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로 혼란한 삶, 어수선한 시국, 갈등과 대립의 국내 정치판,
경제침체및 살기 힘들고 살맛 나지 않는 힘든 세상,
미 중을 중심으로한 첨예한 국제정세,
주위에 들리는 오늘 날의 뉴스와 현실, 그리고 전망은 온통 어둡고 잿빛이다.
따사하고 화사한 봄인 5월은 흘러가고
신록의 싱그러움이 움터지는 6월이 열렸다.
3개월이상 외출과 모임에 참석치 못하고 '집콕'신세에 우울하고 무거움이 짓누르는 요즘,
정말로 안보가 안전하며 자유와 번영을 구가하며 행복을 추구하는 상황이나
우리에게 삶의 따사로움과 희망의 지표를 주는 나라의 지도자,
또는 인생과 신앙의 존경스러운 선배나 스승이 그립고, 기댈 말한 사람이 그리워 진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로 위로를 받으려 했으나, 하나님이 자연을 통하여
나에게 무언가 가르침이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강하게 떠 올라,
오후에 서둘러 집에서 한 시간 거리인 이천에 위치한 이름난
“해강도자미술관(海剛陶磁美術館)”을 자가운전하여 찾았다.
진열된 청자 앞에 서 보니, 고려청자를 재현하기 위해 일생을 바친,
해강 유근형선생의 도예정신과 고려인의 숨결을 느끼며, 마음의 여유 속에
우리 민족의 뛰어난 예술혼은 가슴에 와 닿으나, 우울한 마음은 씻겨지지 않아,
거기서 차로 20분 거리의 “이천 산수유 마을”을 찾았다.
입구에서 부터 수령 100여년이 넘은 8000여 그루의 산수유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이번 봄에는 노란 꽃으로 세상을 뒤덮었고, 여름에는 파란 잎, 가을에는 붉은 열매,
겨울에는 흰 눈꽃을 연출하며 세상의 풍상(風霜)을 견디며 한가한 농촌 풍경과 어우러지리라.
오래된 한옥 건물인 “육괴정(六槐亭)” 옆에 수령 500여년이 넘는 느티나무를
산등성이에 올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데, 무언가 나무에서 가르침이 온다는 느낌이 들어,
바로 인근에 있는, 신라 말에 도선이 심었다는 유래가 있는 천연기념물 제381호인
유명한 소나무, 수령 1000년이 넘는 '반용송'(蟠龍松---소나무의 껍질이 용비늘같이
생겼으며 붉은 색이며, 조목을 비롯해 사방으로 뻗은 가지마다 움직이는 듯한
용트림이 신비스러우며, 틀어 올린 나무형태 사방으로 휘어진 가지 등이 특이한 소나무)을 찾아,
둘레를 한 바퀴 돌고 나서 둔턱에 앉아, 천 년이란 긴 세 월 동안 자연에 순응하면서
인간사(人間史)의 온갖 영욕(榮辱)을 함께한, 소나무를 30여분 바라보며
깊은 상념에 빠져들고 있는데, 그 어디서도 아닌,
저 나무에게서 삶의 중요한 가르침을 받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떠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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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어느 누구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스스로 위대하고 경이롭다.
거대한 수림을 이루어 경탄케 하는가 하면,
혹은 수려한 자세로, 혹은 오묘한 형상으로, 화려한 색깔로 인간을 압도한다.
볼품없이 굽은 소나무조차도, 선산(先山)을 지키는 의리를 지니고 있으며
천애절벽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이름 모를 나무도, 목석이 조화를 이루어
시심(詩心)과 화심(畵心)을 불러 일으킨다.
나무는 마음을 푸근하게, 눈을 즐겁게, 입을 풍족하게 해 준다
탐스럽고 맛있는 열매, 향기 나는 잎사귀, 줄기에 머금은 수액, 보드라운 꽃가루,
땅속으로 뻗은 뿌리, 죽은 둥치까지 모두 남을 위해 내어 놓는다.
그러면서도 나무는 으스대지도 않고 자랑을 늘어 놓지도 않는다.
나무는 온몸을 바쳐 인간에게 베푸는 은인인 셈이다
이토록 자비롭게만 느껴지는 나무이지만, 그 생명력은 처절하고 탄 복스러울 만큼 강하다.
높은 산 능선 위의 나무는 가지가 모두 남쪽으로 쏠려, 모진 바람과 추위를
견뎌온 몸부림의 흔적을 보여 준다. 바위틈에 선 나무는, 한 치라도 더 깊이
뿌리를 내리려고 거대한 바위를 쩍 갈라놓을 정도로 치열한 삶을 살아 간다.
나무는 사람을 감격시킨다.
울창한 원시림이 아니더라도 하찮은 나무들도 봄에는 파릇한 잎,
여름에는 신록을 이루며,가을이 되면, 가장 사치스러운 옷으로 갈아 입고 멋을 부린다.
바로 단풍인데, 울긋불긋한가 하면 노랗고, 갈색인가 하면 불타는 듯
빨간 단풍 숲은 장인이 만든 작품이나 패션과 견줄 수 없는 자연의 예술이 되어,
뭇 인간들은 만산홍엽(萬山紅葉)에 도취하지 않았던가?
나무는 죽어서도 흉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고산 등성이 곳곳에 허연 속살을 드러낸 채 썩어가는 등걸은, 오히려 산의 깊이와
세월의 장구함을 말해 주고, 고사목(枯死木)의 뿌리마저도 잘 다듬으면,
기상천외한 모습으로 우리의 집과 사무실을 꾸며 주고 품격을 높여 준다.
나무는, 또 남을 탓하지 않는다.
가지를 자르고 비틀어도, 원망도 불평도 눈을 흘기지 않는다.
형형색색 다른 꽃을 피워도 "너는 왜 빨갛나" "왜 너는 노랗나"고
색깔 논쟁이나 편 가르기를 하지 않고, 상대방과의 서로 다름을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
나무는 철저하게 치부를 가릴 줄 안다.
새잎이 나고 누렇게 시들어 떨어질 잎은, 반드시 새잎 뒤로 몸을 숨긴다.
만개했다가 지는 꽃잎도 옆의 꽃잎을 가리지 않도록 다소곳이 주저앉는 것을 보면 놀랍고,
생을 마감하면서도 오기와 편견을 내세울 줄 모른다.
그리고, 나무는 결코 대세를 거스르지 않는다.
더울 때 자양분을 축적하고, 추우면 잎을 털고 옴츠리며 자연법칙에 순응한다.
손이 없어도 흔들어 대는 바람의 위력 앞에는, 허리를 굽히고 몸을 낮춰 삶을 도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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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볼 때, 정녕 나무는 사람의 스승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잘난 사람, 많이 가진 사람, 부러운 사람은 많이 보여도
인생의 길에서 삶의 길목에서 답답하여, 존경할만한 선배나 스승이 그리워지고
찾고 싶을 때는, 앞으로는 그 누구에게도 그 어디에도 가지 않고, 하나님의
창조섭리에 따라 억지 부리지 않고 자연순리대로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가며 살아 가는,
----저 나무,'반용송(蟠龍松)'을 찾으리라!---
겸손한 마음으로 가슴을 열고 바라 보리라!
그리고, 인간을 향한 창조주의 깊은 뜻을, 무언으로 말하고 있는 그 나무 앞에서,
무릎을 꿇는 심정으로 조용히 눈을 감고,
가서 안아 보리라! 조용히 기대어 보리라! 그리고 가르침을 받으리라! 위안을 받으리라!