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로를 걷는 삶(7/4)
-먹다-
먹는다는 것은 생에 있어서 여러 즐거움 중에서도 제일인 것 같다.
어느 연예인은, 매 끼마다 다음 먹을 음식을 생각하며 일을 하면은 그냥 즐겁단다. 그만큼 먹는 즐거움에 푹 빠져 있다는 뜻이다.
사람이 태어나서 먹기 위해 사느냐 아니면 살기 위해 먹느냐고 한다. 분명한 것은 살기 위해 먹는 것이다. 그럼에도 먹기 위해 사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사람의 육신에 먹는다는 것은 몸을 유지하며 보호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혜롭게 먹지 못해서 병들기도 하고 육체에 고난을 주기도 한다. 또는 죽는 경우도 있다. 무엇을 먹고 어떻게 먹느냐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먹는 것도 법칙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불쑥 나온 용어가 ‘궁합’이다. 어떻게 보면 먹는 것도 어려운 것 같다.
여기에 인간으로서 꼭 먹어야 하며 자주 매일 먹어야 하는 것이 있다. 이것을 먹어야만 인간의 존귀함이 완성되며 어지러운 세상을 슬기롭게 헤쳐 나갈 절대적인 기준과 가치관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이것은 아무리 먹어도 사고가 없으며 꾸준히 먹어야만 인간의 영혼이 살 수 있는 것이다.
그 ‘먹음’은 바로 ‘진리의 성경 말씀’이다. 그리고 이 진리의 성경 말씀의 중심이신 ‘예수 그리스도’시다.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자기를 따르는 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라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어 이르되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자기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요6:48~55)
여기서 먹는다는 것은 곧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복음의 생명의 말씀을 뜻하며 그리고 그가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찔리고 상하시며 못 박히신 몸과 그리고 흘리신 그의 피를 뜻한다.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담당하신 고난에 대해 기원전 8세기에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이렇게 예언하게 하신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53:5)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 영혼의 일용할 양식이다. 이 양식을 먹을 때에 영혼은 더욱 강건해지고 죄를 이겨 나갈 수가 있다. 밥을 먹고 매일 주어진 일을 해나가듯이 말이다.
이 양식 외에는 인간의 영혼에 있어서 구원이 없으며 강건함도 없다. 과거에 아무리 먹었어도 오늘에 먹지 않으면 입만 살았지 그 역시 허약한 자일 것이다. 생명의 만나와 양식으로서 늘 강건하시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