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카카오톡에는 청주에 있는 어느 굿당의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울긋불긋한 치장을 한 신상(神像)들이 눈을 부릅뜨고 있는 사진이었다. 금빛으로 잘 닦인 촛대와 향로가 놓여있고, 백지로 만든 무구들과 부처님 모습을 그린 큰 탱화가 걸려 있는 넓은 방의 모습도 보내왔다. 그곳은 실제로 무속인들이 굿을 하는 굿당인데, 남편은 그곳에서 2박 3일을 동행들과 함께 지낼 것이라고 했다. 나 같으면 꿈자리가 뒤숭숭하여 잠이 올 것 같지 않은 분위기인데도 남편은 아늑하고 좋다고 했다. 무당굿을 할 때 음식을 장만하는 분이 그곳에서 식사를 준비해 주시는데 음식 솜씨가 좋아 밥도 맛있다고 했다. 남편은 그 굿당에서 2박 3일 동안 동해안 별신굿의 장단을 배우고 왔다.
골프채 재료로 만든 장구채와 마우스패드를 덧댄 장구 받침대
일월천신을 모신다는 청주의 굿당에서 돌아오면서 남편은 30센티 남짓의 까만 막대기 하나를 들고 왔다. 그러고는 레고를 조립하느라 며칠 만에 돌아온 아빠를 보고도 그저 저 할 일에만 몰두해 있는 작은 아이를 붙잡고 신이 나서 얘기를 한다.
“정원아, 이거 봐라. 되게 가벼운데 두드리면 쇳소리가 난다. 신기하지!”
그 막대기는 골프채의 샤프트(머리와 손잡이를 잇는 기다란 부분) 부분을 토막 낸 것이었다. 남편은 그 물건을 ‘열수축튜브’라고 불렀는데, 골프채의 재료로 매우 가벼우면서도 단단한 신소재라고 소개를 했다. 나중에 인터넷을 찾아보니 그 물건은 그라파이트(graphite)라는 것으로 가볍고 단단한 탄소계 물질의 신소재였다. 그걸 왜, 어떻게 구해왔느냐고 물을 새도 없이 남편은 또 다시 신이 나서 얘기를 하였다. 동해안별신굿 악사들은 우리가 흔히 보는 장구와는 다소 다른 모양의 장구를 사용한다.
일반 풍물장구보다는 통의 지름과 길이가 작고, 장구통을 만드는 목재도 다르다고 하였다. 이런 장구는 일반 국악기사에서는 쉽게 구할 수가 없는데, 악사들은 자기 팀들 외에는 그 장구를 어디서 만드는지조차 알려주지 않는다고 하였다.
< 동해안별신굿에서 사용하는 장구> <골프채 재료로 만든 궁채와 일반 열채> [
동해안별신굿의 궁채는 일반 풍물굿 장구채와 다르게 생겼다. 쥐는 방법도 다르다. 남편은 중요무형문화재 82-가호 장구 예능보유자이신 김용택 선생님께 장단을 배우고 왔다. 그러고는 김용택 선생님의 장구채 얘기를 하였다. 김용택 선생님의 궁채가 바로 그라파이트로 만들어졌다는 것이었다.
엥? 뭔가 말의 맥락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동해안별신굿, 악사, 장구채, 그라파이트, 골프채 손잡이, 최첨단 신소재. 단어들을 이렇게 늘어놓고 보니 더 어색했다. 아무튼 김용택 선생님의 궁채는 골프채 재료인 그라파이트로 만들어졌다. 거기에 덧붙이는 남편의 말이 또 재미있다.
무당굿의 악사들은 악기를 매지 않고 앉아서 앉은반으로 연주를 한다. 이때 장구를 바닥에 놓고 양손으로 치다보면 장구가 이리저리 밀리게 되는데 이걸 방지하기 위해 장구 받침대를 괴기도 한다.
그런데 김용택 선생님의 장구 받침대에는 특이한 점이 있다고 했다. 장구 받침대의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서 받침대 아래에 컴퓨터를 사용할 때 쓰는 마우스패드를 덧대어 붙여놨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놓으면 미끄러운 장판 위에 장구를 놓고 쳐도 장구가 밀리지 않는다고 하였다. 장구 받침대와 마우스패드라. 한번 더 어색했다.
골똘하게 살피면 새로운 것이 보인다
장구채는 나무, 실, 헝겊, 가죽 등의 재료를 사용해 만든다. 열채는 대나무를 쪼개어 깎아 만드는데 궁채에 비해 방법이 간단하다. 궁채는 탱자나무처럼 단단한 나무를 작고 둥글게 깎아 구멍을 뚫고 거기에 대나무 뿌리나 시누대와 같은 질긴 재료로 대를 끼운다.
