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산이 창간 55주년 특집 기사로 지난 기사들을 다듬어 게재하고 있다. 2002년 7월호에 실렸던 기사 가운데 노인봉 산장 지기로 유명했던 성량수 씨의 백두대간 최단 시간 종주(18일) 기사를 다듬은 기사가 2024년 6월호에 게재됐다.
18일 만에 백두대간 완주한 성량수씨
통념을 깬 스피드로 대간종주 '노인봉 털보'
노인봉 털보로 산악인들의 기억에 남은 성량수(72)씨. 그는 과소평가된 산악인이자, 잊히지 않을 선구적인 기록을 세운 인물이다. 백두대간이 알려지기 전, 1981년 동계 태백산맥(낙동정맥+백두대간 일부)을 75박 76일 만에 일시종주했다. 백두대간 노인봉 산장지기로 20년을 살았으며, 2002년에는 백두대간을 걷고 뛰며 18일 만에 최단시간 일시종주 기록을 세웠다.
최대 이틀, 48시간 동안 잠을 자지 않고 걸었으며, 매일 야간산행을 하고, 하루 평균 2~3시간을 자며 걸었다. 지금은 트레일러닝이나 잠을 자지 않고 걷는 무박산행이 일반적이지만, 당시 등산은 '걷는 것'으로 굳어져 있어, 그의 도전은 혁신적이면서도 당시 통념으로 비난을 감수한 것이었다.
아직 산에 살고 있는 그는, 2019년 <노인봉 털보>라는 자서전격 책을 냈다. 이원복 작가가 그의 구술을 활자화했다. 춘천 삼악산 기슭에 '운파산막'을 짓고 여전히 산에 사는 기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2002년 월드컵에 온 관심이 집중되어 있던 시기, 홀로 묵묵히 산길을 걷고 뛰며 인간 한계에 도전한 성량수씨의 '18일 만에 백두대간 완주' 기사를 두 번째로 추천한다. 전문이 아닌 일부를 싣는다.(신준범 기자의 소개 글)
대부분 등산동호인들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던 노인봉 산장지기 성량수씨의 백두대간 보름 만의 종주 시도가 18일 만에 끝났다. 성씨는 5월 15일 지리산 천왕봉에서 종주를 시작, 6월 2일 향로봉에 오름으로써 예정보다 3일 더 걸린 18일 만에 종주를 마쳤다. 이로써 성씨는 백두대간 최단시일 종주를 기록했다.
성씨는 "백두대간 달리기에서 1등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 한민족이 한 줄기로 꿰어져 있음을 상징하는 백두대간에서 심신의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시도를 함으로써 통일의 염원을 극대화하고자 했던 것"이라고 이번 종주의 의미를 밝혔다.
성씨는 5월 15일 밤 지리산 천왕봉 남쪽 로타리산장에 가서 하루 자고, 16일 새벽 5시 30분경 천왕봉에 올라 종주를 시작했다. 타이즈, 긴팔 티셔츠에 휴대폰과 담배, 간식만 넣은 마라톤 배낭을 멘 그는 출발 13시간 만인 이날 오후 6시 30분 성삼재에 도착했으며, 이어 오후 8시 막 어둠이 내릴 무렵 첫날 목적지인 여원재에 도착했다. 다음날 또 비가 오며 예정지인 중재까지 못 가고 여원재에서 운행을 마쳤고, 3일째도 비가 오며 야간산행까지 했지만 덕유산 빼재까지 가는 데 그쳤다.
4일째 소사고개 내려가는 급경사 길에서 기어이 왼쪽 무릎에 통증이 왔다. "비가 와 등산로가 미끄러워지니까 아무래도 잘 안 쓰던 근육을 써야 했기 때문인 것 같다"고 성씨는 돌이킨다. -중략-
하루 종주 길이가 도상 거리로 따져도 40~50km여서 세 끼 먹고 잠자는 시간 외엔 모두 뛰거나 걸어야 했다. 어떤 날은 라면 한 끼만 먹고 견뎌야 했다고 한다. 지원조가 백두대간 상의 약속 장소까지 제 시간에 맞추어 찾아오지 못한 경우가 잦았기 때문.
특히 힘들었던 구간으로 청화산 이후 하늘재에 이르기까지 암릉을 꼽았다(청화산~조항산~대야산~희양산~조령산~마패봉~탄항산~하늘재 구간이며 지금도 최난 코스로 손꼽힌다. -편집자 주). 날이 저물면 암릉에서 길 찾기 어려워지기에 사력을 다해 뛰어야 했다.
먹고 잠자기만도 빠듯해서 18일간 세수는 단 두 번, 목욕은 단 한 번 했으며 양치질은 전혀 못 했다고 돌이킨다. 평소에도 하루 2~3시간 숙면하고 낮잠 20분 정도로 그만인 특이 체질이어서 그나마 견딜 수 있었다고.
자신의 집인 노인봉대피소에서 자고 난 다음날 5월 26일부터 27일까지 그는 48시간 잠을 자지 않고 걸었다. 조침령 가니 어두워졌고, 계속 전진해 점봉산 가니 날이 훤해왔다. 한계령 휴게소로 내려간 그는 스프와 토스트를 사먹고 잠깐 졸다가 2시간 30분 만에 대청봉에 올랐다. 이어 희운각, 공룡릉, 마등령, 저항령 지나 황철봉 넘을 때 밤이 됐고, 소나기를 만났다. 거기서 그는 저체온증에 걸리며 길을 잠시 잃었다.
정상부에서 갔던 길을 되돌아가다가 간신히 정신을 수습, 미시령에 도착하니 밤 12시. 잠시 눈을 부친 성씨는 6월 2일 오후 4시 향로봉 정상에 섰다.
나는 지난달 14일 대야산 정상 부근에서 뜻하지 않은 추락 사고를 당해 9월에나 종주를 재개할 요량인데 청화산~조항산~대야산~희양산~조령산~마패봉~탄항산~하늘재 구간을 대간 종주 최난 코스로 지금도 꼽힌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아야 하나 싶어 쓴웃음이 나온다. 참고로 백두대간 종주 전체 길이는 720km정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