너무나도 큰 부분이었기 때문에 쓰지 않을 수는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코로나 19에 대한 백신을 맞았듯 저 역시 9월 초에 화이자 백신 1차를 맞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제가 백신 부작용이 아주 심각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그 부작용은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낫지 않고 있어 제 인생의 문제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물론 백신과의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증명할 수는 없고, 제 몸에 원래부터 이상이 있었을 수도 있지만 백신을 맞은 직후부터 증상이 나타났기 때문에 그것이 촉매제가 되었음은 거의 확실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부작용으로 인해 결국에는 대학병원을 다니게 되었고, 추석 이후에는 난생 처음으로 입원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공부를 하기에도 바쁜 시간에 온갖 병원을 다니면서 다른 선생님들보다 공부 시간이 현저하게 줄어들었고, 그것은 저를 매우 조급하게 만들었습니다. 병원에서 수많은 검사를 했지만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거나 고쳐지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살이 무려 10kg가 넘게 빠졌으며, 제대로 된 식사를 전혀 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공부를 이어 나가는 것이 정말 힘들었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최악의 상황 안에서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자고 마음먹었습니다. 제가 아파서 시험에 떨어진다 해도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을 것임을 알았고, 시험에 합격하는 것만이 한 고비를 넘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그래서 그럴 수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계속해서 마인드 컨트롤을 하였습니다.
여기서 그나마 다행이었던 점이 몇 가지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9월 무렵부터는 제 실력에 대한 어느 정도의 확신이 마음속에 있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재수 때와 크게 달라진 점이었습니다. 물론 그것이 시험의 합격까지 확신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어떤 문제를 직면한다 해도 아예 모를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또한 모의고사에서 한 번 잘 보고 한 번 못 보는 식의 편차가 생기지 않고, 일정 점수를 쭉 유지하는 저를 보면서 ‘그동안 쌓아온 것들이 한 순간에 없어져 버리지는 않을거야.’ 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는 학원이 홀짝제로 운영되면서 라이브 강의 및 인터넷 강의를 제공해주신 점입니다. 저는 아픈 이후로는 전공 수업 날에 거의 학원에 나가서 수업을 듣지 않았습니다. 밖에서 식사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오전 시간에는 집에서 라이브로 강의를 듣고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오후에 학원에 나가 직영상반에서 자습을 하고, 저녁 시간에 스터디를 하는 형식으로 공부의 패턴을 바꾸었습니다. 전처럼 새벽같이 학원에 나가 온종일 학원에 있으며 공부를 하는 것은 무리가 있었기 때문에, 저 나름대로 오전에 수업을 수강할 때는 집에서 조금 편하게 듣고 오후 공부에 집중을 하고자 하였습니다.
세 번째는 좋은 사람들이 옆에 있었다는 점입니다. 제가 아픈 이후로 솔직히 멘탈 관리가 많이 힘들어 주위 사람들에게 징징댄 적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하지만 같은 수험생으로서 본인들도 힘든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저를 다독여 주고 자신감을 찾게 해주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모두의 이름을 언급할 수는 없지만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저는 최악의 상황 속에서 시험 직전까지 병원을 다니며 공부를 이어 나가게 되었습니다.
본격적으로 제가 9~11월에 공부한 내용들을 설명드리겠습니다.
먼저, 교육학은 7,8월달과 동일한 방식으로 짝스터디를 이어나갔습니다. 직강을 다니지는 않았지만, 월요일과 화요일 오전 9시~10시에는 실제 시험 시간에 맞추어 모의고사를 풀었습니다. 이후 10시 10분~11시 40분 정도에는 미리 계획한 진도에 맞추어 서로 묻고 답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9~11월의 인출은 큰 주제 명칭을 상대방이 물으면 그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들을 모두 말하는 형식을 취했습니다. 스터디는 시험 전 주까지 이어졌으며, 전체 범위를 3번 정도 돌리는 스터디였습니다. 이에 대한 계획은 다음과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교육학을 16.33점 맞았기 때문에 잘했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교육학 공부는 스터디를 통해 꾸준히 해 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가 부분에서의 총평관이나 교육공학에서의 딕과 캐리 모형의 세부 내용이 출제되었을 때 정확히 답을 쓰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이는 막판으로 갈수록 모든 내용을 더욱 꼼꼼하게 점검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제 실수입니다. 선생님들께서는 어떤 이론이 출제되지 않는다거나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여 넘겨버리지 마시고, 모든 내용을 커버할 수 있는 공부를 하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교육학의 출제 경향이 점차 적용의 형태로 바뀌어 나가고 있는 시점에서 공부 방법도 약간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저의 조언보다는 교육학 점수를 잘 맞으신 분들의 이야기가 더 잘 와 닿을 것 같습니다.
다음으로는 전공 부분의 공부 내용입니다. 9~10월에는 김유선 선생님과 함께 암기 인출 짝스터디를 진행하였습니다. 그리고 제 공부의 초점은 스터디 진도에 맞추어져 있었습니다. 이 시기는 점차 완벽을 기해야 하는 시기였기 때문에 스터디에서 정한 범위는 그 날 안에 모두 소화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임하였습니다. 전공 스터디의 경우 11월은 진행하지 않았습니다. 10월까지 전체 범위 3회독을 목표로 삼았고, 11월의 남은 시간 동안에는 개인적으로 총 정리를 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9~10월 전공 스터디 계획은 다음과 같습니다.
