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12/26
"우표에서 얻은 것이 학교에서 배운 것 보다 많다." - 프랭클린 D. 루스벨트
2010 - 줄기세포로 혈관형성 세포 분화 성공 한용만 교수팀 ‘블러드’ 게재 한용만(사진)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생명과학과 교수 연구팀은 26일 인간배아줄기세포와 역분화줄기세포에서 직접 혈관전구세포를 분화하는 데 성공해 이를 주입한 동물 체내에서 혈관이 형성함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연구성과는 미국 혈액학회지 <블러드> 16일치에 표지논문으로 게재됐다. 역분화줄기세포는 체세포를 거꾸로 분화시켜 인간배아줄기세포의 특성을 지니게 만드는 세포다. 연구팀은 인간배아줄기세포가 자가 재생산하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하는 신호전달체계를 조절해 줄기세포로부터 직접 혈관전구세포가 분화하도록 했다. 한 교수는 “혈관질환 분야에 환자맞춤형 세포치료의 가능성을 열어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근영 선임기자 /한겨레 2010-12-27 오전 08:36:30
2006 - 미국의 제38대 대통령 포드(Ford, Gerald) 사망 포드 [Ford (Jr.), Gerald (Rudolph), 1913.7.14~2006.12.26] 93살로…닉슨 사임으로 선거 없이 역임 미국 38대 대통령을 지낸 제럴드 포드가 26일 93살을 일기로 세상을 떴다. 그의 아내 베티 포드는 이날 남편의 개인 사무실이 있던 캘리포니아의 란초 미라지에서 그가 사망했다는 내용의 간단한 성명을 발표했다고 <에이피>(AP) 통신이 전했다. 베티 포드는 그러나 포드 전 대통령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사망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포드 전 대통령은 올해 1월부터 폐렴 증세와 싸워왔으며 8월부터는 혈관 보정물과 심장 박동기에 의지해왔다.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은 이날 “그는 미국이 혼란스럽고 분열됐을 때 대통령직을 맡아 성실함과 양식을 바탕으로 미국을 치유하고 대통령 직무에 대한 공공의 신뢰를 회복했다”며 “미국은 그의 헌신과 인격과 뛰어난 업적을 잊지 않을 것”이라고 애도의 뜻을 표했다. 포드는 미국 역사에서 선거를 거치지 않고 부통령과 대통령직에 오른 유일한 인물로 기록됐다. 그는 전임자 리처드 닉슨의 부통령 스피로 애그뉴가 스캔들로 물러난 뒤 닉슨의 지명으로 부통령에 올랐다. 또 닉슨이 야당의 선거운동본부를 도청한 이른바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1974년 8월 사임한 뒤 다시 선거를 거치지 않고 대통령직에 올랐다. 1974년 9월9일 그가 대통령에 취임했을 때 미국 국민은 비록 아무도 그에게 투표하지 않았지만 닉슨을 하야시킨 ‘민주주의의 승리’라는 점에서 그를 환영했다. 포드는 취임 연설에서 “미국의 오랜 악몽은 끝났다”고 선포했지만, 재임 중 닉슨을 사면한 데다 인플레이션을 잡지 못해 인기가 급락하면서, 1976년 선거에서 민주당의 지미 카터 후보에게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1913년 7월14일 미 네브래스카주 오하마시에서 태어나 미시간대와 예일대에서 법학을 전공한 뒤 1914년부터 변호사로 일해온 포드는 1949년 미시간주에서 공화당 하원의원으로 당선돼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미국에서 가장 장수한 대통령이라는 기록도 갖게 됐다. 그 다음은 역시 93살에 세상을 뜬 로널드 레이건이다. 이상수 기자 leess@hani.co.kr /한겨레 2006-12-27 오후 06:27:05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america/180769.html
2004 - 동남아시아 대지진(인도양 쓰나미) 발생 오늘의 역사 (12월 26일)[2004년] 2004년 12월 26일 오전 7시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에서 발생한 리히터 규모 9.1의 강진과 60여 차례의 여진이 발생했다. 이번 지진은 수마트라섬 서쪽의 인도-호주지각판과 동쪽의 버마판(유라시아판에 속함)이 서로 충돌하여 발생한 것이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이 지진이 자카르타에서 북서쪽으로 1620km 떨어진 북(北)수마트라 섬 서쪽 해안의 해저 40km 지점에서 발생했다. 이번 지진은 1900년부터 2004년에 이르기까지 전세계에서 발생한 지진 중 3번째 강력한 규모이며, 1964년 알래스카 지진(진도 9.2) 이래 40년 만의 최대 지진이었다. 이번 지진으로 발생한 쓰나미(tsunami 지진해일)은 지진발생 30분만에 6m 높이로 태국의 휴양도시 푸케트에 도달하여 해안지방을 초토화 시켰다. 이후 쓰나미는 3시간 뒤에 수마트라섬 서쪽 1600km 떨어진 스리랑카 동남해안에 도착했으며, 시속 약 400km로 지진 발생 14시간만인 27일 오전 0시에는 진앙에서 5700km 떨어진 아프리카 소말리아 해안에 상륙했다. 이로 인해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의 최북단인 아체주에서 400만 주민 중 14만명이 희생되는 등 인도네시아·스리랑카·인도·말레이시아·방글라데시·태국·소말리아에서 총 23만 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조선 http://focus.history.chosun.com/history/list.jsp?hm=1226&cmd=0
