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예기치 않은 변화나 불리한 조건들에 직면하면 실망하거나 의욕을 잃기 쉽다. 나 역시 하늘 대학부를 향한 기대와 계획이 무산되고, 갑작스런 변화를 마주하는 일이 기쁘지만은 않았다. 그런데 의기소침해진 내게 동생이 말했다.
“모두에게 불리한 조건이 언니에게는 유리한 조건이 될 수 있어. 아무도 변화를 꿈꾸지 않을 때 언니는 그걸 일으킬 사람이니까. 아무것도 없다는 건 언니가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기회라는 거야.”
이 말이 마음을 파고들었다. 나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직면한 현실에서 가능성이 보이지 않고 축복이라 여길 만한 것을 발견할 수 없을 때, 내 믿음의 결단은 무엇인가?’
그리고 내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고유한 부르심을 다시 붙잡았다. 때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의 조각들을 맞추다 보면 하나의 커다란 밑그림을 이루었다.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은 말씀을 주셨다. 내가 골방에서 홀로 예배할 때 받은 말씀이었다.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 - 사 58:12
이따금 우리에게 다가오는 인생의 조건들은 황폐할 때가 많다. 파괴된 기초와 무너져버린 터전만 보인다. 어느 것에서도 희망을 기대할 수 없을 때, 하나님은 전혀 다른 가능성을 말씀하신다. 부르심 가운데 선 한 사람, 그 한 사람의 가능성.
한 인생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어떻게 이루시는지 가르쳐주셨다. 그분은 최상의 ‘조건’을 허락하시는 게 아니라 ‘변화’를 약속하신다. 우리가 준비된 사람으로 서서 그분이 이루실 무한한 변화를 꿈꾸길 바라신다. 그리고 그 변화의 주역이 바로 우리 자신이길 원하신다.
또한 우리를 단지 가능성의 땅에 세우기보다 우리 자체가 그분의 가능성이길 원하신다.척박하고 황폐하며 무너진 곳을 보수하여 기필코 길을 내고 그곳을 끝내 영적 거주지로 일궈내는 믿음의 사람, 믿음의 사람들은 모두 이 ‘가능성의 사람’이다.
하지만 이 영적 근성은 저절로 길러지지 않는다.
광야에 서봐야 목마름을 배우고, 거친 들 가운데서 야성이 생긴다. 말은 쉽지만 막상 부딪혀보면 깨닫는다. 그곳엔 결코 낭만이 없다는 것을. 처절한 몸부림만 있다는 것을. 결국 부딪혀봐야 목마름과 야성이 내 것이 되고, 그때 몸부림을 통해 변화가 일어난다.
급작스럽게 수정된 인생의 계획표를 받았을 때, 하나님의 마음을 파고들어야 좌표를 빠르게 재설정할 수 있다. 나는 나를 향한 그분의 완전한 뜻을 알고서 비로소 새로운 길로 다시 힘차게 달릴 수 있었다. 그 전진은 다름 아닌 기도의 출발선에서 시작됐다.
규장원유경
† 말씀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
- 이사야 58:12
† 기도
인생에 마주한 낯선 변화들이 때로 버겁기도 하고 변화보다 안주하고픈 마음이 앞섭니다. 그럼에도 끝내 주님의 뜻만이 이루어질 것임을 선포하며 주님의 뜻을 더 알게 하소서.
† 적용과 결단
무엇보다 주님의 뜻을 알기 위해 더 기도에 힘쓰는 가능성의 사람이 되길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