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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사랑
김동근
개똥참외가 푸욱 골았는가, 단내가 진하게 풍긴다. 더위에 지쳤는가, 미루나무도 버드나무도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아이들이 물장구를 치느라고 새물나루가 소란하다. 해는 서산을 향해 부지런히 다가가는데 저 아래 보뜰에로 일꾼들의 논매기 서두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여우비가 한바탕 지나가고, 들판에 소먹이 아이들의 소리도 들려온다.
나는 가끔 집에서 책을 보다가 지루하면 이렇게 동구(洞口)의 개울가 언덕에 나와서 고향 들판의 정경을 바라보며 생각에 젖어본다. 왜정(倭政)에서 벗어나고 한국전쟁을 치른 우리의 농촌은 보릿고개를 지나 모두가 가난에 허덕이며 살아간다. 그래도 우리는 부지런한 아버지여서 굶주리지를 않는데 여러 형제와 많은 식구들이라 생활이 가난할 수밖에 없다. 부모님의 넘치는 사랑으로 도회에 나아가 대학에 다니는 나는 언제고 '어떻게 하면 부모님을 도와서 가난을 면하고 많은 동생들의 학교 뒷바라지를 할 수가 있을까.' 라는 생각에 젖어서 마음이 편할 날이 없다. 아름다운 고향에서 인심 좋은 이웃들과 부모님의 사랑으로 안온(安溫)하게 살아가기는 하지만 가난한 가세(家勢)를 일으켜야한다는 생각은 마음의 한구석에 항시 자리를 잡고 있다. 그래서 오늘도 이렇게 개울에 나와 들판을 바라보면서 많은 생각에 잠겨보는 것이다.
아름다운 고향에서 평화로이 살아가고 거기에 생활까지 넉넉하다면 좋겠지만 어쩌겠는가, 우리 모두가 고난의 세월을 보내고 지금의 살아가는 시세(時勢)가 그러하여 남들도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 그렇게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어떻게 해야 하나, 가족까지도 고통을 겪으며 학업을 계속하고 그리고 이후에 크게 되어 재물을 모으고 권좌(權座)를 누리며 편하게 살아야하는지, 아니면 장래를 포기하고 하루 빨리 부모님의 어려움을 덜어드리며 사회에 나가서 가정을 돕는 방법을 찾아야하는가, 당시에는 나만이 아니고 모든 젊은이들이 그런 문제로 고뇌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군사훈련을 마치고 서울에서 인천방면에 있는 조그만 공군부대에 배치를 받았다. 다니던 대학을 중퇴하고 공군에 지원입대를 하였다. 가난한 가정을 위해 취직을 하려면 당시에 젊은이들은 절대 군무(軍務)를 마쳐야 한다. 어느 위치이건 열심히 하자는 마음이어서 군무 생활중에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던 것이다. 군사훈련이 힘들고 부대에 배치되어 단체생활을 하기에도 힘에 벅찼다. 그러나 젊고 건강하던 나는 어느 경우이든 헤쳐갈 자신이 있었다. 부대의 행정실에서 선임병의 행정업무를 보조하며 열심히 일하여 상급자의 눈에도 들었다. 공군은 군율이 엄격하지만 내무생활과 업무를 처리함에도 모범이고 배울 점이 많았다. 고향에서 부모님이 모든 것을 챙겨주므로 나태하게 살아가던 생활이었는데 모두를 자신이 손수 해결을 해야 한다. 공군은 파란제복에 멋진 용모복장이다. 언제고 구두와 정복과 정모를 닦고 문지르고 손질을 하여 광을 내야한다. 그리고 자신의 용모를 깨끗하게 차리고 절도있는 행동을 해야하는 것이다. 사회에서는 '군에 갔다와야 사람이 되야 -''사내는 군에를 가야 -'당시에 사람들이 그렇게 말들을 하는데, 군에서 부지런히 배운 습관이 집에와서 그렇게 좋은 칭찬을 받는 것이었다. '부지런하라. 부지런하면 생기는 건 돈과 건강뿐 운운 - 일이 없으면 욕탕(浴湯)에서 자꾸만 몸을 문지르고 운운 -'의 말은 부대의 학과장(學科場)에서 교관으로 부터 자주듣는 말이다. 생각하니 틀림없는 가르침이다 일에 집중하고 열심히 하면 생산적이고 건강해지는 것, 그래서 이후에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버릇이 생겼다.