2002 - 세계 최초 복제아기 탄생 “복제아기 사상 첫 탄생” "어머니 체세포 떠어내 복제" 사상 처음으로 인간복제를 통해 여자아기가 태어났다고 인간복제를 시도해온 종교단체 ‘라엘리언’의 생명공학회사인 클로네이드가 27일(현지시각) 밝혔다. 인간복제는 부모의 유전자를 절반씩 물려받는 인류의 생명유지 방식을 거스른 것이어서 커다란 윤리·과학적 논쟁이 예상된다. 클로네이드의 사장 브리지트 부아셀리에 박사는 이날 오전 미국 플로리다주 할리우드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26일 제왕절개를 통해 ‘이브’라고 이름붙여진 사상 최초의 복제아기가 태어났으며, 이브는 현재 건강한 상태”라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엄마와 아이의 디엔에이 정보가 같다는 증거를 즉각 제시하지 않아, 과학적으로는 성공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상태이다. 부아셀리에 박사는 “아이가 3일 뒤 집으로 돌아갈 것이며 중립적인 과학자를 통해 아이의 디엔에이 검사를 실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26일 밤 이 회사의 네이딘 게리 대변인은 “아기는 어머니의 체세포 일부를 떼어내 복제했으며, 산모와 아기는 유전적으로 동일한 인간”이라고 말했다. 인간복제는 사람의 귀나 피부에서 세포를 떼어내 유전물질인 디엔에이가 담긴 핵을 분리한 뒤 핵을 제거한 난자에 이 핵을 융합시켜 수정란을 만들고, 이것을 여성 자궁에 착상시키는 방법으로 이뤄진다. 이렇게 태어난 복제아기는 아버지든 어머니든 한 사람의 유전정보만 물려받게 돼 과학적 실현 가능성과는 별개로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행위’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또 복제 과정에서 유산과 선천성 기형, 면역체계 결함, 조로 등의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도 많다. 이 때문에 질병 치료 및 과학연구 목적이 아닌 아기 출산을 위한 인간복제는 세계 각국이 대부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탈리아의 불임치료 전문가 세베리노 안티노리 박사도 지난달 자신이 시도한 복제아기가 내년 1월 초 출생할 것이라고 밝히는 등 인간복제 연구는 다양하게 진행돼 왔다. 참여연대는 27일 성명을 내어 “인간복제는 돌이킬 수 없는 인류 사회의 도덕적 상처”라며 “인간복제 금지는 한두 나라의 노력으로 달성될 수 없는 것이므로 국제적인 인간복제 금지협약 체결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천주교 생명윤리연구회 이창영 신부는 “수정이 된 이후는 생명체로 보기 때문에 인간복제는 물론, 배아 연구 자체도 중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허종식 정재권 기자 jjk@hani.co.kr /한겨레 국제 2002.12.27(금) 17:50 http://www.hani.co.kr/section-007000000/2002/12/007000000200212271750291.html
1996 - 신한국당 노동관계법-안기부법 변칙 개정 오늘의 역사 (12월 26일)[1996년] 신한국당이 1996년 12월 26일 새벽 6시 국회 본회의를 단독 소집, 여당의원 155명만으로 단 7분 만에 노동관계법과 안기부법 개정안 등 11개 법률안을 기습 날치기 통과시켰다. 개정안은 국가 경쟁력 강화를 명분으로 변형근로시간제, 정리해고제, 파견근로제 등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위한 내용이 주를 이루었지만 이후 노동자들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권영길 위원장을 중심으로 약 2개월에 걸쳐 대대적인 총파업을 전개했다. 노동법 파동이 마무리 되기도 전에 한보사태와 김현철파동이 연이어 터져 도덕적 신뢰를 상실한 김영삼 정권은 연이은 대기업의 부도에 흔들리다가 아시아를 강타한 금융위기가 한국에 상륙하자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지원을 요청하면서 급격한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조선 http://focus.history.chosun.com/history/read_body.jsp?id=19990910_0105 이맘때면 생각나는 '날치기의 추억'-그것도 이젠 어렵다 이맘때면 과거 날치기의 기억이 새롭다. /이재창의 정치세계 2008.12.04 17:23 http://blog.hankyung.com/?mid=blog&document_srl=203425&vid=leejc123&cpage=2
1989 - 한국의 쇼트트랙 선수 곽윤기(郭潤起) 출생 곽윤기 [郭潤起, 1989.12.26~ ] 곽윤기(郭潤起, 1989년12월 26일 ~ )는 대한민국의 쇼트트랙 선수이다. 신목고 재학 중 국가대표로 뽑혔다. 2005년 세계 주니어 선수권 대회에 출전했다. 2009년 다시 국가대표로 뽑혀 2009년 ~ 2010년 시즌 1차 월드컵 대회 500m에서 우승하는 등 활약을 계속하고 있으며, 2010년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계주 5000m 에서 은메달을 땄다. 학력 * 연세대학교 에피소드 * 2010년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5000m 계주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뒤, 시상대에서 브라운아이드걸스의 아브라카다브라 시건방춤 세레모니를 해서 화제가 되었다. * 2010년 3월에 불가리아 소피아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 남자 슈퍼파이널 3000m에서 은메달을 받았다. 그런데 3000m 시합에서 선수 전원이 1바퀴 덜 돌았다고 한다. 당시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한 탓에 그냥 지나간 것으로 보이며, 이럴 경우 순위는 인정받지만 이 대회에서 달성한 기록은 인정하지 않는다고 한다. 수상 * 2009년 ISU 쇼트트랙 월드컵 남자 계주 5000m 금메달 * 2010년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계주 5000m 은메달 * 2010년 ISU 소피아 쇼트트랙 세계선수권대회 남자 종합 2위 /위키백과
