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일본이 아닌 조슈번, 그중에서도 하기시 출신에 먹혔다?
아? 그 먼 시골 어촌인 하기(萩)시 까지 찾아가셨군요? 한국인들이 찾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말씀
하신대로 조선은 일본에 망했다기 보다는 조슈번(야마구치현) 에, 아니 그 조슈번 중에서도
하기시 출신, 그 중에서도 요시다 쇼인이 하기시에 세운 쇼카손주쿠 90명 졸업생들에게 무느졌지요?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원흉은 이토 히로부미" 이니 그는 말씀하신대로 천민이라.... 원래 이름은
하야시 리스케(林利助) 로 소작농의 아들이니 천민에 가깝지요? 아버지가 이토가에 양자
로 가면서 리스케는 이토 히로부미가 되었지만 하급무사 신분이라 저 쇼카 손주쿠
(松下村塾 송하촌숙) 에 가서도 천한 신분 때문에 방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마루에서 배웠다는?
1854년 미국 페리 제독이 7척 구로후네를 이끌고 나타나 강요하니 도쿠가와 막부는 굴복해 요코하마
와 하코다테항을 개항하자 전국의 사무라이들은 “일본의 혼이 더렵혀졌다” 며 반발하는데 이때
20대로 쇼카손주쿠에서 1년반 동안 맹자(孟子) 를 강의해 90명 제자를 기른 요시다 쇼인은 존황
양이론을 들고 나와 막부를 멸해야 한다며, 스스로 출두해 사형을 당하니 혁명의 씨앗이 된 것입니다.
그러자 1603년 부터 260여년간 일본을 통치해온 도쿠가와 막부는 1864년 200여개 번에서 15만
대군 을 동원해 침공하자 4천 조슈번은 항복하니...... 사쓰마번의 사이고 다카모리는
7명의 중신을 사형시키고 다수를 투옥하면서 조슈번은 온건파가 집권해 막부에 양순해 집니다.
그러자 90명 쇼카 손주쿠 졸업생들이 움직이니.... 다카스키 신사쿠는 시모노세키 북쪽 고잔지
절에서 80명으로 거병하니, 말씀하신 일본 육군의 교황 야마가타 아리토모 등은
참가를 거절하는데..... 반란군 80명은 1차로 조슈번병 4천과 싸워야 하고 2차로는
1866년 도쿠가와 막부의 2차 정벌 10만 대군과 싸워야 하니 "승산이 전혀 없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저 맹자를 강의한 요시다 쇼인은 “군자는 자기 잘린 머리가 도랑에 굴러다니는 것을 꺼리지 않고
죽어야 할 때를 알아야 한다” 는 말을 했는데... 이토 히로부미는 부하 30명을 이끌고 참전했으니
총 80명은 시모노세키를 점령하고 군함을 탈취하자 망설이던 야마가타 아리토오가 합류해
300명으로 불어난 반란군은 하기시로 쳐들어가서 3천명 조슈군을 격파하고는 조슈번을 접수합니다.
그러자 도쿠가와막부는 200개 번에 영을 내려 10만 대군을 동원해 1866년 5개 방면으로 진격하는데 그 전에
도사번의 사카모토 료마는 철천지 원수지간인 조슈번과 사쓰마번(가고시마현)을 화해시켜 비밀동맹을
체결해 사쓰마번 이름으로 나가사키 영국상인에게서 신식총과 대포를 구입해 비밀리에 조슈번에 인도합니다.
1866년 2차 정벌은 쇼군 도쿠가와 이에모치가 직접 출전했는데 5개 방면중 해군으로 하기시를 공격하기로
한 사쓰마번이 막부를 배신했고... 북규슈 고쿠라성에는 2만명 번병이 모였으니 저 야마가타 아리토모
는 다카스키 신사쿠의 1함대와 사카모토 료마 2함대의 함포 사격 지원이 있었다손 치더래도, 불과
1천명으로 적전상륙 돌격해 한달여 전투에서 2만명 고쿠라성을 함락하니 그 충격으로 쇼군은 병사합니다.
1868년 조슈번은 사쓰마번과 히제번에 도사번을 끌어들여 5천명으로 교토를 손에 넣자 도쿠가와
막부는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1만 5천으로 교토 동쪽에서 혈전을 벌이는데 결국
조슈군이 승리해 도쿄로 진격하고 멀리 홋카이도 하코다테 까지 처절한 혈투를 통해 승리합니다.