부대배정을 받고 내가 가장 먼저 사귄 선임병(先任兵)이 행정업무를 같이 보는 안영환 병장이다. 나보다 2살이 많은 그는 키가 크고 잘생겼는데 마음이 착했다. 나처럼 대학에 다니다가 입대한 그는 제대를 얼마 남기지 않았는데 역시 공무원이 되어서 농사를 짓는 부모님을 돕겠다고 했다. 그와 나는 둘이 있을 때 계급으로 호칭을 하지 않고 형과 아우로 불렀으며 고향과 가정의 얘기까지 나누며 가까이 지냈다. 낮에는 부지런히 선임병을 도와서 행정사무를 보고 밤에는 행정사무실의 당번이어서 나는 내무반에 가지를 않고 사무실에서 기거를 하였다. 밤이면 책상위에 이불을 펴고 잠을 잤다. 그래서 나는 영어실력을 상향(上向)을 하려고 자기 전에 학교에서 배우던 영어교재를 가져다가 자꾸만 일고 복습을 하였다.
안영환 선임은 시인이었다. 문학을 좋아하는 그는 학창 때 신문사에서 시행하는 신춘문예를 통해 문단(文壇)에 등단을 했다고 하는데 늦은 밤에 외출에서 돌아오면 그는 술에 약간 취해서 좋아하는 시를 흥얼거리며 나에게 와서 한참 얘기를 나누다가 내무반으로 올라가곤 했다. 늦은 밤에 사무실에 와서 "순아 우리 단둘이 사자 - 운운" 장만영 시인의 사랑 시를 흥얼거리는 안선임은 나에게 다가와 의자에 앉으며 말한다.
"어 아우야. 영어공부하는 거야, 좋오치 - 열심해서 공무원에 합격을 해야지 -"
"취했군, 기분이 좋은가봐 -"
"좋구말구, 오늘도 우리 순이를 만나구 - 둘이서 사랑하구, 아 - 너무 좋아요."
나의 말에 선임은 한참 시를 얘기하고 자신의 애인인 순이 자랑을 늘어놓고는 내무반으로 가곤 했다.―
얼마 전의 밤인데 안선임은 외출을 나갔다가 영등포의 변두리에 있는 다방에를 들렀다. 작은 건물의 2층인데 다방의 창기에 자리하자 얼굴이 예쁜 마담이 물 컵을 가져오고, 잘생긴 푸른 제복차림을 한 공군의 시중을 들었다. 탁자에 마주앉은 마담은 안선임과 인사를 하고 얘기를 나누는 중에 서로 마음이 끌렸다. 마담은 안선임의 잘생긴 공군이 마음에 들었고, 군에서 외롭게 지내는 총각인 안영환 선임도 키가 훤칠하고 갸름한 얼굴에 활짝 핀 순이 이름의 다방 마담에 반해버린 것이다. 이후에 안선임은 다방에 자주 갔고, 정성을 다해 맞아 주는 마담과 두 남녀는 더욱 가까워졌다. 그곳 다방에서 변두리에로 조금 걸어가면 수목이 우거지고 평상(平床)이 있는 조그만 공원이 있는데 둘은 그곳을 오가며 사랑을 쌓았고 이내 하루만 못 보아도 견딜 수없게 정이 들어버렸다. 강원도 어디가 고향인 순이 이름의 여인은 선임보다 2살이 연상(年上)이다. 가난하던 당시에 시골에서 여학교에 다니던 순이 여학생은 농사로 고생하시는 부모님을 돕기 위해 무조건 상경을 하여 직업소개소를 통해 다방에서 일하게 되었고 얼마 되지는 않지만 받는 급료(給料)를 부모님에게 송금을 하는 효녀였다. 선임의 고향도 가난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고향집이 가난한 두 남녀는 그렇게 사랑하고 정이 깊어져서 자주 만났으며, 용모를 단정히 하고 휘파람을 불며 외출을 하는 안선임은 애인인 순이를 만나고 돌아와서 '순이가 2살 연상이면 어떻고, 둘이 가난하면 어떻고 -' '둘이 사랑하고 의지하며 -' 라며 장만영시인의 사랑 시를 흥얼거리고 즐거운 마음으로 그렇게 군생활을 하는 것이었다.
