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선생님! 초록이 김순화입니다. 음악저널 2월호에 지난번에 출시한 한국가곡앨범 ‘벚꽃 핀 날에’에 대한 제작과정과 한국가곡 작시가로서의 오두영 시인의 전반적인 음악인생을 풀어보고자 인터뷰를 의뢰하오니 협조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참고해 답신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선생님의 프로필 사진을 포함한 음악활동 사진 5매를 보내주세요) (Q1) 지금까지 시인 오두영님은 한국가곡계에서 어떤 작시가였습니까?
(A1)나의 시문학 공부 /敎山 吳斗泳 (아래 글을 요약 발췌해서 쓰세요.)
내가 한국가곡계에서 어떤 작시가였는가에 대한 답은 할 수 없습니다. 단 한가지 독자들이 공감하고 감동하는 시를 쓰 수 있다면, 시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발전과 함께 날로 각박해지는사람들의 정서를 순화하고 건전한 사상과 올바른 정신을 함양하게 된다는 것 과 한편의 시가 작곡가에 의하여 시에 날개를 달고 훌륭한 성악가에 의하여 노래로 불려진다면 국민정서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으리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시와 노래는 그 예술성의 뿌리가 한뿌리이기 때문입니다.그러므로 먼저 시를 공부하게 되었고 내 시가 한국가곡학회를 통하여 가곡으로 노래로 불려지게 된 것에 긍지를 가지게 되었고 내게는 큰 자랑이요 영광입니다. 따라서 나는 인생의 황혼기에 빛을 발하는 시인으로서 누구보다도 젊게 살고 있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하겠습니다.
이제,나의 시문학공부과정을 이야기 하겠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내 스승이 될수 있습니다. 논어에 세 사람이 걸어가면 그중에 반드시 스승이 있다 하거니와 내가 손꼽을 수 있는 스승님 중에 내가 처음 만난 분은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류달영 교수님이십니다. 1950 년에 류달영 선생님이 집필하신, 저서 "새역사를 위하여"는 덴마크부흥의 역사를 서술하신 글인데. "한국은 농촌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라는 말씀을 유려(流麗)한 문장으로 엮으신 것입니다. 내 젊은 날의 가슴을 뛰게한 이 책은 류달영 선생님의 교육학 강의시간 첫날에 이 책을 소개하시며 강의 하셨고 그밖에 미국의 실용주의 철학자 죤. 듀이의 교육철학과 미국시인 롱펠로우의 詩와 영국시인 토마스. 칼라일의 "오늘"이라는 시와 그밖에 세계적인 석학들의 사상과 생애도 류달영 선생님이 강의 해 주셨지만, 류선생님은 매시간 강의 하실 때마다 국내외 유명한 시인들의 시를 인용해서 강의하셨습니다. 예를 들면 미국의 롱펠로우의 "인생찬가",또는 "화살과 노래"등을 인용하여 인간의 삶의 가치와 교육자가 지녀야할 기본정신등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화살과 노래
시/헨리.W.롱펠로우
내가 창궁(蒼穹)을 향하여 살을 쏘았다. I shot an arrow into the air, 그 살은 너무도 빨리 날아서 It fell to earth,I know not where; 나의 시력은 따라갈 수가 없었다. For, so swiftly it flew, the sight 정녕히 땅위에 떨어졌으련만 could not follow it in its flight. 화살의 간곳을 나는 알길이 없었다.
내가 창궁(蒼穹)을 바라고 노래를 불렀다. I breathed a song into the air, 저 빠르고 예민히 흘러가는 노래를 It fell to earth,I know not where; 뉘라서 능히 따라가 잡을 수 있으랴 For who has sight so keen and strong, 그 노래도 정녕히 땅위에 돌아왔으련만 that it can follow the flight of song? 노래의 간곳을 나는 알길이 없었다.