계획에는 하루 2시간 정도로 되어 있었지만 실질적으로는 하루 2시간30분 이상은 소요되었던 것 같습니다. 1회독 → 2회독 → 3회독으로 나아가면서 시간을 점점 줄였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에게 하는 질문은 본인이 생각하는 시험에 나올 것 위주로 추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냥 단순하게 질문과 답변만을 한 것은 아니고, 자신이 질문할 내용을 파일로 만들어서 스터디가 끝난 이후에는 그것을 교환하였습니다. 이렇게 했던 이유는 서로가 대답하지 못한 질문들을 다시 한 번 체크해볼 수 있기 위함이었고, 이후 11월 총정리 시기에 스터디 때 했던 모든 질문들을 한 번씩 확인해 가면서 복습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스터디 질문 예시도 첨부드리고 싶지만 너무 길고 많아서 혹시 제 수기를 읽고 필요하신 분이 있다면 따로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한 주에 한 번씩 보았던 모의고사도 당연히 복습하고 그 내용들을 교재에 단권화 하며 확인하였습니다. 모의고사를 복습했던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제가 푼 모의고사 시험지가 아닌 A4 사이즈로 새로 인쇄를 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문제의 답을 개론서를 기반으로 다시 옮겨 적었습니다. 김쌤이나 구쌤이 불러주신 답이 애매할 경우도 종종 있었는데, 그 때는 개론서를 참조하여 그 부분의 모든 내용을 다시 복습하며 암기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정리한 모의고사는 한꺼번에 묶어 11월에는 2020년과 2021년 2년치의 모의고사를 모두 복습하였습니다. 복습할 때는 기출 분석을 할 때와 마찬가지로 답만 외우는 것이 아닌 지문 내용까지도 꼼꼼하게 살펴보았고, 답에 해당하는 개론서 부분을 반드시 찾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맥락을 이해했습니다.
9~10월이 스터디와 모의고사 복습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되었다면, 11월은 앞서 언급했듯이 그동안 한 모든 것들을 다시 한 번 정리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기출 분석한 내용들을 전체적으로 복습하였으며, 7~8월과 9~10월 각 영역별 프린트도 다시 한 번 점검하였습니다. 또한 이번 시험에는 출제되지 않았지만 막판이 되면서 역사교육론 교육과정을 공부하는 것에도 신경을 썼습니다. 더불어, 교재와 개론서를 병행하며 읽는 것도 마지막까지 유지했습니다. 제가 어떻게 시험 전까지 정리를 하였는지 제 플래너를 예시로 보여드리겠습니다. 11월에는 순공 시간을 하루 평균 12시간 정도로 유지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모든 공부가 끝났고, 1차 시험을 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썼던 1차 시험의 답안 복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 1차 답안 복기
전공A
1. ㉠추체험 / ㉡표현
2. ㉠오경정의 / ㉡경교
3. ㉠사학 / ㉡사덕
4. ㉠흑수말갈 / ㉡신라
5. ㉠학습목표 및 내용과 연관된 것인가, 논쟁거리가 풍부하고 다양한 주장과 근거가 제시될 수 있는 것인가 / ㉡수렴적 질문 / ㉢나와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이 어떤 근거로 그러한 주장을 펼치는지를 생각해 봄으로써 내용을 폭넓게 이해하고 역사적 사고력을 키울 수 있다.
6. ㉠북경 ㉢북경의 관원이 봉급을 수령할 때 남경에서 수령해야 했으므로 ㉡을 통한 운송료가 많이 지불되었던 것 / ㉣도르곤 / ㉤이자성
7. ㉠자유 / ㉡재산권·소유권에 따라 시민을 능동적 시민과 수동적 시민으로 나누고 능동적 시민에게만 참정권을 부여하였다. / ㉢빈 회의의 결과 독일이 35개 국가와 4개의 자유시로 나뉘게 된 것(?) / ㉣카를수바드 법령
8. ㉠중방 / ㉡시기 집정부 : 교정도감 / ㉠운영 시기에는 무신들의 합의체, ㉡시기에는 교정도감의 수장인 교정별감이 절대적 권력을 확립한 상태에서 정치 운영 / ㉢어사대, 중서문하성
9. ㉠주요 도시들을 부로 나누어~ (답안 제대로 완성하지 못함) / ㉡산미증식계획 – 수리시설 축조 후 축조 비용 및 수세를 부담시킴 / ㉢청계천을 중심으로 조선인이 거주하는 북촌과 일본인이 거주하는 남촌으로 구분. 남촌은 발달된 반면 북촌은 낙후 / ㉣애국반
10. (A) 자료를 분석·해석하여 글로 표현함으로써 역사적 탐구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 ㉡평가자 내 신뢰도(객관도) / ㉢서술형 평가의 결과를 통해 학생의 이해도와 성취 정도를 파악하여 학생의 학습 개선과 교사의 수업 개선에 활용할 수 있다. / ㉣ ⓐ는 제시문에 직접 공명첩인 것을 명시하고 있지만, ⓑ에서는 힌트를 통해 공명첩임을 유추하게 하고 있기 때문에 더 적절
11. ㉠리키니우스-섹스티우스 법 / 집정관 중 한 사람을 평민회에서 선출 / ㉢리키니우스 섹스티우스 법의 제한을 넘어서서 보유한 토지를 몰수하여 무산시민에게 분배하는 법안 / ㉡→㉢ 로마 사회의 혼란을 안정시키고 자영농민을 창출하기 위한 목적
12. ㉠공산당 토벌이 우선적으로 시행되어야 하고, 공산당에 대한 토벌이 이루어진 후에 일본과 맞서겠다는 것 / ㉡언론기본법(?) / (나)당고정전협정 및 중립지대에 일본이 정부를 세우는 등에 따라 북부 중국이 분리되는 사태가 벌어졌던 것 / ㉣배경 : 1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열린 파리강화회의에서 일본에게 칭다오 등 독일이 가지고 있던 산둥반도에 대한 권리가 넘어가는 것이 승인된 것
전공B
1. ㉠체르노빌 / ㉡개발
2. ㉠정약용 / 여유당전서
3. ㉠개별 사실들을 공통적인 요소로 묶어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여 모든 개별 사실들을 암기하지 않아도 됨 / ㉡가설 / ㉢문화권 / 역사에 대한 거시적·종합적인 접근이 가능하다.