안 선임은 장만영시인의 사랑 시를 모르는 나에게 시첩(詩帖)을 건네며 읽어보라고 한다.
사랑
서울 어느 뒷골목
번지없는 초막인들 어떠랴
조그만 방 하나 얻고
순아 우리 단둘이 사자
숨바꼭질하던 어릴 때 그때와 같이
아무도 모르게
꼬옹 꽁 숨어산들 어떠리
순아 우리 단둘이 사자
단 한사람
찾아주는 사람 없은들 어떠랴
낮에는 햇빛이
밤에는 달빛이
가난한 우리 들창을 비쳐줄게다
순아 우리 단둘이 사자
깊은 산 바위틈
둥지속의 산비둘기처럼
나는 너를 믿고
너는 나를 의지하며
순아 우리 단둘이 사자
장만영의 사랑 전문
시인 장만영은 1914년 황해도 연백에 낳아 62세를 살았습니다. 장시인은 경복고를 나오고 일본의 삼기영어학교 2년을 수료했으며 귀국해 출판사인 산호장과 신천지를 경영했지요. 그리고 서울신문사 출판국장을 지냈습니다. 동광지에 봄노래로 스승이던 김억의 추천에 의해 문단에 나왔으며 그는 종래의 낭만파시인이던 신석정과 오장환 정지용 김광균들과 교류를 하고 새로운 이미지즘 문학의 동인활동을 열어갔어요. 부모님이 양조장과 배천온천을 운영하던 부유한 가정이었는데 남북의 분단으로 가세가 몰락하여 만년에 고생을 했습니다. 축제와 유년송과 장만영전집을 남겼고요. 용인의 공원묘원에 유구(遺軀)가 있고 그의 시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장시인은 순이이름을 인용한 작품이 많이 있습니다. 순이는 소박하고 순진한 우리 여인의 이름이지요. 섬세하고 부드러운 순이는 순수하던 장시인의 애인이고 우리들의 여인입니다. 장시인은 순이만 있으면 행복하지요. 순이와 둘이라면 번지없는 초막이어도 좋고 세상에 어느 화려한 명리(名利)도 바라지를 않습니다. 아무도 찾지않는 높은 산 깊은 숲의 바위틈에 산비둘기처럼 둥지를 틀고 순이와 서로 사랑하고 살고싶은 거예요. 존재의 본능을 가진 사람들이 사랑 하나를 향하여 내달리고 있습니다. 모두가 사랑 하나만을 잡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요. 세상에 사랑 하나이면 더 바랄 게 없다고 하겠습니다. 서정성이 넘치고 자연적이며 아름다운 애수를 불러오게 하는 장시인의 사랑시예요. 학창에 장시인의 '달포도 잎사귀' 제하의 시 작품을 배운 생각이 납니다. 달빛이 쏟아지는 가을밤, 뜰의 서정을 풍경화처럼 헤쳐놓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포도 잎사귀에 스며드는 달빛을 감각적으로 묘사를 하였는데요. 달은 고요하고 향그럽다고 표현을 했습니다. 아름다운 자연에 상상력을 더하여 마음껏 서정성을 표현했다는 생각을 했어요. 1940년대를 풍미하던 위의 동인들이 종래 예술사조의 형식을 벗어버리고 자연을 소재로 자유분방하게 한껏 멋을 구사하는 모더니즘 색체의 작품활동을 했던 시절입니다. 왜인들의 억압에 문학작품을 통해서 눌려진 감정을 표현했어요. 새로운 예술사조의 영향을 받은 장시인의 작품에는 기계문명을 외면하고 자연을 소재로 서정적인 이미지에 강인한 생명력을 이입했다고 볼 수가 있겠습니다.
