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간나새끼
이형국
“또, 또 봐라!”
아내의 날카로운 외침과 함께 수저가 내 앞으로 밀려왔다. 마침 주방 싱크대 앞에 있던 터라, 본능적으로 수저를 쓸어 잡았다.
“점심상 차리는데, 그건 왜 또 먹노.” 아내의 쌍심지 세운 얼굴이 내 망막에 잡혔다.
‘아차.’ 내 왼손엔 고구마 부침개가 들려 있었다. 순간적으로 입에 들어가려던 부침개를 뱉어냈다. 아내는 마침 수저를 놓으려다가 내 꼴을 보고는 나를 향해 수저를 밀어버린 것이었다.
“미안, 미안, 깜빡했다.”
나는 소식小食이 생활화되어있다. 밥공기에 삼분지 이 정도의 밥과 마음에 드는 반찬 한두 개면 한 끼로는 그만이다. 먹는 속도는 손가락 꼽힐 정도로 빠르다. 나를 아는 사람 모두 그리 먹고 어찌 사냐며 신기해한다. 키는 작은데 몸무게는 70kg에 육박한다. 스스로 생각해 봐도 신기하다. 주변의 내 또래들을 보면 나보다 훨씬 더 먹는다. 그런데도 나보다 가벼운 동무들이 많다.
운동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다른 사람들만큼 걷는다. 헬스라든지 그런 근육운동은 하지 않지만 웬만한 거리는 걷는다. 나 스스로 뚜벅이라 명명할 만큼 될 수 있는 한 걸으려 애쓴다. 운전은 일주일에 한두 번뿐이다. 한 달에 운행 거리가 5,000km가 되지 않는다. 교회 다녀올 때나 손주를 집에 데려다줄 때다.
일주일에 먼 거리는 거의 지하철, 버스를 이용하지만, 6~7km 정도는 두 발을 사용한다. 걸은 양이 부족하다 싶으면, 주변 공원들이나 학교 운동장에 나가 모자란 거리를 보충한다. 그렇게 열량을 소진하는 데도 밥 먹기가 싫다. 그러니 곧잘 점심때나 저녁때가 되면, 아내와 신경전을 벌인다.
“뭘 해 주꼬.”
“맘대로.”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시큰둥하게 내뱉는다.
“맘대로가 뭐꼬. 하이고 미버라. 나도 귀찬타. 빨리 말하거래이.”
“라면 끼래도. 아이참, 안 머그머 안되나.”라는 대꾸에 성질이 날 대로 난 아내는 방문을 사납게 닫고는 휙 나가버린다. 컴퓨터에 눈을 꽂고 있던 나는 마지못해 일어나 아내를 따라 나간다. 아내도 매일같이 행해지는 둘만의 쇼show 결과를 알고 있다. 아내가 제시하는 끼 때울 음식을 더는 군말 없이 받아들인다.
‘내가 왜 이리 밥 먹는 일이 귀찮을까.’ 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릴 때가 많다. 하지만 곰곰이 살펴보면 내가 소식가여서만이 아닌 게 확실하다. 나는 주전부리가 심한 편이다. 먹는 것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이상한 버릇이 있어서다. 은퇴한 이후의 내 삶의 일정은 무언가를 배우러 다니는 것, 시나 수필 등 글쓰기와 동무들과 어울리는 일이다. 이 삶에 이제는 익숙해졌고, 또한 만족한다.
이러다 보니 집에 머물 때면 책을 읽거나 컴퓨터 앞에서 글을 긁적인다. 책을 읽더라도 무료해질 때가 있다. 글 쓴다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 보면 뒷목이 뻐근해질 때도 있다. 글이 쓰이질 않아 짜증이 솟을 때 또한, 있다. 이럴 때는 방 밖으로 나가 냉장고. 싱크대 위, 서랍장을 뒤져 먹을 것을 찾아낸다. 초콜릿, 사탕, 쿠키, 빵, 음료수 등은 항상 비치되어 있다. 아이스크림과 부침개도 떨어지지 않는다.
많이 먹는 것도 아니다. 마음이 바로 잡힐 때까지 마음의 시달림을 손이나 입으로 전가해 순화시키는데, 군것질만 한 게 없다. 방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콜라 1컵에 오란다 세 조각을 먹었다. 책 읽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글 쓰는 일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머리를 짜내느라 방안을 빙빙 돌 때도 손으로 사탕이나 초콜릿을 까서 입에 넣는다.
그뿐만이 아니다. 내 멜빵가방 속에는 사탕과 초콜릿이 한 움큼 들어 있다. 바쁘게 이리저리 옮겨 다니다 보면 식사 때를 놓칠 때가 있다. 이 과자들은 에너지 충전에 그만이다. 아무리 소식가라지만 배고프지 않을 수는 없다. 초콜릿 두 개에다 사탕 하나면 힘이 다시 솟는다. 이렇듯 주전부리는 나와 떼려 해야 뗄 수 없다. 이러니 몸무게가 줄어들 리 없다. 더 걸어서라도 뱃살을 빼서 조금은 날씬해지고 싶다.
아내는 내 주전부리에도 잔소리가 빠지질 않는다.
“저래 먹어대면서 소식한다꼬. 그게 소식이가 밥투정이제.”
“삼식이면 좀 미안한 줄 알아라. 뭐, 뭐라카드노. 당신은 종, 종간나새....”고 빈정댄다.
나는 아침 식사로 세 종류가 있다. 누룽지에 달걀프라이 하나 및 검은콩 조림, 떡국에 마른 멸치. 그리고 수프 soup이다. 집에 있을 때 점심으로는 다양하다. 라면, 냉동 만두나 국수, 찐빵, 호떡 등이다. 저녁이 되어서야 그나마 식사 같은 식사를 한다. 하지만, 밤에 술을 마시게 되면 끼니는 거르기 일쑤이다. 어떨 땐 하루 동안 밥알 하나 넘기지 않을 때도 있다.
패스트푸드는 건강을 해칠 수 있다 한다. 식습관을 바꾸라는 권고도 받았다. 담배 끊듯이 바꿀 수만 있으면 참 좋겠다.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늙으막에 꼭 그래야 하나.’ 자포자기하는 마음도 있다. (2023.01) (12.9매 1781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