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축제 · 기념일 백과 -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Salzburg Festival ]
hanjy9713
2023.11.15. 17:20조회 19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 Salzburg Festival ]
요약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에서 매년 여름 열리는 음악 축제
1. 축제 정의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매년 7~8월에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Salzburg)에서 개최되는 음악 축제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Herbert von Karajan) 등 위대한 음악가들을 배출한 도시 잘츠부르크는 거의 1년 내내 음악회가 열리는 음악의 도시다. 그중 매년 여름 5~6주 동안 펼쳐지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케스트라와 지휘자, 연주자, 성악가들이 모여 연극, 오페라, 관현악, 실내악 공연을 펼쳐 보이는 종합 예술 축제다.
1920년에 시작돼 100년의 역사를 향해 가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1924년과 1944년을 제외한 매해 여름 개최되며 세계 예술계의 뜨거운 관심을 받아 왔다. 극작가 후고 폰 호프만슈탈(Hugo von Hofmannsthal)의 연극 <예더만>(Jedermann)으로 막을 올리는 축제는 모차르트, 슈트라우스, 베토벤, 브루크너 등의 다양하고 탁월한 레퍼토리를 선보인다. 축제 기간 동안 대축제극장(Großes Festspielhaus), 대성당 앞 광장(Domplatz), 모차르트 하우스(Haus für Mozart), 암벽을 파서 만든 공연장 펠젠라이트슐레(Felsenreitschule) 등 잘츠부르크 시내 전역에서 200여 회의 음악회가 열린다. 매년 25만 명 이상의 관람객이 함께하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바그너의 오페라 작품들을 집중적으로 선보이는 독일의 바이로이트 페스티벌(Bayreuther Festspiele), 스코틀랜드의 수도 에든버러에서 매년 8월 말 3주간 펼쳐지는 공연 예술 축제인 에든버러 국제 페스티벌(Edinburgh International Festival)과 함께 유럽 3대 음악 축제로 손꼽힌다.
호프만슈탈의 연극 <예더만>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1920년 잘츠부르크 대성당 앞 광장에서 호프만슈탈의 연극 <예더만>을 공연하며 시작됐다.
2. 축제 유래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가 태어나 활동한 곳, 오스트리아 서부의 잘츠부르크는 모차르트로 대표되는 ‘모차르트의 도시’다. 1870년, 모차르트의 마지막 오페라 <마술 피리>(Die Zauberflöte)의 완전한 악보가 발견된 것을 계기로 모차르트 연구기관인 국제 모차르테움 재단(Internationale Stiftung Mozarteum)이 1870년 10월 16일 잘츠부르크에서 발족됐다. 모차르테움 재단은 1877년부터 1910년까지 여덟 차례에 걸쳐 잘츠부르크 음악 축제(Salzburger Musikfest)를 개최했고 1880년에는 모차르트 생가(Mozarts Geburtshaus)에 모차르트 박물관을 설립했다.
1917년, 법률가이며 모차르테움 재단의 후견인이던 프리드리히 게마허(Friedrich Gehmacher)와 빈의 음악 비평가 하인리히 다미시(Heinrich Damisch)는 상설 음악·극 축제를 열고자 잘츠부르크 축제극장 기구(Salzburger Festspielhaus-Gemeinde)를 설립했다. 이에 오스트리아의 마지막 황제 카를 1세(Karl I)가 전폭적인 지원을 보냈고, 1918년에는 극작가 후고 폰 호프만슈탈과 연출가 막스 라인하르트(Max Reinhardt), 지휘자 프란츠 샬크(Franz Schalk),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와 무대 디자이너 알프레트 롤레(Alfred Rolle)가 음악 축제 준비를 위해 함께했다.
이러한 단계를 거처 1920년 8월 22일, 호프만슈탈의 연극 <예더만>으로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 공식 개최됐다. 오스트리아의 배우 알렉산더 모이시(Alexander Moissi)가 주연을 맡은 이 첫 공연은 잘츠부르크 대성당 앞 계단에서 펼쳐졌다. 이는 전통으로 이어져, 매년 <예더만> 공연은 잘츠부르크 대성당 앞 광장(Domplatz) 무대에서 오후 5시 또는 밤 9시에 시작된다.
