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취연합 40년사 편집을 하다보니
그냥 묻어두기 아까운 내용이 있어 몇 차례에 나누어 올려보겠습니다.
30년사에 들어있던 내용입니다만.... 목차 등 복잡한 내용 빼고 주 내용만 편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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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내용은 월간 「우표」 발행인 이자 2대 편집장이었던 고 김광재 씨가 1966년~1968년까지 월간 「우표」에 연재한 '한국우취문헌 순회' 내용 중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원문의 내용에는 문헌 이외에도 발행처와 관련된 다양한 내용도 포함되어있으나 지면 관계상 일부 정보만 발췌하여 편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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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우표문화
창간 : 1950년 6월 15일 / 부산우표동호기성회 / 편집인 : 강윤홍, 김한동 / 4×6배판(등사판)
이것이 아마 한국 최초의 우취문헌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최초의 문헌답게 비록 갱지에 등사판으로 되어 있으나 표지는 2색으로 되어있고, 등사체 글자나 컷 또한 내용도 최근에 나오고 있는 등사판의 책자들에 조금도 뒤지지 않은 훌륭한 것이다. 수량마저 희소한 것으로 아마 한국 우취문헌 중 가장 수집이 어려운 것이 되리라 믿어진다.
당시 단지 두 사람의 호주머니를 털었음에도 불구하고 등사는 한국 참전 기념우표를 그렸던 박문조 씨가 직접 등사판에 썼기 때문에 표지나 내용의 그림이 최근의 사진판에 못지 않다. 1950년 6월 창간 1년 후인 1951년 6월 21일에 3호로서 끝낸 이 명칭은 다음에 설명이 되겠지만 부산우취회 기관지 ‘우표문화’의 제명을 여기에서 얻었다고 전해진다.
창간호 표지는 청, 적 2색으로 2회 총선거 기념우표를 그대로 그렸고 무궁화로 표지를 예쁘게 단장된 8쪽이다. 편집상 갖출 것은 다 갖추어져 있어 표지 후면은 세모지, 판권까지 명시되어 있으며 인쇄소는 부산시 완월동 1가 35 해양프린트사(대표 박승용)로 세세히 설명되어 있어 활판인쇄의 훌륭한 책자이다.
창간하고 나온 지 2주 만에 6 · 25 전쟁이 일어나 피난민이 물밀듯 남하하고 결국 발간도 중단되다가 꼭 1년 만인 1951년 5월 1일에 2호가 발행되었다. 용지가 모조지로 되어 있다. 또 전체 15쪽에서 4쪽을 영문으로 할애하였음은 국외에다 한국 우표를 소개하고자 한 노력이 현저히 눈에 띄고 있다. 또, 흥미 있는 것은 북한의 우표를 소개하였고 등사판이지만 우표디자인을 그대로 그린 솜씨는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6·25 참전 우표의 디자이너인 박문조 씨의 솜씨를 보여주고 있다.
3호는 완전히 체재를 갖춘 책자로 나왔으나 이것으로 끝장을 낸 것에는 애석하게 생각한다. 2호와 연이어 1951년 6월 21일 발행되어 1주년 호라 칭하였다. 당시 전쟁 중으로 서울의 권위자 대부분이 부산으로 피난 갔기 때문에 2호, 3호는 부산의 지방지라기보다 한국의 우취지가 된 셈이었다. 그래서 내용도 훨씬 나아졌다. 그러나 지금껏 발행인이 두 사람이던 것이 전쟁으로 군에 가게 되어 강윤홍 씨 한 사람이 혼자서 만들어 냈다니 놀랄만한 일이다.
내용을 소개하면 권두언에서 ‘우정 당국자에게 아룀’이라는 건의를 썼고 구한국 우표 목록, 한국우표 목록으로 본격적인 수집의 체계를 세운 듯하다. 2호에 게재된 이미 작고한 김용택 씨에 이어 3호에는 피난 당시의 우표상의 생활을 잘 그린 고 송기주 씨의 ‘피난과 우표상’은 다음 호에 설명되는 활판인쇄의 ‘우표세계’에 다시 게재되었지만 모두 다시 읽을 수 없는 글들이다.
- 월간 「우표」 1966년 8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