4.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 ㉡독도가 포함되어 있지 않음을 주장하며 독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 / ㉢독립 축하금 명목의 1억, 무상 차관 2억, 유상 차관 3억 / ㉣6·25전쟁의 발발로 인해 일본을 동아시아에서 공산주의 방어를 위한 거점으로 활용하기 위해
5. ㉠학생의 흥미를 무시할 우려가 있다. / ㉡역사에는 시간 관념이 포함되어 있어 이해하기 어렵고, 역사학습에서의 증거는 보통 성인의 활동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 ㉢영역 고유 인지 이론 / ㉣관련 영역의 지식
6. ㉠환관 / 환관에 의해 황제가 옹립되고 그 공으로 후에 봉해졌으며 양자를 들여 세습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 당고의 금 / ㉢직용의 변
7. ㉠송 / ㉢서하 / 전연의 맹약 / 송과 거란이 형제 관계를 맺어 송이 형, 거란이 아우 + 세폐 지급 + 연운 16주 인정
8. ㉠우마이야 / 무함마드의 직계 자손 vs 선출된 칼리프 / ㉡성상 파괴령 / ㉢성상 숭배의 경향이 강했고 대토지를 소유하고 있던 수도원 세력
9. ㉠가설적 추론+귀납으로 이루어짐. 전제로부터 필연적으로 도출되는 것이 아닌 개연성만을 가짐. 반증가능성이 존재함 / ㉡행위결정분석모형 / ㉢인물의 행위에 영향을 미친 모든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는 내용을 작성했는지의 여부
10. 국학의 설립 / 국왕에 충성하는 유교적 소양을 갖춘 인재 양성 위해 / 녹읍 폐지, 관료전 지급
11. 베스트팔렌 조약 / 칼뱅파도 루터파와 동등하게 인정 / ㉡독립을 정식으로 승인받게 되었다. / 전쟁과 평화에 관한 법
이렇게 해서 저는 전공에서 63점의 점수를 획득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가채점을 했을 때에는 61~62점 정도를 예상했었는데 그것보다 1~2점 정도 높게 나온 것 같습니다. 저는 3번 시험을 치면서 저의 가채점과 실제 전공 점수가 대부분 일치했습니다. 완벽하게 칼채한 것 까지는 아니고 제 기준에서 적당히 채점했는데 엇비슷하게 나온 것으로 보았을 때 실제 채점에서도 인정되는 부분들이 있었다고는 생각합니다.
이번 시험 역시 끝나고 나니 모든 선생님들께서 그러시겠지만 아쉬움이 정말 많이 남았습니다. 실수를 한 부분이 역시나 많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점에 대해서는 일일이 설명하는 것은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변명은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시험장에서의 제가 느꼈던 감정에 대해 조금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막상 시험장에 가서는 크게 긴장하는 스타일은 아닙니다. 오히려 시험을 치기 전 일주일이 가장 떨렸고, 시험을 보는 동안에는 긴장하지 않았습니다. 재수 때는 1분도 잠을 자지 못하고 시험장에 갔다고 말씀드렸었는데, 이번에는 다행히도 그것보다는 많이 잤습니다. 하지만 전날 긴장이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더군요. 잠은 3~4시간 정도 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시험장에서 문제를 푸는 데는 큰 지장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시험장에서 실수가 발생했던 요인들을 짚어보면 2가지 정도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모의고사 풀 때와는 달리 혼자서 꼬아서 생각하는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B형 1번에 ‘지속가능한 개발’은 너무나도 쉬운 답이었고, 실제로 보자마자 시험지에는 그렇게 답을 적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문제에서 ㉡에 공통으로 들어갈 ‘용어’라는 부분에 대해 혼자 복잡하게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용어’라는 것을 시험장에서는 한 개의 단어라고 생각했고, 끝내는 개발이라고만 답을 쓰고 나왔습니다. 이렇게 혼자 꼬아서 생각한 문제가 몇 있었던 것 같습니다. 두 번째는 3교시 시험이 끝나기 10분 정도 전부터 감상에 빠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문제를 검토해야 할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혼자 이상한 감상에 빠졌습니다. 그동안 힘들었던 수험 생활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면서 이제 다 끝났다는 생각에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멍청한 생각이었는데 그 당시에는 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때 검토했다면 맞출 수 있는 문제가 여럿 있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선생님들께서는 저와 같은 실수를 하지 마시고 시험 때는 오로지 시험에만 끝까지 집중하신다면 틀린 문제도 발견하여 수정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올 것입니다.
▶2차 시험 대비
2차 시험과 관련해서는 정답 복기를 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제가 수업했던 내용이나 나눔이나 면접에서 답한 내용을 아예 까먹은 것은 아니지만, 시험이 끝난 직후 복기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성이 현저히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따라서 정답 복기를 하지는 않고, 제가 12월과 1월에 어떻게 공부했는지를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써 놓은 2차 시험에 대한 서술이 간략하여 이해하시기 어렵다면, 다른 선생님들의 수기도 참고해 주세요. 혹은 저한테 개인적으로 질문 주신다면 아는 범위에서 성실하게 답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2월
저는 12월에 총 4명(남2, 여2)이서 스터디를 진행하였습니다. 그리고 장소는 종각역에 있는 모 학원의 강의실 하나를 통째로 빌려서 사용하였습니다. 추후 서술할 1월 스터디 역시 같은 장소에서 진행하였기 때문에 이 장소를 사용하고 싶으신 분은 나중에 따로 연락드리면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2월의 계획은 다음과 같습니다. 저희는 일주일에 4일 스터디를 진행했습니다. 월요일과 수요일은 오전 8시~14시, 화요일과 목요일은 오전8시~21시 정도 스터디를 한 것 같습니다. 수업실연과 나눔은 매일 진행하였고, 면접은 화요일과 목요일 이틀로 진행되었습니다.
