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그렇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에게서 상을 받지 못한다. (1)
그러므로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위선자들이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듯이, 스스로 나팔을 불지 마라. (2)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3)
너희는 기도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해서는 안된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회당과 한길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5) 너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6)
너희는 단식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침통한 표정을 짓지 마라. (16)
너희는 단식할 때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라." (17)
마태오 복음 6장 1~18절까지는 당시 유대인들의 고질적인 병폐 중의 하나였던 위선에
대한 예수님의 경계의 말씀이 들어 있다.
B.C.586년 남부 유다 멸망 이후 포로 시대의 상황에서 유대인의 전통과 예식을
고수하려는 강한 민족주의적 배경 아래 생성 발전한 유다교는 구약 성경의 내용을
왜곡하여서 지나친 형식주의가 퍼져 나갔다.
그래서 그들의 종교적 행위 가운데는 위선적 요소가 많았다.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이 구약 율법을 빌미로 해서 저지르는 대표적인 위선을
거론하신다.
즉 종교적 위선에 대한 경고(마태6,1)에 이어, 특히 자선(마태6,2~4),
기도(마태6,5~15). 단식(마태6,16~18)에 있어서 근본 의미를 밝혀 주시며, 위선을
버릴 것을 촉구하신다.
'위선'이란 '사람에게 보이려고' 행하는 의(義)임이 지적된다.
'사람에게 보이려고'에 해당하는 '프로스 토 테아테나이 아우토이스'(pros to
theathenai autois; to be seen by them)에서 '프로스'(pros; to)는 '~하기 위하여',
'~을 목적으로'라는 의미를 가지며, '보이다'에 해당하는 '테아테나이'(theathenai;
be seen)도 목적을 나타내는 부정과거 부정사형 수동태이다.
여기서 다른 목적이 아니라 순전히 사람에게 보이려는 목적만으로 의로운 일을
행하는 위선에 대한 경계의 말씀이 아주 잘 드러난다.
그리고 '조심하여라'에 해당하는 '프로세케테'(prosechete; take heed; be careful)
는 '주의하다', '삼가다'의 뜻을 가진 '프로세코'(prosecho)의 현재 명령형이다.
이것은 마치 걸음걸이가 서툰 어린 아이의 뒤를 따라가면서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어머니의 사랑이 담긴 자상한 표현이다.
또한 '하지 않도록'에 해당하는 '메 포이에인'(me poiein; not to do)은 마태오
복음 6장 1절 이하의 내용이 실생활 가운데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타날 수 있는 행위에
관한 교훈이다.
마태오 복음 6장 2절부터 4절까지는 유다교에서 종교 규정으로 매우 중요하게
여겨졌던 '자선'에 해당하는 '엘레에모쉬넨'(eleemosynen; thine alms)에
있어서의 위선에 대한 교훈이 나온다.
여기서 주어가 '너희'가 아니고 '너'라는 단수인데, 이것은 모든 사람 각자가 자선을
행할 때 이 규정이 엄격하게 적용된다는 것이다.
또한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에서 '때'로 번역된 '호탄'(hotan; when)은 '~할 때는
언제든지'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만약 자선을 한다면' 정도의 가정법적인
뜻이 아니라, '각 사람은 반드시 자선을 베풀어야 하는데, 자선을 베풀 때에는' 이라는
필연적 의미를 지닌다.
마태오 복음 6장 2절의 '위선자'에 해당하는 '호이 휘포크리타이'(hoi hypokritai;
the hypocrites)의 기본형 '휘포크리테스'(hypoktites)는 '가장하다', '꾸미다'는
뜻이 있는 '휘포크리노마이'(hypokrinomai)에서 유래하며,
원래는 '연극 배우'를 뜻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겉과 속이 다른 위선자를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었고, 마음 속에
있는 것을 솔직하게 밖으로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 못하고 마치 그렇지 않은 것처럼
가장하여 자신의 이익을 꾀하는 부정적인 뜻으로 사용되었다(마태15,7; 마르7,6).
