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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봉주와 미래권력들(미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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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권스 자유게시판 스크랩 캐나다 여행중 느낀 단상들, 그리고 미국과 캐나다의 경제구조 비교
권종상 추천 5 조회 385 12.05.24 22:28 댓글 7
게시글 본문내용

 

휴가 다녀와서 바로 출근입니다. 그래도 늘 하던 일이라 힘들지는 않습니다. 단, 아침 출근할 때 조금 더 늘어지고 싶은 마음에 밥 다 먹고, 씻고, 옷 갈아입고선 아내 옆으로 파고들어 누웠습니다. 오늘 하루만 더 쉬었으면 하는 마음도 간절했지만, 현실은 제게 얼른 출근할 것을 요구했고, 역시 제 분수란 걸 알고 있는 저는 이성의 부름에 마지못해 낑낑거리면서 응답했습니다. 그 사이에 저는 잠깐이나마 달콤한 새벽잠이 들었던 모양입니다. 후다닥 깨서 아내가 싸준 도시락 싸들고 일터로 향했습니다.

 

 

일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지호와 아내는 집에 없습니다. 지호가 등이 아프다 해서 물리치료를 받은 지 몇 주가 됐습니다. 한 주에 한 번 가는데, 전에 미식축구 경기중에 덩치 큰 사모아계 선수와 충돌하고 나서 생긴 부상입니다. 자기가 좋아서 한다고는 하는데, 아무튼 부모가 되다 보니 하고 싶은 것 밀어주고도 싶고, 말리고도 싶고, 그렇습니다.

 

 

기분 좋게 여행 다녀왔습니다. 원래 멀리 여행갔다 오면 하루이틀은 쉬는 날을 갖고서 출근하곤 했는데, 이번엔 짐 풀자마자 출근한 셈입니다. 그래도 여행이란 것은 언제나 사물을 바라보는 눈을 넓혀준다는 고마운 점이 있는 듯 합니다.

 

 

이번 여행은, 부모님 소유의 배케이션 하우스(우리나라에서 말하는 콘도 개념)에서 묵었기 때문에 숙박비가 굳었음에도 불구하고 꽤 돈걱정하며 다닌 여행이었습니다. 환율 역전으로 인해, 미국 돈이 캐나다 달러보다 그 가치가 확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20여년 전 캐나다에 처음 방문했을 때, 미국 달러는 거의 캐나다 달러 2달러 정도였는데, 지금은 미국돈 1달러는 캐나다 돈으로 환산하면 97센트밖에 안 됩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서 가져갈 수 있는 식료품이나 술은 모두 가져가기까지 하면서 최소한 지출을 줄일 수 밖에 없었고, 환전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만일 돈을 써야 할 일이 있다면 카드를 썼고, 카드를 받지 않는 곳에선 그냥 미국 달러를 내야 했습니다.

 

 

캐나다에서는 그동안 미국 돈이 꽤 위력을 발휘했지만, 미국돈이 푸대접받는 현상을 처음 일상생활에서 겪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마치 깔보듯 눈을 깔면서 "미국돈 안 받는데." 를 말하는 캐나다인들의 모습에서는, 마치 '그동안 너희들로부터 받았던 수모(?)를 그대로 갚아주겠다'는 듯한 인상도 느껴졌습니다. "이거 얼마죠?"라고 물었을 때, "아, 이건 25달러입니다." 하고 나서 그들은 꼭 한 마디씩을 더 붙였습니다. "캐나다 달러로."

 

 

리먼 사태, 서브프라임 사태, 그리고 거품으로 키워왔다가 붕괴된 미국의 인위적인 경기활성은 말 그대로 마구 찍어댄 돈이 뒷받침됐고, 이제 그 결과가 이런 식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한 편의 에피소드랄까요. 푸대접받는 달러의 현실을 보면서 실물경기의 뒷받침 없는 금융자본의 허황된 돈놀이가 우리의 일상에 미치는 영향을 그대로 겪은 셈입니다.

 

 

사회적 비용을 부담하느라 개인적인 소비 욕망을 억제하는 게 바람직한지, 아니면 개인의 욕망을 인위적인 경기부양을 통해서라도 최대한 극대화로 끌어올려 소비를 촉진해 경기를 활성화하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해서는 바로 국경을 접한 미국과 캐나다를 비교해보면 쉽게 비교가 됩니다. 미국이 인위적 경기부양을 위해 주식으로 장난을 하는 동안, 전쟁과 구제금융이라는 밑빠진 독과도 같은 상황이 있었고, 또 부동산이라고 하는, 절대로 건드려서는 안 될 폭탄을 건드려 놓으면서 상황은 계속해 파국으로 치닫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파국이 오는 순간에도, 자기 집을 저당잡혀 다른 집을 또 사고, 거기서 남은 돈으로 새 차와 컴퓨터와 대형 TV를 샀던 미국인들은 이런 것들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상황을 실감하지 못했었습니다. 일단 그렇게 촉발된 공황은 사회적 안전망이 없는 미국 사회에 내던져진 미국인들을 바로 '알거지'로 만들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와 반대로 세금은 엄청 걷어가지만 사회적 안전망이 나름 충실한 곳에서 살아가는 캐나다 국민들은 과소비를 별로 찾아볼 수 없습니다. 수퍼마켓에 가서도 이런 모습들을 볼 수 있는데, 물가도 확실히 미국보다 비싸고, 일단 물건의 포장 단위 자체가 틀립니다. 일단 맥주를 사는 것만을 예를 들더라도, 모든 주류의 판매가 전매체제인 캐나다 브리티시 콜럼비아 주에선 반드시 주 정부가 운영하는 '리커 스토어'에서만 술을 구매할 수 있고(물론 술집은 존재하고 식당에서도 주류를 팔지만 가격은 좀 ?니다), 미국과는 달리 열두병(혹은 캔) 단위를 '케이스'라고 부릅니다. 미국의 경우는 24개 들이를 케이스라고 부르죠. 식료품을 묶어놓은 단위도 상대적으로 작습니다. 미주에 있는 나라라기보단 유럽의 어느 나라라고 부르는 게 낫겠다 싶을 정도로, 미국의 대량생산 대량소비 체제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에겐 참 불편한 나라입니다.