12월의 수업실연의 경우 한국사는 자체적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들을 활용하였습니다. 문제를 만들면서 진행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그럴 경우 문제 만드는 데 들어가는 시간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에 주위에 합격하신 선생님들의 문제를 모아 그것을 단원 순서대로 배치하여 계획표를 짰습니다. 그리고 한국사를 우선적으로 배치한 뒤 남는 날들에 선생님을 위한 수업실연 책에 있는 중학교 역사1, 동아시아사, 세계사 문제들을 배치했습니다. 그리고 경기도는 수업실연과 수업나눔이 한 세트이기 때문에 수업나눔도 같이 진행하였습니다. 수업나눔의 경우 저는 12월 시작 때부터 1월의 2차 시험 전까지 사이다에 있는 1회~30회 모의고사를 반복적으로 돌렸습니다. 솔직히 사이다에 있는 30회 모의고사를 막힘없이 대답할 수 있을 정도라면 수업나눔은 크게 걱정할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는 30회를 완벽하게 다 소화하지는 못했습니다.)
수업실연을 진행한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예를 들어 A문제지가 있다면 4명이서 동시에 구상을 합니다. 그리고 구상이 끝난 직후 사다리를 타 랜덤으로 이 수업을 할 선생님을 뽑았습니다. 그 이후에 B문제지를 진행할 때도 역시 4명이 동시에 구상을 한 후 A문제지를 실연한 선생님을 제외한 3명이서 사다리를 타서 랜덤으로 B문제지를 실연하였습니다. 이런식으로 4개의 문제를 하는 날에는 한 사람당 구상은 4번, 실연은 1번하였고, 6개의 문제를 하는 날에는 두 사람은 2번 실연을 하게 되고, 구상은 모두가 하여 6번을 하는 형식이 되었습니다. 이 방법의 장점은 모든 내용을 구상하게 됨으로써 내용을 빠짐없이 챙길 수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실연할 선생님을 정해놓지 않은 상태로 구상을 하기 때문에 나태해지지 않고 항상 긴장 상태에서 준비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었습니다. 다만 단점은 시간이 오래걸린다는 점이었습니다. 보통 구상25분, 수업15분, 나눔10분, 피드백 10~15분 정도가 소요되었고, 그러다보니 한 개의 문제를 끝내는데 1시간이 넘게 소요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방법을 지속했던 이유는 이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경기도의 2차 수업실연은 나눔과 연계되기 때문에 수업을 구상할 때부터 나눔을 생각해야 합니다. 저는 12월 동안에 나눔에 들어갈 요소를 수업에서 표현하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수업 초반부에 제시하는 ‘중심 질문을 활용한 자료 분해 시간’을 무조건 나눔과 연결시켰습니다. 자료가 제시되면 짝과 함께 교사가 제시한 중심 질문을 따라 토의를 해 보는 과정이었습니다. 이것은 나눔에서 많은 용도로 활용할 수 있었는데, 학생에게 여러 역량을 키워주는 것과 접목시킬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순회지도 시 ‘토킹스틱’을 사용하는 것도 나눔에서 모둠 간의 협력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무조건 언급하였습니다. 이처럼 선생님들께서도 나눔에서 반드시 사용할 무기들을 미리 만들어 수업에서 사용하시는 습관을 가지셔야 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러한 실연이나 나눔 틀을 만드는 부분에 있어서 2021학년도 합격자 김서현 선생님의 도움을 정말 크게 받았습니다. 선생님들께서도 2차 시험을 준비하는 시기에는 1차 시험 때와는 달리 주변 합격자나 현직 선생님들께 여러 도움을 요청하시는 것이 영감을 얻거나 자신의 수업을 보완해 나가는데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2월의 면접은 사실 계획만 세워놨지 제대로 이행되지 못했습니다. 면접에 대한 감을 거의 잡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12월에 했던 면접 대비는 스터디원들과 사이다 시책을 part를 나누어 조사해오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 면접 기출을 한 번 돌린 것, 사이다와 면접레시피 실전 문제들을 실제 시험처럼 대답해보는 연습 몇 번 한 것이 거의 전부입니다. 그 외에는 개인적으로 책을 보면서 이론 공부를 해 나갔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12월에 제대로 면접에 대한 감을 잡지 못했기 때문에 1월에 진짜 엄청난 고생을 하게 됩니다...
12월 스터디를 진행하면서 기억에 남아 추천드리고 싶은 것은 기회가 되신다면 학교 현장에서 꼭 실제 시험과 같이 책상 배치를 만들어 놓고 실연과 나눔을 진행해 보시라는 것입니다. 저희 스터디원 중 한 분의 남자친구분이 일하는 학교에서 우연히 실연을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 경험 자체가 큰 자산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확실히 스터디룸 등에서 하는 실연하고는 느낌 자체가 달랐기 때문에 한 번쯤 해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2022년 1월
1차 합격자 발표가 난 직후 여러 고민을 했습니다. 12월 스터디를 진행했던 4명 중 3명이 1차 합격을 했기 때문에 같은 선생님들과 계속 스터디를 이어나갈지, 새로운 선생님들과 함께 스터디를 꾸릴지를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12월 스터디를 진행했던 최예빈, 김종민 선생님과 1월도 함께 하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12월과 1월 스터디가 달라야 한다고 주장하시는 분들도 많았기에 걱정스러운 부분이 있었지만, 성격이 잘 맞고 그동안 서로를 잘 파악하고 있던 선생님들과 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는 대성공이었습니다. 저희 3명 모두 2차 시험에 합격을 했기 때문입니다. 3명 모두 1차 점수가 높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2차에 모두 합격할 수 있었다는 것은 저희의 스터디 방향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생각합니다. 1차 시험 발표가 난 날에 스터디를 꾸렸기 때문에 그 다음날부터 바로 계획을 짜고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1월의 스터디 계획은 다음과 같습니다.
