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912](화) [동녘이야기]
[동녘글밭] 홍범도의 진실을 찾아서
https://youtu.be/xiOWexlDEek
진실을 찾는 일은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시간이 멀리 떨어져 있으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것은 사실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전후 좌우를 살펴 그 때의 주변 상황을 제대로 아는 것이 기본입니다.
이번 육사에서 홍범도 흉상을 철거하고, 백선엽 동상을 세운다는 것도 그렇습니다.
봉오동, 청산리 전투를 승리로 이끈 홍범도를 빨갱이로 몰아가는 짓이 그렇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진실을 찾자면 먼저, 저들이 뜻하는 바를 살펴 보아야 합니다.
숨겨진 저들의 의도를 알게 되면 보다 쉽게, 진실에 가까이 할 수 있으니까요.
이런 차원에서 저들의 꼼수를 살핍니다.
저들은 군 입대를 피한 님들이 대부분입니다.
저들을 지지하고 따르는 님들의 대부분은 ‘수구 꼴통들’입니다.
그러니까 자신들의 이익만을 으뜸으로 챙기는 님들이지요.
일제의 식민지배를 겪으면서도 겨레를 배반하고, 앞장 서서 친일 행태를 벌였지요.
저들은 상황이 어떻게 변하든 자신의 이익을 으뜸으로 여기는 님들이니까요.
그래서 물고 늘어지는 것이 엉뚱하게도 홍범도요, 빨갱이 타령입니다.
그렇게 하면 자신들의 부끄러운 과거를 묻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저들의 의도는 성공할 수가 없읍니다.
사실을 살펴 보면 그 진실이 금방 드러나니까요.
오늘은 될 수 있는 대로 단순하게 그 사실들을 살펴 볼 참입니다.
봉오동, 청산리 전투를 벌인 때는 1920년 후반기 때입니다.
그에 앞서 1917년은 소련 혁명을 거치는 사회 변혁기입니다.
평등을 앞세워 사회 개혁을 꿈꾸었던 이른바 다수파인 볼셰비키들의 혁명 때이지요.
봉오동, 청산리 전투 승리 이후 독립군은 일본군의 반격으로 잠시 뒤로 물러서게 됩니다.
싸움터였던 만주 땅에서 혁명의 소용돌이 끝에 안정되어 가던 소련 땅으로요.
그때 소련은 적군과 백군으로 갈라져 서로 주도권을 잡기 위하여 갈등을 벌일 때입니다.
일본군과 손을 잡고, 어떻게든 권력을 차지하려고 발버둥쳤던 백군입니다.
이에 반하여 사회 개혁의 중심축이었던 적군과 손을 잡은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지요.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건 전투를 승리로 이끈 홍범도의 선택을 결코, 헐뜯어서는 안될 테지요.
‘자유시 참변’은 이러한 상황에서 벌어진, 슬픈 우리의 역사입니다.
사망자 수는 많게 부풀려 진 듯하고, 주로 포로들이 많았다고 하네요.
이 포로들에 대한 재판에 홍범도가 재판위원으로 참여한 것에도 문제를 삼습니다.
하지만 홍범도가 이렇게 나선 것도 결국, 포로들을 끝까지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요.
더욱이 미국과 소련의 이념 대립은 2차 세계대전 이후에나 시작된 일이요,
지금의 기준으로 그 옛날, 공산당 가입을 따지는 일은 옳지 않는 일입니다.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의 역사’를 지우는 일은 참으로 어리석은 짓입니다.
오늘도 고마움에 자유를 위한 평등으로 걸음을 옮깁니다. 정말, 고마워요.
첫댓글 홍범도에 대한 이야기를 한 번 더 했읍니다.
'홍범도의 진실을 찾아서'입니다.
엉뚱하게도 홍범도요, 빨갱이 타령을 하고 있는 오늘의 상황이
너무도 안타깝고 한심스러워서입니다.
기회가 되시면 한번, 살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