1985 - 미국의 동물학자 다이앤 포시(Fossey, Dian) 피살 포시 [Fossey, Dian, 1932.1.16~1985.12.26] 고릴라와 의문사 제인 구달이 침팬지의 수호자로 많은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는 데 견줘, 한결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간 고릴라의 각별한 친구 다이앤 포시는 덜 알려져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출신으로 1932년생이니 제인 구달보다 두 살 위인 그녀는 1954년 대학에서 수의학 공부를 위한 준비 과정을 마치고 재활의학을 전공했다. 장애인을 돌보는 물리치료사로 근무하다 1963년 아프리카 여행을 가 고릴라의 멸종 위기에 대한 강연을 듣고 이 분야에 매료된다. 처음에는 자이르로 갔다가 1967년부터 르완다에 정착해 18년을 고릴라의 친구로 살았으나 1985년 성탄절 다음날 자신의 오두막에서 의문사로 세상을 떴다. 인간과 많이 닮아 더욱 괴기스럽게 느껴졌던 큰 몸집의 고릴라는, 우리의 편견과 달리 채식주의자일뿐더러 결코 상대를 먼저 공격하지 않으며 인간과 꼭 같은 희로애락을 갖고 있었다. 이런 사실을 이해하기까지 그녀의 작업은 체력적 한계와 죽음의 공포를 견뎌내지 않고는 해낼 수 없는 일이었다. 안개 자욱한 산속 몇날며칠 같은 자리에서 흠뻑 젖은 옷을 입은 채 숨소리도 죽여가며 머물다 보면 기력이 소진하고 때로 견디기 힘든 공포가 밀려왔다. 그러나 겸손하고 친절한 다이앤 포시는, 그들의 생태를 관찰하고 행동거지를 주의깊게 살피면서 무리 속에 들어가 새끼들을 함께 돌보는 모험을 감행했고, 그들과 소통하기 시작하면서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는 황홀한 체험을 통해 말 그대로 고릴라의 가족이 될 수 있었다. 미지의 세계, 인간과 다른 유인원의 종족에 그녀가 받아들여지는 모습이 필름으로 기록되고 <내셔널 지오그래피>에 발표되면서 그녀는 세계적인 스타가 된다. 1976년에는 이 분야의 연구를 집대성한 논문을 제출해 박사학위도 받지만, 개인적으로는 너무도 외롭고 또 외로웠다. 사랑했던 남자들은 그녀의 동반자가 될 수 없어 곧 떠났고, 외로움과 원망을 알코올과 일 중독으로 이겨내려 했으나 균형을 지켜내기 힘들어, 넘치는 열정을 그저 고릴라 보호에 쏟아부었다. 지난해 여러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은 <호텔 르완다>에 묘사된 바와 같이 종족갈등으로 1994년 르완다에서는 80만 명의 집단 학살이 자행되는데, 이 끔찍한 사태를 일으킨 장본인은 다이앤 포시의 활동 지역이던 루엔게리주의 악질 지사로, 1985년 발생한 그녀의 토막살인 사건의 배후 인물 역시 같은 놈이라는 증거들이 수집되었다. 세상을 떠나기 이태 전 고릴라의 친구가 된 사연을 적어놓은 책을 출간한 덕에, 시고니 위버가 다이앤으로 나온 영화 <안개 속의 고릴라>를 통해 우리는 그녀를 언제라도 만날 수 있다. 지난해엔 친지들에게 보낸 편지들과 한때 연인이었던 사진기자 밥 캠벨의 사진을 엮어 다이앤 포시 사후 20년을 기념하는 책도 나왔고, 올봄에는 그녀의 삶을 기린 오페라도 무대에 올려질 예정이다. ▣ 김재희/ <이프> 편집인 franzis@hanmail.net /한겨레21 [2006.02.07 제595호] http://h21.hani.co.kr/arti/world/world_general/16016.html
1978 - 인디라 간디(Gandhi, Indira) 전 인도 총리 석방 역사속 오늘[1978년 12월 26일] 인디라 간디 전 인도 총리 석방 1978년 오늘! 꽃다발 속에 들어 있던 폭탄이 터져 사망했다. /YTN 2012-12-26
1975 - 소련의 초음속 여객기 TU-144S, 모스크바-알마티 노선에 수송기로 취항 [초음속 여객기 TU-144 연혁] 1968-12-31 - 첫번째 시험비행 성공 1969-06-05 - 음속 돌파 1970-05-26 - 시속 2,150km(마하 2) 기록 1970-06-15 - 시속 2,443km 기록 1971-07-01 - 양산형 TU-144S 첫 비행 1973-06-03 - TU-144S 파리 에어쇼에서 공중분해 사고 1975-12-26 - 모스크바-알마티 노선에 취항(화물과 우편물 수송) 1977-11-01 - 모스크바-알마티 노선에 여객기로 취항 1978-06-01 - 추락사고 발생하여 여객기로 운항을 금지
1972 - 미국의 제33대 대통령 트루먼(Truman, Harry S.) 사망 트루먼 [Truman, Harry Shippe, 1884.5.8~1972.12.26] 오늘의 역사 (12월 26일)[1972년] 트루먼 전 미국 대통령 사망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이 1972년 12월 26일 오랜 투병 끝에 8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트루먼 대통령은 1945년부터 1953년까지 8년동안 제33대 미국대통령을 지냈으며 한국전쟁에 미군참전을 결정했고 2차대전 말기에 원자탄을 투하하는 것을 승인하는 등 그 생애에 많은 중요한 결단을 내렸다. 대전 후 '트루먼 독트린'을 발표해 미국의 냉전정책에 기조를 마련했다. http://focus.history.chosun.com/history/read_body.jsp?id=19990804_0685 1962 - 제3공화국 헌법 공포 (제5차 헌법개정) 역사속 오늘[1962년 12월 26일] 제3공화국 헌법 공포 1962년 오늘! 민정이양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공약한 대로 8월중순쯤으로 희망하고 있습니다." /YTN 2012-12-26 [책갈피 속의 오늘]1962년 제3공화국 헌법 공포 ‘국민투표는 결코 만능이 아니다.’ http://news.donga.com/3//20061226/8388998/1
