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 九 章 풀리는 실마리
종리연의 눈이 한껏 크게 떠지고 있었다.
백치여인도 그를 향해 아름다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이제까지의 몽롱하던 눈빛이 아니었다.
지금 그녀의 눈빛은 초롱초롱하고 맑았다.
"다... 다, 당신은 백치가 아니었소?"
종리연의 경악에 찬 말에 여인은 바위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개탄하듯 말하는 것이 아닌가?
"당신 때문에 십년공부 도로 아미타불이 되고 말았어요!"
그 말은 내뱉고는 바위에서 걸어 내려온다.
종리연은 어리둥절하다가 그녀의 뒤를 따랐다.
"아니... 어디로 가는 거요?"
"어디긴요? 들통이 났으니 돌아가야죠. 그리고 당신도 당신의 임무를 훌륭 히 마쳤으니 돌아가서 상금을 받아야죠."
여인은 그렇게 말하고 앞장 서 걸어 내려갔다.
종리연은 재빨리 그녀의 앞을 가로 막았다.
여인은 눈을 치뜨고 눈쌀을 찌푸리면서 물었다.
"왜 그래요?"
"말을... 해 주어야 할 게 아니오?"
종리연의 안색은 굳어져 있었다.
그는 무엇인지는 몰라도 지신이 놀림을 당했다는 기분이 들고 있었다.
여인은 톡 쏘듯 반문한다.
"뭘 말해줘요?"
종리연은 말문이 막혔다.
그렇다. 뭘 말해준단 말인가?
실상 또 무엇을 물어야 할지도 막연했다.
여인은 피식 웃고는 다시 걸어가기 시작했다.
종리연은 여인의 소매를 잡았다.
여인은 돌아서면서 인상을 찡그렸다.
"아니... 사람을 이렇게 놀리는 법이 어디 있단 말이오?"
여인은 문득 종리 연을 빤히 바라보더니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물었다.
"그럼 아무것도 모른단 말인가요?"
"뭘 말이오?"
이번에는 여인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언뜻 그녀의 얼굴에는 고뇌의 빛이 어리고 있었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모양이군요."
"뭔지는 모르나 아무것도 모르오."
여인은 그를 한동안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럼 저기로 가서 앉아요."
두 사람은 나란히 바위 위에 걸터앉았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둘 사이에 지나갔다.
종리연이 참다못해 다시 입을 열려는 데 여인이 입을 열었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나요?"
"모르오."
종리연의 퉁명스런 대답에 여인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그럼 내가 오해를 한 모양이군요."
"..."
"이상해요. 탁총관이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까?"
"탁총관이라니 누굴 말하는 것이오?"
여인은 더욱 더 이상하다는 듯이 빤히 보며 묻는다.
"그럼 탁총관이 보내서 온 사람이 아니었단 말인가요?"
종리연은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아, 그 호안의 금포를 입은 사람을 말하는 것이오? 그 사람은 자신을 낭자의 아버지라고 했는데..."
그 말에 여인의 얼굴에 언뜻 싸늘한 빛이 어렸다.
"뭐라고요? 흥! 탁가가 많이 건방져 졌군!"
"...?"
여인은 불현듯 종리연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거리는 지척이었으므로 가까이 보게 되자 종리연은 자연 어색함 을 느끼게 되었다.
그는 얼굴이 붉어졌다.
여인은 그가 얼굴을 붉히는 것을 보고 입가에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당신은 의외로 순수한 사람이군요."
"..."
"저에게 한 가지 약속을 해 주겠어요?"
"무... 무슨 약속을 말이오?"
"제가 미치지 않았다는 것을 어떤 누구에게든 밝히지 말아 달라는 것이에요."
종리연은 잠시 생각했다.
(하긴 내가 입을 열지 않으면 아무도 알 까닭이 없지.)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물었다.
"그런데 낭자는 무엇때문에 백치 흉내를 내는 것이오?"
"그건 말할 수 없어요."
종리연은 끝까지 캐물으려 하다가 그만 두었다.
지신의 일도 처리하지 못하는 터에 그런 일에까지 신경을 쓰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때 여인은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건 그렇고 당신은 왜 바보 흉내를 내고 다니죠?"
그녀의 질문에 종리연은 기가 막혔다.
"아니... 내가 언제 바보 흉내를 냈단 말이오?"
여인은 도리어 이상하다는 듯이 말했다.
"왜 전부터 무창거리를 돌아다니며 바보 흉내를 냈잖아요. 그래서 제가 우 연히 보고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리는 바람에 이렇게 곤란한 지경이 되었 다구요."
"그... 그건 바보 흉내가 아니오."
"예? 그럼 뭐죠?"
"그건..."
종리연은 말을 잇지 못했다.
막상 말을 하려니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좋은 표현이 떠오르지 않았다.
여인은 눈을 둥그렇게 뜨고 계속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 그건 연무(練武)요."