스터디는 1월 1일부터 24일까지 매일 진행하였습니다. 이때는 12월에 쓰던 학원 강의실 1개를 아예 한 달간 통째로 대여했기 때문에 강의실 내에 모든 짐을 놔두고 편하게 다녔습니다. 오전 8시부터 스터디를 시작했고, 끝나는 시간을 정해놓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점은 1월의 기간 동안에는 저희끼리의 피드백 이외에도 외부 피드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였습니다. 12월 스터디가 1월에 지속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수업이나 피드백이 단조로워지는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그것을 보완하기 위해 외부에서 현직 선생님들을 초청하여 저희의 수업, 나눔, 면접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그 중에는 역사과목 뿐만이 아니라 수학, 물리 선생님도 계셨습니다. 당시 멀리까지 오셔서 저희 스터디를 꼼꼼하게 봐주고 피드백 해주신 김서현, 우광춘, 박예빈 선생님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정말 감사드립니다. 또한 저 개인적으로는 2021학년도 서울 합격자이신 오승관 선생님, 제주 합격자인 강우인 선생님의 피드백도 받았으며, 학원에서 무료로 재능기부를 하신 선생님들 중 조현주 선생님께 이메일로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분들의 피드백을 받으면서 다른 사람은 내 수업을 어떻게 보고 있고, 어떤 부분을 수정하는 것이 좋겠구나 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수업이 한 번의 피드백으로 드라마틱하게 바뀌어 나가는 것은 아니지만 고쳐야 할 점을 아주 조금씩만 수정해 나가더라도 큰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위에 올린 1월 달의 스터디 계획서를 살펴보면 한국사 수업은 매일하고 동아시아사와 세계사 수업도 거의 며칠 빠지지 않고 들어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희 스터디가 저 계획 그대로 실천한 것은 아닙니다. 한주 반 정도 진행하였을 때 저희 셋 모두 심각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저희 셋 모두 동아시아사나 세계사 수업실연 문제를 받았을 때 내용적인 측면을 제대로 몰라서 한국사처럼 수업이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눔이나 면접도 굉장히 부족하다고 스터디 내에서 판단하여 개인적인 공부시간을 늘려야 된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그리하여 수업은 한국사만 진행하고, 동아시아사와 세계사는 교과서를 보면서 스스로 내용 공부를 하는 것으로 합의하였습니다. 동아시아사와 세계사 수업을 직접 실연해보지 않는 도박과 같은 선택이었지만 당시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계획대로 스터디를 진행했다면 저녁 8시 이후는 되어야 끝났을 것이기 때문에 저희는 수업을 오전에 1세트씩 하고, 사이다 면접 테마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지며, 면접 1세트씩 오후에 하고 끝내는 것으로 협의를 했습니다. 그래서 스터디가 끝나는 시간을 오후 3~4시 정도로 맞추었고, 그 이후 시간은 개인적으로 부족한 것들을 채워가는 시간으로 활용하였습니다.
면접과 같은 경우 1월 동안 매일매일 실전처럼 진행하였습니다. 면접레시피, 연스타 면접체크카드, 면접메이트에 나와 있는 파이널 문제들을 모두 돌렸으며, 자체적으로 만든 문제 5세트 정도를 소화했습니다. 책의 면접 문제들은 모두 한글로 타이핑하여 실제 시험처럼 구상3/즉답2로 시험지를 배치하여 연습하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종각까지 오고 가는 지하철에서 ‘미래 교육 플러스’를 2배속으로 계속해서 시청하였는데 이것도 큰 틀에서 주요 주제에 대한 개념을 이해하고, 그것에 대해 생각해보는 데 있어 유용했다고 생각합니다. 또 제가 면접을 준비하면서 가장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 부분은 사이다의 테마를 스터디원들과 나누어 즉답형 문제를 만들고, 그에 대한 다양한 답을 서로 나누어 보는 과정이었습니다. 그 결과물을 정리하여 시험장까지 가져가는 나만의 면접 최종본을 만들었습니다. 그 예시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를 통해 사이다 면접에 나와 있는 70가지 테마에 대한 답변들을 모두 준비할 수 있었으며, 이 테마에서 면접문제가 나왔을 때는 모두 말할 수 있을 때까지 연습하였습니다.
12월에서 1월 동안의 수업실연과 수업나눔 영상은 모두 촬영하여 개인 유튜브에 일부 공개로 업로드 하였습니다. 모든 영상을 다 보면서 고친 것은 아니지만, 시간이 비는 틈에 조금씩 제 영상을 보면서 어떤 점을 수정해야 할지 파악해 보고는 했습니다. 나눔 영상의 경우 제가 말한 답변들을 타이핑 쳐보면서 문장을 수정하고, 깨끗하게 정리하는 작업도 거쳤습니다. 이런 과정들을 거치다보니 시험에 임박해서는 어느 정도의 자신감은 조금 가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1월의 2차 준비는 정말 힘든 과정입니다. 합격하신 선생님들이 2차 준비를 다시는 하지 못할 것 같다고 말하고는 할 때 왜 그런지 이해하지 못했는데, 직접 겪고 나니 너무나도 공감이 되었습니다. 정말 힘들었기 때문에 합격을 한 후에도 돌이켜보면 미화되지 않는 것이 1월의 2차 공부였습니다. 하루하루 피가 마르고, 실력은 제자리걸음 하는 것 같았으며, 실연이나 나눔 혹은 면접 중 하나라도 제대로 답변하지 못한 날이면 너무 우울해서 미쳐버릴 것만 같았습니다. 몸도 마음도 다 한계까지 몰아붙이며 공부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좋은 스터디원들을 만나 함께 버티며 이겨낼 수 있었기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2차 대비와 관련해서 쓰고 싶은 내용들이 많은데 글로 쓰려니 생각보다 정리가 잘 안되네요. 아무래도 제가 했던 것들에 대한 정리가 덜 되있고, 표현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각 영역별로 제가 준비한 것들의 요점만을 쓰고 마치겠습니다.