1944 - 테네시 윌리엄스의 <유리 동물원> 초연 오늘의 역사 (1944.12.26) 윌리엄스의 <유리 동물원> 초연 1944년 12월 26일 미국의 극작가 테네시 윌리엄스(Williams, Tennessee)의 희곡 <유리 동물원 The Glass Menagerie>이 시카고 시립극장에서 초연되었다. 이 작품은 1930년대 경제 대공황의 소용돌이에서 해체되어가는 미국의 하층 가정을 묘사한 작품으로, 윌리엄스의 여러 작품들 중 수작으로 손꼽힌다. 시카고에서 성공을 거둔 이 작품은 이듬해 브로드웨이로 진출한 데 이어 1950년에는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유리 동물원>은 낭만적인 과거의 망상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자부심 강한 어머니 아만다와 냉소적인 아들 톰이 유리로 만든 동물들을 수집해 놓은 환상의 세계 속에서 살면서, 장애인인 여동생 로라를 위해 구혼자를 얻어주려다 실패한다는 이야기이다. 윌리엄스는 연극평론가상을 4차례 수상했으며, 그의 작품은 전세계에서 널리 번역·공연되었다. 그의 작품은 낭만적인 온화함의 이면에 폭력이 깔려 있는 세계에서 인간이 겪는 좌절을 보여준다. /브리태니커 http://preview.britannica.co.kr/history/default.asp?num=689
1941 - 한국의 농구선수 박신자(朴信子) 출생 박신자 [朴信子, 1941.12.26~] 한국 농구선수. 1941년 서울에서 태어나 숙명여자 중·고등학교를 거쳐 숙명여자대학교 영문학과,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체육학과, 미국 매사추세츠주(州)의 스프링필드대학(구 국제 YMCA 체육학교) 대학원 체육학과를 졸업했다. 숙명여자 중학교 시절부터 시작된 그의 농구인생은 1959년 한국상업은행에 입사하면서 절정기를 맞이한다. 이때 이후 '백 년에 한 사람 있을까말까한 농구천재'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 일본 프로야구 50년 기념, 1984 요미우리 자이언츠[讀賣-, Yomiuri Giants] 일본 센트럴리그에 소속된 야구팀으로, 1934년 12월 26일 창단하였다. 연고지는 도쿄도[東京都]이다. 원래는 도쿄 자이언츠(교진:巨人)라는 팀명으로 창단하였으나 1947년 지금의 팀명으로 바꾸었으며 창단 후 연고지를 변경한 적이 없다.
1913 - 영국의 요리법 저술가 엘리자베스 데이비드(David, Elizabeth) 출생 데이비드 [David, Elizabeth, 1913.12.26~1992.5.22] Elizabeth David CBE (born Elizabeth Gwynne; 26 December 1913 – 22 May 1992) was a British cookery writer who, in the mid-20th century, strongly influenced the revitalisation of the art of home cookery with articles and books about European cuisines and traditional British dishes. Born to an upper-class family, David rebelled against social norms of the day. She studied art in Paris, became an actress, and ran off with a married man with whom she sailed in a small boat to Sicily, where their boat was confiscated. They were nearly trapped by the German invasion of Greece in 1940 but escaped to Egypt where they parted. She then worked for the British government, running a library in Cairo. While there she married, but the marriage was not long lived. After the war, David returned to England, and, dismayed by the gloom and bad food, wrote a series of articles about Mediterranean food that caught the public imagination. Books on French and Italian cuisine followed, and within ten years David was a major influence on British cooking. She was deeply hostile to second-rate cooking and to bogus substitutes for classic dishes and ingredients. She introduced a generation of British cooks to Mediterranean food hitherto barely known in Britain, such as pasta, Parmesan cheese, olive oil, salami, aubergines, red and green peppers, and courgettes. David opened a shop selling kitchen equipment in the 1960s. It continued to trade under her name after she left it in 1973, but her reputation rests on her articles and her books, which have been constantly reprinted. Life and career - Frederic Remington - 'The Smoke Signal' - 'Coming through the Rye' - 'A Dash for the Timber'