"예? 연무라니요?"
"사, 사실은..."
종리연은 할 수없이 자신이 왜 그런 일을 열심히 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이 야기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사실은... 여자의 환심을 사기위한 연습이오."
"뭐... 뭐라구요? 여자의 환심을?"
여인은 기가 막히다는 듯이 그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실로 어이없는 일이었다.
종리연은 그녀가 계속 빤히 바라보는 바람에 얼굴이 더욱 붉어지고 있었다.
여인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좋아요. 어쨌든 그건 그렇다고 치고 대체 여인의 환심을 사서 무엇 하시게요?"
종리연은 단호히 말했다.
"그건 말할 수 없소."
"...?"
여인은 멍해졌다.
그가 이제껏 바보같이 굴다가 그 말에 이르러서는 갑자기 확고한 듯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정말... 당신은 천부적인 광대로군요."
"광대라니!"
종리연은 화를 벌컥 내었다.
그의 표정은 비장함이 서렸다.
적어도 그에게 있어 이번 연습은 완전히 생사를 건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자신을 광대라고 표현한 것은 너무나도 모욕적인 발언이 아닐 수 없었다.
여은은 그가 이렇게 화를 내자 웃을 수도, 울 수도 없게 되었다.
그러나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기분이 들었다.
"좋아요. 아무튼... 그렇지만 한 가지 물어보고 싶어요."
"...?"
"정말 당신의 그런 행동을 보며 여인들이 당신에게 반할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
정곡을 찌른 질문이 아닐 수 없었다.
종리연의 표정은 대뜸 우울하게 변했다.
그는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해야 하오. 목숨을 바쳐서라도... 반드시..."
그의 눈에는 비장함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
여인은 눈을 빛냈다.
그녀는 종리연에게 말할 수 없는 사연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문득 마음이 움직였다.
"좋아요. 그럼 당신이 나의 비밀을 지켜 주시는 대신 내가 당신의 일을 도 와주겠어요."
종리연의 입이 벌어졌다.
"저... 정말이오?"
여인은 침착하게 말했다.
"약속을 한 이상 틀림없이 지켜요."
묘한 생활은 계속 되었다.
종리연은 이전보다 훨씬 무료하지 않게 되었다.
그는 하루의 반나절 이상을 여인과 함께 보내게 되었다.
그가 여인의 방에서 하는 것이라고는 계속 걸음 연습을 하는 것이었다.
여인은 침상에 앉아 그의 걷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여러 가지로 지적을 하고 교정하는 데 성의를 다했다.
그러나...
종리연의 보법에는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그래도 여인은 지치지 않고 계속 지도해 준다.
그러는 동안 여인의 기슴에는 묘한 기분이 들고 있었다.
그녀는 이 세상에서 종리연과 같이 순수한 인물을 본 적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한 가지 목적을 위해서 정말로 자신의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사람이었 다.
여인은 그를 대하면 대할수록 마음이 끌리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 스스로도 판단할 수 없는 기분이었다.
그녀는 절대로 의문을 묻어 두고 있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의 그런 감정의 정체가 무엇인지 계속 탐구했다.
그리고 비로소 깨달았다.
(그래... 바로 그거였어.)
모성애(母性愛).
그녀가 깨달은 종리연에 대한 감정은 바로 모성애였다.
여인은 종리연의 순수한 모습에서 모성애가 발로되었던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한 여인은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어쩌면 언니에게도...?)
그녀는 종리연이라는 사람이 어쩌면 자신의 뜻을 이루어지게 할런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종리연은 오후에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여인은 일단 생각이 떠오르자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는 기분이었다.
그녀는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아니...?"
종리연은 자신을 방문한 여인을 보고 깜짝 놀랐다.
방안에서 열심히 보법을 연마하던 중이었다.
그의 모습은 우스꽝스럽기 그지없었다.
침의 차림어로 군자보를 시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풋...! 또 그 보법이에요?"
여인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었다.
그녀의 웃는 모습을 본 종리연은 문득 그녀가 무척이나 귀엽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곧 자신의 그런 감정을 스스로 꾸짖었다.
(종리연아, 종리연... 바보같이 여자를 홀려야 할 네가 도리어 여자에게 빠지면 되겠느냐?)
그는 얼굴을 엄숙하게 하며 말했다.
"이제 곧 밤인데 여자가 어인 일로 남자의 방으로 온 것이오?"
여인은 그의 구태의연한 태도에 다시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고 말했다.
"할 말이 있어서 왔어요."
"...?"
여인은 스스럼없이 침상 가에 걸터앉는다.
"종리 공자님은 아직도 저의 이름이 무엇인지 묻지 않았어요. 궁금하지 않나요?"
종리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낭자의 방명은...?"
여인은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소녀의 이름은 방여경(方如鏡)이라고 해요."
"아, 방낭자셨구료. 소생은 종리연이라고 하오."