수업실연 : 한국사, 동아시아사, 세계사 교과서 정독 / 비주얼 개념서 룩 한국사, 역사1 공부 / 판서 노트 만듬(한국사 전체, 동아시아사와 세계사의 주요 주제) / 12~1월 동안 50번 정도의 수업실연(실제 실연한 것이 50번, 구상한 문제는 약 150개 이상) / 수업 틀 만듬(구호, 중심질문을 통한 자료분해 시간, 학생과의 다양한 상호작용 보여주기, 연계 발문, 순회지도에서의 토킹스틱, 동료평가 및 포트폴리오 평가 실행 등)
수업나눔 : 사이다 수업의 수업 나눔 모의고사 1~30회 무한 반복 / 나눔에서 반드시 사용할 장치 2~3개 이상 수업에 포함하기 / 실제로 한 나눔 타이핑 + 문장 정리 + 나눔 질문 유형별로 묶기
면접 : 면접레시피, 사이다 면접 이론 공부 / 경기도 시책 조사 및 중요 내용 공부 / 미래교육플러스 시청 / 각종 교사 유튜브에 올라온 면접 답변들 참고하며 내 답변 만들기 / 면접레시피, 연스타 면접 체크카드, 면접메이트 등 시중의 면접책 파이널 문제들 실전처럼 연습 / 사이다 테마별 즉답형 문제에 대해 스터디원들과 답변 논의하고 정리하여 암기
▶ 2차 시험 후기
저는 이번 2차 시험에서 순번을 굉장히 잘 뽑았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날인 수업실연과 나눔을 하는 날에는 1번을 뽑았고, 둘째 날인 면접을 하는 날에는 2번을 뽑았습니다. 이 부분은 완전히 운이 작용하는 부분이라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앞 순번을 뽑는 것이 거의 무조건 좋다고 생각합니다. 순번 자체가 점수에 영향을 미치거나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경기도는 2차 시험장에서 순번을 추첨한 뒤로는 그 어떤 것도 볼 수 없기 때문에 뒷 순번을 뽑는다면 지루하게 기다리는 시간만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첫째 날에 1번을 뽑았을 때 저는 이상하게 긴장은 전혀 되지 않았고, 오히려 빨리 끝내고 집에 가서 내일에 있을 면접 대비할 시간을 벌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습니다. 저는 2차 시험을 통틀어서 긴장된 적이 단 한 순간도 없었습니다. 정말 이상하다 싶을 만큼 긴장이 되지 않아서 ‘어떻게 시험장에 왔는데 이렇게 긴장이 안 될 수가 있지?’ 하는 생각까지 스스로 들 정도였습니다.
아무튼 구상실에 들어가 구상을 딱 시작하였는데 2차 세계대전을 주제로 한 세계사 문제가 출제되었습니다. 실제 시험 전날 한국사에서 일제강점기 문화통치 부분과 현대사 4·19혁명 부분을 스터디에서 마지막으로 연습했고, 굉장히 잘 했었기 때문에 한국사가 출제되기를 희망하였는데 세계사가 출제되어 조금은 실망했습니다. 그래도 주제 자체는 어렵지 않다고 생각하여 곧바로 구상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몇 가지 있었습니다. 먼저, 강의식 부분에서 자료가 주어지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동안 연습하면서 강의식 부분에서 자료를 사용한 수업을 해왔기 때문에 처음에 조금 당황했습니다. 제가 항상 시도했던 ‘중심질문을 통한 자료 분해 시간’을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이후 나눔을 위해서 어떻게든 중심질문을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자료 없이도 수업 전에 교사가 학생들에게 생각해볼 중심질문을 2가지(하나는 수렴, 하나는 확산) 던지는 것으로 구상하였습니다. 두 번째 문제는, 순회지도를 어떤 타이밍에 넣을지가 애매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순회지도에서 반드시 토킹스틱을 활용하는 것이 나눔을 위한 수업 틀이었기 때문에 이 역시 강의식 파트에 어떻게든 끼워 넣도록 구상하였습니다. 세 번째 문제는, 조건들이 연습했던 것과 달라 생각하는 데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평소 구상 시간을 21분으로 잡고 연습해왔기에, 시험장에서는 25분을 풀로 쓰며 간신히 구상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실연장에 들어서서 씩씩하게 인사를 하고 대기석에 앉았습니다. 첫 번째 순서여서 그런지 대기석에 앉아있던 시간이 3분은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의 구상지를 천천히 다시 한 번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여기서 행운이 발휘되었던 것 같습니다. 구상지를 살펴보던 와중에 제가 블록타임 설정을 잘못했다는 것을 깨달았고, 수업에 들어가서는 제대로 된 타이밍에 블록타임 쉬는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만약 대기석에 앉아서 구상지를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이 없이 바로 수업을 시작했다면 조건을 잘못 이행하여 점수가 깎일 수도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실연을 하기 전에 다짐했던 것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무조건 자신감 있게 웃으면서 하자!’ 였습니다. 수업실연은 조건도 매우 중요하지만 수업을 하는 실연자의 자신감이 평가관들에게 가장 우선적으로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수업실연을 진행하면서 평가관 분들이 웃거나 고개를 끄덕거렸던 순간을 몇 번 캐치했습니다. 맨 처음 제가 ‘모두가 표현하고 함께 성장하는 행복한 역사수업’ 구호를 외쳤을 때, 학생들과 여러 질문을 통해 상호작용을 보여주었을 때, 평가관들 앞에서 무릎 꿇고 순회지도를 했을 때, 블록타임을 언급하였을 때, 학생들이 만든 지도에 대한 피드백 2가지를 진행하였을 때 정도입니다. 평가관분들께서 웃거나 고개를 끄덕일 때 ‘내 수업이 크게 잘못되지는 않고 있구나.’ 라고 생각하였고, 더 자신감 있게 수업을 진행해 나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조금 아쉬움이 남는 부분은 총괄적 설명을 구상지에는 제대로 구상해놓고도, 실제에서는 판서에 그것을 제대로 나타내지 못했던 점입니다. 평가관 분들 중 한 명이 계속해서 제 판서를 보시면서 수업을 들으셨기 때문에 그 점이 보완되었다면 더 좋은 점수를 얻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업 나눔의 경우 1번 문제는 제가 준비했던 그대로 완벽하게 말을 하였고, 2번과 3번은 지금 생각해보면 내용이 정확하게 들어맞는다고는 볼 수 없지만, 끊기지 않고 ‘내 말이 맞다’라는 마인드를 가지고 자신감 있게 이어나갔습니다. 그 결과 모두 끝나고 밖으로 나왔을 때 ‘이 정도면 28~29점 정도 받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수업실연 29.08, 수업나눔 28.33으로 제가 생각했던 목표치를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나눔에 있어서는 약간의 아쉬움은 남습니다.)