오랜 오랜 훗날에 Long, long afterward, in an oak 상수리나무 큰 줄기에서 I found the arrow still unbroke; 아직도 꺾기지 않은 화살을 and the song, from beginning to end, 아, 나는 다시 찾아 내었다. I found again in the heart of a friend.
오랜 오랜 훗날에 나의 부른 그 노래도 첫절로부터 내가 부른 그대로를 나는 친구의 가슴속에서 아, 나는 다시 찾아 내었다. ................................................................
*위 시에서 '내가 쏜 화살과 노래는 먼 훗날에 다시 찾아내었다.'라는 것처럼 내 젊은 날에 열정을 바쳐 일 한 것은 결코 헛되지 않은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각설하고,나는 "새역사를 위하여"~라는 류달영 교수님의 책을 숙독하였고 내 일생을 농촌운동에 몸 바치고자 결심하게 한 동기가 되었습니다.
두번째 만난, 내 인생에 가장 깊은 감명을 안겨주신 분은 함석헌 선생님이십니다. 내가 농과대학 1학년에 입학 때, 1953년 4월 어느 날, 농과대학 류달영 교수님의 초청으로 함석한 선생님의 강연을 농대강당에서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함석헌 선생님은 하늘<天>자, 한 글자를 칠판에 쓰시고 장장 두 시간을 곳곳하게 서신 채로 열강을 하시는데... 나는 감동으로 가슴속 눈물을 흘리며 깊숙히 함석헌 선생님의 말씀에 빠져 들었습니다.
그 날 이후,매주 토요일 오후 2시부터 함 선생님이 서울 YMCA강당에서 강연을 하시는데, 나는 군에 입대하기 전까지 2년간 수원에서 매주 토요일마다 서울로 함석헌 선생님의 강연를 들으러 다녔습니다. 내가 군에서 제대한,1958년 봄에는 함 선성님에게 편지를 보내드리고 함 선생님이 경영하시는 천안 <씨알농장>에 가서 <봄>부터 <가을> 추수가 끝날 때까지 함선생님을 모시고 농장일을 하였습니다. 함석헌 선생님의 저서"뜻으로 본 한국역사"는 내 일생 동안 가장 큰 감명을 받은 책입니다. 한국의 젊은 이라면 누구나 한번은 읽어야 할 책이라 하겠습니다. 그후, 내가 함선생님의 시집-<수평선 너머>-를 늘 끼고 다니며 즐겨 읽었으며 2014년 말, 나는 함선생님의 시,"마음에 붙이는 노래"를 너무 좋아하여 저작권 문제가 있으므로 함석헌 선생님의 아드님 함우영님으로부터 작곡해도 좋다는 승락을 받고 작곡가 신귀복선생님에게 작곡을 의뢰하여 2015년 1월초 신귀복 선생님으로 부터 작곡이 완성되었고 테너,하만택님이 그곡을 녹음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마음에 붙이는 노래
/ 함석헌 세상이 거친 바다라도 그 위에 비치는 별이 떠 있느니라 흔들리는 조각배 같은 내 마음아 너는 거기서도 눈 떠 바라보기를 잊지 마라
역사가 썩어진 흙탕이라도 그 밑에 기름진 맛이 들었느니라 뒹구는 한 떨기 꽃 같은 내 마음아 너는 거기서도 뿌리 박길 잊지 마라
인생이 가시밭이라도 그 속에 으늑한 구석이 있느니라 쫓겨가는 참새 같은 내 마음아 너는 거기서도 사랑의 보금자리 짓기를 잊지 마라
삶이 봄 풀의 꿈이라도 그 끝에 맑은 구슬이 맺히느니라 지나가는 나비 같은 내 마음아 너는 거기서도 영원의 향기 마시기를 잊지 마라
信天翁 咸錫憲 선생님^^* *-------------------------------------------------* 세번째 만난 스승님은 2003년 초,내 나이 70세 때 서울 '관악문학아카데미'에서 만난, 젊은 시인 박수진 선생님 이십니다. 나는 군에 있을 때 중공군과 맞닥드려 육박전도 치르고 1963년 3월 농협지도원(개척원)으로 취직하여 농촌운동을 펼칠 때도 정의감과 신념으로 농촌운동을 하는 동안 5.16.후에 군에서 농협으로 들어온 군출신, 장교 상사들의 부정과 부조리를 보면,참아내지 못하고 상사들에게 대들고, 농촌의 위해 존재하는 각기관 공무원들과도 설득해서 듣지않으면 그들과도 싸움 잘하는, 열혈 청년으로서 성격이 급하고 거친 편이었습니다. 그랬는데 지금도 그성격을 버리지는 못했지만, 박수진 시인 선생님으로 부터 시문학을 공부하는 동안, 나 자신의 성격이 많이 부드러워졌다 하겠습니다. 그 때부터 나는 남의 이야기를 들을 줄아는 사람이 되었다고 하겠습니다.