종리연은 정중히 포권했다.
여인, 방여경은 그의 행동 하나 하나가 모두 우습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겉으로는 엄숙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진지하게 물어볼 일이 있어요."
"...?"
"대체 공자께서 여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그토록 고심을 하는 이유는 알겠는데 그 대상이 누군지 말해 줄 수 없을까요?"
"...!"
종리연은 안색이 변했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말해 줄 수 없소."
"왜죠?"
"그건... 아무튼 안 되오."
"하지만 저는 알아야겠어요."
종리연은 흠칫했다.
"어째서요?"
방여경은 생긋 웃었다.
"병법에도 이르기를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하였어요. 상대를 모르고는 아무리 노력을 해도 이길 확률은 그다지 높지 않아요. 그러니 공자를 제가 도우려면 그 대상을 알아야 하잖아요."
"..."
종리연은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의 말이 옳았기 때문이었다.
"염려마세요. 공자께서 저의 비밀을 지켜 주시는 것 처럼 저 역시 공자의
비밀을 결코 발설하지 않을 테니까요."
종리연은 잠시 생각했다.
(하긴... 사성녀 때문이라고 말을 한다고 해도 그 이유는 말하지 않아도 된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환심을 사려는 대상은 사성녀요."
"...!"
순간 방여경의 안색이 급변했다.
그녀는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사성녀란 말은 무림에 그다지 알려진 이름이 아니었다.
그러나 어떤 부류의 인간에게는 그야말로 너무나 유명한 이름이기도 했다.
방여경은 사성녀를 알고 있었다.
아니, 그녀야말로 사성녀에 대하여 가장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 중의 하나인 것이다.
그녀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한참 후에야 그녀는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사성녀를... 그들을 만나서 무엇을 하려고요?"
"결혼을 해야 하오."
"...!"
방여경은 들으면 들을수록 놀랐다.
아니, 어이가 없다 못해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었다.
종리연의 재주로 사성녀, 그것도 하나도 아니고 모두를 상대로 결혼을 한다 면 그야말로 천하가 웃을 일일 것이다.
"공자... 혹시 당신... 머리가..."
그녀는 급히 입을 다물었다.
자신이 지나치게 실례의 말을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러난 종리연의 표정은 비장하기만 했다.
"나는 사성녀와 혼인을 해야 하오. 이 목을 걸로서라도..."
(맙소사!)
방여경은 손으로 입을 막으며 그런 말을 삼켰다.
"왜죠? 왜 사성녀 모두와 결혼을 해야 하는 거죠?"
종리연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말할 수 없소."
방여경은 입을 다물었다.
계속 물어 보아야 그가 대답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사연이 많은 사람이야.)
그녀는 판단을 내려야 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이 분이 결코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것... 그렇다면
언니에게도 결코 해가될 사람은 아닐 터... 오히려 잘 되었는지도...)
그 녀는 결정을 내렸다.
"좋아요. 더 묻지는 않겠어요. 마침 잘 되었어요. 저는 그 사성녀 중의 한
사람을 잘 알아요."
종리연의 얼굴이 밝아졌다.
"정말이오?"
"호호... 알다 마다요. 사성녀 중 하나가 바로 저의 언니인걸요."
"...!"
종리연은 그야말로 기절할 뻔했다.
이렇게 공교로운 일이 일어날 줄이야.
그러나 마음 깊이 희열이 솟아나는 것을 금할 길이 없었다.
(아아, 하늘이 도와주는구나.)
방여경은 한숨을 쉬었다.
"당신은 어쩌면 하늘이 내린 사람일지도 몰라요."
"언니에게는 도리어 당신 같은 분이 필요할지도 몰라요. 그러니 당신은 이곳 을 떠나 언니를 찾아가 보세요."
"물론이오."
종리연은 힘차게 말했다.
"하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에요. 당신의 뜻을 이룬다는 것은 낙타가 바 구멍으로 들어가는 것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에요."
"그래도 나는 해야 하오."
방여경의 눈이 빛났다.
"제가 말씀 드릴 수 있는 것은 한 가지 뿐이에요. 설혹 당신이 아무리 완벽 한 보법을 연마한다해도 적어도 사성녀만은 그런 수법에 넘어가지 않는다는 것이에요. 도리어 당신 본연의 순수함만이 일푼의 가능성을 드러낼 뿐이에요."
"...?"
종리연은 그녀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만일 사부에게서 익힌 조화십팔보를 완벽하게 시연할 수 있다 면 틀림없이 사성녀를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방여경은 차분한 음성으로 말했다.
"진실이 가장 중요해요. 당신의 진실을 사성녀가 알아볼 수 있다면 그녀들 은 당신을 배척하지 않을 거예요."
"..."
종리연은 내심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조화 18보만 완벽하게 익히면 된단 말이오.)
"그럼 언니가 있는 곳을 가르쳐 드리겠어요. 언니는 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