이런 사람은 많은 사람들이 목격할 수 있는 회당과 거리에서 공개적으로 자선하고,
이것을 모든 사람들이 알도록 나팔을 불듯이 자랑까지 하여 그들의 행위가 실제로는
가난한 이들을 돕는 것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과시에 목적이 있음을 보여
주었다.
한편,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에 해당하는 '아페쿠신'(apechousin; they
have)의 원형 '아페코'(apecho)는 희랍 고전 문헌에서 '어떤 것을 받고 영수증을
주다' 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이것은 확실히 받았음을 나타내는 단어인데, 그러니까 여기서 등장하는 위선자는
자신에게 즉각적으로 돌아오는 확실한 반대 급부가 없으면, 자선을 베풀지 않는 자임을
알 수 있다.
실제로 그들은 남에게 보이기 위해 자선을 베풀므로, 자선을 베풀 때 이것을 목격한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게 됨으로써, 그들이 목적했던 것을 이룰 수 있기에 그들은
충분한 상을 이미 받았다고 할 수 있다.
마태오 복음 6장 3절의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에서 원문에는
'손'이라는 단어가 없고, '너의 왼쪽~너의 오른쪽'만 나온다.
새 성경 번역문과 달리 원문에 '손'이라는 단어가 없는 것은 구체적인 형체보다
추상적인 개념을 보다 강조하기 위한 의도적인 표현이다.
말하자면, 행위로 이루어지는 자선만이 아니라 마음으로 이루어지는 동정이나 또는
자선을 계획하는 것조차도 은밀히 하라는 깊은 뜻이 담겨져 있다.
성경에서는 오른쪽은 긍정적인 의미를 지니는 반면에 왼쪽은 부정적인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선한 의지로 자선을 베풀려고 할 때, 이것을 저해하는 악한 충동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악한 충동이 일어나지 않도록 은밀하고 신속하게 자선을 베풀라는
심오한 뜻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기도할 때에'에 해당하는 표준 원문에는 '프로슈케스테'
(proseuchesthe)라는 2인칭 복수형이 아니고, '프로슈케'(proseuche)라는 2인칭
단수형으로 나오므로 '또 네가 기도할 때에'로 번역된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실제로 기도하는 사람 개개인에 대해 교훈을 주시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기도하다'에 해당하는 '프로슈코마이'(proseuchomai)는 '~을 향하여'라는
방향을 나타내는 전치사 '프로스'(pros)와 '원하다', '고대하다'는 뜻이 있는
'유코마이'(euchomai)의 합성어이다.
여기서 전치사 '프로스'(pros)는 단 하나의 방향을 나타내는 단어이기에, 기도는
오로지 하느님께 응답받는, 단 하나의 목적만을 가져야 하며, 타인에게 과시하거나
칭찬을 받기 위한 다른 목적이 포함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당시 유다인들은 유다인 시간으로 3시(오전9시), 6시(정오), 9시(오후3시)가 공식적인
기도 시간이었고, 위선자들은 이 시간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회당이나 한길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했다.
기도를 엎드리거나 무릎을 꿇거나 앉아서도 할 수 있지만, 굳이 서서 기도하는 것은
자신이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신앙심을 과시했던 것이다.
마태오 복음 6장 6절의 '골방'에 해당하는 '타메이온'(tameion; closet)는 '창고',
'내실', '침실'의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가장 일차적인 뜻은 식료품 등의 물건을 보관하는 '창고'(루카12,24)이다.
당시 피지배 국민으로서 가난과 빈곤에 시달리던 유다인들은 가족들을 위해 아무도
모르는 '창고'에 식량을 숨겨 두었고, 식량을 가지러 들어갈 때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극도로 조심해야 했다.
이렇게 유다인들에게 있어서 '식량 창고'는 생명과도 같은 가장 중요한 비밀 장소로
여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