내가 '관악문학아카데미'에서 박수진 선생님의 문학 강의를 듣던 첫해 (2003년) 가을에 내 시,<상사화>와 <벚꽃 핀 날에>-두편의 시를 박수진 선생님께서 [시사랑 ]문학지에 보내서 처음으로 문단에 내 시가 등재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문학지에 내 글을 보내는 일은 차마 부끄러워 보내지는 못했다.더구나 내詩가 노래로 작곡되는 일은 생각도 못하고 있었는데 박수진 선생님께서 한국가곡학회에 내 詩- "벚꽃 핀 날에" 를 보내주셨고 이태리에서 학업을 마치고 귀국한 젊고 유능한 작곡가 정애련님이 한국가곡학회 소속으로 있으면서 그 "벚꽃 핀 날에"를 작곡해 주셨습니다. 또한 내 시,"가을 밤의 노래"는 작곡가,김애경 선생님이 작곡해주셨고 KBS -(FM93.1mh) 라디오 '정다운 가곡'으로 방송되기도 했지요. 2015년 1월5일 내 시,"나 하늘로 돌아갈 때" -신귀복 작곡가 선생님이 쓰신 곡이 바리톤 송기창님의 노래로 KBS-(FM93.1mh) 라디오 '정다운 가곡'으로 방송되었습니다.
이처럼,박수진 선생님을 만나서 박수진 내외분의 도움으로 내 詩가 가곡으로, 또는 동요로 작곡되기 시작 하었고 벚꽃 핀 날에"-CD1집에 19곡이 수록된 동기가 되었습니다.
박수진 시인 선생님과 사모님-작곡가 김애경 선생님과 나.^^*
(A2-1) 내 시곡 20 여편을 앨범으로 제작한 동기는 시인이 여려편의 시를 쓰고 발표를 했다면 그 시들을 묶어서 한권의 시집을 내는 것과 별반 다름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내 시를 작곡해주신 분들의 음원이 여기저기에 흐터져 있다면 당연히 내 시를 문집으로 냈듯이 한권 CD로 묶어 내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Q2-2)그동안의 작업에 대한 정리일 수도 있고, 아니면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 같은 것일 수도 있고, 자기 확인 같은 것일 수도 있듯이 말입니다.
(레퍼토리나 전체적인 구성은 어떻게 되고, 그렇게 정한 배경?)
(A2-2) 레퍼토리나 전체적인 구성은 "벚꽃 핀날에"CD목록과 같이 계절별로 구분했고 동요는 별도로 첨부했습니다. 그렇게 정한 배경은 비록 한권의 CD로 만들 때 음반 제작을 담당하신 한성훈 작곡가님의 편집에 따른 것입니다.
(q3) 한국가곡사에 기여한 음반 출시는 오두영 시인의 삶에 어떤 의미를 갖고 있습니까?