안영환의 해설문
안영환 선임이 건네준 시첩에 장시인의 사랑 외에도 좋은 시가 많았고, 서정적인 사랑 시에는 자신의 해설서를 곁들여서 더욱 읽을 만하다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나도 장시인의 사랑 시를 자주 읽었고 외우게 되었다.
부대에 배치되어 한동안이 지나고 군 생활에 익숙해졌다. 낮이면 행정업무로 바쁘게 근무하고 밤에는 여전히 사무실에서 제대 후에 있을 공무원 시험준비로 열심히 공부를 했다. 형과 아우로 부르며 가까이 지내는 안영환선임은 자주 외출을 하여 애인인 순이 여인과 사랑을 쌓으며 군생활을 행복하게 보내고 있었다.
영환과 순이는 똑같이 사랑시를 좋아했다고 한다. 순이는 사랑하는 영환이 좋아하는 사랑 시여서 좋아하게 되었다고 했다. 둘이는 영환이 제대하면 결혼을 하고 그리고 행복하게 살아갈 꿈에 젖어 있다고 말한다. 둘이 가난하지만 그들의 행복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했다. 가난 때문에 뒷골목에 초막(草幕)이라도 문제될 게 없으며 지금처럼 서로 사랑하고 그리고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가면 되는 것이라고 했다.
어느 밤인데 전화기 소리에 수화기를 들었다.
"여기 - 전북 임실인데 영환이가 근무하는 사무실이지요."
"아 네 - 그렇습니다."
나이가 좀 든듯한 여인의 목소리에 내가 대답을 했다.
"에 -영환의 어미인데요. 같이 근무한다는 군인이시군요. 무얼 좀 알아보려구 전화를 했어요."
"네 에 - 무슨 일인가 말씀을 하세요. 어머니 -"
영환선임의 모친이래서 어머니라고 호칭을 했다.
"영환이가 어느 다방에 여자하고 사귄다는데 다방이 영등포 어디인가요."
"아 - 네 영등포 변두리에 있는 '길'이라는 다실이예요. 저기 - 위치는 -"
나는 자세히 다실이 있는 곳을 가르쳐드렸다. 조금 더 얘기를 하고 영환선임의 모친과 대화를 끝냈다. 모친은 자신이 전화했음을 비밀에 부쳐달라고 부탁의 말을 한 뒤에 전화를 끊었다.
내가 무슨 일인가 궁금했다. 영환선임이 외출하여 어머니께 여자관계를 모두 얘기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또 한동안이 지났다. 그런데 어느 날 영환선임은 밤이 늦게 술에 취해 돌아와서 '아! 괴로워 - 아 슬프다- "하며 한숨을 쉬고 탁자위에 쓰러진다. 그래서 내가 무슨 일이냐고 물어도 대답을 않고 이불을 덮어주자 몸을 뒤척이다가 잠이 들었다. 이후에 안선임에게 듣고 알았는데 그의 애인인 순이와 헤어지게 되었다고 했다.
외출을 하고 고향에 간 안선임에게 그의 모친은 '결혼의 상대로 마땅한 처녀가 나타났으니 결혼을 하라.'고 채근을 했다. 이에 선임은 결혼을 않겠다고 거절을 하고 그의 모친은 '당사자인 처녀도 예쁘고 거기에 가정이 부자여서 혼수(婚需)의 외에 지참금도 넉넉히 가져오는 자리라고 했다. 모친의 말에 '혼수나 지참금은 남녀가 만나는데 전혀 관계가 없고 결혼은 자신이 하는 것이니 자기에게 맡겨달라.'고 잘랐다. 그러자 모친은 '살아가는데 돈이 중요하다. 우리는 가난하지 않는가, 제발 가정을 위해 고집을 부리지말라.'고 설득을 한다. 이에 선임은 '돈 보다는 부부간의 사랑과 마음이 중요하니 제발 저의 행복을 위해 결혼만은 제 맘대로 - 운운' 하며 모친의 의사를 거절했다. 외출을 할때마다 모자간은 결혼문제로 다투게 되었다.