이 대의 끝부분 손잡이 할 곳에 헝겊과 실을 단단히 감은 다음 그 위를 가죽으로 덧씌워 손잡이를 마무리한다. 이러한 수작업을 통해 장구채 한 벌이 완성된다. 사용하는 재료와 만드는 과정이 참 자연친화적이다. 그리고 전통이라는 인상과 그럴듯하게 잘 어울린다. 동해안 별신굿에서도 골프채를 만드는 신소재를 알기 전까지는 앵두나무를 사용했다고 하였다.
타법의 특징상 궁채의 탄성이 적으면 적을수록 좋기 때문에 일반 궁채에서 사용하는 대나무 뿌리나 시누대는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앵두나무도 완벽한 재료는 아니었다. 앵두나무 장구채는 오래 사용하다보면 질긴 섬유처럼 엉켜있던 나무의 결이 터져서 장구채가 너덜너덜해졌다. 앵두나무 장구채에 그런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았으니 아마도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악사들은 고민했을 터였다. 그러다가 발견한 것이 첨단 신소재인 탄소계 물질 그라파이트였다. 일월천신 굿당에서 함께 장단을 배웠던 그 구성원들은 모두 김용택 선생님 장구채의 비밀을 공유하게 되었다. 그리고 십수 년간 남편과 함께 굿을 쳐왔던 행동 빠른 선배 한 명이 지식을 바로 실천으로 옮겼다.
아는 친구들에게 수소문해서 당장에 낡은 골프채를 하나 구해왔고 그 골프채는 곧바로 인정사정 없이 토막내졌다. 남편이 집에 들고 온 까만 막대기는 그 토막들 중 하나였다. 남편의 얘기를 쭉 듣다가 보니 동해안별신굿의 악사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전라도 굿쟁이들도 다양한 재료로 악기채를 만들어 썼던 것 같았다. 정읍의 장구잽이로 활동하다가 말년에 임실 운암면에서 살다 생을 마감한 신기남의 구술 자료에서 다음의 내용을 봤던 것이 생각났다.
참 우리 선생님 장구채는 다른 장구채하고 틀려. 쇠뿔을 둥그렇게 깎어 갖고는 거그다 자전차 쥬브(튜브)에 달린 레지 있지? 바람 넣을 때 쓰는 레지 말이여, 구녁 뚫어진 거. 그놈을 줄로 쓸어서 말여, 그 속에다가 쇠뿔을 찔러 갖고 가죽으로 자리 딱 혀 갖고 치며는, 아무리 거시기헌 장구도 장구 복판이 옴속옴속 들어가. 그냥 많이 치면, 그렇게 실허게 장구를 치는 양반여, 그 양반이.
신기남의 “우리 선생님”은 설장구놀이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는 정읍의 장구잽이 김홍집을 말한다. 그는 무계 출신인데, 장구를 하도 잘 쳐서 ‘장구 귀신’으로 불렸던 사람이다. 신기남의 구술에서 얘기하고 있는 “자전차 쥬브에 달린 레지”가 무엇인지는 정확하게 잘 모르겠지만, 하여튼 김홍집은 장구채를 만들 때 자전거 부품을 사용했나 보다. 그러고 보니 요즘 사용하는 상모를 보면 ‘전통’이란 말과 어울리지 않는 재료들이 많이 사용되는 것 같다.
합성섬유를 소재로 한 벙거지에 나무를 깎아 만든 진자를 고정시킬 때에는 볼트와 너트를 사용하기도 하고, 플라스틱 구슬로 된 적자에다가 기계로 실을 꼬아 만든 물체를 연결시킬 때에는 자전거 바퀴 살대에서 착안한 부품을 쓴다. 예전에는 물체 끝에 달아매는 생피지로 한지를 사용했지만 이제는 물에 닿아도 찢어지지 않는 합성섬유를 쓴다. 부포 재료로 쓰이던 칠면조 털은 이제 표백한 수입산 타조털이나 이름도 생경한 ‘외쿡(?)’ 새의 깃털로 대체되었다. < 채상모의 진자, 적자, 물체>
< 종이에서 합성섬유로 대체된 채상모의 생피지>
그라파이트 막대를 들고 한참을 설명해대던 남편은 집 한구석을 어지럽히며 한참을 조용히 웅크리고 있었다. 그 모습과 진지함이 레고를 조립하고 있던 둘째 아이와 참 닮아있었다. 손재주 좋은 남편은 그렇게 장구채 하나를 뚝딱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라파이트 장구채를 바라보며, 내가 그 남자랑 사는 동안 몇 번밖에 볼 수 없었던 참으로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 후로 한동안 그 남자는 집에서도 그 장구채를 놓지 않았다.