5천명 반란군이 1만 5천 정부군을 이긴 비결은.... 나가사키에서 영국제 최신식 무기로 무장한 반란군
의 화력이 프랑스의 지원을 받은 막부군 보다 월등했고, 두 번째는 조정을 움직여 천황(일왕) 의
어기(御旗) 를 전쟁터에 내걸자 반란군은 관군이 되었고 정부군은 역적이 되었으며..... 무엇
보다도 신정부군(조슈군)은 목숨을 걸고 싸운 반면에 막부군은 그런 사명감이 없었기 때문으로 봅니다.
1894년 동학 궐기시 4천명을 이끌고 인천에 상륙해 서울에 무혈 입성해서는 경복궁을 공격해 고종을 포로로
잡고 조선군의 항복을 받은후 아산과 평양의 청군을 격파한 아베 신조 총리의 외고조부 오시마 요시마사,
김홍집 친일내각을 세워 갑오개혁을 실시해 양반과 상놈 신분제도를 폐지하고 노비를 해방시키고 천민제도
를 철폐하며 500년 내려온 과부 재혼 금지제도를 폐지한 이노우에 가오루가 하기시 쇼카손주쿠 출신 이지요?
이노우에 후임으로 1895년 대원군을 가마에 모시고 경복궁으로 쳐들어가서 훈련대 우범선등 3명의
대대장이 인솔한 천오백명 조선군을 경복궁에 들여 시립시켜서 일본군의 호위로 삼고
명성황후를 시해한 미우라 고로, 그리고 이토 히로부미, 아라스케, 마사타케 3명 통감과
마사타케와 요시미치등 조선 총독과 데라우치등 조선 주둔군 사령관등 모두가 조슈번 출신들이라?
저는 오랜 역사와 높은 수준의 문화를 지닌 조선이 망했다는 사실 보다는 전쟁, 아니 단 한번의 공식적인 전투
조차 없이 서류상으로 망한게 원통하고 분합니다. 1453년 동로마 비잔틴 제국이 망할 때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몇 명 친위대와 함께 말을 타고 오스만 투르크 진영으로 돌격해서 시신이 걸레 처럼 찓어져 죽었지요?
고종 황제께서 조정회의를 주재해 조선군에 돌격 명령을 내린후 친히 말을 몰아 일본군 진영으로
돌격해서 장열히 전사하셨더라면.... 아니 그런 용기가 없었다면 병조에 명해 공식
작전명령서를 발급하고 조선군을 일본군에 돌격시켜 패해서 망했다면 속이라도 후련하겠습니다?
아니 그조차 어렵다면 조선군 어느 연대장이 상부의 지시를 받지 않은채 자신의 결정으로 돌격했더라면,
아니 그 조차도 어렵다면 조선군의 어느 한 대대장이 독단으로라도 장교와 병사들을
모아 의지를 밝힌후 대대 병력을 이끌고 적진으로 돌격해 분사했더라면.... 다 부질없는 망상인가 합니다!
그럼에도 오늘날 한국은 1인당 GDP 가 전세계에서 30위에 이르고 인구수를 곱한 총 GDP 는 세계 12위에
달하며 OECD 회원국으로 세계의 리더국가 이고, 욘사마에서 시작된 한류(韓流) 는 파리와 로마에
3만명이나 모여 말춤을 추게만든 싸이를 거쳐 방탄소년단에 이르러 전세계를 휘어잡으며.... 세계인
들은 한국 전자제품과 반도체 그리고 화장품과 비빔밥에 열광하니..... 우린 한국인인게 자랑스럽습니다.
하지만 이제 더 큰 문제는..... 외신은 한국이 장래에 없어져 소멸할 나라로 보네요? 출산율이 2.1은
되어야 인구가 유지되는데 미국은 1.9 프랑스는 1.7이고 일본은 1.4인데 비해 한국은 0.7이라....
이런 수준으로 가면 70년 후에는 대한민국은 인구 400만의 소국이 되어 군대 유지도 어렵고
100년이 되면 100만명 그리고 그 후에는 없어져 소멸할 나라라니 이게 참으로 큰 문제인가 합니다?
대안은 동남아인이나 아프리카인 이민을 받아 주어야 하지만 이게 어려운게 우린 단군의 자손으로
단일민족이란 의식이 강하니 배타적이라 어렵습니다. 몇년전 예멘 난민 400여명이 이민 신청을
하자 반대 데모로 나라가 뒤집어졌는데, 프랑스는 심사 통과율이 50% 나 되지만 한국은 3% 로
극히 인색한데도 국민들은 절대 받아주면 안된다며 데모했으니.... 경제난민은 안된다는데, 과거
한국인들은 먹고 살기 어려워 중국땅 만주로 150만명이나 넘어갔던 사실은 잊어버린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