<예더만>
1927년 잘츠부르크 성당 앞 돔플라츠에서 공연된 호프만슈탈의 연극 <예더만>. 막스 라인하르트가 지휘를 맡았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두 번째 해인 1921년에는 관현악단과 실내악단의 연주를 중심으로 음악제가 열렸으며, 오페라 작품은 1922년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지휘하는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Don Giovanni)가 첫선을 보였다. 1922년에는 빈 필하모니 오케스트라(Wiener Philharmoniker)가 처음으로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 참여했다. 이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모차르트의 오페라 작품들이 음악제의 주요 레퍼토리를 구성하고 빈 필하모니 오케스트라가 그를 뒷받침하며 현재까지 이어져왔다.
3. 축제 역사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1920년에 처음 개최된 이래 1924년과 1944년을 제외하고 매년 열렸다. 지휘자 아르투로 토스카니니와 브루노 발터(Bruno Walter)가 음악제를 이끈 1934~37년은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황금시대라고 불린다. 그리고 1937년에는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The Sound of Music)의 실제 주인공으로 유명한 트라프(Trapp) 가족합창단이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한 파트였던 민속 음악 경연대회에서 1등상을 차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1938년에 나치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합병하면서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 대한 나치스(Nazis)의 간섭이 시작됐다. 지휘자 토스카니니가 이에 항의해 사임했고, 조지 솔티(Georg Solti) 같은 유대계 음악가들은 더 이상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 출연하지 않게 됐다. 음악제의 개막작인 <예더만>도 무대에 오르지 못하다가 전쟁 후 다시 공연될 수 있었다. 1940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14일 동안 진행되는 ‘잘츠부르크 여름 문화제’(Salzburger Kultursommer)로 축소됐고, 1943년에는 ‘잘츠부르크 여름 연극, 음악제’(Salzburger Theater- und Musiksommer)로 명칭이 바뀌었다. 지속적인 나치스의 방해와 제2차 세계대전의 혼란 속에서 진통을 겪던 중 1944년에는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의 여파로 음악제가 취소되기도 했다.
전쟁이 끝나고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 세계 최고의 음악제로 자리 잡기까지는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과 빈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공헌이 컸다.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난 카라얀은 1948년 크리스토프 빌리발트 글루크(Christoph Willibald Gluck)의 오페라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Orfeo ed Euridice),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Le Nozze di Figaro)을 지휘하면서 처음 잘츠부르크 페스티벌과 인연을 맺었다. 그는 1956년부터 1960년까지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예술 감독을 맡아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Berliner Philharmoniker)를 시작으로 다른 관현악단을 초청하는 등 음악제에 새로운 시도를 추진했다. 1956년에 카라얀은 오스트리아의 건축가 클레멘스 홀츠마이스터(Clemens Holzmeister)에게 새로운 공연장을 의뢰했다. 세계에서 가장 크고 현대적인 시설을 갖춘 공연장을 잘츠부르크에 마련하고 싶어 한 카라얀의 계획과 의도를 이해한 홀츠마이스터는 1960년에 대축제극장(Groβes Festspielhaus)을 완성했다. 카라얀은 예술 감독직을 내려놓은 이후에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주요 공연을 도맡아 지휘하며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명성을 전 세계에 알려나갔다. 또 1967년에는 여름에 진행되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을 확장시키는 의미의 잘츠부르크 부활절 음악제(Salzburger Osterfestspiele)를 그가 당시 이끌던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만들었다. 그러나 카라얀은 1989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공연될 베르디의 오페라 <가면무도회>(Un ballo in maschera)를 준비하던 중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그가 설립한 대축제극장 앞 광장은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플라츠’(Herbert-von-Karajan-Platz)로 명명돼 영원히 그를 기리고 있다.
