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조폭마누라’(조진규 감독·현진영화사 제작)가 전국에서 흥행돌풍을 일으키고 있다.그 중심은 단연 신은경이라고 할 수 있다.
신은경은 90년대 초반 MTV 드라마 ‘종합병원’으로 스타덤에 오른 아이돌스타라고 할 수 있다.대부분의 유명 탤런트들이 그렇듯이 신은경도 브라운관에서의 인기를 등에 업고 94년 영화계에 진출했다.
‘조폭마누라’에 출연하기 전까지 그가 주연을 맡은 영화가 모두 6편이니 결코 적지 않은 숫자다.그중에서 흥행에 성공한 유일한 작품은 97년작 ‘노는 계집 창’이다.
‘노는 계집 창’에 출연하기 직전에 신은경은 음주운전으로 도덕적으로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다.그래서 그는 노출이 심한 이 역할을 과감하게 수용하며 재기를 노렸다.
영화는 전국 72만명의 관객을 동원,흥행에 크게 성공했다(당시는 지금과 달리 단관개봉이었다).영화가 이토록 흥행에 성공했으니 신은경이 재기했을 법도 한데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다.
신은경은 가슴이 아팠다.철이 없던 때 순간의 실수로 큰 잘못을 저지른 것은 인정이지만 연기자로서 열심히 한 것만큼은 인정받고 싶었는데 영화계나 관객이나 그를 쳐다보는 시선은 여전히 싸늘했다.
그런 시각을 반영이라도 하듯 그후 출연한 ‘링’(99년) ‘건축무한 육면각체의 비밀’(99년) ‘종합병원;천일동안’(2000년)은 모두 흥행에서 참패했다.
‘조폭마누라’의 시나리오가 신은경에게 넘어간 것은 지난해.그는 “바로 이것이다”라고 무릎을 내리쳤다.‘노는 계집 창’의 섹시녀도,‘비는 사랑을 타고’의 청순가련형도 그에게는 안맞는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은 것이었다.
그는 현진영화사 이순열대표에게 “바로 내 영화다,꼭 내가 하고싶다”고 목을 매다시피 했다.
그러나 이 영화는 흥행대박과는 달리 우여곡절이 많아 제작이 자꾸 지연됐다.이 영화에 모든 스케줄을 맞춰놓은 신은경으로서는 목이 바짝바짝 타들어갔다.그럴 때 영화사 AFDF에서 ‘이것이 법이다’의 출연제의를 해왔다.
제작사(AFDF)와의 계약 때문이 아니더라도 탐나는 작품이었고 그래서 출연을 결정했지만 ‘조폭마누라’가 늘 마음에 걸렸다.그래서 그는 일단 ‘이것이 법이다’ 제작진에게 ‘조폭마누라’의 스케줄을 먼저 소화해내겠다는 양해를 구했다.
영화를 본 관객들은 알겠지만 ‘조폭마누라’의 신은경은 폭력조직의 부두목이다.유일한 피붙이인 언니가 암으로 목숨이 경각에 달해있는 가운데 조카를 보고싶다고 소원을 빌자 어눌한 남편 박상면과 시도 때도 없이 부부관계를 갖는 장면이 간간이 등장하지만 ‘15세 관람가’라는 등급이 말해주듯 몸매를 전혀 드러내지 않는다.
박상면과 결혼전 치마를 입고 선을 보러갔다가 거리에서 시비거는 양아치들을 두들겨 팰 치마 한쪽을 쭉 찢어 늘씬한 다리를 보여주는 게 고작이다.
그렇다.신은경은 보이시한 여배우의 전형이다.그에게는 일반 여배우에게서는 찾을 수 없는 중성적인 매력이 있다.그래서 신은경이나 영화감독이나 영화제작자는 신은경의 그런 젠더리스적인 캐릭터를 활용해야 한다.
‘조폭 마누라’를 통해 신은경은 연기력이 일취월장,괄목상대했다.이제야 연기의 맛을 아는 것 같다.또 이 영화가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연기했으니 이런 명연기가 나왔다는 얘기도 된다.
앞으로 신은경은 그의 개성을 최대한 살리는 배역이라면 주연이든 조연이든 가리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그래서 연기내공이 경지에 오르면 그때 ‘여자 안성기’가 돼 멜로든 액션이든 코믹이든 에로든 모든 영화에서 꼭 필요한 배우가 될 것이다.
주연여배우의 알몸은 팬서비스차원에서 필수라는 게 영화계의 흥행방침중 하나다.그런 공식에 비춰볼 때 신은경의 성공사례는 이례적이다.
요즘 축하인사와 더불어 ‘이것이 법이다’의 막바지 촬영에 여념이 없는 신은경.이 작품에 여형사로 출연중인 그는 촬영장에서 남자같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중성미를 물씬 풍기고 있다.그의 풍성한 웃음에는 이런 메시지가 담겨져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