가끔 외출하고 돌아온 선임은 약간 술에 취해서 돈에 대한 모친의 생각을 원망하는 눈치이다. '재물과 쾌락은 강물 같아서 마음에 그러넣으면 그만큼 기갈(飢渴)이 더하다는데 -' 혹은 '돈이면 배가부르고, 식곤증(食困症)이 오고, 눕고 싶고, 나태해지고 -' '돈을 마음에 담으면 담은 만큼 마음이 흐려진다던데 -' '가난에서 조금씩 쌓아가면 얼마나 행복한가.' '나는 오로지 순이와 가난을 사랑하는 게 행복 운운 -'이라 하고, 혹은 '신랑 영환의 방에 앞문으로 예쁜 순이 새댁이 와야지, 모르는 여자와 돈이 들면은 행복은 뒷문으로 도망 - 운운 -'하며 중얼거렸다.
어느 때는 '문인(文人)은 글을 사랑하고 가난도 즐기는 거야, 안빈낙도(安貧樂道)라는 어휘는 너무도 아름다워요. 정직하고 도리를 알고 도덕적이며 예의를 지키는 게 문인정신이라고 - 거친 사회에 마음 편하게 사는 삶이 얼마나 행복한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모친의 채근이 심해지자 안선임은 다방의 애인 순이의 얘기를 말씀 드렸다. 여자의 가정이 가난하기는 하지만 예쁘고 착하고 거기에 둘이서 사랑을 하므로 결혼하면은 행복할 것,'이라고 - 이에 모친은 깜짝 놀라며 '안된다, 이곳의 혼처보다 더 좋은 곳은 없고 돈이 없어 고생하는 우리 가정을 위해서 마음을 바꾸라.'고 말했다. 모자간에 이견(異見)을 좁히지 못하자 선임의 모친은 나에게 다방을 알아내고 그리고 다방을 찾아가고 또 그리고 선임의 애인인 순이를 불러내어 '정말 영환을 사랑한다면 영환의 행복을 위하여 헤어져달라.'고 간곡히 말했던 것이다. 모친을 만나고 돌아온 순이는 잠자리에서 울고 또 울었다. 애인 영환의 부잣집 혼처를 원하는 모친 즉 장래 시모(媤母)의 간곡한 부탁을 어이할 것인가, 지금은 영환과 자신이 사랑의 사슬에 묶여서 헤어짐이란 말할 수없는 고통이 따른다, 그런데 한편 생각하면 설사 영환과 결합을 고집하더라도 이후에 어려움이 있어서 영환이 후회를 하면 어쩌나, 순이는 가난이 슬프고 또 돈만을 생각하는 영환의 모친을 만난 것이 몹시 안타까웠다. 순이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이튿날 저녁에 안선임과 순이여인이 만나고 공원으로 갔다. 순이가 우울했다. 선임이 무슨 일이냐고 묻지만 순이는 쓸쓸한 표정만을 지을 뿐이다. 선임이 순이의 기분을 풀어주려고 온갖 수다를 떨어보지만 순이의 표정은 풀어지지를 않고 이내 영환의 가슴을 부여안고 흐느끼며 울기 시작을 한다. 이렇게 좋은 사람을, 사랑하는 영환을 어떻게 헤어져야 하는가라는 순이의 생각에서이다. 영환이 놀라서 '아니 왜 우는가.'라고 말하지만 순이는 '그냥 당신을 보니 무작정 좋아서 눈물이 ―'라고 하니 영환도 할말이 없다.
그날 밤 순이는 영환모친의 헤어지라는 부탁으로 슬퍼서 울었고, 영환은 순이의 그런 표정의 연유를 몰라서 당황하다가 헤어졌다.