바이로이트 페스티벌(Bayreuther Festspiele)이나 루체른 페스티벌(Lucerne Festival)처럼 유명한 음악제도 음악제 기간에 임시로 편성되는 일명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구성해 공연하지만,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1922년부터 빈 필하모니 오케스트라가 음악제를 주도하며 축제의 수준을 유지해왔다. 따라서 빈 필하모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클레멘스 크라우스, 브루노 발터, 빌헬름 푸르트뱅글러(Wilhelm Furtwängler),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카를 뵘(Karl Böhm) 등이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을 이끌었다. 빈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이외에도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를 필두로 왕립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Koninklijk Concertgebouworkest),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London Symphony Orchestra) 등 세계 정상급 관현악단이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연주를 들려준다.
전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상징이던 카라얀과 그의 파트너이며 오페라 연출가인 장 피에르 폰넬(Jean-Pierre Ponnelle)이 사망한 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제라르 모르티에(Gerard Mortier), 페터 루치카(Peter Ruzicka), 위르겐 플림(Jürgen Flimm) 등이 예술 감독을 맡아 새로운 시대에 발맞춰 과감하게 현대화를 추진했다.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이던 2006년에는 소축제극장(Kleines Festspielhaus)을 재건축한 모차르트 하우스(Haus für Mozart)가 문을 열고 미완성 작품을 포함한 모차르트의 오페라 작품 22개를 모두 무대에 올리는 거대한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2012년부터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예술 감독은 빈 출신의 알렉산더 페라이라(Alexander Pereira)가 이어가고 있다.
4. 축제 특징
1) 주요 공연장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기간에는 잘츠부르크 시내 전역에서 수준 높은 연주회가 열린다. 많은 공연장 가운데 가장 중요한 곳은 구도심 북쪽 산 아래에 자리 잡은 대축제극장(Groβes Festspielhaus)이다. 1960년에 클레멘스 홀츠마이스터(Clemens Holzmeister)가 디자인하고 카라얀이 설립한 대축제극장은 2,200석 규모의 좌석을 갖추고 무대의 좌우 길이가 50여 미터에 달해, 한동안 세계에서 가장 큰 클래식 음악 공연장으로 손꼽혔다. 대축제극장 개관 첫 작품은 카라얀이 지휘하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장미의 기사>였다. 대규모 오페라 공연이나 빈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공연이 주로 대축제극장에서 펼쳐진다.
1925년에 클레멘스 홀츠마이스터가 완성한 소축제극장(Kleines Festspielhaus)은 좌석 1,300여 석을 갖춘 작은 공연장으로서 80여 년 동안 제 역할을 다한 뒤 2006년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을 기념해 모차르트 하우스(Haus für Mozart)로 탈바꿈했다. 홀츠마이스터의 제자인 건축가 빌헬름 홀츠바우어(Wilhelm Holzbauer)와 룩셈부르크 출신의 건축가 프랑수아 발렌티니(François Valentiny)가 새롭게 단장한 모차르트 하우스의 첫 번째 공연은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Nikolaus Harnoncourt)가 지휘를 맡은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이었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합창 경연이 열린 곳은 바로 펠젠라이트슐레(Felsenreitschule)다. 잘츠부르크 대주교의 여름 승마학교로 쓰이던 이곳은 암벽을 파서 만든 공연장이다. 1926년에 막스 라인하르트가 이탈리아 극작가 카를로 골도니(Carlo Goldoni)의 <두 주인을 섬기는 하인>(Servant of Two Masters)을 이곳에서 처음 공연했으며, 클레멘스 크라우스(Clemens Krauss)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낙소스 섬의 아리아드네>(Ariadne auf Naxos)를 지휘했다. 좌석 1,500석을 갖춘 펠젠라이트슐레 공연장은 무대 연출에 제한이 따름에도 암벽을 이용한 공간이 자아내는 훌륭한 음향 효과를 경험하려는 관객들로 인해 공연은 늘 매진 사례를 이룬다.
펠젠라이트슐레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합창 경연이 열린 곳으로 유명한 펠젠라이트슐레는 암벽을 파서 만든 독특한 공연장이다.
