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감사합니다
저희 어머니는 저를 "불같다"고 하셨습니다.
저게 장가들고 싶어하던 청년이 처음 어머니를 뵈러 왔을 때도 어머니는 거두절미하고,
“이 애는 성질이 불같은데 괜찮겠어요?” 하셨습니다.
그때 청년이 무엇이라고 대답했는지 지금 그대로 옮길 수는 없지만 괜찮다고 했던 것 같습니다.
‘한 성질 없는 사람이 있겠느냐’고, 성질 값만 제대로 하면 괜찮다고 말했던 듯합니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다시 혼잣말처럼 “그래도 달래면 이내 가라앉아요.” 하셨습니다. 저는 어머니의 그 말씀을 들으면서 온몸의 기운이 모두 빠져나가는 듯한 낭패감을 느꼈습니다. 불이라면, 타올라 불꽃을 피워올려야 하지 않겠는가? 달랜다고 이내 가라앉는다면, 그런 불길로 도대체 무슨 일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런데 근심하시던 어머니가 마음에 자꾸 걸려서 그랬을까?
저는 그 후로 달래는 사람이 없어도 불같은 마음을 스스로 억제하고 다스릴 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도 무슨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면, 내가 불길을 너무 서둘러서 꺼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후회도 했습니다. 특히 시가 마음대로 써지지 않으면, 완전연소를 하지 못하고 억지로 눌린 채 검은 연기와 그으름만 피우다가 혼자 꺼져버렸을 제 안의 불길이 애석하고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오늘 수상하는 시가 <물의 표정>이라는 소식을 듣고 많이 놀랐습니다. 그렇지, 나는 오랫동안 물의 미덕을 칭송하는 시를 써왔지. 왜 그걸 잊었을까? 그들을 묶어서 시집 『강물연가』도 내고, 『물새에게』도 냈는데…, 영역시집의 제목을 『저녁 강가에서』라고도 했는데 왜 이제야 생각나는 것일까?
안개와 이슬과 비와 강과 바다, 물을 좋아했다는 사실을 깡그리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 이상했습니다.
조용히 정결하게 낮은 자세로 순종하는 물. 저는 마치 이제야 불을 극복한 후 수맥의 힘으로 일어나고 있는 사람처럼 힘이 솟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공초 선생님은 매우 자유로우셨습니다. 그분을 허무주의자라고 하는 의견도 있지만 저는 그 말에 동의하고 싶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공초空超라는 이름 그대로, 비우고 덜어내고 벗어남으로 오히려 세계를 소유한 듯 부유한 정신으로, 세상을 지배한 듯 늠름한 마음으로 사셨습니다. 선생님은 세속적 영욕이나 명리에 묶이지 않고, 절망과 고뇌까지도 포용함으로써 영원을 추구하셨습니다. 공초선생님은 거대하고 도도한 틀을 가지신 보기 드문 시인이셨습니다.
그동안 공초문학상을 받으신 분들은 한국 문학사에 큰 획을 그으신 훌륭한 분들입니다. 저는 지금 그 대열에 끼게 된 것이 기쁘지만 기쁨보다 더 큰 책임을 절감합니다. 아무쪼록 공초문학상의 가치와 품격에 어긋나지 않도록 저를 다듬어가겠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는 감사할 종목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먼저 32년째 공초문학상을 성심으로 운영해 오신 서울신문사와 공초숭모회를 맡아 헌신하고 계신 이근배 회장님께 존경과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제가 이번에 공초문학상을 받는다는 소식을 들은 문우들이 하나같이 공초문학상을 칭찬하였습니다. 제 생각에도 대한민국에서 매우 드물고 특별한 상인 것 같습니다. 심사가 끝난 후 시상식을 하는 이 자리에 이르기까지 그 과정들이 얼마나 진지하고 경건하고 아름다운지 수상자로서 큰 기쁨과 자랑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합니다. 수상할 후보자들이 많았을 것인데 그 중에서 제 이름을 불러 주신 선생님들, 선생님들의 부르심으로 제가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오늘의 이 감동을 오래오래 간직하겠습니다.
바쁘신데도 해야 할 일을 미루시고, 이해관계를 따지거나 먼 거리를 탓하지 않으시고 이렇게 축하하러 와 주신 분들. 존경하는 문학 동지들과 사랑하는 친지 여러분께 깊이 감사합니다.