1909 - 미국의 화가, 조각가 프레드릭 레밍턴(Remington, Frederic) 사망 레밍턴 [Remington, Frederic, 1861.10.4~1909.12.26] 미국의 화가·삽화가·조각가. 미국 서부의 생활을 사실주의적으로 묘사한 것으로 유명하다. 예일대학 미술학부와 뉴욕의 아트 스튜던츠 리그에서 공부했으며, 그후 주로 삽화를 그렸다. 그는 여러 곳을 두루 여행했는데, 특히 미시시피 강 서쪽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인디언과 카우보이, 군인, 말, 그리고 초원 생활의 다양한 측면 등을 묘사하는 것을 전문으로 삼게 되었다. 그는 수많은 책과 논문을 발표했는데, 이런 저술은 주로 삽화를 발표하기 위한 수단이 되었다. 미국이 스페인과 싸우는 동안 그는 종군기자 겸 화가로 참전했다. 레밍턴은 주로 눈에 보이는 현상을 충실히 묘사한 기록자였다. 그의 작품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빠른 동작의 묘사와 정확한 세부 묘사이다. 뉴욕 주 오그던스버그에 있는 레밍턴 미술 기념관에는 그의 그림과 삽화 및 청동상 등 중요한 소장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브리태니커
1904 -쿠바의 소설가 카르펜티에르(Carpentier, Alejo) 출생 카르펜티에르(카르팡티에) [Carpentier, Alejo y Valmont, 1904.12.26~1980.4.24] 쿠바의 소설가. 아바나 출생. 아바나대학교를 졸업한 후 카스트로의 쿠바혁명에 가담하였고, 외교관으로서도 활약하였다. 작품 주제는 주로 쿠바의 흑인·사회·역사 등에 두었다. 대표작 《에쿠에 얌바 오 Ecue-Yamba-O》(1933)는 당시 쿠바에서의 흑인들의 생활과 그 문화·풍습을 주로 다룬 것이다.
1900 - 카루소, 푸치니의 오페라 <라 보엠>의 로돌프를 불러 밀라노 스칼라좌에 데뷔 가난한 가정에서 20명의 아이 중 18번째로 태어났으며 어디서나 나폴리의 민요를 부르며 다녔다. 9세에 교구 내 성가대원으로 활동했으나 정식 음악교육은 18세에 굴리엘모 베르지네에게 배우면서 시작되었다. 3년 뒤인 1894년 나폴리의 테아트로 누오보에서 모렐리의 〈아미코 프란체스코 L'Amico Francesco〉로 데뷔했고, 4년 뒤 강한 인상으로 여러 배역을 소화해내고 나서 움베르토 조르다노의 신작 오페라 〈페도라 Fedora〉에서 로리스 역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 역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끈 직후 모스크바·상트페테르부르크·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공연을 가졌다. 〈라 보엠 La Bohème〉으로 라 스칼라 극장에서 데뷔(1900)한 후 〈아드리아나 르쿠브뢰르 Adriana Lecouvreur〉·〈게르마니아 Germania〉·〈서부의 아가씨 La Fanciulla del West〉 등에서 주역을 맡았으며 라 스칼라 극장에서는 〈라 마셰르 La Maschere〉·〈사랑의 묘약 L'elisir d'amore〉의 주역을 맡았다. 1902년 봄 몬테카를로에서는 〈라 보엠〉에, 런던의 코벤트 가든에서는 〈리골레토 Rigoletto〉에 출연한 이래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1903년 11월 23일 뉴욕 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의 개관 첫날 밤 〈리골레토〉로 미국 무대에 데뷔했으며 이후 17년간 이 극장의 시즌 개시를 맡아 모두 36개의 배역을 노래했다. 1920년 607번째 메트로폴리탄 고별공연 때 〈유대 여인 La Juive〉에서 엘레아자르 역을 노래했다. 카루소는 당대 최고의 보수를 받는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가수가 되었다. 강하면서도 동시에 서정적인 소리를 가졌지만, 만년에는 이런 특질이 다소 약화되었다. 호소력 있는 테너 음색으로 특히 저음부에서 풍부하게 울렸고 온화함·생동감·부드러움이 넘쳤다. /브리태니커
1898 - 퀴리 부부(Marie Curie, Pierre Curie), 라듐 발견 오늘의 역사 (12월 26일)[1898년] 퀴리부부, 라듐 발견 마리 퀴리와 남편 피에르 퀴리가 1898년 7월에 우라늄의 330배나 되는 방사능을 가진 새로운 물질 ‘폴로늄’을 발견한데 이어 12월 26일에도 새로운 방사성 원소 ‘라듐’을 발견함으로써 인류는 희망과 절망의 시대를 동시에 열었다. http://focus.history.chosun.com/history/read_body.jsp?id=19990804_0673
- 中國(China), 1 圓(위안) (지폐) 1893 - 중국의 국가 주석 마오쩌둥[毛澤東] 출생 마오쩌둥[毛澤東, 1893.12.26~1976.9.9] [오늘속으로] 마오쩌둥 1893년 12월26일 중국 후난성(湖南省) 샹탄현(湘潭縣) 사오산(韶山)에서마오쩌둥(毛澤東)이 태어났다. sec&sid1=104&oid=038&aid=0000042163
"우리 민족은 지금부터 평화와 자유를 사랑하는 세계 여러 민족이 이루는 대가정의 일원이 되어, 용감하고 근면하게 스스로의 문명과 행복을 창조함과 동시에 세계의 평화와 자유를 촉진하기 위하여 일할 것이다. 우리 민족은 더 이상 모욕당하는 민족이 아니다."