'사랑을 하다보면 그런 히스테리도 있는 거겠지.'라고 영환은 좋게 생각하고 이튿날 저녁에 순이가 일하는 다실에를 들렀다. 순이가 없다. 당황하여 종업원에게 다시 묻는다. 짐을 싸가지고 갔는데 이유를 모른다고 한다. 그렇구나, 무슨 일이 있는거야, 왜일까, 생각을 하며 영환은 술집으로 향했다.
그렇게 안선임은 우수(憂愁)의 마음으로 군 생활을 이어갔다. 사랑을 잃은 젊음의 슬픈 모습을 나는 처음 목격을 하는 것이다. 그와 가까운 사이인 나는 자꾸만 '찾아보면 되지 -''아마 곧 돌아오겠지, 힘을 내요.'라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 영환이 순이를 백방(百方)으로 찾아보지만 찾지 못했다. 그렇게 한 동안이 흘렀는데도 안영환선임의 생활은 조금도 낳아지지가 않았다. 오히려 더 깊은 슬픔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것 같았다.
어느 토요일 저녁에 외출한 영환 선임은 순이여인이 일하던 다방에를 들러서 차를 한잔 마셨다. 연인이던 순이가 연락이 있으면 알려달라고 다실(茶室)에다 부탁을 했지만 그날도 전혀 소식을 모른다는 종업원들의 말이었다.
다방을나온 선임은 자신도 모르게 옛날에 순이와 사랑을 나누던 아름답던 추억의 공원으로 발길을 옮긴다. 영환 선임은 달빛이 내리는 둑길을 걸어서 공원 가까이에 왔다. 달빛에 희미해진 공원은 고즈넉하다. 선임은 공원의 숲속으로 들어섰다. 그는 둘이서 얼굴을 마주하고 속삭이던 추억의 자리로 발길을 떼놓는다. 공원의 안은 조용한데 저만큼 인기척이 있고, 자세히 살펴보니 나무둥치에 얼굴을 묻고 누가 서있다. 여자였다. 영환선임의 머리에 어떤 생각이 번뜩 떠오른다. 그렇구나 -순이가- 생각이 미치자 원망의 생각이 가슴에 벅차오른다. 나무둥치에 얼굴을 대고있던 순이가 인기척에 고개를 돌려 영환을 보쳐다며 놀라고 동시에 화가 난 영환이 순이의 덜미를 잡고 '순이! 이게 무슨 짓이야.' 라 말하였고 '영환씨 - 보고싶었어 -'라고 뇌이며 순이가 영환의 가슴에 얼굴을 묻는다. 그리고 흐느껴 운다. '보고싶다면서 왜 나를 피하는 거야 -'라고 말하며 영환이 순이를 잔뜩 끌어안는다. 잠시 둘의 침묵이 흐른다.
"어떻게해요. 어머님 뜻을 거스르라는 거예요. 당신 -"
"지금 뭐라고 했어요. 어머니 뜻이라고 -"
어머님 뜻이라는 순이의 말에 영환이 생각해본다. '순이가 어머니를 만났고나.라는 생각 한다.
"어머님 얘기 그만해요. 다 아들인 당신을 위한 어머님 생각인데 -"
"순이 당신! 그러면 어머님을 만난 거야 -"
영환이 손으로 순이의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며 묻는다.
"어머님 얘기 그만 하라니까 -"
순이가 영환의 가슴을 파고들며 자꾸만 흐느낀다.
"순이! 내 얘기 잘 들어요. 어머니께 아들의 행복을 막지 말라고 말씀 드렸어. 나의 행복이 어머님의 뜻이 아니냐고 - 그랬더니 어머니가 맞다시며 그렇게 하라셨거든 -"
"정말예요, 어머님이 뜻을 굽히신거예요."
순이가 고개를 쳐들고 영환을 바라보며 묻는다.
"차암 - 순이는 무슨 말을 하는거야. 사랑은 내가 하는 거구, 어머니도 아들의 행복한 사랑을 바라는 게 아닌가."
순이가 다시 영환의 가슴을 파고든다.
공원의 숲은 조용하고 저쪽의 들판에로 달빛이 쏟아져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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