둘째 날인 면접시험 날은 전날 실연과 나눔을 괜찮게 봤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떤 문제를 빼놓고 대답하는 경우만 아니라면 합격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마음을 가지고 임했습니다. 뽑은 순번도 2번이었기 때문에 ‘오늘도 집에 빨리 가겠구나. 정말 운이 좋다.’ 라고 생각하며 즐겁게 임하였습니다. 구상실에 들어가서 구상형 문제 3개를 보았을 때 들었던 생각은 ‘됐다!!!!!’ 였습니다. 왜냐하면 3문제 모두 스터디 하면서 대비했던 것들이었고, 구상 또한 막힘없이 진행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번 면접시험에서 저에게는 해프닝이 하나 있었습니다. 경기도는 15분 면접 시간 중 13분이 지났을 때에 예비종(?)이 울립니다. 이 사실을 저는 당연히 알고 있었고, 예비종(?)이 쳤을 때 즉답형 2번에 대한 답변을 이어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 기준에서 가장 오른쪽의 평가관이 갑자기 말을 그만하라며 시험을 중단시켰습니다. 알고 보니 그 평가관이 예비종이 친 것을 끝난 것으로 인지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순간에 굉장히 당황했습니다. 물론, 옆의 두 평가관분들이 아직 끝난 것이 아니라며 손사래를 치며 저에게 말을 이어나가도록 권유하셨지만, 이미 흐름이 끊겨버린 저는 제가 해야 했던 말들 중 일부만을 하고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시간도 1분 20~30초 가량은 남긴 상태에서 퇴장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면접장을 나오는 길은 굉장히 찝찝했던 기억이 납니다. 구상형 1~3번은 완벽하게 대답했다고 생각했고, 즉답형 1번을 조금 망쳤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즉답형 2번에서 만회하고자 더 열심히 말하고 있었는데 중간에 끊어져 버렸으니 얼마나 속이 상했겠습니까. 그래도 결과적으로는 면접을 39.2점을 받게 되었고 합격을 했기 때문에 별 문제는 없었지만, 시험 상황을 돌이켜보면 조금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시험 상황에서는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선생님들께서는 이러한 돌발 상황에 최대한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저의 2차 시험 후기는 모두 끝이 났습니다.
6. 마무리하며
임용고시는 참 어려운 시험입니다. 어떤 사람은 초수에 붙어 나가는 반면, 어떤 사람은 장수생이 되거나 임용판을 떠나기도 합니다. 특히 역사 과목은 그 양이 방대할 뿐만 아니라 현재의 경쟁률도 타 과목에 비해 현저하게 높은 것이 현실입니다. 임용고시가 주관식 서술형 시험으로 바뀐 2014학년도 시험부터 2022학년도 시험까지 중 이번이 역사과 전국 티오가 가장 적었던 해입니다. 시험은 점차 어려워지고 있지만 밖에서 임용고시를 모르는 사람이 볼 때는 이 시험의 어려움을 결코 이해하지 못합니다. 저 역시 제가 3수를 할 것이라고는 결코 예상하지 못하였고, 27살부터 29살까지 20대 후반을 모두 공부에 바쳤습니다. 힘든 순간들이 많았습니다. 합격을 하여 기쁘고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저의 합격은 저 혼자만의 힘으로 성취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운도 많이 따라주었다고 생각하고, 부모님의 전폭적인 지지와 도움이 있었으며, 학원에서 만난 좋은 동료 선생님들과 친구들의 응원과 격려도 많았습니다. 항상 최선을 다해 수업해주시고 수강생들을 챙겨주신 김태규, 구영모 선생님께도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학원을 다니면서 아직 합격하지 못한, 제가 꼭 합격하기 바라고 있는 아픈 손가락들이 몇 있습니다. 그분들께 진심으로 힘내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어렵기는 해도 넘지 못할 산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수기를 작성하면서 공부를 하던 지난날들이 많이 떠오릅니다. 선생님들께 해 드리고 싶은 말이 더욱 많은데 제 글솜씨의 부족으로 두서없는 수기가 써진 것 같습니다. 혹시나 수기를 읽으시고 궁금함이 있으시다면, 댓글로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에게 도움을 주셨던 수많은 분들께 감사합니다. 겸손함을 잃지 않고, 학교 현장에서 좋은 교사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열심히 노력하고 계신 여러 선생님들께서도 다들 힘내시고, 내년에는 학교 현장에서 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첫댓글 막상 수기를 올리고 나니 부족한 점이 정말 많이 보이네요ㅠ.ㅠ 합격 이후에 너무 정신이 없어서 급하게 쓰다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혹시라도 궁금한 점이 있으시다면 이 댓글에 답댓글 달아주시면 답변드리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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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희쌤 중간에 몸도 안좋아졌는데 공부하느라 너무 고생 많으셨어요ㅠㅠㅠ 합격 축하드려요 ㅎㅎㅎㅎ
지형쌤 감사합니다!! 우리 예전 충북 2차 할 때부터 같이 고생했는데 이번에 잘 되서 정말 다행이에요ㅠㅠ 선생님의 응원이 저에게 항상 힘이 되었어요ㅎㅎ 선생님도 부산 합격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누구 보다 잘하고 열심히 한 걸 알기에 나는 오빠의 합격을 믿어 의심치 않았어!! 교직생활 열심히 하구 나도 곧 따라 갈게! 너무 고생많았어~~~😃
고마워 유선아!! 지난 시간들 동안 같이 공부할 수 있어서 정말 힘이 되었어ㅎㅎ 올 한해 조금만 더 고생하구 힘내! 화이팅!!!!