- 마오쩌둥,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선언연설>(1949)
1890 - 독일의 고고학자 슐리만(Schliemann, Heinrich) 사망 슐리만 [Schliemann, Heinrich, 1822.1.6~1890.12.26] 독일의 고고학자. 미케네 문명과 트로이 문명의 발견자로 알려져 있다. 북독일 메클렌부르크 노이부코 출생. 가난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호메로스의 이야기를 진실로 믿고 트로이전쟁의 사을 발굴, 확인하는 것이 꿈이었다. 1864년 러시아로 이주하고 인도남(印度藍) 장사를 하여 거부가 되자, 1866년 파리로 이주하여 고대사 연구에 착수하였고, 1868년 이타카섬과 트로이를 답사하였다. 1870∼1873년 아나톨리아 히사를리크 언덕의 대규모 발굴작업을 통해 그것이 트로이 유지(遺址)라는 것을 증명함으로써 전세계에 충격을 주었다. 그런데 그가 발굴한 히사를리크 언덕의 제2층은 트로이시대의 것이 아니고, 제6층이 그것에 해당한다는 것을 몇 년 뒤 데르베르트의 발굴로 밝혀졌다(현재는 제7층). 1876년 호메로스의 ‘황금이 풍부한’이라고 쓰여진 그리스 아르고리스만(灣) 기슭의 미케네 고분을 발굴하였다. 이 발굴에서 경이적인 재물과 보화를 파냈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 이전의 문명인 에게해(海)의 고대문명, 즉 크레타 문명 → 에게 문명 → 그리스 문명의 관계를 밝혀내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상인으로 보낸 시기가 길었기 때문에 참다운 고고학자로 인정받지 못하였으나, 지금은 그리스 선사고고학(先史考古學)의 시조로 보고 있다. 또한 발굴품은 아테네 ·베를린 ·이스탄불 등지의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주요 저서에 《고대 트로이》(1874) 《미케네》(1878) 《일리오스》(1881) 《오르코메 노스》(1881) 《티린스》(1886) 등과 자서전 《고대에의 정열》 등이 있다. /naver
1887 - 영국의 군인, 장군 아서 퍼시벌(Percival, Arthur) 출생 퍼시벌 [Percival, Arthur Ernest, 1887.12.26~1966.1.31] [역사 속의 인물] 불운한 장군 아서 퍼시벌 "예스냐 노냐?" 1942년 2월 싱가포르를 점령한 일본군 사령관 야마시타 도모유키(山下奉文)가 "항복조건을 협상하고 싶다"고 한 영국군 사령관 아서 퍼시벌(1887~1966)을 이렇게 윽박질렀다. 잔말 말고 항복문서에 서명하라는 말이다. 이것이 상징하듯 싱가포르 함락은 영국군 사상 최대의 치욕이었다. 싱가포르 방어군 8만여 명을 포함, 말레이 주둔 영국 연방군 13만6천 명이 항복했다. 이렇게 많은 병력이 일시에 항복한 것은 영국 역사에서 전무후무하다. 1887년 오늘 태어났다. 육군사관학교를 나오지 않았지만 장교양성 과정을 거쳐 1차대전에 참전한 이후 고속 승진을 거듭해 중장까지 올랐다. 싱가포르 함락 당시 그의 병력은 8만8천 명에 달했지만 3만6천 명의 일본군에게 항복했다. 물과 석유, 탄약 등 모든 것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히틀러를 막느라 혼이 빠진 본국 정부로부터 지원을 거의 받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당시 일본군도 물자 부족이 심각했다. 그가 좀 더 투지를 보였다면 싱가포르를 지킬 수도 있었던 것이다. 이는 야마시타도 인정했다. 종전 후 그는 자신의 전략이 "효과있는 허세였다"고 털어놨다. 죽기로 싸우면 이길 수 있었지만 일본군의 허세에 겁부터 먹은 '새가슴'이었다. 정경훈 논설위원 /매일신문 2011년 12월 26일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74522&yy=2011 - 'Passage Cottin' - 'Le Lapin Agile' - 'Rouen Cathedral'
1883 - 프랑스의 화가 모리스 위트릴로(Utrillo, Maurice) 출생 위트릴로 [Utrillo, Maurice, 1883.12.26~1955.11.5] 프랑스의 화가. 파리 몽마르트르 지역의 건물과 거리를 그린 그림으로 특히 유명하다. 위트릴로는 그림 모델이면서 화가로 성공을 거둔 쉬잔 발라동의 사생아였다. 아버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며 스페인의 미술평론가 미겔 위트릴로가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가 청년기에 알코올 중독에 걸렸을 때 어머니가 치료방법의 하나로 그림 그릴 것을 권했다. 알코올 중독의 잦은 재발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림에 몰두하여 수천 점의 유화를 제작했다. 처음에 인상파의 영향을 받았으나 점차 강하고 뚜렷한 고유의 화풍을 개발해냈으며, 정신적·신체적 쇠퇴의 흔적은 그림에 전혀 보이지 않는다. 위트릴로의 최고 걸작은 이른바 '백색시대'(1908~14경)에 많이 제작되었는데 징크 화이트 물감을 그림에 아낌없이 사용하여 이런 이름이 붙었다. 구상이 신선하고 붓질이 자유로운 이 시기의 유화들로 그는 명성과 재산을 얻었다. 그후에 주로 그림엽서를 바탕으로 그린 그림들은 독창성과 활력이 크게 떨어진다. /브리태니커