앞으로 사는 날까지 여러분과 더불어 열심히 살고 싶습니다. 하루하루 풍성하고 뜨겁게 서로를 느끼며 살고 싶습니다. 그리고 중단없이 쓰고 싶습니다. 부디 오래오래 함께 계셔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2024년 6월 4일
이향아 올립니다.
-<그림은 daum에서 모셔왔습니다>
첫댓글 불을 극복하고 이제 수맥의 힘으로 일어나고 계신 선생님!! 축하드립니다. 여고시절 어린 저희에게도 그러신 것 처럼, 이순을 넘긴 저희에게 지금도 본이 되시고 나아갈 바를 보여 주시는 선생님! 가까이 계셔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시 한번 축하 드립니다.
첫댓글이네요. 시상식 날이 어서 지나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면 마음이 한가하리라고 생각했지요. 다녀가신 분들께 인사하는 일에도 하루가 더 걸리네요. 생각했던 것보다 잘 치른 듯하여 감사합니다. 이순을 넘겼다니 가슴이 덜컥합니다. 시간은 용서없이 골고루 자국을 남기고 지나가는군요. 신당동을 지나갈 때마다 목을 늘여서 라일락이 향기를 흔들던 교정을 내다봅니다. 이제는 그날의 흔적도 희미하고 초라한 교문의 한 기둥에 엉뚱한 이름이 씌어 있습니다. 지나갈 때마다 소중한 것을 빼앗긴 섭섭함이 더 커지기만 합니다.
금년에는 한국을 방문하겠다는 말을 나는 잊지 않고 있는데 벌써 6월로 접어들었네요.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서 위안을 삼습니다.
역대 수상자들을 보니 문단에 한 획을 그은 기라성 같은 분들이어서 놀랐습니다. 공초문학상의 권위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공초空超 라는 호가 시적이고 철학적이어서 매력으로 다가 옵니다. 축하 드리오며 건강하셔서 문학사에 더 많이 공헌해주십시오.
주최측의 진행 과정이 전에 받았던 어떤 상보다도 진지하고 품격과 마땅한 격식을 갖춘 것이었습니다. 그저 대한민국의 문학상 중의 하나려니 했는데 받으면서 기뻤습니다. 상은, 특히 문학상은 그래야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상금을 아무리 많이 준다고 해도 기분이 언짢을 수도 있는데 이 상은 상금은 적지만 긍지를 주었습니다. 이번에 하객들이 특히 많이 오셨다고 해서 그 또한 다행입니다. 답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선 수상을 다시금 축하드립니다. 불을 극복하고 수맥의 힘으로 일어난다는 표현이 자꾸만 되뇌어집니다. 수상소감이 매우 감동적으로 다가오네요
조훈 선생님, 감사합니다. 성질을 불같다고 걱정하시던 어머니는 가시고 물을 따라 흐르고 있는 저는 어머니를 좇아 흐릅니다. 물이 되어야 만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구룸으로 안개로 강물로 비로 다양한 모습으로 바꾸면서 다시 돌아오는 물이 좋아졌습니다. 조훈 선생님은 물처럼 삼천리를 흘러서 나무를 키우고 꽃을 피우시네요. 언제나 부럽습니다.
이교수님, 공초문학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 축하드립니다. 최근들어 가장 기쁜 소식이네요.
최근들어 가장 기쁜 소식이라는 말 감격스럽습니다. 기뻐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지상에서 기쁜 일이 별로 없었는데, 교수님의 공초문학상 수상 소식은 참으로 신선합니다.
감기 몸살로 많이 편찮으시다가 수상 소식을 듣고 매우 기쁜 소식이었겠습니다.
건강을 이유로 붓을 놓지 않고 꾸준하게 정진하시니 훌륭하십니다. 거듭 축하드립니다.
아프지 마시고 문학사에 더욱 공헌하시길 바랍니다.
누웠다가 소식을 들으니 기운이 좀 나기는 했습니다. 덕분에 더 빨리 일어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칭찬 받으면 울음을 그치는 아이처럼요.
다시 한 번 기쁨으로 축하드립니다. 마땅히 받으실 분이 받으셨으니 더욱 좋고, 그 상의 격이 높아서 더더욱 좋습니다.
무심코 지나다 보면 음으로 양으로 주위에 폐도 많이 끼칩니다.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인사를 제대로 갖추고 살려고 해도 자꾸 실례만 많이 하면서 살게 되네요.
축하드립니다.교수님
늘 건안하세요.
늦게나마 교수님의 공초문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