(A3) 내 시곡을 CD로 편집 출판한 것이 과연 한국가곡사에 기여한 점이 있느냐는, 그점에 대해서는 나 자신 모른다할 수 밖에 없습니다. 다만 작업한 것을 정리한 것일 뿐이라고 하겠습니다. 2015년 1월말 현재 내 CD 1집 출반 후,새로이 가곡으로 된 시곡이 12편이 되어서 또한 새로운 CD로 출반할 것이므로 한걸음 더 전진하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A4) 앞으로 작시가로서의 활동계획이라면 내 나이 70세부터 시문학을 공부해 오기, 올해로 12년째 82세인데,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 시문학을 공부하는 일밖에 더 있겠습니까. 내가 詩를 쓰면서 '좋은 시'라고 어느 작곡가 선생님께서 .내 시에 날개를 달아주시고, 어느 훌륭한 성악가님이 노래를 불러주시면 더 할나위 없이 기쁜 일이므로 감사합니다.
이에 나의 애송시 한편 올리겠습니다.
If I can... 만약 내가... 詩/에밀리 디킨슨(1830~1886).미국 (Emily Elizabeth Diickinson 1830~1886)
If I can stop one heart 만약 내가 한 사람의 가슴 앓이를 from breaking, 멈추게 할 수 있다면, I shall not live in vain; 나 헛되이 사는 것은 아니리.
If I can ease one life 망약 내가 누군가의 아픔을 the aching, 쓰다듬어 줄 수 있다면, or cool one pain, 혹은 고통 하나를 가라앉힐 수 있다면,
or help one fainting robin 혹은 기진맥진 지친 한 마리 울새를 onto his nest, 둥지로 되돌아가게 할 수 있다면, I shall not live in vain. 나 헛되이 사는 것은 아니리.
오두영 드림.
(q5) 오두영 시인의 프로필을 자세히 소개해주세요. (풀어쓰는 프로필 내용으로 6줄 정도)
*계간.시 전문지<시세계> 2003.(겨울호)등단 *월간,<문예사조>2007.(1월호) 시조부문 등단 *현)도산아카데미.연구위원 *현)함석헌선생기념사업회 회원 *현)관악문학아카데미 회원가족 * 전)관악문화원고문 역임 *전)농협전문대학 교수역임 @저서: *시집{영혼의 은빛수첩}한국문인협회[월간문학]출판부(2008년6월)-외 4권 발행 *기타 동인시집- [인헌문학]지 '관악문화원'발행 (외) 다수. @오두영 시,가곡 및 동요모음19곡 CD(1) 발행 *오두영 시,가곡 및 동요모음-12곡 CD(2)- 2015년 4월 발행 예정입니다.
오두영(1934년생) *2013.11.16.교산 80세및 결혼60주년기념 음악회 사진 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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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70나이에 시 공부를 시작하셨고, 한참 나이어린 분을 스승으로 모시는 교산선생님의 진실한 마음에 존경심이 갑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저 자신을 돌아보며 반성하고. 스스로를 격려해봅니다.
윤초화 시인님^^*나이 젊은 분을 스승으로 모시는 일은 큰 문제는 아닙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님이 19세 때 평양 모란봉 쾌재정에서
1919년 만민 공동회에서 "이 나라 망하게 한자 누구냐? 나는 나자신이라는 말씀을 듣고
남강 이승훈님은 나이 40이 넘으셨는데도 안창호 선생님에게 찾아가 머리에 상투를 자르고
평안도 정주에 오산 학교를 설립해서 많은 애국지사를 배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30세 젊은 날에 나이 많은 베드로를 제자를 삼으시고 전도하셨답니다. .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는 워드워드의 시도 있거니와 아이들에게도 배울 점이 있거든 하물며 훌륭한 시인은
만인의 스승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감사합니다.^^
교산선생님 축하드립니다 황혼을 아름답게 수놓으시는 시인님,건강이 허락할때까지 시어를 놓지마세요
네~! 초록이 김순화님이 <음악저널> 2월호 잡지를 보내주셨군요.
시문학공부는 내 마지막 일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