- Bas-relief of Decembrists and "Decembrists at the Senate Square," by D. N. Kardovsky. Sesquicentennial of Decembrist rising. 1825 - 12월의 거사, 데카브리스트의 난 [오늘의 경제소사/12월26일] <1278> 12월의 거사 1825년 12월26일(러시아력 12월14일) 상트페테르부르크. 귀족장교들이 이끄는 3,000여명의 군대가 미명을 뚫고 원로원 광장에 나타났다. 목적은 개혁. 농노제 폐지와 압제정치 근절을 요구했다. 권홍우 편집위원 /서울경제 2008/12/25 17:09:58 http://economy.hankooki.com/lpage/economy/200812/e2008122517095397490.htm
1803 - 에스토니아의 민속학자, 시인 크로이츠발트(Kreutzwald, F. Reinhold) 출생 크로이츠발트 [Kreutzwald, F(riedrich) Reinhold, 1803.12.26~1882.8.25] 에스토니아의 의사·민속학자·시인. 에스토니아 민족 서사시 〈칼레비의 아들 Kalevipoeg〉(1857~61)을 편찬했다. 타르투대학교를 졸업하고 보루에서 40년 넘게 보루 시 보건행정관을 지냈다. 1838년 F. R. 파엘만은 핀란드의 민족서사시 〈칼레발라 Kaleval!!!a〉 전통을 따른 서사시를 쓰기 위해 구전 민요를 수집할 에스토니아 학자협회를 창립했는데 당시 학생으로서 독일 낭만주의 문학을 번역하던 크로이츠발트는 원래의 시가와 수집된 자료를 결합해 이 서사시를 썼다. 이 서사시에서 '민족 전사'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칼레비드는 고대 에스토니아 독립의 상징으로서, 그의 낭만적 모험을 둘러싸고 구성이 전개된다. 〈칼레비의 아들〉은 19세기 에스토니아의 민족의식을 일깨우는 중심 역할을 했으며 이후 에스토니아의 문학·미술·음악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브리태니커
1792 - 영국의 수학자, 발명가 찰스 배비지(Babbage, Charles) 출생 배비지 [Babbage, Charles, 1792.12.26~1871.10.18] 영국의 수학자·발명가. 1812년 그는 유럽 대륙의 발전상황을 영국 수학계에 소개하기 위한 해석학회(解析學會 Analytical Society)의 창설을 도왔다. 1816년 그는 런던 왕립학회 회원으로 선출되었고, 왕립천문학회(1820)와 왕립통계학회(1834)의 창설을 도왔다. 1812년(또는 1813)에는 수표(數表)들을 기계로 계산하는 착상을 했다. 그뒤 그는 특정 수학적 계산을 소수점 이하 8자리까지 계산할 수 있는 작은 계산기를 만들었다. 그뒤 1823년에 소수점 이하 20자리까지의 용량을 가진 기계를 설계하기 위해 정부 보조를 얻었다. 이 기계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발달된 기계공학 기술이 필요했기 때문에 그는 이 기술연구에 몰두했다. 1828~39년 케임브리지대학교의 루카스 좌(座) 수학교수로 있었다. 1830년대 중반에는 현대 디지털 컴퓨터의 전신인 이른바 '해석 엔진'의 개발계획을 세웠다. 이 장치에서 그는 천공 카드로 명령한 것에 기초한 산술연산의 수행, 수치를 저장하는 기억장치, 순차제어, 오늘날 컴퓨터의 기본소자 등을 고안했다. 그러나 적당한 내구성을 지닌 금속 부품들을 성형하는 정밀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이 해석 엔진은 완성되지 않았다. 그의 설계는 출판되지 않은 그의 기록들이 발견된 1937년까지 잊혀졌다. 그는 다른 분야에서도 큰 공을 세웠는데, 잉글랜드에서 근대 우편제도의 확립에 도움을 주었고, 최초로 신뢰성 있는 보험통계표를 편집했다. 속도계의 유형과 기관차 배장기(排障機 cowcatcher)를 발명하기도 했다. /브리태니커
1769 - 독일의 애국시인, 저술가 아른트(Arndt, Ernst Moritz) 출생 아른트 [Arndt, Ernst Moritz, 1769.12.26~1860.1.29] 독일의 애국시인, 저술가. 스웨덴의 뤼겐섬 출생. J.G.피히테의 《독일 국민에게 고함 Reden an die deutsche Nation》과 비견되는 주저 《시대의 정신 Geist der Zeit》(1806)이 문제가 되어 나폴레옹의 노여움을 산 탓으로 한때 스웨덴으로 망명하였다. 그러나 곧 프로이센으로 돌아와 K.슈타인, A.그나이제나우, G.J.샤른호르스트등과 손을 잡고 나폴레옹의 압제에 저항하는 한편, 열렬한 애국시와 정치논문을 써서, 독일을 프랑스의 지배에서 해방시키기 위한 국민정신 앙양에 힘썼다. “라인은 독일의 강이지, 국경이 아니다”라고 외친 것은 유명하다. 해방전쟁 후에는 신설된 본대학의 역사학 교수가 되었으나, 독일의 민족적 통일이라고 하는 연래(年來)의 주장이 이번에는 메테르니히의 반동정책에 의하여 억압받고, 1820년에는 교직에서도 물러났다. 1848년 혁명 때는 프랑크푸르트의 국민의회 의원으로 선출되어 독일의 통일을 역설하였으나, 끝내 실현을 보지 못하였다. /naver