 

 

그러나, 캐나다는 미국이 그 광풍에 휩쓸리는 동안 거기에 휩쓸리지도 않았고, 나름 착실하게 자기들의 생산 기반도 지켜 왔습니다. 그리고 그 보수적인 세금 제도도 계속 유지해 왔고, 그런 것들의 진가는 정작 미국식 자본주의를 기본으로 삼아왔던 나라들이 추풍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지는 가운데 발휘됐습니다. 지난해 11월 캐나다 통계청이 발표한 9월달 실업률의 경우 7.1% 였고, 같은 기간의 실업률에 대해 월스트릿저널은 발표수치는 9% 지만 실제로는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로 인해 11.6% 에 달한다는 보도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캐나다의 경우 실업급여와 같은 사회안전망이 미국보다 더 잘 되어 있기 때문에, 그나마 이 실업의 충격도 사회보장 장치들이 완충작용을 해 줬다는 분석이 나왔고, 미국의 경우 사회보장 체제의 질이 이보다 떨어지는 것이 현실이어서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거기에 고용의 질도 캐나다가 훨씬 낫습니다. 가끔 미국에서 실업률이 줄었다는 보도가 나올 때는 보통 여름철이나 크리스마스 등 특수한 시즌에 계절노동자들, 임시직 노동자들의 고용이 늘어난 것을 통계 수치에 포함시키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실질적인 안정적 직장을 가진 사람들의 숫자는 늘어나지 않는 것으로 봐야 합니다.

 

 

아무튼, 저희 가족 여행 단상에 대해 적는다는 것이 경제 쪽으로 삐딱선을 탔습니다. 돈 쓰는 문제에 조금 민감했던 것을 빼고는, 여행은 참 좋았습니다. 가족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다는 것, 우리의 유대감에 대해 확인하고, 또 가끔은 티격태격하면서, 그것을 극복하고 다시 가까워지고, 서로 어떤 상황에서든 뭔가를 나눠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가족 안에서 '자기가 가진 것'을 기꺼이 내 놓는 법을 배우는 것, 이것은 어쩌면 가장 작은 공동체인 가정 안에서 배우게 되는, 아니 그 안에서 배워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작은 공동체 안에서 내 놓으려 하지 않고 더 움켜쥐려 한다면 그것이 바로 모든 분쟁의 근원이 된다는 것도, 가정 공동체 안에서 배우게 되는 가장 큰 경험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도, 캐나다의 때묻지 않은 자연 환경과, 그 자연을 사랑하며 사는 사람들과, 여행이란 것이 주는 여유를 누릴 수 있음이 참 좋았습니다. 산으로, 계곡으로, 바다로 돌아다니면서 풍성한 자연을 접했습니다. 농장에 들러 유기농으로 기른 야채와 놓아 기른 닭들이 낳은 달걀을 먹기도 하고, 바닷가에 가서 홍합을 따 보기도 하고, 길가에서 곰 일가족을 만나 사진을 찍고... 하는 이런 일들이, 모두 이런 여유로움의 연장선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길지 않은 며칠의 여행이었지만, 그래도 참 과분하고 고마운 여행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가족의 돈독함을 확인할 수 있음이 참 좋았습니다.

 

 

 

 

 

시애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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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2.05.24 22:47

    첫댓글 다복한 가정이네요. 아이 3명과 가족여행이라니, 참 멋진 일인 것 같아요. 글을 읽다보니 사회적 안전망의 필요성을 미국을 통해서 더 절실히 느끼게 되네요. 우리도 모든 사람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나라가 어서 되었으면.

  • 작성자 12.05.25 10:16

    아, 우리 집 애는 남자애 둘이고, 작은 아이들 둘은 우리 처형네 아이들입니다. 하하. 예... 우리 모두가 그렇게 살 수 있는, 사회안전망이 제대로 갖춰진 나라, 우리에게 정말 필요합니다.

  • 삭제된 댓글 입니다.

  • 작성자 12.05.25 21:45

    원래 제 게시물이 다 멋지다는... ^^; (깔대기 크게 한 번 들이대고...)

  • 삭제된 댓글 입니다.

  • 작성자 12.05.26 14:47

    학교다닐 때 무전여행 비슷하게 갔다온 경험이 생각납니다. 사실 철모르고 신나기만 했죠. 돈 떨어져서 힘들기도 했지만, 막일을 하거나 해서 어떻게 또 챙겨서 다니고 했던 그 경험들의 재미란... 겪어본 사람들만이 알겠죠. 지금은 있을 거 다 갖추고 있는데도 이렇게 걱정하는 게 또 인간의 약한 모습인 모양입니다.

  • 작성자 12.05.26 20:10

    예. 아무래도 상황이 인간의 현실을 규정짓는 경우가 많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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