건희야~~고생많았어ㅠㅠ 누구보다 열심히 한것 다알아..마지막엔 몸도 아프고 체중도 너무 줄어서 안쓰러웠는데 잘이겨내줘서 넘 고맙다~^^이젠 아프지말고 행복하게 지내렴ㅎ
김쌤ㅠㅠㅠ 그동안 너무너무 감사했습니다. 학교 조금 적응되고 나면 꼭 찾아뵐게요♡
건희쌤 축하합니다 !!! 쌤 공부하는 모습 많이 보고 배웠습니다. 많이 아팠는데도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이 참 대단했어요 !!!
성진쌤도 합격 축하드려요~!!ㅎㅎㅎ 나중에 얼굴 볼 수 있으면 좋겠네요. 우리 학교 생활 열심히 해나가봐요~~!!!
선생님 결국은 해내셧어요 ㅎㅎㅎ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승관쌤 감사해요!! 못본지 너무 오래되서 진짜 뵙고싶어요ㅠㅠㅠ 제가 바쁜 일들 끝나고 나면 연락 바로드릴게요 ^~^
역시 붙사붙..건희쌤 너무 축하해요 !!!
3월에 저한테 유선쌤이랑 종민쌤이랑 같이 스터디 제안해주셔서 즐겁게 공부하고 또 어려운 거 있을 때 열심히 물어보면서 저도 같이 성장할 수 있었어요 😀 학교 가서도 즐거운 수업 하시길 바래요 내년 이맘쯤에 다 같이 맛있는거 먹으러 갑시다~~👍👍
동희쌤ㅠㅠ 쌤들이랑 보낸 즐거운 시간들이 2021년의 한줄기 낙이였어요. 휴게실에서 얘기도 엄청 많이 했었는데...ㅋㅋㅋㅋ
올해 꼭 잘 되실거니까 힘내서 열공하셔요. 담에 맛난거 먹어요!!!!
나의 짝꿍 건희쌤 합격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수험기간 동안 서로 의지하면서 또 많이 배우면서 함께 이겨냈지요 샘 덕분에 그 기간이 즐거웠고 참 좋았습니다. 소중한 인연 앞으로도 쭉~~ 😁
종민쌤도 합격 정말정말 축하해요!! 나랑 스터디도 진짜 오래했다 그쵸?ㅋㅋㅋ 우울한 순간도 많았지만 그래도 다~~ 지나갔네요. 쌤한테 고마운 점이 많아요! 우리 학교생활 시작하는 만큼 새롭게 화이팅해요!!ㅎㅎㅎ
이건희 아니면 누가 붙냐...!!!!!!!!!!!!! 쌤 다시 한번 넘넘 축하해요 🥳 12월부터 1월까지 내내 힘나는 말도 많이 해주고 겉잡을 수 없는 우울감...까지 같이 나눠줘서 정말 힘 많이 됐고 넘넘 고마웠어요 건희쌤 ㅎㅎ 학교에서 힘든일 있으면 언제든 우리 단톡방에 바로 카톡하구 ,, 우린 학교도 10분 거리니까,,ㅋㅋㅋㅋㅋ 뭔가 친구가 가까이 있는 느낌이라 든든하네여 얼른 종민쌤이랑 셋이 만나서 못다한 1월 25일 얘기부터 쫌 해봅시다ㅋㅋㅋ 넘 감사했어요 건희쌤 아직 암것도 몰라서 너무 걱정되지만.. 올한해 같이 파이팅해봐요!!!!😆
ㅋㅋㅋㅋ예빈쌤도 합격 축하해요!!! 돌이켜보면 쌤이랑 2차 스터디 한건 완전 행운이었어요!! 우리 진짜 12월 1월 서로 힘내면서 잘 헤쳐나간 것 같아요. 그리고 쌤이랑 나랑 같은 지역으로 가고, 학교도 한 정거장 차이ㅋㅋㅋㅋㅋㅋㅋ 아직 걱정되는게 많지만 잘 해나갈 수 있을거에요!! 화이팅합시당^~^
오빠는 수업이면 수업, 상담이면 상담, 진로교육, 다 잘하는 선생님 될 거라고 생각해요!! 역사도 잘하는데 통계나 분석도 잘해서ㅋㅋㅋㅋ 이건 여러 번 얘기한 것 같은데 ~~~ 같이 공부하면서 '이렇게 공부해야하는 거구나'라고 생각했고, 교직을 대하는 자세나 마음가짐도 확고해보여서 티를 많이 내진 않았지만 이것저것 배운 거 많았어요ㅎㅎㅎ 모델링했달까 -! 같이 스터디하자고 해줘서 고마웠고, 잘한다고 북돋아줘서 저도 끝까지 해나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새로운 출발 응원합니다 ! 파이팅팅팅
고마워 혜인아!! 너도 서울 합격 정말정말 축하해~~!!! ㅋㅋㅋ사실 너 공부하는거 보면서 워낙 잘해서 진짜로 합격할 줄 예상했었어ㅎㅎㅎ 앞으로 각자의 학교에서도 열심히 해보자. 그리고 담에 꼭 봅시당😄
오빠 합격 진짜 축하해~~~ 오빠 아님 누가 붙나 싶긴 했어ㅋㅋㅋㅋ 중간에 병원복 입고 있는건 넘 안쓰러웠는데ㅠㅠㅠㅠㅠ 맘고생 심했을텐데 고생많았어🥳
서영이 고마워~! 너도 항상 성실하게 노력하니까 금방 좋은 결과가 따라올거야. 화이팅!!!👍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2.02.24 18:24
쌤 고생많으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항준쌤 오랜만이에요! 감사합니다!! 선생님도 고생 많으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