1716 - 영국의 시인 그레이(Gray, Thomas) 출생 그레이 [Gray, Thomas, 1716.12.26~1771.7.30] 영국 18세기 중엽을 대표하는 시인. 런던 출생. 이튼교(校)를 거쳐 케임브리지대학에서 배웠다. 1739년부터 2년 남짓 H.월폴(1717~1797)과 함께 유럽을 여행하고 다녔으며, 귀국 후에는 케임브리지의 기숙사 안에서 은자(隱者)와 같은 생활을 하였다. 정신활동의 폭은 넓었으며, 시 이외에 역사·식물·곤충·건축·음악 등에 조예가 깊었다. 그러나 선천적인 우울한 기질로 인하여 세상과의 접촉을 피하였으며, 1757년에 계관시인으로 천거되었으나 사퇴하고 1758년에 케임브리지의 근대사 교수로 임명되었는데도 강의는 하지 않았다. 작품은 적지만, 친구인 R.웨스트가 죽은 무렵에 쓴 《봄의 노래》 《멀리 이튼교를 바라보는 노래 Ode on a Distant Prospect of Eton College》(1742) 등에서는 자연과 사회에 적응할 수 없는 고독감과 무상감이 흐르고 있다. 몇 년의 개고로 다듬은 끝에 완성한 《시골 묘지에서 읊은 만가 Elegy Written in a Country Churchyard》(1751)는, 명성도 재산도 얻지 못한 채 땅에 묻히는 서민들에 대한 동정을 애절한 음조로 노래한 걸작이며, 이 작품으로 l8세기 중엽을 대표하는 시인이 되었다. 핀다로스풍의 송가(頌歌) 《시가(詩歌)의 진보 The Progress of Poesy》와 《시선(詩仙) The Bard》(1757)에서는 풍부한 역사적 감각을 나타내었고, 또 북유럽의 고시(古詩)를 번역하여, 시대를 앞선 낭만적 경향을 나타내었다. 선례(先例)를 가진 표현을 존중하는 그의 고전주의적 시풍은 난해한 편에 속한다. 사후(死後)에 출판된 일기와 편지는 우수한 산문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당시의 전형적인 학자시인의 문체와 생활을 전하고 있다. /naver
- 한국, 5,000원 (지폐)
1536 - 조선 중기의 학자, 정치가 이이(李珥) 출생 [오늘의 역사 12월 26일] 학자 이이 태어남 조선 선조 때의 학자이자 정치가인 율곡 이이가 1536년 오늘 강릉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한국 여성의 본보기로 꼽히는 신사임당이다. /소년한국일보 2008/12/25 16:07:58 http://kids.hankooki.com/lpage/edu/200812/kd20081225160754103370.htm
1504 - 도성 내 원각사(圓覺寺) 폐지 서울 종로2가 파고다공원 자리에 있던 사찰. 흥복사(興福寺)라는 이름으로 고려시대부터 내려온 고찰(古刹)이었는데, 조선 태조 때 조계종(曹溪宗)의 본사가 되었다가 후에 폐지되었다. 1464년(세조 10) 중건하고 원각사라 하였으며, 이때 대종(大鐘)도 함께 만들었다.
1194 -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2세(Friedrich II) 출생 프리드리히 2세 [Friedrich II, 1194.12.26~1250.12.13] 슈타우펜왕조 최후의 신성로마 황제(재위 1215∼1250). 시칠리아왕으로서는 프리드리히 1세(재위 1197∼1212). 1212년 독일왕, 1228년 예루살렘왕이 되었다. 젊어서 죽은 하인리히 6세의 아들로, 어머니 콘스탄츠의 고국인 시칠리아왕국의 수도 팔레르모의 궁정에서 교황 인노첸시오 3세의 후견하(後見下)에 자라났다. 내란기(1198∼1215)의 독일에 들어가 국왕으로 대관(戴冠)되었다(1212년 마인츠에서, 1215년 아헨에서). 교황(敎皇)의 사후 이탈리아의 ‘법령’에 입각한 절대주의적인 정치를 하고, 제6차 십자군(1228∼1229)을 일으켜서 예루살렘 왕국을 수립하였는데 독일의 통치는 두 아들 하인리히 7세와 콘라트 4세에게 맡겼으며 1220년, 1231∼1232년의 성속제후(聖俗諸侯)에 대한 2개 칙령(勅令)에 의하여 영방화(領邦化)를 승인하였다. 1235년에는 마인츠 치안법령을 발포하였다. 십자군을 즉시 일으키지 않은 것과 롬바르디아정책 등으로 인하여 로마교황으로부터 3번(1227년, 1239년, 1245년) 파문당하였다. 7∼8개 국어에 능통하여 학예를 보호하였고, 그 스스로도 시인이었다. /naver -----------------------------------------------------------------
- 화상이 창안하여 2004년 4월부터 매일 연재하고 있는 [우표로 본 오늘의 인물과 역사]는 세계최초의 <우표를 이용한 매일역사연재물>입니다. 수집한 우표를 이용하여 오로지 취미와 교육적 목적으로 만들고 있지만, 자료의 충실을 기하느라 본의 아니게 저작권에 저촉되는 일이 생길까 염려하고 있습니다. 혹시 문제가 있으면 미리 알려주셔서 고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