그 밖에 잘츠부르크 주립 극장(Landestheater), 잘츠부르크 대성당(Dom)과 성당 앞 광장(Domplatz), 잘츠부르크 대학 강당(Universitätsaula), 성 페터 성당(Erzabtei St. Peter), 대주교의 궁전이던 레지덴츠(Residenz) 등 잘츠부르크 시내 이십여 개 장소에서 공연이 펼쳐진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축제 기간 동안 호엔잘츠부르크 성(Festung Hohensalzburg)이 올려다 보이는 카피텔플라츠(Kapitelplatz)에 스크린이 설치돼 오페라와 발레 공연 등을 상영한다.
2) 주요 프로그램
종합 예술 축제를 지향하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프로그램은 크게 오페라·연극·음악회 부문으로 나뉜다. 오페라와 음악회에 비해 연극은 상대적으로 덜 주목 받지만, 호프만슈탈의 연극 <예더만>은 1920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개막작인 데다 나치스가 간섭하던 시기를 제외하고는 매해 공연되고 있어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상징이 됐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가장 비중이 큰 장르는 오페라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처음부터 음악과 극을 아우르는 종합 예술 축제로 나아가고자 했던 만큼 오페라의 중요성이 강조될 수밖에 없다. 특히 카라얀은 세계적인 오페라 가수들을 모아 실력을 발휘하도록 해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위상을 드높였다. 또한 아그네스 발차(Agnes Baltsa), 체칠리아 바르톨리(Cecilia Bartoli), 니노 마차이제(Nino Machaidze) 같은 젊은 성악가들이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을 통해 대중에게 소개됐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는 오페라 십여 편이 공연되는데,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 <피가로의 결혼>, <마술 피리>, <코시 판 투테>(Così fan tutte) 같은 주요 작품과 더불어 베르디, 베토벤, 바그너, 슈트라우스 등 유명 작곡가와 현대 작곡가의 작품이 두루 편성된다.
빈 필하모니 오케스트라를 비롯한 유명 오케스트라와 세계적인 솔리스트들의 리사이틀, 실내악단의 연주회로 채워지는 음악회는 가장 많은 횟수의 공연을 펼치며, 참가하는 음악가들의 숫자는 물론 그들의 실력과 인지도 역시 최상급이다. 잘츠부르크의 주역인 빈 필하모니 오케스트라만 하더라도 음악제 기간 내내 지휘자 4~5명이 번갈아 지휘할 정도로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따라서 한 달이 넘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기간 동안 주요 공연들만 골라 보더라도 전 세계 일류 음악가들의 주요 레퍼토리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고 할 정도다.
5. 관련 축제
잘츠부르크에서는 거의 1년 내내 음악제가 열린다. 여름에 열리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말고도 매년 1월에는 모차르트의 생일(1월 27일)을 기념해 국제 모차르트 주간(Mozartwoche)이 열린다. 모차르트 주간은 1956년 모차르트 탄생 200주년이 되는 해에 시작됐다. 3월 하순에는 2007년부터 시작된 잘츠부르크 비엔날레(Salzburger Biennale)가 열리는데, 이때는 주로 현대 음악이 연주된다. 1967년에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은 바로크 음악을 주로 연주하는 부활절 음악제(Salzburger Osterfestspiel)를 만들었다. 부활절 50일 뒤에 펼쳐지는 성령강림절 음악제(Salzburger Pfingstfestspiele)는 1973년에 처음 시작됐다. 이외에 8월에는 헬브룬 축제(Fest Hellbrunn), 10월에는 잘츠부르크 문화의 날(Salzburger Kulturtage)과 잘츠부르크 가을 재즈 축제(Salzburger Jazz-Herbst), 12월에는 잘츠부르크 대림절 음악제(Salzburger Adventsingen)가 개최된다.
참고문헌
[네이버 지식백과]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Salzburg Festival] (세계의 축제 · 기념일 백과, 류정아, 오애리, 김홍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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