발견하고 해결하는 힘, 창의성
지난 2학기가 끝날 때쯤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던 동영상 하나를 보았다. ‘현대카드 슈퍼토크 04’ 중 “창의력은 자두다”라는 제목을 단 박웅현의 강연이었다. 따랑따랑 울리는 자전거 벨소리 뒤로 나지막한 남자의 목소리가 “그녀의 자전거가 내 가슴 속에 들어왔다”고 말하던 광고가 있었다.
이 광고는 20살쯤의 나에게 한동안 괜한 설렘을 주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광고를 만든 사람이 박웅현이었다. 현재 그의 직함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다. 박웅현은 이 강연에서 “시이불견(視而不見) 청이불문(聽而不聞)”을 얘기했다.
보고 있지만 보지 못하고 듣고 있지만 듣지 못한다는 이 말은 즉, 잘 보고 잘 듣는 일의 중요함을 강조하는 거였다.
깊이 있는 통찰만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창출하며, 유심히 보고 듣는 일이 창의성의 원천이라는 점을 말해주고 있었다.
나에게는 박웅현의 이 말이 그라파이트 장구채와 마우스패드 장구받침대, 자전거 부품을 사용한 상모에도 적용되는 것 같았다. 뭔가 흥미로운 것이 생겼을 때에만 말이 많아지는 남편이 언젠가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풍물굿을 가장 혁신적으로 만든 사건 중에 하나가 ‘상모의 발명’일 것이라고, 그거 만든 사람 참 창의적이지 않느냐고 말이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정말 그렇다. 언제쯤 어떤 이가 도대체 무슨 의도로 종이나 깃털을 정수리 끝에 매달고 뱅뱅 돌릴 생각을 했을까?
그리고는 유치환의 시 ‘깃발’ 중 ‘아아 누구던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이란 대목이 생각났다.
“아아 누구던가? / 이렇게 깃털과 긴 종이떼기를 / 모자에 붙여 뱅뱅 돌릴 줄 안 그는!!”
<창의성에 관한 박웅현의 강연 중에서> |
첫댓글 앵두나무 장구채...
어떻게 만들까....
나무는 지난 초 봄에 구하여 놓았는데.
생각이 나서 검색하였더니
이렇게 좋은 글을 볼 수 있었음.
인터넷 구글 검색이..참 좋으네요.
앵두나무를 사용하는 이유가..
앵두나무 열매가 많이 열리자나요
다산..의 상징적인 의미랍니다.
그라파이트 제조 공정
그라파이트 :
금형과 원단을 설계한다(2~5축 교직 방식이 여기서 나온다) →
여러 층의 카본(탄소) 원단이 롤링기로 말린다 : 두께 0.1mm 원단 10장을 말던 것이
0.05mm 20장을 마는 공법이 나오는 등 무게, 강도 등에서 세부 스펙이 가능해졌다. →
랩핑(테이핑): 화로에서 수축되면서 기포가 빠진다 : 토크가 줄어든다 →
화로에서 성형(Curing)을 거쳐 에폭시 소재가 단단하게 굳는다 →
탈심(Extraction) : 화로에서 성형된 샤프트는 금형(맨드릴)과 분리 →
절단 → 팁 크기에 맞춰 갈기: 사상(Grinding) → 표면 처리: 연마(Sanding) →
강도 검사 → 도장(Painting) → 인쇄(Silk Screen) → 최종 검사
스틸 : 핫 코
스틸 : 핫 코일이 원자재다 → 롤러 통과 → 튜브 용접으로 둥글게 접합 →
잡아늘인다 → 화씨 1600도 화로를 통한 열처리로 강도와 경도 높인다 →
니켈전기 도금과 크롬 도금으로 완성한다.
오늘 집 옆 아파트 화단으 앵두나무 가지 2개를 잘라 왔음둥
경비아재하고는 안면이 있던 터라....
이야기를 하고..
두 개..잘라다 놓았음둥.
마르면..만들어야지.
만들어서 하나는 샘 주고 하나는 내가 하고.하나는 먼저 동자 님 드렷고.
그 하나..내가 했든거...는 조정순씨에게 줬음.
다시 행두나무를 ...원전...정총무..거시 집 나무 잘라 놓은거...
다듬어 놓았음..앵두,,거시기 만들려고
두개 다시 만들어 놓았으나 손잡이 부분..남아있음.ㅠㅠ
아직 몬 만들고...아니..안 만들고 있음..
누구에게 주어야할 목표가 없으니까..ㅠㅠ
@마산덕구. 이거 만들어서 누구 줬드라 ??
생각이 안나네요..ㅠㅠ/ ㅠㅠ/
으으이그...ㅠㅠ
@마산덕구1 심불사에서 잘라온 / 동지 때 /
앵두나무로..궁채 만듦
동자 드려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